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식인종을 떨게 하는 「꼬마」 프라이온

바이러스보다 작은 병원체

핵산이 없는 상태의 단백질이 놀랍게도 생물만이 가지는 유전현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병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파푸아 뉴기니아에 살고 있는 '포레'족은 전혀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질병은 성인남자들에게서만 관찰되는 병으로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인 증세를 보이다가 나중에는 일어나 서있지도 못하게 되어서는 갑자기 사망하는 묘한 증세를 보였다. 왜 그러한 질병이 제한된 사람들만 걸리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현대의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데 포레족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식인부족이다. 식인종이라고 하면 우선 영화에서 흔히 본, 무고한 백인탐험대를 잡아먹는 토인들을 떠올릴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식인종이 어떠한 종족인가를 먼저 정확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결코 사람을 자신들의 식량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밖에 나가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최적의 기후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구태여 어렵게 인간을 식량으로 삼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다.

식인부족들의 식인습성은 여러가지 전통적 관습에 의해 형성돼 왔다. 특히 포레족의 경우에는, 그들 부족 가운데 풍부한 지혜를 가지고 오랫동안 그들로부터 추앙을 받아오던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의 지혜를 물려받기 위해 죽은 이의 뇌를 꺼내 나누어 먹었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의식으로 행해지던 일종의 행사였다. 이러한 사실들이 와전돼 우리는 식인종 하면 마구 사람을 잡아 먹는 종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뇌를 나누어 먹음으로써

지혜가 머리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는 그들은 뇌를 나누어 먹는데에도 엄격한 서열을 지켰다. 연장자 순으로 그것도 남자들만 먹을 수가 있었다. 이러한 습성은 후일 이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이들 종족에게도 마침내 20세기의 문명이 찾아왔다. 곧 이들에게 특이한 증상을 보이는 이상한 질병은 의학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지역주민들의 특이한 유전적 질환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뒤 이들이 장례식에서 죽은 사람의 뇌조직을 나누어 먹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포레부족의 질병은 1957년 '뉴잉글랜드의학잡지'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이 식인부족의 습성이 문명세계에 알려지게 되면서 함께 소개된 포레족의 질병은 특히 정신의학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두뇌의 발달이 원인 모를 질병에 의해 손상을 입는 경우도 흔할 뿐만 아니라 노년층에 나타나는 정신질환이 미지의 미생물과 관련돼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든 남자들에게서 이러한 증세가 자주 나타나는 사실로 보아 포레족의 뇌를 나누어 먹는 관습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 과학자들은 이 질병의 원인으로 제일 먼저 바이러스를 떠올렸다.

양과 염소에도 감염돼

프라이온의 존재를 더욱 혼돈에 빠지게 한 것은 1954년에 지거드슨박사에 의해 밝혀진 지연성 감염바이러스였다. 현재도 일부 학자들은 프라이온이 흔치 않은 지연성 감염바이러스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전형적인 증세를 보이다 사망한 사람의 뇌조직으로부터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가지 과학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연구해 보았으나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뒤 전자현미경을 사용하면서 점차 실마리가 찾아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한 실험실에서 병에 걸린 뇌 조직에 이상한 물질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관찰했다. 처음에 이것은 바이러스라고 생각되었으나, 바이러스라면 의당 보여야 할 핵산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과학자들은 핵산의 양이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것으로 결론짓고 말았다.

한참 뒤에야 바이러스와는 전혀 다른 단순한 단백질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핵산의 존재에 대한 학설이 정립돼 있지 않은 상태다. 전자현미경을 통한 관찰도 결코 용이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 학자들이 그 병원체를 바이러스로 보았던 까닭은 이렇다. 우선 당시의 과학적인 상식으로는 단순한 단백질이 질병을 일으킬 수 없었다. 또 설령 단백질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질병에 걸릴 수 있다 하더라도 이 단백질덩어리가 스스로 증식하면서 사람에서 사람으로 병을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모든 관심이 단백질에만 집중되었다.

현재도 이러한 질병이 많지는 않으나 우리 주변에서 가끔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는 전혀 감염의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도 감염성 질환이 발생하고 있다. 한 예는 사람의 성장호르몬을 주사 맞은 젊은이의 경우이고, 또 다른 예는 각막이식 수술을 받은 경우다. 이들은 병에 걸린 사람의 뇌하수체에서 얻은 성장호르몬이나 감염된 조직을 이식받은 재수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불운이 닥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뇌하수체에서 직접 얻던 성장호르몬을 유전공학적 기술로 추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조직이식의 경우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감염확률이 크게 줄었다고 할 수 있다.

양이나 염소에게도 유사한 질병이 있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알려져 왔다. 이 질병은 '스크래피'라고 불리는 병으로 지금도 거의 세계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때로는 양떼를 몰살시키기도 하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이 병에 걸린 양들은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증상은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더 심해진다. 죽은 양의 뇌로부터 조직을 떼어 낸 뒤 이를 갈아 다른 동물에게 주사했더니 생쥐 햄스터 흰족제비 밍크 그리고 원숭이는 유사한 증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침팬지와 토끼는 아무런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병든 양의 뇌조직을 주사해 발병한 밍크의 뇌조직에서는 양의 조직에서 보이는 물질이 다시 관찰되었다. 흥미롭게도 그 물질은 전염성 밍크 뇌질환에 걸린 밍크의 뇌조직에서 발견되는 물질과 거의 구분할 수 없었다. 사슴류도 스크래피와 유사한 질병에 걸리는데 이것을 만성 소모성질환이라고 부른다. 물론 양의 스크래피와 아주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잠복기가 길어서

처음으로 프라이온이라는 이름을 제안한 프루시너박사는 스크래피에 걸린 양에서 찾아낸 이 병원성 물질이 단백질과 유사한 감염성물질이라는데 착안, 이 용어를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들이 핵산분해효소에 대해서는 무척 안정한데 단백질 분해효소에 의해서는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실험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또한 방사능치료와 같이 일반적으로 바이러스 질병에 자주 사용하는 치료법에 대해 둔감하다. 다시 말해 대단히 높은 내성(耐性)을 보이고 있다.

