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를 해설하고 이창호보다 바둑을 잘 두는 컴퓨터는 과연 가능한가?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철학자 심리학자 언어학자들까지 동원돼 이러한 「인공 지능」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에 머물고 있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단어를 한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임에 틀림없다. 우리들에게 인공지능이란 단어는 그렇게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문제는 다소 복잡해진다.
"아, 그것말입니까. 세탁기 안에 들어있는 것 아니예요?" 또는 카메라나 전자밥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허나 세탁기안에는 저소음모터도 들어 있고 구질구질한 빨래도 있다. 물론 밥통에 있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시대에는 물신숭배가 널리 퍼져 있는 덕택에 상품만 잘 팔린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식어가 훈장같이 주렁주렁 달린다. 단순한 온도조절용 바이메탈 장치만 달려있어도 '전자동' 또는 '전자두뇌'라는 훈장이 용감하게 붙는다. 그 정도이니 간단한 반도체 칩 몇개만 내장되면 "컴퓨터로 움직이는…"이라고 당당하게 소개된다.
이런 풍조는 장기적인 과학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 언어가 정확히 사용되지 못하는 사회는 조지 오웰이 예언한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인공지능은 참으로 매력적인 말이다.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인조인간이나 터미네이터류의 로봇을 상상하게 된다. 무엇인가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에 대한 인류의 꿈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근대에 와서 프랑스인 보캉숑은 플루트주자인형을 정교하게 만들었다. 그 인형은 12음계를 제법 그럴듯하게 연주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악마의 장난이 아닌가 우려했다. 정교한 기계장치로 만들어진 자동 인형이 유행한 것은 18세기 초엽의 일이다. 이후 더욱 정교한 자동인형이 소개되었다. 누구는 한술 더 떠서 자동으로 체스두는 기계를 만들어서 전유럽을 순회하였다. 그러나 그 기계는 일종의 눈속임이었다. 기계속에 아주 키가 작은 인간이 들어가서 체스를 둔 것이었다. 어느 시대든지 과학기술이 부흥할 때면 이에 편승해 사기를 치는 무리들이 있기 마련이다.
사이버네틱스-모래알 맞추어 바윗돌 만들기
본격적인 자동기계는 찰스 베비지의 미분기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증기기관이 인간의 근육을 대신하였듯이 이제는 인간의 두뇌를 대치할 어떤 것들을 과학자들이 찾기 시작하였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가진 리스프(LISP) 언어를 만든 존 매카시가 붙인 이름이다. 전자공학이 발달하여 초창기 디지털 컴퓨터가 1950년대부터 출현하자 인공지능을 구현해보고자 하는 대담한 연구과제들이 속속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950년 벨전화연구소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음성응답기를 개발하려 했다. 그보다 1년 앞서 저명한 수학자인 웨렌 위버는 전세계 언어를 서로 번역할 수 있는 프로그램개발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 시대 분위기라면 충분히 기대할만한 것이었다. 같은 해 새뮤얼은 당시 최신형 컴퓨터인 IBM701에 체스프로그램을 입력시켜 당대의 체스세계챔피언을 굴복시키겠노라고 장담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같은 기계를 만드는데 이론적 기여를 한 사람은 세기의 천재인 로버트 위너박사다. 그는 10살도 채 되기전에 고대 그리스어로 아버지와 농담을 할 정도로 신동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무리 중요한 세미나라고 해도 그 주제가 자신의 흥미에 맞지 않으면 사정없이(?) 졸아버리는 습관이 있었으며, 그렇게 정신없이 졸다가도 자신과 관련된 단어가 나오면 정신나간 사람처럼 벌떡 깨어나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창조했다. 사이버네틱스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배의 방향을 잡는 키잡이'라는 뜻이다. 사이버네틱스는 보통 인공두뇌학이라고 불린다. 이는 모든 생물체의 일반적인 적응과정을 수리적으로 정형화하는 것으로 이후에 인공지능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그의 책은 '인간활용'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되었다.
위너가 발견한 적응과정의 핵심은 피드백(feed back)이었다. 즉 주위의 환경에 일정한 작용을 한 뒤 그 결과를 다시 받아들여 다음 작용에 사용하는 것이다. 피드백이론은 레이더를 이용한 대공포사격술에 응용되어 명중률을 높이는데 획기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 이론을 이어받아 "뇌의 신경구조와 컴퓨터의 동작원리는 기본적으로 같아야 한다"는 워렌 매컬로라는 신경생리학자의 발표가 있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접근은 초기에는 전자공학이라기보다는 이와 같이 생리학적이고 생물학적인 방향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방식의 초창기 인공지능을 신경모델링(neutral-modeling)접근, 또는 상향식(bottom-up)방식이라 부른다. 즉 신경세포와 같은 컴퓨터소자를 개발하고, 그것을 엮어서 두뇌와 같은 기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수백억개의 뉴런을 가진 두뇌를 철심(기억소자)과 전기줄로 엮어낸다는 것은 마치 바닷가의 모래알을 맞추어서 빈틈없는 바윗돌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경생리학도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전기줄로 뉴런을 만들려던 노력은 주춤했다.
