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유전학자 해부학자들이 도전하고 있다.
언어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어떤 변천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인류의 발생'만큼이나 오랫 동안 인류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는 '언어의 발생'문제는 오늘날 과학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해부학과 유전학 발생학 분야의 과학자들은 수십만년된 조상들의 화석을 이용해 그들이 냈던 초기의 소리까지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학과 고고학이 채 밝혀내지 못한 인류최초의 언어에 관한 비밀은 현대과학으로 마침내 해명될까.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언어생성사를 밝히기 위해 서로 어떤 관계를 취해야할까.
이 글은 언어발생에 관한 최근의 연구경향을 흥미있게 정리한 프랑스의 유력주간지 렉스프레스(L'express)의 근착기사 '태초의 인간들은 어떻게 언어를 구사했을까'(Ainsi parlaient les premiers hommes)를 발췌, 소개한 것이다.
인류최초의 언어에 관한 언급으로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 '말씀'이 오늘날의 언어를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창세기 이후 언어는 복잡다단하게 변화, 발전되어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도대체 언어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으며, 최초의 인류는 어떤 방법으로 언어를 구사해 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다.
언어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은 일찍이 이집트의 프사니피크 1세 시절에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벙어리 목동에게 두아이를 맡겨, 아이들이 과연 말을 하게 될 지 그렇다면 어떤 계기로 그 능력을 습득하는 지를 지켜 보았으나 그 아이들은 끝내 말을 하지 못했다.
이 실험은 태초에 언어가 어떻게 생성, 발전했는지를 규명하지 않고서는 언어의 비밀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준 한 예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인류는 발생학과 유전학 등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이 '태초의 언어'에 얽힌 비밀을 캐고 있다.
일군의 해부학자들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호모 사피엔스의 목소리를 합성해내는 실험을 거듭해 오고 있으며 유전학자들도 분자분석 방법으로 초기 인류의 목소리를 재현해보려 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시도하는 실험이 언어생성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면서 동시에 가장 부질없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원숭이와 다른 발성기관
오늘날 언어생성과정을 연구하고 있는 많은 학자들은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가 똑같은 규칙의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학설을 적극 지지하는 메리트 룰렌('세계의 언어 백과사전' 저자)같은 이는 10만~1백만년전에는 손가락을 '티크'(Tik)로 발음했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주장은 언어학적 가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무리 정통한 언어학자라도 현재 세계에서 연구가 가능한 - 사언어(死言語) 포함 - 약 10만종의 언어를 속속들이 완벽하게 밝혀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에 고생물학자 고고학자 유전학자들까지 가세하여 언어의 기원을 밝히는데 새로운 지평을 열려고 한다. 여기에는 해부학자들까지 끼어 있다. 몇년전 고생물학자들이 두개골 내피(內皮)에 남겨진 뇌의 흔적에서 언어구사 여부를 추정해 낼 수 있는 특징을 발견해냄으로써 이 방면 연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같은 시기의 원숭이 두개골에서는 그같은 특징이 발견되지 않아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일련의 연구 중 특히 뉴욕의 약학교수인 제프리 레이트만은 원숭이와 인간의 발성형태를 처음으로 비교 연구한 뒤 그 차이점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인류학자들은 사람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원숭이들이 내는 것같은 무의미한 외침을 언어로 바꾸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데 그 이전에 악기가 소리를 내기 위해 어떤 장치가 필요한지를 알아내듯이 인간의 육체적 기능을 먼저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연구를 위해 그는 에드먼드 크렐린과 필립 리버만이라는 고대 인류 후두연구가를 끌어들였으며, 이들과 함께 초기 인류의 화석들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호모 사피엔스의 성인 두개골은 바닥이 오목하고 후두의 위치가 낮은 데 비해 여타 유인원은 두개골 바닥이 평평하고 후두의 위치도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들은 또 2백만~4백만년전 아프리카에 거주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침팬지와 비슷한 발성기관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모음자를 발음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집단생활로 언어 발달
한편 20년 전, 프랑스의 토타벨에 있는 아라고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에서 고고학자인 앙리와 마리 앙트와네트는 가장 오래된 유럽원인(原人)의 두개골 파편을 찾아냈다. 이 인류는 약 40만년전의 직립원인에 해당된다. 이들은 이미 불을 사용할 줄 알았으며 아프리카의 온난한 기후를 벗어나 유럽과 아시아의 추운 지역으로 진출하는 의지도 가진 인류였다.
엑스 마르세이유대학의 고고학 교수인 마리 앙트와네트는 이 이해할 수 없는 두개골에 미국식 연구방법을 도입하기로 하고 엑상프로방스 언어연구소의 마리오 로시 연구원에게 턱과 후두 부위의 특징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토타벨원인(原人)은 언어를 구사하긴 했으나 'a u i j k g s ch'등의 발음은 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해부학적 검증과정을 통하면 발성 가능성에 대한 것을 어느 정도 검증해낼 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언어를 구사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낼 수가 없다. 마리 앙트와네트는 "토타벨원인의 언어는 언어로서 형태론적인 구조를 갖추지는 못했으나 분명히 언어의 성격을 띠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첫째, 이들이 집단생활을 했으며 둘째, 행동반경이 최소 5km 이상이었고 셋째로는 연장(석기)을 만들기 위한 공동의 장소가 따로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사실상 석기시대 인류들은 사냥 또는 연장의 원료를 구하기 위해 반경 5km 이상의 원거리 나들이를 서슴지 않았으며 이 경우 단순한 고함과 몸짓만으로는 의사소통이 충분치 않았음이 분명할 것이다.
