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과학의 세계적 조류는 '전자'에서 '빛'으로 넘어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레이저연구가 푸대접받고 있다.
레이저를 전공한 학자들을 요즘 만나면 불평이 대단하다. 60년대 미국에서 개발된 레이저기술이 그후 일본으로 건너가 최근 첨단산업이라면 레이저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됐는데도 우리나라는 아직 까마득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기반기술이 허약할 뿐만 아니라 정부차원의 지원도 미미하다.
얼마전 표준연구소에서 있었던 일화 한토막. 국책과제로 선정된 레이저를 이용한 중력가속도측정장비개발에 관한 설명을 들은 정부의 한 관리는 대뜸 "수입대체효과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기초기술에 속하는 이 과제에 산업차원의 수입대체효과가 있을 리 만무한 일이다. 단기적인 전시효과에만 집착하는 당국자들의 시각을 보여준 한 단면이다. 이러한 이유로 레이저에 대한 국책과제는 단발성으로 끝나버려 기술축적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레이저분야는 지난해 상공부가 선정한 첨단산업육성 7대 과제에도 빠져있다. 대학의 기초연구에 관한 지원이라고 볼수 있는 과학재단의 SRC(과학연구센터) 선정작업에서도 빛에 관한 분야는 제외됐다.
일본에서 '전자(electronics)의 시대'에서 '빛(optics)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떠들고 광전자학(optonics, optics와 electronics의 합성어)이 한창 각광받고있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레이저과학자들이 분통을 터뜨릴만도 하다.
이상수 사단
국내 레이저연구의 선구자는 60년대말 과학원(KAIS) 초대원장으로 임명돼 고국에 돌아온 이상수박사(현 과학기술원 원장). 이박사는 부지런히 제자들을 길러내 박사급만도 55명이나 배출했다. 국내 레이저 관련 박사급 인력이 1백50명 정도이니 3분의1 이상이 그의 지도를 받은 셈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이민희(인하대) 이인원(표준연구소) 홍경희(육사) 김재기(국방과학연구소) 공홍진(과학기술원)씨 등인데 물리학계에서는 이들을 '이상수사단'이라 농담삼아 부르기도 한다.
레이저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하는 곳으로는 과학기술원 레이저과학연구센터와 표준연구소가 대표적이다.
레이저과학연구센터는 과학기술원을 비롯 서울대 연대 인하대 경희대 포항공대 등 전국 27개 대학의 교수 43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센터에서 진행중인 대표적인 과제는 1테라와트(${10}^{12}$W)급 고출력 레이저개발. "유리(Nd : Glass)레이저를 증폭기로 증폭시켜 94년까지 1테라와트급 레이저를 완성시킬 예정인데, 현재 0.1테라와트의 출력을 낼 수 있을 정도"라고 공홍진 교수는 말한다. 참고로 핵융합에 7백테라와트, SDI용 레이저무기가 1백테라와트, 64메가D램 반도체가공용에 0.1테라와트의 레이저가 이용된다고 한다. 1테라와트급이 실현되면 반도체가공에 응용되고 기초적인 핵융합실험을 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 과학기술원에는 김병윤(물리학과·광섬유) 남창희(물리학과·레이저플라즈마) 신상영(전자과·광전자)교수 등도 레이저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표준연구소에는 레이저연구실을 비롯해 분광색채연구실 광학연구실 길이연구실 시간주파수연구실 온도연구실 등이 레이저연구와 관련을 맺고 있다. 레이저연구실(실장 김용평)은 새로운 레이저개발과 레이저를 이용한 시간 길이표준, 레이저 정밀계측 등을 연구하고 있다. 분광색채연구실(실장 김동호)은 레이저를 이용한 반도체 신소재 화합물의 물성을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이른바 레이저의 화학적 응용이다. 광학연구실(실장 이인원)은 고출력 레이저개발과 홀로그래피 영상제작을 주로 맡고있다. 표준연구소의 레이저연구 인력은 20여명.
광학에 관한 연구로는 과학기술연구원 응용광학연구실 최상삼박사팀도 오랜 역사와 많은 실적을 갖고 있다. 최박사팀은 주로 광전자분야에 관심을 갖고 광통신 광컴퓨터 광소자개발에 정력을 쏟고있다. 전자통신연구소 이용탁박사팀(광전자연구실)도 비슷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외에 국내 레이저연구진으로는 서울대 장준성(비선형광학·홀로그래피) 이재형(반도체물성연구), 연대 김웅(레이저물성계측), 경희대 이주희(고출력 레이저개발), 포항공대 이동녕(레이저플라즈마) 권오대(레이저반도체가공)교수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원자력연구소의 이종민박사팀은 레이저응용분야로 최근 각광받고있는 핵연료농축과 동위원소 분리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레이저에 관한 해외한인과학자로는 미국 마이애미대학의 김진중교수가 구리증기레이저의 권위자로 알려져있다.
연구원창업 1호, 원다레이저
국내 레이저사업을 처음 시작한 곳은 금성전선과 대우중공업. 80년대초반 금성은 레이저가공기를 개발, 생산했고 대우는 빔이송장비를 수입 판매했다. 그러나 사업부진으로 최근에는 거의 손을 떼고있는 상태.
그후 삼성전자와 금성전선이 광통신분야에 진출했고, SKC와 쌍용이 컴팩트디스크, 큐닉스 등 컴퓨터업체들이 레이저프린터, 코리아레이저가 바코드리더 레이저조명장치 레이저모형제작 등에 참여하고 있다.
레이저관련기업으로 주목을 끌고있는 사람은 '연구원창업제도 시범케이스'가 된 원다(元多)레이저의 원종욱씨(42). 표준연구소 레이저연구실장이던 그는 지난해 8월 연구소를 그만두고 기업을 설립, 직접 레이저사업에 뛰어들었다. "대기업들은 의사 결정과정이 너무 느리고 중소기업들은 초보적인 인식마저 부족해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을 직접 상품화하려고 나서게됐다"고 그는 창업동기를 설명한다. 또 기술집약적인 산업구조로 전환해가는 국내 현실을 보면서 산업현장에서의 레이저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원다레이저는 현재 이산화탄소레이저발진기 헬륨네온레이저 등을 생산하고 있고 올해안으로 야그레이저 엑시머레이저 등을 개발하는 한편 레이저의료기기 고출력레이저 레이저계측장비 등의 분야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자본금 3억원에 지금까지 투자된 비용은 10억원, 올해 매출목표액은 25억원으로 잡고있다. 15년간 연구원생활을 청산하고 기업가로 변신한 원종욱씨의 장래를 관심있게 지켜보고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공홍진교수는 "미국 일본의 경우 레이저산업의 80%이상을 중소기업들이 떠맡고 있다. 품목(item)이 단순하지만 기술집약적 이어서 중소기업의 체질에 꼭맞는 산업"이라고 강조하면서 국내에도 원다레이저와 같은 건실한 기업들이 많이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레이저연구와 레이저산업에 관한한 국내 수준은 선진국의 10%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