책「퍼셉트론」이 회로「퍼셉트론」을 제압
이 무렵 당찬 정신병리학자가 등장하여 인공지능의 문을 마구 두들겼다. 그는 전형적인 뉴욕인 프랭크 로젠블랫이었다. 그가 만든 퍼셉트론(Perceptron)이라는 전자회로는 아주 간단한 뇌의 기능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었다.
퍼셉트론은 당대 최고의 컴퓨터인 IBM704에서 시뮬레이션되었다. 실험은 서로 다른 형태의 사각형들을 분류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프로그램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 과정이 무척이나 지루하고 한심하였을 지도 모른다. 사람이 한다면 정말 눈깜짝할 새에 할 일을 컴퓨터는 30분 동안에, 그것도 당시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IBM704에서 그러했으니.
그러나 그 광경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퍼셉트론은 광전지로 만들어진 인조눈을 통해서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퍼셉트론은 아무런 프로그램이 없이 단지 스스로의 학습과정을 거쳐 스스로 자기를 조직화(Self-Organization)해나갔다.
신문쟁이들이 먼저 들뜨기 시작하였다. 마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탄생 한 것 같이 기사화되었다. 어떤 신문은 퍼셉트론을 이용해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해설할 시대가 올 것이라고 떠들었다. 로젠블랫의 연구 결과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에는 상향식 방식이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퍼셉트론을 빨리 훈련시키고, 또한 그 덩치를 크게 만들 것인가였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로젠블랫이 받는 스폿라이트에 얼굴을 찡그린 사람이 있었다. 그는 로젠블랫의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였다. 마빈 해글러를 연상시키는 시원한 대머리에 공격적인 눈매의 민스키는 뉴욕 브롱크스 과학고등학교시절 로젠블랫과 한반 친구였다.
1958년 민스키는 남아프리카 출신 수학자인 패퍼트(Papert)와 함께 '퍼셉트론'이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하였다, 퍼셉트론을 설명하고 그것을 칭찬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 내용은 로젠블랫이 퍼셉트론을 이용해서 조만간에 가능할 것이라고 자랑한 여러가지 기능을 하나씩 뽑아내 그것이 퍼셉트론으로는 어떻게 불가능한지를 꼼꼼하게 설명해 나갔다. 게다가 패퍼트의 수학실력을 빌어 손톱도 안들어갈 정도로 수학적으로 증명하였다. '퍼셉트론'이라는 책제목이 시니컬하게 느껴질 정도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자본주의를 철저히 분석하고 비판하였듯이 책 '퍼셉트론'은 회로 '퍼셉트론'에게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되어버렸다. 이후부터 인공지능은 하향식(top-down)방법을 선호하게 되었다. 세월이 조금 지나서 민스키는 '퍼셉트론' 개정판을 내면서 지난날 자신의 다소 경솔한 행동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했다. 아마 독자 여러분들이 구한 '퍼셉트론'은 대부분 개정판일 것이다. 겉표지를 펼치면 "로젠블랫을 기억하면서"라는 민스키의 어눌한 글씨가 보인다.
'인공지능이라는게 도대체 뭔가'라는 주제로 많은 논쟁이 있었다. 철학자들은 인공지능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주었다. '사람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계' 그런 것이 아니면 안된다고 이들은 소리쳤다. 이들은 "컴퓨터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식의 비난을 하면서 문제를 전통적인 유심론과 유물론의 격투기장으로 밀어넣으려 했다. 지금도 인공지능에 관한 많은 논쟁들이 이러한 형태의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로 귀납되는 것을 자주 본다.
컴퓨터로 수학의 정리를 증명한 사이먼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도대체 지능이 뭐냐? 그것은 천사의 선물이 아니다. 꿩잡는 게 매라고, 기계에 지능이 있다는 것은 내부에서야 어떻게 돌아가든지 결과만 그럴듯하면 될게 아니냐"는 식이었다. 지능이 있는 사람이 A라는 입력을 받아서 B라고 출력을 내고 그것을 기계가 흉내낸다면 그 기계는 그 문제에 관해서 그 사람과 같은 정도의 지능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무시하고.