초기의 많은 연구는 양의 스크래피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병원성 단백질의 분자량은 2만7천~3만 정도였다. 단백질의 본질은 시알로당단백질이었다. 그 외관은 대개 둘 내지 네 가닥의 섬유모양구조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프라이온의 진단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이와 흡사한 질병이 앞에서 이야기한 '쿠루병'이라고 불리는 포레족의 특이한 병이다. 이밖에도 발견한 사람들의 이름을 따온 '크루츠펠트-제이콥병'(病)과 '게르츠만-트라우슬러증'(症)이 알려져 있다.

크루츠펠트-제이콥병은 세계적으로 그리 흔한 병은 아니다. 대개 6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서 발견되며 증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망과 비슷하다. 이 질병은 특정한 집안에서 다발(多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가계의 연구를 통해 개인의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도 있다.

이 질병은 여러 관점에서 요즈음 미국에서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돼 있지 않나 생각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그 원인이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나, 전염성은 없다고 여겨진다. 기억이 없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식구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언어도 잊어버리게 된다. 이들 노망성 질환환자의 뇌를 부검해보면 공통적으로 뇌조직, 특히 기억중추가 있는 부분의 조직이 심하게 망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분야의 연구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감염으로부터 발병까지의 시간, 즉 잠복기가 상상 밖으로 길다는 점이다. 심한 경우에는 20년 가까운 긴 세월의 잠복기를 거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병에 걸렸지만 언제 어떻게 병에 노출됐는지 분명치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감염시킨 동물의 면역기능을 향상시켜 주면 잠복기가 짧아지고, 면역을 억제시켜 주면 그 잠복기가 길어진다는 사실이다. 결국 실험동물을 사용해 연구해야 하는데, 주실험동물인 생쥐에게 주사해 발병하도록 하는 데만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대개 1년이 지나면 생쥐는 유사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원숭이에게 주사한 뒤 4~5년이 걸려 쿠루병을 발병시키던 연구의 초창기에 비하면 대단히 빨라진 셈이다. 하지만 긴 잠복기는 아직도 연구의 진척에 커다란 장애요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구의 연구자들이 포레족으로 하여금 뇌를 먹는 의식을 포기하도록 한 결과, 다행하게도 이 부족에서의 쿠루병은 그 발생빈도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2~4가닥으로 보이는 섬유모양의 단백질이 전자현미경상에 나타나 있다.


현대과학이 풀어내지 못하고

발병한 뇌조직에 존재하는 문제의 단백질은 대개의 경우, 녹말성분이 섞여있는 아밀로이드피브린의 형태로 발견되고 있다. 또 이 단백질은 포르말린으로 고정시킨 뇌조직에서 대단히 안정된 상태로 보존된다. 예컨대 10년 동안이나 보관한 뇌조직에서 얻은 단백질을 다른 동물에게 주사해 보았더니 그때까지 감염성이 유지되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바이러스처럼 비교적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여러가지 종류의 변종들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치 생물의 한 종(種)처럼 안정된 유전정보를 유지하고 있다. 약간 변화된 특성이 역시 유전정보처럼 보존되기도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바이러스 보다 한단계 낮은 생물체의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또 원시지구상에 나타난 생물의 유전정보가 단백질이었을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프라이온의 존재에 대한 분자생물학적인 관심도 여러 분야에 걸쳐 점차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 이 단백질은 순수한 형태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아미노산 서열분석을 통해 이 단백질을 만든다고 여겨지는 데옥시리보핵산(DNA)을 생산하기도 했다. 또 이 병에 걸린 햄스터의 뇌조직세포와 정상적인 뇌세포에서 메신저 리보핵산(m-RNA)의 존재를 비교하는 방법으로 이 유전자의 발현을 확인, 발병 메커니즘을 알아내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까지 얻은 지식만으로는 아직 이들의 생물학적인 증식현상조차 설명할 수 없다.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조직과 크루츠펠트-제이콥병에 걸린 사람의 뇌조직에 동일하거나 대단히 유사한 단백질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체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단백질의 존재하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바이로이드는 DNA나 RNA만, 프라이온은 단백질만 가지고 있다.


모델 동물이 먼저 개발돼야

핵산이 없는 상태의 단백질이 어떻게 생물이 가지는 유전현상과 같은 메커니즘을 보이고 있을까. 인류에게 치명적인 병을 일으키고 있는 프라이온에 대해 현대과학은 아직 이렇다할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질병에 쉽게 걸릴 수 있는 실험동물이 개발된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또 단백질분석을 통해 유전자가 발견되고 그 유전자가 깊이 연구된다면 프라이온은 슬슬 그 정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 유전자를 집어넣어 준 유전자이식 실험동물이 만들어지거나 실험실 내에서 배양이 가능한 숙주세포가 개발된다면 프라이온의 신비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요컨대 이런 알맹이있는 연구가 진행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이 오리무중의 질병에 관한 연구는 물론이고 프라이온의 생물학적 의미에 대해 폭 넓은 해답을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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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정가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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