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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Ⅴ 한국 유전공학의 현주소

상위기술이 먼저 발달한 가분수

유전자조작기술 하이브리도마기술 미세조작기술은 선진국 수준이지만 발효기술 세포배양기술 추출정제기술은 낙후돼 있다.

한국의 유전공학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10년전 떠들썩하게 시작할 때와는 달리 착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를 여기 저기서 느낄 수 있다. 특히 심한 곳은 산업계다. 예상한대로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한꺼번에 뭉칫돈이 투자되기 때문에 기왕에 참여하고 있던 기업들도 서서히 발을 빼고 있는 상태다. 가시적인 효과를 원하고, 느긋하게 기다릴줄 모르는 우리의 기업풍토에서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제일제당 등 몇몇 기업이 아니었더라면 유전공학을 전공하고 대학문을 나서는 사람들은 고스란히 실업자가 될 뻔 했다. 요즘 한참 신문지상에 게재되는 사원모집광고에서 유전공학이 홀대받는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도 밀어주는 일을 주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같은 첨단분야로 정부가 집중육성하고 있는 반도체 분야와 비교하면 확실히 무게가 덜 실리고 있는 것이다. 전시행정과 유전공학은 원래부터 궁합이 맞지 않은 결합인지도 모른다.

연구비 턱없이 부족해

모든 과학분야에 다 해당하는 얘기지만 정책의 일관성이 없고 여러 곳에서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통에 정신차리기도 힘들다. 주무부처인 과기처의 장관이 자주 바뀌는 것도 적지 않은 혼란상을 초래한다. 게다가 조금씩 손을 뻗치고 있는 곳은 많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도 어렵다. 과학기술처 농수산부 보사부 동력자원부 문교부 심지어는 국방부까지 이 분야에 끼어들어 제각기 돈을 쓰고 있다. 따라서 중복투자가 되는 등 부족한 예산엔 낭비요소마저 많다.

이런 상황이니 인재를 끌어 모으는 데도 애를 먹는다. 제대로 된 전문연구소라야 유전공학센터가 고작인 실정이고 보면 해외에서 공부를 마친 사람들도 마땅한 자리가 없어 귀국을 망설이고 있다. 적어도 이들이 일할 자리, 다시 말해 전문연구소를 많이 세워야 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연구비의 태부족도 심각한 형편이다. 금년에 우리 정부가 유전공학분야에 쓴 연구비총액은 미화로 1천2백만달러에 불과하다. 이 액수는 몬산토, 듀퐁 등 외국의 한 기업이 1년에 투자하는 R&D(연구개발)비용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런 열악한 지원으로 어떻게 유전공학이 이끄는 제3의 기술혁명시대를 대처해 나갈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로 유전공학물질의 보호가 강화되면 우리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제라도 유전공학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감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전공학은 80년대 초에 처음 도입되었다. 이때 깃발을 든 사람은 강현삼(서울대 미생물학과) 노현모(서울대 동물학과), 이세영(고려대 농대) 한문희(KIST 유전공학센터)박사였다. 정치적으로는 이상희 전(前)의원의 기여가 컸다.

1981년 유전공학은 반도체공학과 더불어 정책적으로 지원할만한 분야로 추천됐다. 당시에도 알코올 조미료 가축사료 등 미생물관련사업이 상당한 수준에 와 있었으므로 기반은 충분하다고 계산한 것이다.

이듬해인 1982년에는 국내 13개업체가 참여한 유전공학연구조합이 설립됐다. 이 조합의 초대이사장은 현대의 정주영씨. 지금은 현대가 유전공학분야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그때는 상당한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해에 학계에서는 17명이 모여 유전공학학술협의회를 세우고 분위기를 잡아갔다. 초대회장은 현 서울대 총장인 조완규박사였다.

이어 84년에 유전공학육성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85년에는 발달사에 큰 획을 긋는 유전공학센터가 설립되었다. 실제로 이때까지는 대단한 붐을 이뤘다. 유전공학자가 결혼대상 0순위로 선정될 정도였고, 유전공학 간판만 걸면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들었다. 마치 금방 유전공학이 세상을 뒤바꿔 놓을 듯이.

