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조개속에 알을 낳아 종족을 보호 번식시키는가 하면, 조개는 새끼를 물고기 몸에 붙여 양분을 섭취시키기도 하며 먼곳까지 이동시키기도 한다.
생물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잡아먹고 먹히고 하는가 하면, 서로 돕고 살기도 한다. 어류와 패류의 관계도 얼핏 보면 기생생활이라고 할 수 있으나 자세히 보면 서로 돕는 공생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강이나 호수에서 사는 납자루 아과(亞科, subfamily)와 잉어 아과의 일부 어류는 민물에 사는 패류(담수패)에만 산란(産卵)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즉 대칭이 말조개와 같은 담수 이매패(二枚貝, 껍질이 두 장인 조개류)가 없는 곳에는 이들 어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이들 이매패는 물고기가 가까이 오면 새끼(유생)를 내뿜어 어류의 아가미나 지느러미에 달라 붙게한다. 이 유생은 이곳에 붙어 한달쯤 기생하다가 떨어지게 된다.
패류는 물고기 덕택에 어미 조개로부터 떨어져 먼곳까지 가서 살게된다. 이동성이 없는 패류는 이동성이 있는 어류에 유생(幼生)을 붙여 먼곳까지 분산시키는 진화상의 이득을 얻는 셈이다.
물고기가 알을 조개의 아가미나 외투강(外套腔)에 산란했을 때 패류는 호흡지장을 일으킨다. 또한 물고기 몸에 조개 유생이 붙어 양분을 빨아먹기 때문에 어류도 손해를 본다. 이 때문에 좁은 의미에서 서로 기생을 당하는 것처럼 보이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물고기는 알을 보호받고 패류는 유생을 먼곳까지 퍼지게 하는 서로 돕고 사는 공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계는 거의 모두가 이런 주고 받는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지금부터 어패류(魚貝類) 사이의 특수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해보자.
왜 조개속에 알을 낳을까?
패류 안에 산란하는 우리나라 어류는 두개의 아과가 있다. 납자루 아과에는 흰납줄개 납줄갱이 각시붕어 줄납자루 납자루 묵납자루 납지리 큰납지리 가시납지리 등 아홉종이 있고, 잉어 아과에는 중고기 참중고기 등 두 종이 있어 모두 11종의 어류가 조개속에 알을 낳는 셈이다.
이들 어류가 어떤 특성이 있기에 다른 어류처럼 수초나 돌밑, 자갈 사이에 산란하지 않고 반드시 이매패의 몸 속에만 산란을 할까.
이들 어류의 암놈은 산란기가 되면 산란을 하기 위한 관을 항문 근처에 길게 뻗어내는데 이것을 산란관(産卵管, ovipositor)이라고 한다. 다른 어류에서는 산란관이 생기는 일이 없다. 산란기가(대부분 4월 말에서 9월 초까지) 가까워오면 산란관은 점점 길어져 최적 산란기에는 몸길이의 반 정도가 된다. 산란이 끝나고 나면 산란관은 갑자기 수축해 몸 속으로 흡수된다. 이 산란관을 패류의 입수공(入水孔)이나 출수공(出水孔)에 넣어 알을 낳는데, 산란 후에는 수놈이 곧 정자를 수공 주변에 뿌리게 된다.
산란과정을 조금 더 상세히 보도록 하자. 산란기가 가까워 오면 암놈은 산란관이 길어지고 수놈은 온 몸이 무지개색을 띠는데, 이것을 혼인색(婚姻色)이라고 한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산란 적기가 되면 수놈들은 서로 싸워 자기의 영역(세력권)을 확보하고 자기 세력권에 들어온 암놈을 패류쪽으로 인도한다. 패류 근방에 온 암수는 몸을 심하게 떨면서 패류의 수공 부근에 주둥이를 접근시킨다. 곧이어 암컷이 거꾸로 서 있다가 순간적으로 몸을 바로 세워 하강하면서 산란관을 수공에 넣고 산란한다. 이런 행위를 반복해 많은 알을 조개에 산란한다.
