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역사중에 딱 한번 무생물로부터 생명체가 탄생해 오늘에 이르렀으나 현재의 지구환경에서는 더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이나 식물 따위 생물은 모두 어버이들의 생식을 통해서 탄생한 것임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마치 우리들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과 같은 이치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바위틈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은 어김없이 어버이의 생식 결과 생겨난 수정란이 발생해 성체로 성장함으로써 새로운 개체로 생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가지고 지구가 탄생한 바로 그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최초의 생물은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지구의 탄생 역사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설사 생명체가 지구상에 존재하였다고 하더라도 원시지구의 상태가 생물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조상은 어디에서 어떻게 출현해 오늘에 이른 것일까. 이러한 생명체의 탄생의 비밀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일은 비단 우리들만의 생각은 아니어서 과거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비밀을 파헤쳐보려고 무진 애를 써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구가 생겨나서 지금까지 약 45억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원시지구가 생겨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 일어났던 일들을 알아내는 일은 그야말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이란 무한한 것. 오늘날의 지구환경에서 당시의 상황을 추정해볼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 지금까지 수집된 여러가지 정보를 종합함으로써 원시지구에서의 생명탄생의 베일을 한꺼풀 두꺼풀 벗겨가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여러가지 사실이 점차 판명되고는 있으나 태고적에 일어난 일이므로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주장하지는 못한다.
조물주론에서 출발
서구의 문화권에서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구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또 다른 문화권에서는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이야기 줄거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그 이야기는 생명현상의 이해에 기본이 되는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원리에 대한 지식이 갖추어지기 오래전에 만들어졌다는 점이고, 둘째로는 생명의 창생에 있어서 조물주를 개입시킴으로써 과학적 탐구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천체비래설/외계로부터 유기분자가 유입
지구상의 생명체는 우주의 다른 천체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운석에 실려서 지구에 도래한 것으로 본다. 실제로 어떤 운석에는 유기물분자가 들어 있다. 그러나 외계로부터 유기물분자가 지구에 도래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생명체의 도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비록 생명체가 우주공간을 지나 지구의 대기권에 도달한다고 해도 천체비래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우리들의 기본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한다. 즉 문제를 우리 지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데 지나지 않는다.
■자연발생설/썩은 음식물에서 생명체가 탄생?
약 1백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생물은 무생물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반 헬몬트(van Helmont)는 생쥐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한줌의 밀을 더러운 셔츠와 어두운 상자속에 넣어두면 된다는 방법론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물학에 대한 지식이 쌓여감에 따라서 사람들은 점차 생물의 자연발생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1668년에 이탈리아의 레디(Francesco Redi)는 실험을 통해서 구더기가 부패한 고기에서 자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고 파리의 알에서 생겨나게 됨을 증명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몸집이 큰 생물체의 자연발생설을 믿지 않게 됐으나, 반 레벤후크(van Leeuwenhoek)가 미생물을 발견하면서 논쟁이 다시 일었다. 실제로 이러한 작은 생물체는 썩은 음식물 등에서 자연발생하는 것처럼 생각됐다. 이를 보고 이탈리아의 신부 스팔란니(Lazzaro Spallanzani)는 미생물일지라도 자연발생되지 않음을 입증하려고 노력했다.
유리 플라스크에 고기국물을 넣고 끓인 다음 밀봉하고 밖에서 아무 것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랬더니 국물은 맑게 유지되었고 미생물은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나 의심많은 사람들은 유리 플라스크속의 공기가 가열돼 심하게 변질되었기 때문에 자연발생이 일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러한 기나긴 논쟁은 프랑스의 생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였던 파스퇴르(Louis Pasteur)에 의해서 1백여년 전에 잠재워지고 말았다. 그도 역시 고기 국물을 가열하는 방법을 택했으나, 유리플라스크를 밀봉하는 대신 목부분을 길게 늘려 S자 모양으로 구부려서 그 끝을 연채로 두었다. 그러므로 신선한 공기가 플라스크 속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파스퇴르가 예상한대로 공기중에 떠다니는 세균이나 미생물은 길게 뽑은 목에 걸린다.
