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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질학 교과서 그랜드 캐년

포웰호(湖). 그랜드 캐년을 처음 답사한 존 포웰(Powell)의 이름을 딴 곳이다.


다양한 색조의 지층, 기이한 지형, 맑고 푸른 호수가 어우러진 대협곡은 세계의 7대 경이중 하나로 꼽힌다.

로키산맥에서 발원해 장장 2천2백㎞를 흘러 캘리포니아만으로 유입하는 콜로라도강은 콜로라도고원을 관류하면서 수많은 협곡을 지난다. 이름난 협곡만도 19개에 이르고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이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이다. 그랜드 캐년은 콜로라도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미드호에 이르는 3백50㎞에 걸쳐 발달해 있고, 폭이 7m에서 최대 30㎞, 깊이는 1.4㎞에 이르는 거대한 협곡이다.

웅장한 크기 뿐만 아니라 오랜 지구의 역사를 반영하는 다양한 색조의 지층과 각종 기이한 지형이 맑고 푸른 거대한 호수와 어우러져 별천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세계의 7대 경이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하루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경관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아침에 해가 뜰 때, 남측의 협곡 벽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황금색을 배경으로 여러가지 크기의 곶지형(headland)이 회청색으로 빛난다. 대소규모의 기이한 지형, 즉 메사 뷰트 피내클, 흔들바위나 다층석탑을 닮은 토어(tore) 등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 시간쯤 지나 짙은 암영의 크기가 줄어들면, 북쪽 협곡벽의 곶과 같은 돌출지형이 멀고 가깝게 역동적으로 나타난다.

한낮이 되어 남쪽 벽위로 해가 내리쬐면, 협곡내부에 있는 사원의 첨탑과 유사한 각종 지형의 뚜렷하던 그림자는 사라지고 들쑥날쑥 깊어 보이던 북쪽 벽은 갑자기 밋밋해진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아침나절의 장엄한 경치가 형태를 바꿔 다시 찾아온다. 해가 지면, 드높은 협곡벽의 지층 가운데 붉은 빛을 띠던 암층은 짙은 자주색으로 변하고 회색이나 녹색으로 보이던 지층은 푸른색으로 나타난다. 밤이 되면 차가운 달빛이 협곡을 적신다.

푸에블로인디언의 삶의 터전이었으나…

그랜드 캐년일대에는 적벽의 돌출부나 동굴에서 발견되는 주거흔적 등 많은 인디언유적과 유물이 산재해 있다.이곳에는 푸에블로인디언이 1200년대까지 거주했다고 한다.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 내에만 푸에블로인디언의 유적이 7백개소 이상이나 있고, 또 많은 유물이 투사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백인으로서는 카르데나스라는 스페인 사람이, 전설속의 황금도시 시블라를 찾아 헤매다가, 1540년에 처음으로 대협곡을 찾았다고 한다.

그랜드 캐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미국 지질조사소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 유명한 국립지리협회의 창립회원인 존 포웰이다. 그는 남북전쟁 당시 실로전투에서 오른쪽 팔을 잃어버린 소령출신의 지형학자로 대협곡을 관류하는 콜로라도 강을 따라 뗏목에 가까운 배를 타고 최초로 그랜드 캐년을 탐사했다. 탐사와 그밖의 조사를 바탕으로 1875년에 '미국 서부의 콜로라도강 답사'라는 유명한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그랜드 캐년의 지형 지질 문화인류 등을 다루고 있는데, 지형학의 중요한 기초개념이 된 침식기준면과 당시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건조지역의 지형 등을 설명, 지형학에 큰 공헌을 했다. 미국지리학회에서는 얼마 전부터 그를 기념하는 포웰상을 제정, 왕성한 탐험정신으로 지형학에 공헌한 학자에게 해마다 수여하고 있다.
 

캐피털 협곡(Capital gorge).그랜드 캐년에는 이런 작은 협곡이 수없이 많다.


온대 한대 건조기후가 펼쳐져

그랜드 캐년은 동서방향으로 내부 깊숙이 연장돼 있고, 기복의 차이가 1천6백여m나 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기온과 강수량의 차이가 커서 여러가지 기후지역이 나타난다. 열대기후를 제외하고 온대에서 한대에 이르는 기후와 건조기후가 다양하게 전개돼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토양과 함께 생물상이 다양하다.

협곡내부는 식생이 빈약한 건조지역이지만 남북에 전개되는 광대한 고원에는 소나무 삼나무 전나무 포플러 등의 수목이 무성하게 자란다. 특히 북쪽의 카이밥고원은 남쪽의 코코니노고원보다 고도가 4백여m나 높기 때문에 기온이 낮고 눈이 많이 내려 침엽수림이 크게 발달해 있다.

동물상도 풍부해 새는 1백80여종이나 된다. 포유류는 사슴 해리 등 60여종에 이르고, 파충류는 25종을 헤아린다. 흥미롭게도 남북측의 고원에 나타나는 생물상이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남쪽의 다람쥐는 회색 꼬리를 갖고 있는 반면에 북쪽의 카이밥고원에는 흰꼬리 다람쥐가 서식한다. 과학자들은 협곡으로 인해 오랜동안 격리된 것이 그 원인일 것으로 생각한다.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고

협곡벽에 드러난 화강암 편암으로 구성된 기반암, 부정합, 다양한 두께를 가진 퇴적암층은 지구역사의 상당부분을 말해주고 있다.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이토록 두터운 지층단면을 찾을 수 없다. 또한 각종 침식지형이 잘 보존돼 있어 지질학과 지형학의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그랜드 캐년의 기초를 구성하는 결정기반암은 40억년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격심한 지각운동을 받아 심하게 뒤틀려 있다. 기반암의 윗부분에는 침식면이 뚜렷하며, 부정합을 이루고 있다. 곡벽 윗부분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두께 7백m나 되는 퇴적암층은 주로 해성층인 석회암과 육상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셰일 사암으로 구성돼 있다.

