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사태 한소과학기술교류등 6공과학기술계에 명암을 남긴 사건들을 정리해 본다.
컴퓨터 보급 1백만대 돌파
89년 초중고등학교 학교컴퓨터교육 실시를 계기로 개인용 컴퓨터(PC) 수요는 급속히 늘어 91년 하반기의 국내 컴퓨터 보유대수는 1백50만대를 돌파했다.
PC수요가 급증한 데는 빠른 기술개발속도로 인해 PC가격이 날로 하락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 86년 3, 4백만원을 호가하던 16비트 PC(XT기종) 가격이 89년에는 1백만원 이하로 떨어지고 요즘에는 그보다 성능이 뛰어난 AT기종이 7, 80만원에 팔린다. PC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 책상위에 올려놓고 쓰는 데스크톱에서 랩톱(laptop) 노트북(notebook) 팜톱(palmtop) 등이 최신 제품도 최근 선보이고 있다.
한·소 과학기술교류로 기술이전통로 다변화
6공의 간판정책인 북방외교는 과학기술계에서도 예외없이 추진됐다. 그 가시적인 성과가 바로 90년 12월에 체결한 한·소, 한·헝가리간의 과학기술협력협정. 중국과도 미수교국이라는 제약때문에 정부차원의 협정만 맺지 못했을 뿐 이미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를 통해서 도핑 등 실제기술의 상호이전은 진행되고 있다.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과의 과학기술협력협정 체결 외에도 6공정부는 90년을 '국제공동연구협력기반 조성의 해'로 정해 해외주재과학관(科學官)의 수를 늘리는 등 과학외교에 적잖은 관심을 보여왔다.
과학기술교류통로를 다변화하려는 이런 노력은 단순한 정치적 포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88올림픽의 개최 이후 하루가 다르게 가속되는 미·일 등 선진국의 기술이전 기피추세에 새로운 이전통로확보라는 적극책으로 맞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정부와 기업에는 자본주의적 의미의 '지적소유권' 개념이 없는 사회주의권의 연구성과물이나 기술 등을 잘만 가려내면 공짜로 고급기술을 얻을 수도 있다는 기대가 적지않다.
그러나 우리와 체제가 다른 동구권의 개발 현황이나 협력방식 또 그간 서방국가로의 이전이 왜 부진했는가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면 효율적인 협력관계를 장담하기는 아직 이른 것으로 보인다.
TDX-10 개발, 통신기술선진국 확인
'홀로서기 10년만의 통신기술자립'이라는 호평을 얻은 TDX-10 개발사업은 5공서 시작된 사업이 6공까지 지속돼 성공을 거둔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TDX-10은 앞서 86년에 개발된 TDX-1A와 TDX-1B의 용량이 각기 1만, 1만6천회선이었던 데 비해 무려 10배의 용량이며 시간당 1백20만건의 통화를 처리한다. 양적확대도 확대지만 CATV중계기능과 광대역 종합정보통신만(ISDN)을 소화할 수 있는 등 부가기능이 특히 주목된다. TDX-10의 개발로서 한국은 명실공히 세계 10대통신기술보유국의 일원이 됐으며 91년 한해에만도 4천억원에 이르는 국내교환기시장을 국산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됐다. 한국통신은 92년말까지 전국 전자교환기 시설의 약30%에 이르는 회선을 TDX계열로 대체할 방침이다.
TDX개발사업이 관계전문가들 사이에서 특히 인정받는 이유는 정부출연연구소와 산업체가 정부의 일관된 정책추진 아래 공조체제를 무난히 유지해 개가를 올렸다는 점이다. TDX-10개발에는 한국통신이 5백60억원을 내놓았고 전자통신연구소가 기본설계한 것을 금성정보통신 대우전자 동양전자통신 삼성전자가 분담해 기술을 개발하고 그 결과를 공유했다.
그러나 수출시장에서는 4개사가 이미 경쟁양상을 보이고 있어 1개국 1사진출의 원칙이 무너질 위험성이 있으며 과당경쟁으로 인해 어렵게 개발한 기술이 쉽게 개도국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또한 적지않다.
6공 최대의 역사 경부고속전철사업결정
경부고속전철사업은 6공 최대의 역사다. 나라의 대동맥(고속도로 네개의 역할수행)을 새로 건설한다는 측면에서나 5조8천억원(90년 가격 기준)이라는 공사비 측면에서나 메가톤급 역사임에 틀림없다. 노대통령 취임 공약이기도 한 경부고속전철사업은 아직 정식으로 공사가 시작도 안된 상태지만 내년 초에 사업주간국이 결정돼 6공이 끝나기 전까지는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될 전망이다(98년 완공 예정).