그리고 수컷은 수공 근방에 정자를 뿌리는데, 이 정자들은 패류가 빨아들이는 수류와 함께 입수공으로 들어가 알과 수정하게 된다(모식도 참조).
납자루 아과의 암놈은 출수공에 산란하고, 중고기 아과는 입수공에 산란하는 차이가 있다. 패류의 내부 구조상 출수공에 산란된 알은 아가미 가운데 부분인 수관(水管)에 들어가게 되고 입수공에 산란된 알은 외투강에 놓이게 된다. 출수공에 산란하는 납자루 아과 어류들의 알 직경은 약 1.2㎜이고 입수공에 산란하는 중고기 무리의 알은 훨씬 커서 5㎜나 된다. 5㎜나 되는 큰 알은 아가미 수관에 들어갈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도 그것을 안다.
패류의 아가미와 외투강에서 수정된 수정란은 그 속에서 발생을 하고 성장해 약 1개월 후에 1.2㎝크기의 활동성 있는 새끼 물고기(치어,雉魚)가 된다. 물론 이때는 패류의 보호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에 나온다. 이미 천적으로 부터 피할 줄도 알고, 먹이를 찾아 열심히 헤엄칠 줄도 안다. 이 치어가 조개 속에서 크지 않았다면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고 말았을 것인데,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커서 나오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강한 귀소본능
패류와 어류를 큰 수조속에 넣고 같이 키워 여러가지 실험을 했는데 여러가지 재미있는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됐다. 한 마리의 조개 속에 제일 많을 때는 60개의 어란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고, 다른 어류보다 패류에 산란하는 어류들이 만드는 어란의 수가 훨씬 적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알이 천적에 먹히지 않는 대신 산란수가 적어진다는 것은 개체군(個體群)의 크기를 일정하게 조절하는 다른 생물의 특징과 일치한다.
한편 패류내에서 어란이 발생해 치어까지 되는데, 단순히 천적으로부터 보호만 받지 않는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즉 패류에서 분비되는 어떤 물질이 어류 발생에 도움을 줄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본다.
암컷이 산란하도록 자극하는 요인은 수컷이 있고 없는 조건보다 패류의 유무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밝혀졌다. 패류가 없는 수조에 암수를 같이 키워도 산란을 하지 않으나, 패류가 있는 수조에 암놈만 사육했는데도 산란관이 생기고 패류에 산란하는 것이 관찰됐다. 또 사육 수조의 가운데를 투명유리로 막고 한 쪽에는 패류를 넣고 다른 쪽에 어류를 넣어두면 암놈이 패류가 있는 쪽으로 몰려와서 산란행위를 하려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달 가까이 살다 나왔던 그 패류에 산란을 하고자 하는 강한 귀소(?)본능은 연어 등과 같은 어류의 모천(母川)회귀본능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이 각인현상(刻印現象)인지, 어떤 화학물질이 관여하는지, 또다른 요인인지를 밝히기 위해 연구 중에 있다.
춘천 의암호 등에서 계절에 따라 많은 개체를 채집해 패류 내의 어란 개수를 헤아려보면 큰 패류일수록 많은 수의 어란이 들어 있었다.
패류에 산란하는 어류는 동양 3국에만 서식하는 종으로 패류에 산란하는 특징 때문에 어류학자와 패류학자가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이 어류는 사육이 쉽고 색이 고우며 맵시도 예쁘기 때문에 관상용으로 개발할 가치가 있는 어종들이다. 관상용으로 개발하려면 패류사육이 필수적임은 물론이다.
인공진주의 모패로 사용하기도
앞에서 본 것처럼 패류에 산란하는 어류가 정해져 있듯이 어류에 유생을 달라붙이는 패류도 특수한 무리가 있다. 이들 패류는 일반적으로 두꺼운 껍질을 갖고 있으며 껍질이 돌같이 딱딱해 석패과(石貝科)로 불린다. 이들은 강과 호수에 서식하고 있으며 껍질이 두장인 이매패다. 대동강에만 사는 것으로 알려진 백합말조개를 포함해 두드럭조개 곳체두드럭조개 말조개 작은말조개 칼조개 귀이빨대칭이 대칭이 작은대칭이 펄조개 도끼조개 등 11종이 물고기의 도움을 받아 새끼를 키운다.