이러한 깃발을 들고나온 사람은 뉴엘과 사이먼이었다. 이들은 1956년 록펠러재단에서 개최한 다트머스대학 하계토론회에서 인공지능의 방향을 새로 정했다. 그들은 "전통적인 아날로그식 전자 시뮬레이션보다 보통의 디지털컴퓨터 프로그래밍 방식으로 인간의 지능을 흉내내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유치원생들도 쉽게 하는 도형맞추기 같은 장난감에 매달리기보다 고등수학의 정리증명이나 체스게임에 응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이먼은 원래는 카네기멜론대학의 행정학교수였다. 사이먼은 뉴엘과 쇼(Shaw)라는 조교의 도움으로 '논리이론가'(Logic Theorist)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이 프로그램에는 인간의 논리적 추론과 같은 기능이 있었다. 충격적인 실험결과가 발표되었다. 사이먼은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쓴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를 읽으며 그 기호논리적인 증명과정을 '논리이론가'에게 시켜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수학의 정리(theorem)를 증명하는 일은 전통적으로 사람의 고유능력이라고 믿어왔다.
프린키피아를 읽은 '논리이론가'가 다소 조잡하긴 해도 드디어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기계가 수학적 정리를 증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것은 세기의 천재인 러셀과 화이트헤드보다도 더 기발하게 증명해보였다. 정말로 생각하는 기계가 탄생하였다고 떠들썩하였다.
기세가 등등해진 사이먼은 10년이내에 세계체스 챔피언은 컴퓨터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게다가 작곡 번역 작시 등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모든 영역이 가차없이 공격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심지어는 컴퓨터가 새로운 대수학의 정리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호언했다. 수학상의 여러 난제들이 단체로 해결되는 날을 상상하면서 사이먼은 미소를 지었다.
사이먼은 계속해서 '만능해결사'(General Problem Solver)라는 프로그램개발에 착수하였다. 이 프로그램의 최종목표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근사하게 해결해낸다는데 있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사이먼의 입가에서 미소는 사라졌다.
전문가시스템의 등장과 자동 번역의 실패
모든 문제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아직도 컴퓨터 체스챔피언은 인간챔피언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엇비슷하긴 하지만). 최근의 결과는 유고슬라비아인 카르포프(Karpov)에게 챔피언 프로그램인 '하이테크'라는 프로그램이 아슬아슬하게 패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의 초기 열기와는 달리 발전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화려하긴 하지만 제대로 되는게 없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문제점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때마다 연구자들은 보통 인간이 20여년동안 배우는 상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만능해결사라든지, 페르미의 마지막 정리따위를 컴퓨터로 해결해보려는 노력은 무지개를 잡는 짓이나 다름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더구나 1950년대 초부터 거국적으로 시작된 자동번역(러시아어를 영어로, 영어는 러시아어로)의 실패는 인공지능에 기대를 걸어온 여러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주었다. 하버드 대학의 안소니 에팅거가 이끄는 자동번역팀은 언어의 번역에 얼마나 많은 부수적인 지식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특히 속담과 같이 문화유산이 담겨있는 함축적인 문장은 '전혀'라고 할 정도로 번역이 불가능했다.
번역이나 추론과 증명, 물체인식 등에서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실패한 것은 너무도 광범위한 목표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인공지능은 이론적이고 엄청난 목표를 공격하기보다는 보다 공학적이고 좁은 범위의 문제해결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때 나오게 된 것이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다. 즉 지식의 적용범위가 비교적 좁고 타분야의 지식과 크게 뒤섞이지 않는 특정기계수리분야라든지, 질병진단용 의학분야라든지, 아니면 간단한 운동경기의 전략을 수립하는데 전문가시스템은 활발히 사용되었다. 특히 스탠퍼드 출신의 부캐넌과 쇼틀리프가 개발한 '마이신'(MYCIN) 프로그램은 항생제 처방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놀라울 정도의 정확성을 보였다.
어떤 경우에는 인간 지식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서 그 지식을 규칙으로 만들어서 프로그램 상태로 보관하려고도 하였다. 예를 들면 한 전문기사의 퇴직을 앞둔 캠벌수프회사는 그 전문기사의 경험과 기술을 프로그램으로 보존하고 있다. 즉 영역전문가(domain expert)와 지식기사(knowledge engineer)의 합작이었다. 이후에도 많은 전문가시스템은 인공지능의 유일한 보금자리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전문가시스템은 인간이 행할수 있는 응급처치와 같은 임기응변이 없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환영받지는 못했다.
다시 주목받는 퍼셉트론
초기의 소박한 과학적 열정으로 시작된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는 다소 시들해졌다. 그 이유로는 먼저 인간의 뇌기능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과 아직도 상식과 같은 모호한 지식을 효율적으로 컴퓨터에 이식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과장되게 부풀려 선전하고, 그 바람을 틈타 제품을 팔아 먹는 기업들의 부추김이 도리어 체계적이고 올바른 방향의 연구를 방해해왔다. 최근에는 다시 퍼셉트론류의 상향식 연구방법이 광학소자나 병렬처리 기술의 발달로 각광받고 있다.
인간의 지능을 기계로 묘사하거나 새로이 증폭시키고자 하는 일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어려운 일이며 금세기 최후의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어려운 일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나 심령을 인공지능에 우겨넣어 쓸만한 결과를 애써 무시하거나, 지구를 원시시대의 신의 품으로 되돌리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