이런 들뜬 현상과는 달리 연구현장의 실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연구의 3요소(인력 자금 시설) 모두가 미비했다.

당연히 1단계 목표는 서구나 일본에 비해 형편없이 뒤떨어진 기반구축에 두었다. 그 결과 이제 어느 정도 힘을 쓰게 됐는데 정부와 기업이 뒷심이 물러 주춤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외형상으로는 그동안 상당히 규모가 커졌다. 89년 현재 초창기에 비해 연구인력은 7배, 투자액은 10배, 개발비는 7배 늘어났다. 정부지원 연구과제도 초기의 4건에서 50건으로 늘고, 연구조합회원사도 19개사로 불어났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성장속도는 우리의 국력에 견주어 볼 때 크게 미흡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워낙 밑천이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초창기와 비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산업계에서는 81년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업체에서는 특히 의약품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환경 농업 식품 등에 대한 연구개발도 꽤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의약품은 일단 실험실적으로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남은 일이 태산이다. 전임상시험 임상시험까지 마치려면 시간과 돈이 엄청나게 든다. 임상시험단계에서 도중하차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허를 내기도 무척 까다롭다. 그래서 이런 '골칫거리'를 아예 떠맡지 않으려는 경향도 일부에서는 보이고 있다.

"의약품의 경우 인터페론이나 인터루킨같은 항암물질, 인슐린이나 성장호르몬 등 특수호르몬치료제, 간염백신 등이 연구의 주종을 이룹니다. 또 간염 임신 AIDS진단시약이 개발돼 판매되고 있어요."

가톨릭의대 맹광호교수의 말이다.
이밖에 바이오폴리머(biopolymer) 바이오계면활성제(biosurfactant) 식물의 조직배양 등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20여 품목이 시판되고 있는데 국내 생물공학제품의 연간 시장규모는 현재 1백억원 이하로 평가되고 있다.

유전공학적 기법을 활용, 폐유를 분해하는 '슈퍼버그'라는 미생물이 미국에서 개발된 이래 환경분야에서도 유전공학을 활발히 응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연세대 환경대학원 정용교수는 "기초분야 처리기술분야 행정적 기술분야가 함께 발전해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농업분야에서 유전공학은 '차세대의 육종법' '제2 녹색혁명의 견인차'로 인정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여건은 극히 열악하다. 까다로운 의약분야보다 접근이 훨씬 용이함에도 불구하고 그 지원이 턱없이 부족, 이렇다 할 성과들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체에너지의 하나인 바이오매스(biomass)의 실용화 연구도 시급하다. 더욱이 페르시아만의 격랑이 언제 한반도에까지 미칠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이 분야는 더이상 지체할 수 없는 당면과제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바이오에너지는 무공해다.

한국에너지연구소의 홍종준박사는 "우리국토의 65%가 산림면적이고, 약 6천4백50만t의 삼림자원을 확보하고 있어요. 이런 유리한 조건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에너지효율면에서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긴 하지만 바이오매스에너지를 포기할 수는 없지요"라고 개발당위론을 내세웠다.
 

DNA를 찾아 그 의미를 읽고 있다.


학과명도 각양각색

유전공학은 유전공학과 학생들만 공부하는 학문이 아니다. 자연대 의대 농대 약대 공대 수의대에서도 이 분야를 전공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현재 좁은 의미의 유전공학관련학과는 전국 24개 대학에 설치돼 있다. 유전공학과 분자생물학과 외에 국내에서 유전공학을 많이 연구하는 학과는 자연대학의 생물학과 생화학과, 약학과, 의학과의 생화학교실, 화학공학과, 농화학과 등이다.

서울대는 생물학과에서 나누어진 식물학과 동물학과 미생물학과에서 유전공학을 다루고 있는데, 동물학과는 곧 학과명을 분자생물학과로 바꿔 이 분야에 적극 뛰어들 태세다.

