심해저탐사 등 본격적인 해양연구를 할 수 있는 1천4백t급 종합해양조사선 온누리호가 노르웨이 칼센조선소에서 지난 1월 진수식을 가졌다. 세계 수준의 첨단조사장비를 갖춘 이 배는 귀국 도중 대서양에서 첫 조사활동을 벌인 후 지난달 국내에 들어왔다.
지난 1월 7일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해양조사선 온누리호의 처녀탐사항해팀은 매서운 겨울바람을 체감하며 김포공항을 이륙함으로써 25일 간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필자를 포함한 선발팀은 먼저 영국 해양연구소를 방문하여 영국 해양과학자의 승선계획을 확인하고 앞으로 우리가 수행할 연구장비시험 및 조사 대상지역인 대서양수심 4,5천m 지역의 기존 조사자료를 입수하였다. 10일 노르웨이 베르겐시에 도착하였으며, 12일 후발팀과 합류했다. 2차 도착팀은 경유지인 영국 히드로공항에서 짙은 안개로 인하여 노르웨이행 항공편이 취소되었으나 기지를 유감없이 발휘, 몇시간 뒤에 떠나는 덴마크 코펜하겐행 항공기를 이용하여 그곳에서 다시 노르웨이행 비행기를 갈아타고 도착, 합류하였다.
1992년 1월17일 대망의 출항일. 이날은 정말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감격을 맞았다. 우리나라의 해양연구인들의 숙원이었던 종합 해양조사선인 온누리호가 지난 5년 간의 산고끝에 탄생하여 처녀 출항한 것이다.
필자도 그동안 많은 해양조사에 참여했지만 대부분이 선진국의 조사선에 편승하거나, 외국조사선을 임차하여 사용한 것으로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가 변변한 조사선하나 보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응어리가 항상 남아 있었다. 이제 우리가 염원하던 결과가 현실로 나타나 온누리호의 웅장한 위용을 대하자 가슴속의 응어리가 다 풀어진 느낌이었다.
장비 비용이 건조비와 비슷
노르웨이 엠 앤 칼센 조선소 전직원, 베르겐시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조사선에 승선했을 때, 동승한 영국 해양연구소 전문가들이 축하인사(Congratulations!)와 함께 악수를 청했다. 세계의 유수한 해양조사선에 승선하여 각종 연구장비의 성능과 수준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그들은 온누리호를 보고 "한마디로 놀랍다"는 감상을 표현했다.
온누리호는 노르웨이가 세계 최고 수준에 있는 그들의 조선 기술에 대한 명예를 걸고, 또 최고의 부품과 재질을 투입하여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였다고 그들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또 현지언론에서 이미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출항 얼마후 아름다운 북구 스칸디나비아반도의 피요르드해안을 뒤로 했을 때, 이제는 모든 운항계획의 수립, 첨단장비의 시험 및 작동, 해양자료획득 등 모든 것들을 오로지 우리 자신의 손으로 처리해야하기 때문에 연구원들을 독려하며 비장한 각오(?)로 실제상황에 임하였다. 겨울철 바다가 험하기로 소문난 북해를 경험이 충분치 못한 우리 승조원 및 연구원들이 통과해야 했으므로 조사선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서양 처녀항해는 조사선의 운항상태 및 각종 연구장비의 정상 가동여부를 점검하고 운용방법을 습득함과 아울러 대서양해역의 해양조사가 목적이었다. 탐사연구팀은 필자를 단장으로 해양지구물리학 해양 지질학 해양물리학 해양생물학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조선공학의 박사급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되었으며 한국해양연구소의 핵심적인 30대 젊은 연구원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와 더불어 우리 탐사를 자문하고 지원할 영국해양연구소의 해양전문가 3명, 장비회사의 컴퓨터전문가 및 조선소측 관계자 3명 등 총인원 17명으로 구성되었다.
온누리호란 명칭은 '온 세상'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 말이다. 이 배는 전장 63.4m, 폭 12m, 총톤수 1천4백22t의 해양조사선으로 전세계의 해양을 대상으로 해양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첨단 종합해양조사선이다.
해양선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의 연구조사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전세계의 해양에서 연구조사를 수행할 수 있게 설계, 건조되었으며 국내외의 국립해양연구기관이나 대학 등과 협력하여 국가주도연구는 물론 국제공동연구를 수행할 다목적 연구조사선 이다.
특히 조사선의 건조비와 맞먹을 정도인 1백3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해양첨단장비들은 최근의 컴퓨터 전자공학기술을 극대화하여 조사관측자료를 실시간에 처리 분석하는 등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대용량 자료처리 및 정확성 신뢰성을 갖게 되었고 넓고 깊은 심연의 해역을 단시일에 연구가능하게 되었다.
1만m 심해저도 조사가능
조사선에 장착된 장비들은 대부분이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최신장비들과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설치된 장비다. 세계에서 세대 밖에 없는 첨단 해양장비인 다중 빔 해저지형탐사기는 10m 내외의 얕은 바다에서 1만m가 넘는 심해저까지 전천후로 조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비로 해상중력계 주파수변환디지털측심기 등과 함께 조사기간 대부분의 지역에서 운용되었다. 3.5㎑ 해저지층탐사기, CTD(층별 수온염분측정기), ADCP(도플러식 해류측정기), 주상퇴적물 채취기, 고정밀 어군탐지기 등은 시험에 적합한 해역을 선정하여 운용하였다.
