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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개가 없는 동물인 노루는 생각보다 고집이 세고 전투적이다.

노루는 우리나라의 산림지대에서 널리 서식하고 있다. 또 사냥할 때 가장 흔하게 잡히는 사냥감이었기 때문에 노루에 관한 속담이 많다. 예컨대 '노루 잠자듯 한다'는 속담은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자주 깨는 잠을 말한다. 침착하지 못하고 경솔한 행동을 할 때에는 '노루 제 방귀에 놀라 듯 한다'고 얘기한다.

'노루 때리던 막대를 세번이나 국 끓여 먹는다'는 말도 있다. 같은 것을 두고두고 우려내어 쓴다는 뜻이다. 한번 보거나 들은 지식을 되풀이할 때는 '노루 뼈 우리듯 우리지 마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지방마다 예부터 전해오는 노루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강원 충청 경북 전북의 일부지방에서는 노루가 마을을 바라보고 울면 그 마을에 큰 화재가 난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서울과 경기지방에서는 환자의 약을 지어 올 때 노루가 그 앞을 지나가면 약효가 없어진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노루는 유럽과 아시아대륙의 북부와 히말라야 남쪽을 제외한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해 있는 소형의 초식동물이다. 분류학적으로는 소목(目) 사슴과(科)에 속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노루를 북방의 큰 노루(학명 Capreolus capreolus pygargus)와 전한반도에 분포하는 노루(학명 C.caprelus bedfordi)로 구분해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단일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 일부께서는 체위나 체색을 기준삼아 종(種)을 아종(亞種)으로 더 세분하기도 한다.

노루의 몸길이는 1백30~1백35cm, 어깨 높이는 65~75cm, 뒷다리 길이는 36.5cm, 귀의 길이는 12.7cm 그리고 몸무게는 15~30kg이다.


뿔이 무기인 노루
 

날카로운 삼지창

뿔은 수컷에만 있는데 뿔이 돋아나는 뿔자리가 널찍한 반면 실제 뿔과 가지뿔은 짧고 단단하다.

뿔의 모양도 매우 개성적이다. 우뚝 자란 뿔의 앞뒤로 가지뿔이 돋아 2차 3첨(二叉三尖)을 이루고 있으며(때로는 예외도 있으나) 어진 눈매와 날카로운 삼지창 같은 뿔은 아주 대조적인 모습을 이루고 있다.

털은 여름과 겨울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여름털은 짧고 거칠고 성글다. 특히 등과 옆구리 등이 황갈색 또는 적갈색을 띠어 멀리서 보면 녹슨 쇳 빛을 발산한다. 하지만 겨울에는 성근 털 밑에 곱슬곱슬한 속털이 나며 겉은 회갈색이다. 다리 안 쪽은 언제나 엷은색을 띠고 있다. 꽁무니는 여름철에는 노란색 또는 연한 주황색을 띠나 겨울에는 백색 반점이 크게 드러난다.

'노루 꼬리만 하다'는 말은 작거나 적음을 뜻하는데 실제로 노루의 꼬리는 무척 짧다. 아예 꼬리가 빠져버린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갓낳은 새끼의 갈색 몸에는 황색 또는 백색의 뚜렷한 점무늬가 나 있으나(여름철의 사슴과 같이) 겨울에 털갈이를 할 때 쯤에는 모두 없어져 버린다. 실제로 초여름에 산에서 노루새끼를 본 사람이 사슴새끼를 봤다고 우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노루는 추운 겨울이 되어도 바람이 심하게 불지만 않으면 양지보다는 주로 음지에서 서식한다. 그 이유는 노루의 체질이 태양성(太陽性)이기 때문이다. 지방(脂肪)이 많은 멧돼지가 양지를 좋아하는데 반해 지방이 적은 노루가 음지를 선호하는 것은 무척 이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루가 음지파가 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산에서 살고 있는 파리의 일종인 등에가 초가을에 노루의 피하(皮下)에다 알을 낳는데 겨울에 기온이 높아지면 그 유충(幼蟲)이 활발히 움직이기 때문에 노루는 가려움을 견디지 못해 음지를 찾게 되는 것이다.

국내산 노루는 10월에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가 12월 쯤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다시 저지대인 야산으로 내려온다. 눈이 많이 내린 해에는 심하게 허기를 느낀 노루가 마을까지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듬해 4월이 와도 일부 수컷은 산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암컷은 새끼를 낳기 위해 산으로 올라간다. 맷돼지와는 정반대로 서식처를 바꾸는 노루는 여름엔 높은 곳으로 겨울엔 저지대로 이동한다.