그리하여 목속에 걸린 것을 그릇속에 밀어넣지 않는 한 고기국물은 맑은 채로 유지됐으며, 목속에 걸린 것을 그릇속에 밀어넣어야만 미생물이 발생하게 됨을 알게 됐다. 당시 파스퇴르가 만든 플라스크가 오늘날까지 파스퇴르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는데 지금껏 플라스크 속의 고기국물은 변함없이 맑게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파스퇴르의 업적에 관해서는 두가지 점이 흔히 간과되고 있다. 하나는 그의 실험이 생물의 자연발생은 결코 일어날 수 없고 과거에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입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로 그의 실험이 생명의 자연발생의 불가능성을 의미한다면 생명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936년에 러시아의 생화학자인 오파린(A.I. Oparin)에 의해서 모순의 탈출구가 열리게 됐다.
모순의 돌파구 마련한 오파린
오늘날의 지구사에서는 생물이 자연발생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오파린은 지구역사의 초기의 특수한 조건하에서는 생명체가 자연발생에 의해서 생겨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설에 따르면, 원시지구의 해양에는 유기물분자가 풍부하게 공급돼 있었으므로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유기물분자들이 서로 결합해 잠정적으로 큰 복합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체 중 일부는 △유기물분자로 구성된 국물이 어떤 종류의 막으로 둘러싸여서 주위로부터 구분되고 △이 막에 의해서 주위로부터 구획된 국물은 주위로부터 필요한 분자들을 받아들이고 필요없는 분자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능력을 갖게 되고 △막으로 둘러싸인 국물은 받아들인 분자들을 활용해 특성을 가진 복합체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그 자신이 분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복합체가 최초의 생명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물질대사 생장증식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극감수성까지 갖추게 되고 이로부터 생명체가 비롯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미생물보다 훨씬 더 단순한 최초의 원시생물체가 자연선택에 의해서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생물들로 진화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파린의 설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은 원시지구의 환경이 오늘날의 지구와는 크게 달랐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명의 특징을 결정할 유기물분자가 원시해양에 축적되기 위해서는 유기물을 합성하는 데 충분한 만큼의 재료물질이 풍부해야 하고, 이러한 합성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존재해야 한다.
지금도 냉각된 행성인 목성이나 토성의 대기를 분석해 보면, 메탄과 암모니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두가지 기체가 수증기와 같이 원시지구의 대기중에 존재했다면, 생물체에서 볼 수 있는 분자들을 합성할 수 있는 주요 성분들은 마련된 셈이다. 오늘날의 지구와는 달리 원시지구에 풍부하였던 방사능, 태양의 강력한 자외선, 분출하는 활화산에서 비롯되는 열, 천지를 진동하는 천둥번개의 전기방전 등이 여러가지 유기물분자를 합성하는 에너지를 공급해주었을 것이다.
또한 오파린에 의하면 원시지구의 대기에는 산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환원성 대기중에서 유기물분자가 합성됐을 뿐 아니라 무기물로 다시 산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원시지구의 대기가 실제로 환원상태로 존재했다는 것이 지질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원시지구를 재현
그러나 과연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었을까. 1950년대 초 시카고대학의 대학원생이었던 밀러(Stanley Miller)는 유레이(H.C. Urey)교수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논문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시도했다.
그는 (그림)과 같은 장치를 마련하여 플라스크에 물(${H}_{2}$O) 메탄(${CH}_{4}$) 암모니아(${NH}_{3}$) 및 수소(${H}_{2}$)의 혼합기체(산소는 없음)를 넣은 다음, 전기방전을 시키면서 가열과 냉각을 계속했다. 한주일이 지난 다음, 플라스크 속의 내용물을 분석해 본 결과 몇가지 아미노산과 그밖의 유기물분자가 생겨 있음을 확인했다.
실험 결과는 1953년에 예보의 형식으로, 그리고 1955년에는 상세히 보고됐다. 이 실험결과는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화학적진화 실험연구의 효시가 됐다. 밀러의 실험결과에 고무돼 많은 사람들이 원시지구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질의 혼합물과 에너지원을 바꿔가면서 유사한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성분이 무기물로부터 생성될 수 있음이 입증됐다. 이러한 실험은 태양계의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화학반응이 일어날 수 있음이 밝혀지면서 더욱 중요한 발견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1969년 9월 28일 호주의 머치손 지역에 떨어진 운석에서 다양한 유기물분자가 발견됐다.
이 유기물의 종류와 상대적 비율은 밀러가 실험에서 얻었던 산물과 대단히 유사했다(표).
물론 이 운석이 지상에 낙하한 다음 지구상의 유기물이 운석에 오염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확고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로 운석의 몇몇 조각은 낙하한 바로 그날 즉시 채취됐으며 오염되지 않도록 모든 필요한 조치가 강구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발견된 몇 종류의 아미노산이 오늘날 지구상에는 없다는 점이다.