경부고속전철 사업은 시작 전부터 과학기술계에 몇가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아직 실용화는 안됐지만 첨단기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자기부상식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기존의 바퀴식으로 할 것이냐는 문제. 이 논쟁은 국내에 자기부상열차 연구붐을 조성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바퀴식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또하나는 TGV인가 신칸센인가 아니면 ICE인가 하는 문제. 내년 초에 이루어질 이 선택의 잣대는 경제성과 기술성으로 나뉜다. 차관 공여 조건이 주내용인 경제성은 별도로 하고 기술적으로 신뢰성이 있는 차종을 선택하는 문제와 적절한 기술이전을 통해 국산화를 어느 정도 이룩하느냐는 문제는 과학기술계의 숙제라 할 수 있다. 고속전철과 같은 거대프로젝트는 우리 기술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므로 특히 기술이전 조건과 더불어 국산화율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주간국 선정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일부 국내 과학기술자들의 '2백50km대의 고속전철을 우리손으로 만들어보자'는 국산화 움직임이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하고 진압(?)됐다는 데 아쉬움이 남는다.
농약·의약품 등 신물질 개발 러시
세계 최초로 어떤 물질을 개발한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인 만큼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국내에서 신물질을 창출한다는 것은 꿈꾸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전세계적으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다른 나라가 개발한 물질을 모방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저변에 흐르게 됐고, 이런 위기감을 반영했음인지 6공 초기에는 한동안 신물질 개발소식이 러시를 이뤘다.
그중 최초의 작품은 한국화학연구소 복성해박사팀이 지난 88년초에 개발한 KRF001이라는 벼도열병 치료제였다. 곧이어 같은 연구소의 김완주박사팀이 KR10664라는 항생제를 개발하는데 성공, 이제 한국에서도 신물질개발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내외에 알렸다. 퀴놀론계 항생제의 일종인 KR10664는 현재 실제로 적용을 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받게 돼 있는 독성실험을 거치고 있다. 이밖에도 지난 해 화학연구소 김대황박사팀이 초강력 제초제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하는 등 신물질 창출행렬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스피린처럼 완성된 신물질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최초'라는 타이틀과 함께 화려하게 지면을 장식했지만 여전히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같은 신물질 열풍은 신물질 창출건수에 관한한 세계1등국인 일본을 따라잡기 위한 첫걸음으로 볼 수 있다.
G7프로젝트 91년들어 본격화
2천년대 한국과학기술을 이른바 서방선진7개국(G7)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G7프로젝트'가 91년들어 본격화됐다.
92년 2월까지를 연구기획기간으로 잡고있는 이 프로젝트는 특히 제품기술과 기반기술로 개발대상을 구분해 수년내에 상품으로 만들어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품목과 당장 결과물을 보기는 어렵지만 기술자립을 위해 자체개발이 필요불가결한 기술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추진해나가고 있다. 제품기술개발사업으로 확정된 것은 초고집적반도체인 2백56M D램 광대역 ISDN 고선명(HD)TV 전기자동차 인공지능컴퓨터 신의약 첨단생산시스템인 CIM 등이다.
G7 프로젝트는 정책추진관행차원에서도 의미있는 사업이다. 과거 관련부처들이 서로간의 밥그릇싸움으로 대립양상을 보였던 데 반해 협조체제를 지향하고 있어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까지 추진되던 국책개발사업이 돌연 실종되고 그 대역으로 등장한 정책이란 점 때문에 조령모개식 과학기술정책의 또하나가 아닌가하는 의구의 눈길도 아직 거두어지지 않고 있다.
허점투성이 원전 행정이 부른 안면도사태
1990년 11월 3일자 한겨레신문은 정부가 안면도에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첫 보도했다. 이후 안면도에서는 치안이 일시 마비될 정도로 격렬한 주민투쟁이 전개됐고 그 결과 정부의 건설계획 철회와 과기처장관경질이 잇따랐다.
안면도사건은 장기적 전망없이 추진된 안이한 원전행정의 허점과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의식의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사건당시 '화장실없는 비행기'라는 비유가 유행했던 것처럼 원자력발전소를 연이어 건설하면서도 폐기물처리장을 적정수준으로 확보하지 못한 점이나 주민설득없이 비밀리에 처리장건설을 추진해 오히려 불신만 가중시킨 것등은 모두 미래형에너지로 홍보되는 원자력발전에는 걸맞지 않는 고식적인 행정으로 평가된다.