해저지형탐사기를 이용해 영국 남서해역, 포르투갈 서쪽해역 및 스페인 남서쪽의 공해상에서 해저곡, 해저화산, 심해평원 지역을 대상으로 중점적으로 자료를 획득하였다. 해상중력은 베르겐항구 출항전 부터 시작하여 항해 종료시까지 계속 측정하였으나 기존자료와의 비교 분석을 위하여 포르투갈 서쪽 갈리시아 뱅크를 동서로 횡단하는 측선에서 집중적으로 측정하였다. 해저 퇴적물채취용 채취기는. 3.5㎑해저지층탐사자료를 분석하여 해저면이 평탄하고 퇴적층이 두꺼운 수심 4천8백m 지역인 스페인 남서쪽 심해평원상에서 실시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CTD시험도 함께 시도되었다.
기상관측용 인공위성송신장치 및 파고측정계도 계속 정상작동여부를 점검하면서 운용관측기술을 습득 하였다. 한편 조사선내의 항법장치 및 각종 연구장비는 휴렛팩커드사의 컴퓨터에 의해 통제되며 여기서 각종 측정자료의 입출력은 물론 각 자료간의 통합이용, 편집, 도면작성 및 후처리가 가능하다. 항해중에 각 장비에 대한 운용시험과 대부분의 연구원들에게 생소한 분야인 종합자료통제시스템, 선상에서의 자료후처리시스템에 관하여는 전문가 특별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되었다.
처음 조사선에 올라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 지금까지 승선했던 여느 연구선과도 판이하게 다른 느낌이 들었다. 질서정연하게 정리된 장비 그리고 마치 연구소 컴퓨터실에 들어간 착각을 일으킬 만큼 배 전체가 수십 대의 컴퓨터 단말기로 가득 차있어, 든든한 자부심과 함께 또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우리의 힘으로 이 많은 장비를 단시일내에 소화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마저 들기도 하였다.
일단 각 연구원들이 기거할 2인 1실용 방 배정을 끝 낸 후 연구팀이 상견례를 하고 이름표를 국민학생처럼 가슴에 달게하여 서로의 이름을 빨리 외도록 하였다. 장난기 많은 영국인 피터박사는 이름표 밑에 한글이름을 만들어 늠름하게 달고 다녔으며, 자기소개시 노르웨이 콘맵사의 컴퓨터 전문가는 자기이름이 어렵다며 그냥 미스터 콘맵으로 소개하여 한바탕 폭소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험하디 험한 북해의 파도를 가로질러 영불해협을 지나고 역시 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비스케이해를 통과, 대서양 심해에 이르는 전 해역의 조사를 순조롭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해상상태가 좋아야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첨단 과학장비를 사용 한 연구에도 역시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용왕제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다행히 출항 며칠간은 큰 파도는 없이 순조롭게 조사를 할 수가 있었다. 하루에 몇 번씩 수신되는 기상 위성자료를 면밀히 검토, 대서양에서 발달하는 기단의 이동추세를 살펴가면서 조사선의 항로를 잡았지만 영국 서쪽 대서양에서 6m크기의 파도와 강풍을 만나 어쩔 수 없이 남쪽으로 도망가야만 하는 신세가 된 적도 있었다. 이전까지는 모든 연구원들이 정상적인 식사를 하였지만 그 다음날부터 식당에 빈 자리가 늘기 시작하였으며, 하루 라면한개로 때우는 다이어트족들이 늘어 노르웨이에서 이틀동안 온 시가지를 헤맨 끝에 6배나 비싸게 산 라면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서양에서의 마지막 밤
1월 29일 밤 대륙붕에서의 생물조사를 제외한 전 조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스페인 지브롤터항구로 향했을 때 그동안 우리의 해양조사를 위해 참았던 바다의 신이 대서양을 뒤집기 시작했다. 덕분에 침실이 뒤죽박죽되고 의자가 날아다니는 대서양에서의 마지막 밤을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국내 최초로 도입된 첨단연구장비의 운용을 위해 철저한 사전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동승한 외국의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숙의해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발생했다. 그러나 일반 상선이 약 3년에 걸쳐 할 분량의 팩시밀리 및 통신위성을 통한 선상전화를 이용하여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 각국 전문기관에 직간접적으로 협의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하나하나 풀어나갈 수 있었다.
이번 연구항해의 성공적 수행은 종합조사선 온누리호를 국제적 수준의 해양연구에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로 인해 무한한 해양자원과 공간활용의 잠재력을 지니고도 연구장비나 조사선의 결여로 해양에 관해서 사실상 보잘 것 없는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쳐야만 했던 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동해의 연구만 하더라도 일본은 수십년의 장기 계획하에 동해의 그들 영해에 대해 그물망처럼 조밀하고 체계적으로 조사를 실시하고 여기서 얻은 해양자료를 바탕으로 각 분야에서 혹은 통합적으로 꾸준히 연구를 거듭하여 그들 영역에 관한한 깊은 연구결과가 도출된 상태에 있다. 반면 한국측 해역은 그 넓은 해역의 일부분만 그것도 대부분 외국에 의존하여 실시 된 자료에 불과하여 전체 동해연구가 답보된 상태다.
그러나 이제 온누리호의 취항으로 본격적인 해양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온누리호의 진가를 발휘할 심해저 망간단괴연구조사가 북동태평양(하와이 동남쪽)부근 해역에서 4월부터 시작되며, 한국-일본-괌을 잇는 해저통신케이블건설 조사도 외국으로부터 제의받는 등 벌써 각국 해양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강력한 음원을 갖춘 탄성파장비는 해저면에서 약 10㎞ 하부까지의 지층구조를 볼 수 있는 고가의 첨단 장비로서 지금까지 전적으로 외국 기술진에 의존했던 석유탐사를 자력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