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래의 유전공학적 단백질 생산법보다 훨씬 간단하고 값싼 방법 개발돼
20세기가 다 가기 전에 어쩌면 우리는 '네발 달린 제약회사'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다시말해 동물의 젖으로부터 꼭 필요한 단백질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동물은 범상한 동물이 아니다. 외부로부터 인위적으로 이질적인 유전자를 받은, 즉 일부 유전자가 조작된 동물이다. 현재 염소 소 산양 등을 대상으로 이같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데 성과가 좋아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유전공학적으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을 생산하고자 할 때, 종래에는 박테리아나 포유동물의 세포를 이용했다. 예를 들어 인슐린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자면 대장균(E.coli)의 도움을 청해야 했다. 따라서 박테리아를 배양하는 발효조 바이오리액터 등 값비싼 장비들을 갖춰야 했다. 또 다른 물질과 복잡하게 얽힌 상태의 단백질을 얻었으므로 이것들을 풀어내는데도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런데 동물의 젖을 통해 단백질을 얻으면 이런 고충은 일시에 해결된다. 동물 자체가 바이오리액터가 돼주므로 고가의 장비도 불필요해지고 단백질을 순수분리하는 일도 용이해진다.
요즘 영국에서는 염소젖에서 항(抗)트립신(α-antitrypsin)을 추출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에딘버러의 한 제약회사(Phamaceutical Proteins)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이 실험을 통해 염소젖 1ℓ당 35g의 트립신을 얻는데 성공한 것이다. 따라서 한마리의 염소(항트립신 분비 유전자가 이식된)가 한번의 수유기에 항트립신을 12kg까지 젖을 통해 몸밖으로 내보낸다는 계산이 나온다.
에딘버러의 연구팀은 총 1백14마리의 염소에게 항트립신 분비 유전자를 이식했다. 그중 5마리의 염소가 명실상부한 '항트립신 공장'으로 등록됐는데 관계자들은 항트립신 분비유전자를 염소의 몸안까지 옮겨주는 전달자(vector)를 잘 선택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즉 염소의 젖에서 추출한 베타 락토글로블린(β-lactogloblin)에 항 트립신 분비 유전자를 집어넣은 뒤 이것을 벡터로 활용한 것이다. 마치 '트로이의 목마'처럼 활약한 베타 락토글로블린이 항트립신 분비 유전자를 염소의 체내에 옮겨 줌으로써 그 염소의 젖이 항트립신을 함유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산된 항트립신은 1990년대 중반이면 시장에 나와 선천적으로 이 단백질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네덜란드 레이덴대학의 헤르만박사는 젖을 통해 단백질을 분비하는 소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암소 한마리가 1년에 약 1만ℓ의 우유를 분비할 뿐더러 1ℓ당 35g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다른 어떤 동물보다 훌륭한 '단백질공장'이 돼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소가 특정한 단백질을 분비하게 하는 유전자를 갖게 하는 일은 그동안 실패를 거듭해 왔다. 대리모(주로 토끼)의 몸안에 잠시 보관했던 수정란(단백질 분비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는)이 늘 말썽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수정란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나를 관찰하기 어려웠고 대리모를 반드시 희생시켜야 한다는 문제가 따랐다.
그래서 헤르만박사팀은 소의 난관을 흉내낸 실험실의 배지 안에서 수정란이 며칠간 안전하게 자라게 하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산양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실제로 미국 매사추세츠주 소재 튜프트대학 연구팀은 29마리의 산양을 대상으로 특정 단백질을 생산하게 하는 유전자를 주입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는 대단히 고무적인 것이었다. 두마리의 산양의 젖에서 원하던 단백질(plasminogen activator)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1ℓ당 3μg에 불과한 극소량이었지만 연구자들은 곧 1ℓ당 2,3g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