둘째로 머치손 지방에 떨어진 운석에서 채취된 아미노산은 D형과 L형의 광학이성질체가 거의 같은 비율로 섞여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지구상에 있는 생물의 단백질을 가수분해하면 아미노산은 모두 L형만이 나온다. 생물이 진화하는 동안에 L형 아미노산이 생물체를 구성하는 물질로 쓰이면서 단백질분자를 합성해 오늘에 이르게 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운석의 아미노산 분석결과 D형과 L형이 거의 같은 비율로 섞여 있었다는 점은 그 운석에 실려온 아미노산이 분명히 지구밖의 천체에서 비롯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태양계 밖의 천체에도 유기물이 존재하며 메탄 포름알데히드 메탄올 에탄올 아세틸렌을 비롯한 유기물이 성간 공간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화석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유기물분자와 이들의 전구(前驅)물질은 지구에만 국한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우리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어떻게 오늘날의 세포와 비슷한 원시생명체로 발달을 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오파린의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와 마이크로스피어(microsphere)등의 개념을 초월하는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실험실에서 유기물분자의 합성과 원시생명체와의 사이의 틈에 다리를 놓기 위한 시도는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추정해볼 따름이다.
원시생명체가 지구상에 나타난 시기는 과연 언제쯤이었을까. 가장 직접적인 해답은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층에서 발견되는 원시적인 생명체를 찾아보는 것이다. 생명체가 발견되는 가장 오래된 화석은 캄브리아기의 암석으로 알려져 왔는데, 그 암석은 불과 6억년전의 것이다. 그러나 이 화석은 대단히 복잡한 형태를 갖는 생물로서 삼엽충류 연체동물류 극피동물류 따위다.
따라서 보다 간단한 모습의 생명체가 이들이 나타나기 전에 있었을 것이 확실하므로 좀더 원시적인 생명체를 발견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경주돼 왔다. 이러한 탐색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으나, 최근에 이르러 34억년 이전의 암석에서 생명체가 존재했던 증거가 드디어 발견됐다. 이 고대암석을 얇은 절편으로 만들어 현미경으로 관찰해보았더니 세균의 흔적같은 것이 나타났다.
또한 어떤 고대암석에서는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s)라는 뚜렷한 구조물이 발견됐는데, 이것은 얕은 물속에 살았던 세균과 원시조류의 흔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원시생명체가 발견된 암석의 연대는 약 34억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생명유지의 비법
그러면 원시생명체는 어떻게 영양분을 얻어 생명을 유지했을까. 이에 대해서 우리는 두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오파린의 제안처럼, 원시생명체는 자신이 태어난 유기물분자의 국물을 섭취해 생활하는 이른바 종속영양생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양방식은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까닭은 유기물분자의 국물이 제아무리 풍족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소비하면 결국은 고갈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립영양생물의 진화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주위환경에 존재하는 무기물을 재료로 유기물을 합성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두번째 가능성은 원시생명체가 독립영양생물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독립영양생물은 속성상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그 에너지는 태양에서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먹이를 광합성에 의해서 얻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치 오늘날 지구상에서 서식하는 메탄생산세균처럼 화학합성세균이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물은 원시지구의 대기에 풍부하게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소와 이산화탄소 기체를 원료로 하여 필요한 영양분을 얻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까지 고찰해 본 생물체의 자연발생설에 대한 현대적 견해가 맞는다면, 레디 스팔란짜니 파스퇴르 등의 생각은 틀렸다는 말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현대적 형태의 생물의 자연발생을 부인한 것일 뿐이다.
한편 오파린의 학설은 오늘날의 생물과는 비교될 수 없는 원시적이고 단순한 생명체가 지구역사의 한 시점에서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오늘날 또다른 생물의 자연발생은 절대 일어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 까닭은 오늘의 지구상의 물속에는 다량의 유기물이 존재하지 않으며, 설사 자연적으로 유기물분자가 복합체를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분해자인 세균에 의해서 바로 파괴돼버리거나 대기중의 산소에 의해서 산화돼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역역사의 한 시점의 특수환경하에서 단 한번 무생물로부터 생명체가 탄생해 오늘에 이르렀으며, 현재의 지구환경하에서는 무생물로부터의 생명체의 탄생은 일어날 수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