또 환경문제를 생존권차원으로 이해하는 주민들의 대응도 주목할만한 변화다. 6공에서는 91년 대구 페놀파동이나 골프장건설반대투쟁이 보여주듯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의식이 높아졌고 대응방식도 집단시위 등 적극적인 양상을 띠고 있어 민의를 수렴한 환경정책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일단 안면도내(內) 건설계획은 철회됐지만 현재의 폐기물수용능력이 95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르러 처리장건설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과기처는 91년말까지 폐기물처리장건설 희망지역을 신청받아 지질구조상의 안전도, 사회문화적 요인을 종합평가한 뒤 최종건설지를 확정하기로 했다. 11월말 현재 신청지 44군데 중 7곳을 후보로 압축했다.
구호에 그친 기초과학 육성
기초과학의 육성없이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음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과학기술계에서 이 명제는 그동안 줄곧 지켜지지 못했다. 공학 등 응용과학의 수요가 워낙 크고 급했기 때문이다.
6공 초기에는 전세계적으로 조성됐던 기술무기화 조류를 탈피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서 기초과학육성책이 잇따라 발표됐다. 현재 성공적으로 시행되는 사업은 90년부터 과학재단이 주도하는 SRC(우수과학연구센터)와 ERC(공학연구센터)의 선발 및 운영이다. 선발과정에서 약간의 잡음이 없지 않았지만 10억원 가량의 거액지원이 이뤄진 것은 유사이래 처음이어서 계획대로 잘만 운영된다면 소기의 성과를 올릴 전망이다.
그러나 이 사업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기초과학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인지도가 낮고 투자가 부족하다는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89년을 '기초과학연구 원년'으로 지정했지만 기초과학연구지원센터 활성화 등은 첨단기술개발 요구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정부가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 않자 89년 이후 대학교수들을 중심으로한 '기초연구활성화 추진협의회'가 기초과학육성자금 1조원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채로운 일이다.
국·공립연구소 통폐합 회오리 진통
91년 과학기술계의 22개 국공립출연연구소는 때아닌 통폐합회오리로 진통을 겪어야했다. 91년 3월 '제조업경쟁력강화대책회의'석상에서 '출연연구소들이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대통령의 지적이 있은뒤 시작된 출연연구소합동평가작업(단장 서정욱 과기처차관)이 이 진통의 원인.
5개월여에 걸쳐 수면하에서 진행된 평가작업의 결과는 8월21닐 '정부출연연구기관기능재정립 및 효율화방안'으로 발표됐다. 평가의 요지는 그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몫이었던 연구 중 산업기술에 관련되는 상당부분을 민간기업연구소에 넘기고 성과가 뚜렷치 못한 연구소들은 관련연구소에 합병한다는 것이다.
천문우주과학연구소 등 정리대상이 된 연구소측은 평가작업이 연구투자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애초 취지보다는 연구소의 기능축소에 초점을 두었다며 이 안에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조직과 과제가 방만하게 운영된 측면도 없지않으나 체계적인 관리를 모색하지도 않고 경비축소만 염두에 두어 연구소의 특성과 자율적 운영을 도외시한 방안을 제시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91년으로 민간연구소 수가 1천개를 넘어선 사실이 말해주듯, 국공립연구소가 산업계의 기술연구수요를 전담했던 과거와는 달라진 현실을 반영해 출연연구소의 기능재정립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가대상인 연구소의 의견을 배제하고 경제논리로만 기능과 성과를 평가해서는 대국적인 견지의 정부출연연구소위상정립은 요원하다는 것이 연구원들의 지적이다.
블랙박스 전화도청 시비 공방
1989년 10월 국회경제과학기술위원회감사의 최대관심은 이른바 블랙박스 도청여부에 쏠렸다. 당시 야당의원들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가 전기통신공사의 의뢰를 받아 개발한 '비음성통신용 전송품질측정시스템'과 '가입자선로 집중운용보전시스템(LCR)'이 각각 전화도청장비로 쓰이고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블랙박스로 불리게 된 문제의 품질측정시스템은 89년 5월부터 서울시내 각 전화국에 은밀히 설치됐다가 90년 국정감사 직전에 일제히 수거됐다 국회는 X-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시스템개발사업에 참여한 과학자들의 증인심문까지 벌이며 도청여부를 확인하려 했지만 이 프로젝트가 안기부와 관계있으며, 특수한 어댑터(adapter)를 연결시키면 도청장치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기술적인 견해를 들은 것이 고작이었다.
결국 전화국과 연구소에서는 이미 누구나 블랙박스를 도청장치로 이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 출두한 과학자들은 이 프로젝트가 국가2급비밀임을 들어 결정적인 질문에는 함구로 일관했고 충분한 심증을 갖고 몰아부티이던 국회의원들조차 전문가 설명 앞에서는 어떤 하자도 찾아내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한편 전자통신연구소 노동조합은 블랙박스 물의가 일자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을 방패삼아 사회적책임을 회피하려는 무책임하고 기계적인 과학기술자의 모습을 부정한다. 반드시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