장 자크 아노가 감독한 영화 '불의 전쟁'(La Guerre du feu)을 보면 시대배경이 50만년전임에도 불구하고 원시인들이 고함소리만으로는 의사소통이 충분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나리오를 쓴 영국작가 안토니 버게스는 의사소통을 위해 일곱마디 정도의 어휘를 구사하게 했으며 아노 감독 역시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에서도 나타나듯이 원시인들이 어떤 형태로든 언어를 의사소통의 방편으로 삼았음이 분명하다. 작가인 버게스는 초기 인류의 언어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없는, 아주 단순한 한가지 종류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최초의 언어는 최소한의 의사표현을 위한 아주 단순한 발음이었기 때문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언어의 기원을 연구하는 언어 학자들도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인류의 언어는 한 뿌리(?)
1780년대에 인도에서 살았던 영국의 월리엄 존스는 언어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대부분의 유럽인들처럼 존스도 태초의 언어는 한가지였으며,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 여러갈래로 나뉘어지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가 언어연구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인도라는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 산스크리트어를 접하면서 부터였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도 정통했던 월리엄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어휘와 문법 그 자체에 매우 빈번히 반복되는 언어 규칙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여타 유럽언어에도 적용되는 것으로서 인도 유럽어가 애당초 한뿌리였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가 주장하는 이론에 의하면 '우아 우아'(ouah-ouah)라는 말은 개짖는 소리로서 개를 지칭하는 말의 기원이며 '푸푸'(pouh-pouh!)는 감정을 표현할 때 '오이스'(hohisse)는 집단작업을 할 때 사용하던 초기 언어였다고 한다. 이같은 주장이 현대언어와 어느 정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느냐는 차치하고라도 그의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언어의 기원을 밝히는데 가장 기초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월리엄 존스에 의해 발전돼온 언어학은 유태계 러시아인인 아론 돌고폴스키에 의해 정리되면서 그 기원이 1만2천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학설이 성립되었다. 인도유럽어족과 우랄 이우카구이르(Ouralo-ioukaguirs)어족 사이의 관계를 밝혀낸 아론 돌고폴스키는 원시인들의 어휘는1천6백단어가 한계였으며, 그 대부분이 원시식물 등의 이름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런가 하면 며칠동안 사냥하는 기간을 일컫는 말은 '아야크'(hayak)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처럼 원시언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반면 현대 언어학의 기틀을 다진 노암 촘스키같은 학자는 그러한 가설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현대의 언어를 바탕으로 까마득한 과거의 언어를 추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 때문인지 언어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에 언어학자들은 다소 소극적인 편이다. 그러나 유럽 선사시대 언어연구의 권위자인 콜린 렌프류경은 '한번 약속한 언어의 규칙을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으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언어로 과거를 소급해 가는 작업은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최근에 출판한 '고고학과 언어'에서도 언어의 기원을 밝히는 작업은 언어학과 고고학, 공동의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태초의 인류」부터 밝혀야
이같은 입장에서 좀 더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조셉 그린버그 교수다. 그는 아프리카 언어를 바탕으로 원시인의 기본개념이었던 숫자 1 2 3과 머리 눈 귀 코 입 이빨 등의 단어를 비교하여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인디언 언어 사이의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해 냈다. 특히 에스키모알류산어와 서북 태평양 연안의 나 데네(Na-déné)어, 아메리카 인디안어는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통칭하여 '아메리카 인디안어'로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린버그 교수의 이론대로라면 아프리카어와 인도유럽어족이 아시아어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의 언어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므로 그의 연구는 언어의 기원을 밝히는 데 있어서 기억할만한 성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린버그 교수가 속해 있는 스탠퍼드 언어연구소의 소장인 루카스 카발리 스포르차 박사는 언어의 역사를 재정립하면서 세계의 모든 언어는 42개군(群)으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 인류가 출현한 20만년전부터 인간은 발생학적으로 세분되기 시작했는데 이와 동시에 언어도 분화되어 왔다는 것. 그리고 아프리카어와 여타 지역의 언어가 크게 구별된 시기는 약 10만년전으로 보았다.
이처럼 언어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 정설은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언어학자와 고고학자, 발생학자와 유전학자들 사이의 시각과 해석이 일치되지 않는 까닭이다.
언어가 인류의 출현과 함께 생성, 발전해 왔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태초의 인류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학자들간에 이견을 보이고 있는게 현실이다. 고고학 발생학 등 과학분야의 연구가 언어의 기원을 밝힐 수 있는 여러가지 연구업적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큰 진전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언어의 기원을 밝히려면 인간의 조상이 어디에 사는 누구였는지부터 학자들간에 합의를 이루어 내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