비슷비슷한 교과과정으로 운영되면서도 학과명이 다양해 지원자들의 혼선을 빚기도 한다. 유전공학과 생물공학과 분자생물학과 생명과학과 유전과학과 등등.

여기서 간단히 그 차이를 알아보자. 가장 큰 범위는 생명과학(life science)이다. 생물공학(biotechnology)은 이 생명과학 속에 포함된다. 또 유전공학은 생물공학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다.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은 생물공학에 완전히 포함되지 않고 일부가 유전공학과 겹친다. 다시 말해 공학적인 면보다는 생물학적인 면이 강조되는 학문인 것이다.

현재 대학부설 유전공학연구소가 설치된 곳은 18개교. 이들은 주로 문교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년에는 모두 1백11과제에 9억5천8백만원의 연구비가 지원됐다.

유전공학 관련학회로는 한국생화학회 한국분자생물학회 산업미생물학회 한국생물공학회 한국미생물학회 한국생약학회 면역학회 유전학회 등을 꼽을 수 있다.

정부주도의 전문연구기관은 유전공학센터를 비롯해 11개소. 농수산부 산하 농촌진흥청에는 농업기술연구소 유전공학과(課), 축산시험장 맥류연구소 작물시험장 원예시험장 가축위생연구소 농약연구소가 설치돼 유전공학 관련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보사부 산하 국립보건원도 생물공학분야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생물검정센터의 설립이 구체화되고 있어 신약의 안전성과 약효평가가 곧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지난 87년에 문을 연 국립보건안전연구원도 독성 및 임상시험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소는 신물질 개발과 의약품 및 농약스크리닝(screening)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주무부서는 응용생물연구부.
또 임목육종연구소(농수산부 소속)는 식생과를 중심으로, 한국인삼연구소는 유전생리부에서 유전공학 관련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너지연구소는 방사선 유전공학연구실이, 한국동력자원연구소는 바이오매스연구실이, 해양연구소는 생물공학연구실(신품종 어류개발연구를 주로 한다)이, 국립환경연구소는 수질미생물부가 주축이 돼 유전공학 관련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

순수민간연구기관도 두곳 있다. 목암생명공학연구소와 산업과학기술연구소다. 그중 목암연구소는 6개의 연구실과 50여명의 연구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금년에는 10개과제에 약 17억원을 투자했는데 인터페론 백신 진단시약 개발 등 의약분야에 치중하고 있다.

산업과학기술연구소는 앞으로 생물화공팀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연구단체와 대학의 연구활동을 돕는 기관으로는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산학협동재단 등이 있다.

또 상공부산하 산업연구원은 설립(1981년) 당시부터 첨단기술실(室)내에 생명공학팀을 구성, 유전공학에 관한 각종 정보를 보급해 왔다. 최근에는 이 팀이 생명과학실로 확대돼, 생명공학에 관련된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특허정보의 공급 등을 맡고 있다. 상공부는 첨단산업육성 5개년계획에 생물산업을 포함시켜 유전공학관계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특허분쟁의 소지 많아

사실 특허문제는 국내 유전공학자의 공통의 고민이었다. 기껏 연구해서 개발해 놓았는데, 이미 다른 나라에서 특허를 받아놓은 것이라면 완전히 헛수고가 되고 만다. 그때의 허탈함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라고 한 '희생자'는 들려준다.

실제로 우리의 여건상 완전한 신물질을 창출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외국에서는 한국이 2000년대까지는 신약 또는 신물질을 개발할 능력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유전공학자들은 제법을 바꿔 특허를 받는 소위 제법특허를 얻어내기를 원하고 있는데 이 일마저 수월하지 않다. 특허의 범위를 너무 광범하게 인정해주고 있어 파고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제법특허를 구체적인 항목에만 인정해야 돌파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문적인 국제변리사도 부족해 특허분쟁이 일어나면 손해보기 일쑤다.