고생대층으로 분류되는 이 퇴적암층에서는 많은 생물화석이 발견된다. 저층에서는 조류(algae)와 같은 단순한 생물의 화석이 나오고 윗부분에서는 나무 조개 삼엽충 등의 화석이 출토된다. 또한 큰 동물로는 공룡 낙타 말 코끼리 등의 화석이 발견된다.

결정기반암과 수평퇴적암층 사이에는 원생대의 퇴적층이 쐐기모양으로 끼어 있다. 여러 각도로 기울어진 이 지층군에서는 조류(algae)와 해파리의 화석이 발견된다.

흔들바위같은 균형석이 많아

고원 위에는 평탄한 침식면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고, 고원의 동북부방향에는 침식을 덜 받은 메사라는 고립된 탁상지형이 나타난다. 메사의 측면은 간혹 계단형태를 갖고 있으며, 자주색 흰색 분홍색 등 현란한 색조의 암석층으로 구성돼 지극히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메사의 윗부분은 사암과 같이 단단한 암석으로 구성돼 아랫부분의 셰일과 같이 부드러운 암석층을 보호하고 있다.

메사가 침식을 받아 평면적이 줄어들면 뷰트가 되고, 마침내는 탑과 같은 피내클이 만들어진다. 피내클은 지층을 따라 수평방향으로 틈이 생겨 흔들바위같은 형태가 된다. 이곳에서는 이러한 형태를 균형석(balanced rock)이라고 한다.

북쪽 협곡 가장자리에는 화산체가 침식을 받아 원추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검은 용암도 발견된다. 이 화산의 활동시기는 1천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어 대협곡의 연대에 몇가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지형은 오랜 시일을 두고 조금씩 진행돼온 지형과정이 누적된 결과라는 의견과 화산활동 조산활동 홍수 등과 같이 짧은 시간에 격변적으로 일어난 지형적 사변 후에 점진적인 풍화와 침식을 거치면서 다듬어진 것이라는 설명이 상존해 왔다. 이러한 두가지 가설을 설명할 때, 거론하는 지형 가운데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 대표적인 예다.

그랜드 캐년이 이뤄지려면 최소한 3천㎦의 토사와 암석이 침식돼야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폭 7천m, 깊이 1천m의 골짜기를 판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콜로라도강이 수백만년에 걸쳐서 침식을 일으켜 이토록 거대한 협곡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유역면적이 프랑스의 크기와 비슷한 콜로라도강은 유량이 크고 하천의 경사가 급한 편이어서 평균 50만t의 토사를 매일 실어나르고 있다. 하천유량에 포함된 진흙 모래 자갈 등의 하중은 하천바닥이나 측면을 효율적으로 깎아내는 강력한 침식도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콜로라도고원의 융기가 하천의 경사를 증가시켜 침식력을 크게 했다는 설명도 있다.

한편 그랜드 캐년이 점진적인 진화를 겪어 형성됐다는 전통적인 가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들에 따르면, 패리아강과 합류하는 지역일대에 남북방향으로 배사구릉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동쪽의 낮은 지대에 수천㎦의 유량을 갖고 있는 두개의 거대한 호수가 존재했다고 한다. 그후 배사구조가 파괴되면서 엄청난 물이 터져 나와 격변적으로 대협곡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랜드 캐년의 곡벽(谷壁)에는 많은 단두(段丘)가 형성돼 있다.


노새타고 관광하기도

이들은 격변적 침식이 짧은 시간에 대규모 협곡을 만들 수 있다는 증거를 워싱턴주의 세인트 헬렌산에서 찾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화산이 폭발한 1980년에 격변적인 지형형성이 일어났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재가 그 일대의 눈과 얼음이 녹은 물과 섞여 이류(mudflow)를 만들었다. 그런데 사태로 하천이 막혀 일시적으로 형성된 댐에 이류가 갇혀 있게 되었다.

그후 댐이 터지면서 이류가 흘러나와 세인트 헬렌산 북쪽에 그랜드 캐년의 40분의 1 규모의 협곡을 급격히 형성했다. 이곳 사람들은 이 협곡을 '리틀 그랜드 캐년'이라고 부른다. 협곡을 흐르는 하천이 협곡을 만든 것이 아니고, 협곡이 형성됐기 때문에 하천이 흐른다는 것이다.

콜로라도강은 봄철에 눈이 녹으면 격심한 홍수가 일어나고 토사량이 많아 수자원이용에 애로가 있었다. 그래서 20세기 초부터 세계최초로 다목적댐이 건설돼 왔다. 이에 따라 그랜드 캐년에도 포웰호 미드호 등 거대한 인공호가 생겨났다. 이 인공호는 협곡내의 각종 침식지형을 수몰시켰다. 최근에는 콜로라도강 하류의 댐건설에 따라 여러가지 생태적 재해가 일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1919년 그랜드 캐년 중심부의 2천6백㎢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근래에는 해마다 1천5백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뗏목 자동차 비행기가 관광에 이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노새를 타고 천천히 경치를 즐기는 관광이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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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유근배 교수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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