이 중에서 두드럭조개와 곳체두드럭조개는 성패(成貝)가 되면 두께가 7㎜나 되기 때문에 껍질(패각)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단추로도 사용하며, 둥글게 갈아서 인공진주의 핵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1960년대 초에 광장리 근방(서울 워커힐 주변)의 한강에서 많이 채집해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했는데(인공진주의 핵으로 썼다고 함) 지금은 거의 멸종 상태다.
한편 귀이빨대칭이 대칭이 펄조개 등은 인공진주의 모패로 사용되는 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서둘러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패의 대량 사육이 가능해야 한다.
석패과 패류는 반드시 유생을 어체(魚體)에 붙여야만 유생이 발생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유생은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아가미에 붙기 위해서 갈고리 감각털 유생사 등 특수한 기관을 갖고 있다. 유생이 어란에서 양분을 섭취해 변태하는데는 약 1개월이 소요된다. 갈고리를 갖고 있다는 뜻으로 유생을 글로키디움(glochidium)이라고 부른다.
유생(글로키디움)은 유생사(幼生絲)라는 실모양의 끈을 길게 늘어뜨리는데, 끈이 물고기에 감기게 되면, 이를 감각털이 느껴서 열려진 입(패각)을 닫는다. 이때 패각 끝의 예리한 갈고리가 어류의 조직을 꽉 물어 떨어지지 않게 된다. 유생은 대부분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크기는 0.25~0.35㎜다(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짧은 길이는 0.1㎜로 이 길이를 사람 눈의 해상력(解像力)이라 함).
한마리의 패류가 많게는 3백만개의 유생을 만들며,물고기 한마리에 3백개이상의 유생이 달라 붙기도 한다. 이들 대부분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며 일부의 유생이 어체에 달라붙게 된다. 반복된 실험 결과, 물고기가 유생을 먹이로 먹으면 물과 함께 입으로 들어가 물이 아가미로 나갈 때 아가미에 달라붙는 것이 관찰됐다. 지느러미는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부착의 기회가 많아진다. 유생은 주로 아가미와 가슴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에 많이 붙는다. 미끄러운 비늘에는 달라붙지 못하고 입가나 눈위에 붙는 경우도 있다.
갈고리를 이용해 물고기 몸에 붙은 유생은 물고기에서 양분을 얻기위해 헛뿌리(haustoria) 모양의 구조물을 물고기의 조직 속에 뻗게되고, 물고기는 이물질을 방어하는 기작으로 조직 분화를 일으켜 유생을 둘러싸는 피낭(被囊)을 형성해 더욱 떨어지지 않게 된다. 이렇게 안전한 상태로 1개월 가까이(수온이 높으면 기간이 짧고 낮으면 길다) 양분을 빨아먹으면서 탈바꿈을 한다. 발 내장 아가미 등이 생기고 갈고리 감각털 유생사 등이 퇴화한 유패가 돼 강바닥에 떨어지게 된다.
물고기(주로 피라미 송사리 붕어 줄납자루)를 사육하면서 패류의 유생을 붙여보면, 물고기가 유생의 기생때문에 죽는 예는 드무나, 유생이 떨어진 자리에 상처가 생겨 2차감염으로 물고기가 생명을 잃는 일은 가끔 있다. 그리고 유생에 한 번 감염되었던 어류는 재차 감염이 일어나지 않는데 이것은 유생 부착에 대한 방어력이 생겼기 때문으로 본다. 일단 붙었다가도 곧 떨어지고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고기중 일부는 패류속에 알을 낳아(패류가 부화기 역할을 함) 종족을 보호, 번식시키는가 하면, 반대 급부로 패류의 일부는 유생을 물고기에 붙여 일정기간 양분을 얻어 변태하고 먼곳까지 분산시킨다. 두 무리는 서로 작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크게는 돕고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자연이 간직하고 있는 신비한 비밀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도 이들과 같이 서로 얽혀, 더불어사는 지혜를 배워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