현재 우리의 기술수준은 명암이 확실히 나뉘어 있다. 유전자재조합기술 하이브리도마(hybridoma)기술 미세조작기술 등 기초기술은 이제 선진국수준까지 올라와 있다는게 관련자들의 일치된 평가다. 그러나 생산공정기술, 바이오리액터(bioreactor), 추출 및 정제기술, 전임상 및 임상시험기술, 약효평가기술은 걸음마단계다. 또한 '살아있는 시약'이라고 불리는 실험동물에 대한 관리도 낙제수준이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하면 자연 유전공학은 기형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유전공학의 기초를 확고히 하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가 게놈프로젝트의 참여다.

이 세계공동계획은 국내에서 이세영 이대실박사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미 금년 4월에 한국유전자연구회가 결성돼 본격적으로 기초자료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생명과학 전분야가 협력해야할 이 계획을 진행시키는데 있어 가장 큰 고민은 국내에 인체유전학 유전학 세포생물학을 담당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수연구센터(SRC, ERC)의 지정과 관련된 뒷얘기도 유전공학가(街)의 화제거리. 작년에 생물학분야에서는 25개 연구소가 지정신청서를 제출했는데 4곳이 최종적으로 선정됐다. SRC(과학연구센터)로 분자미생물학연구센터(서울대 미생물학과 하영칠교수 주도) 분자생물학 및 유전자조작연구센터(경상대 생화학과 조무제교수), ERC(공학연구센터)로 생물공정연구센터(한국과학기술원 장호남박사, 바이오리액터를 주로 연구할 계획이다)와 동물자원연구센터(건국대 축산학과 정길생교수, 가축 육종에 주력할 예정)가 지정된 것이다.

연구능력 연구대상 지역안배 등을 기준으로 삼아 선별작업을 벌이는데 SRC나 ERC가 되면 과학재단으로부터 연간 1억원 이상의 연구비지원을 받는다. 올해는 모두 30개(SRC 26, ERC 4)연구센터가 우수연구센터지정을 노리고 있는데 그 결과는 91년 1,2월경에 나올 예정이다. 내년에는 우수연구센터를 선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알려진 탓인지 금년 경쟁이 매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문희박사는 한국의 유전공학이 발전하려면 "이제 모방연구수준에서 탈피, 좀 더 창의적인 신물질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 상위기술에 치중하던 전략을 바꿔 하위기술도 병행육성해야지요. 특히 발효기술 세포배양기술 추출정제기술이 하루빨리 본 궤도에 올라서야 합니다. 기술개발의 협동체제 구축도 시급한 문제예요. 기술도입도 이제 선택적으로 할 필요가 있어요. 아울러 국내외의 유전자자원을 확보하는데 정부와 산업계가 공동대처해야 가상의 유전자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한박사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면 우선 전문기술인력을 양성하고,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 유전공학기술을 앞세운 벤처기업의 등장도 절실하다. 이미 전자컴퓨터업계는 모험기업이 출현하고 있고 젋은 사장들이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데 반해 유전공학분야는 완전히 무풍지대다. 관련자들은 연구조합이나 전문연구소를 중심으로 창업을 추진해 볼 시점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벤처기업인 제넨텍 바이오젠 등의 쾌속성장이 유전공학돌풍을 몰고 왔듯이 국내에서도 유전공학기업의 성공은 커다란 동기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최근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 서효덕박사팀이 선보인 무배추


한국 유전공학의 메카 유전공학센터를 찾아서

금년부터 대덕시대를 맞고있는 유전공학센터는 짧은 연륜에 비해 이룩한 성과가 많다.

오랫동안 서울 홍릉에서 더부살이를 하던 유전공학센터가 금년부터 대덕신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4천평 규모의 기본연구동과 지원연구동이 완성돼 거의 대부분의 식구들이 이미 대덕으로 옮겨와 있는 것이다. 아직 채 짓지 못한 특수시설동만 완공되면(92년 예정) 다소 어수선한 이전사업은 일단락된다. 한참 공사가 진행중인 특수시설동에는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생물검정소 유전자은행 파일롯플랜트(pilot plant) 등이 입주할 예정이다.
 