그들은 거친 비탈도 잘 치닫고 헤엄 솜씨도 제법 능숙하다. 청각 후각 시각도 탁월하고 조심성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린 노루는 퍽 양순하지만 자랄수록 고집이 세지고 성질도 곧잘 낸다. 특히 수컷은 이유없이 날뛰고 성질을 부리기 일쑤다. 때로는 제 짝인 암노루와 어린 새끼들을 느닷없이 공격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암노루와 새끼들이 혼비백산해 도망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때때로 교활하게 행동하기도 하는 노루가 다른 동물과 해부학적으로 다른 점은 쓸개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수렵의 대상이 돼 왔다. 삼국사기에도 노루를 잡았다는 기록이 자주 나타난다. 그 책에는 고구려 유리왕 2년에 서쪽으로 사냥을 나가서 흰 노루를 잡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신라 태조(김춘추) 55년에 자색노루를 포획한 사실이 명기돼 있다. 아무튼 삼국사기에는 아주 희귀한 변이종인 횐 노루를 잡았다는 기록이 꽤 많이 나온다.

옛날에는 밤에 밭으로 내려온 노루가 곡식을 먹은 뒤 돌아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포획했다. 아울러 몰이사냥도 즐겨 했고 노루의 모성애를 이용하는 특이한 노루사냥법도 개발해냈다. 암노루가 새끼를 낳는 단오 무렵, 피리를 불어 노루새끼의 우는 소리를 모방함으로써 암노루를 유인하는 이른바 피리사냥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무분별한 포획으로 한때는 노루가 멸종단계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적극적인 야생동물 보호정책 덕분에 그 수가 늘어가고 있다.

수정란의 발육이 지연되고

그들의 주식은 나뭇잎 새싹 풀 등이다. 겨울에는 침엽수의 잎도 먹고 가랑잎 도토리 각종 열매도 먹는다. 수컷의 뿔은 사슴처럼 초겨울이 지나면 일단 떨어지고 봄에 새로 자라난다. 노루의 성질이 거칠어지는 것은 뿔이 완전히 굳어지는 여름부터다. 처음에는 뿔에서 광택이 나지 않으나 늦여름의 교미기가 되면 잠시도 가만 있지를 못한다. 게다가 투쟁심이 강해져 수컷끼리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이때 뿔은 반들반들하게 윤기가 나는 최고의 무기가 된다.

쉰 소리로 울면서 이산저산을 방황하며 암컷을 찾아다니다가 다른 수컷을 만나게 되면 수컷끼리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이 싸움에서는 어느 한쪽이 참담한 패배를 맛보게 마련이다.

이 무렵에는 암컷도 애절한 울음소리로 사랑을 부른다. 승자를 맞아 교미가 이뤄져도 수정란은 4개월 이상 발육을 하지 않은 채 자궁내에 머물러 있다가 한 겨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급속히 발육을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수정란의 발육이 지연되는 현상은 사슴과 안에서 유독 노루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임신기간도 길 수밖에 없다. 사슴과(科) 동물중 최장인 2백80일의 임신기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새끼는 단오를 전후해 태어난다. 출산 며칠 전에 암노루는 먼저 산실, 즉 숲의 덤불을 정비한다. 지난 해에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기거하던 새끼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산실로 꾸미는 것이다. 초산인 경우에는 보통 한두마리를 낳지만 출산경험이 있는 암노루는 두세마리를 낳기도 한다.

갓난 새끼의 몸에는 흰 반점이 박혀 있는데 색상이 귀엽기도 하지만 훌륭한 보호색 구실도 한다.

새끼를 낳아 보호중인 어미 노루가 새끼에게 외적의 근접을 알리는 방법도 매우 독특하다. 암노루는 위험을 느끼면 발을 구르고 독특한 울음소리로 신호를 내어 새끼들이 더 엎드려 숨도록 지시한다. 어미의 행동이 무슨 신호인지 모르는 갓난 새끼노루가 무조건 반사적으로 꽁꽁 숨는 것은 본능에 의한 행동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천적의 접근을 눈치 챈 어미노루는 천적의 주의를 자기에게 끌어 들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천적이 새끼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새끼가 약탈자에게 잡히면 계속 약탈자의 뒤를 쫓으면서 슬피울고 오래도록 비통해 한다. 그들의 대표적인 천적으로는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독수리 등이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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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성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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