대덕으로 이전한 유전공학센터


제2기를 출발하고

개소(開所)이래 처음으로 확보된 넓은 공간에 '제2시대'를 펼쳐 나간다는 포부를 내보이고 있는 유전공학센터는 이미 그 미래의 청사진을 작성해 놓고 있다. 먼저 연간 연구비를 현재의 30억원 수준에서 95년까지 80억원으로 늘려 그동안 축적해 두었던 기초기술을 착실히 응용해 나갈 계획이다. 연구분야도 기존의 4개 분야(유전공학 미생물공학 생물자원 생물공정)에 세분야(면역학 환경과학 생체공학)를 더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특수사업분야도 확대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세분야(생물검정 유전자은행 생물소재)에다 두 분야, 약리분석 파일롯 플랜트를 덧붙인다는 얘기다. 연구인력도 현재의 1백30명(박사 70명)에서 95년까지 2백50명(박사 1백20명)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제 우리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 되려면 포스트 닥(post doc)과정을 마쳐야 해요. 현재 20명의 책임연구원, 40명의 선임연구원이 재직하고 있는데 이들중 대다수가 해외유치과학자들입니다."

전 유전공학센터 소장 한문희박사의 말이다.

한국 유전공학의 메카인 KIST부설 유전공학센터는 1985년 2월 1일에 문을 열었다. 그 설립근거는 84년에 국회를 통과한 유전공학육성법이었는데, 당시 민정당 의원이었던 이상희씨가 제안한 이 법은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 육성법으로도 유명하다.

유전공학육성법은 유전공학센터를 KIST 부설로 제한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독립한다는 전제도 함께 담고 있다. 따라서 KIST 부설이란 접두어를 떼내는 것도 시간문제다. 멀지 않아 유전공학센터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확대개편될 한국생명공학연구소가 그 명성을 인계받을 것이다.

모든 것이 미진한 상태에서 닻을 올린 유전공학센터는 기존의 KIST 생물공학부 33인이 주축이 되어 창단작업에 들어갔다. 자연 첫 소장은 당시 생물공학부장이었던 한문희박사의 몫이었다.

한박사는 "인력 기술 기자재등 연구의 3요소가 전부 형편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80년대말까지를 제1기로 잡고 유전공학기술의 기반구축에 역점을 두었지요. 또 인력을 양성하고 하부구조를 튼튼히 하는데 노력한 결과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 기반으로 90년대 들어 제2기를 열어가고 있지요"라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유전공학센터가 5년동안에 이룬 성과는 연구논문과 실제 유전공학제품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지난해에 발표한 연구논문의 수는 모두 37편. 그중 국내 학술지에 31편, 국제학술지에 6편이 실렸다.

유전공학센터가 자체적으로 선정한 성공사례는 총 17가지다. 우선 한문희박사팀이 성공시킨 인터루킨-2의 생산기술을 꼽을 수 있다. 생체활성물질인 인터루킨-2는 암세포를 죽이는 기능을 가진 면역조절물질이다. 이 물질의 국내개발로 암환자의 부담이 40분의 1로 줄었다(인터루킨-2로 치료할 경우).

빙핵활성단백질의 생산기술도 연구중이다(한문희박사팀). 빙점을 5°~8℃ 높여주는 이 단백질을 유전공학적으로 대량생산하게 되면 식품첨가물 냉동산업 레저산업(스키장의 인공눈)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콩의 증산을 돕는 미생물비료제도 개발해냈다(민태익 유익동박사팀). 콩을 파종할 때 종자에 이 미생물비료제를 접종해 주면 콩 수확량이 약 10%증가된다고 한다. 게다가 이 비료를 사용하면 토양에 큰 부담이 되는 질소비료를 '거부'할 수 있으므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나타낸다.

나도선 유향숙박사팀의 림포톡신(lymphotoxin) 대량생산 기술개발도 눈길을 끈다. 암치료제로 쓰일 수 있는 림포톡신을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연구는 미생물, 특히 대장균을 이용한 생체유용물질의 대량생산 기술을 확립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팜유폐수를 이용한 부탄올(대체에너지의 일종)의 생산기술 확립은 (김병홍박사팀) 공해반대 운동가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폐수오염을 방지해줄 뿐더러 에너지까지 생산해주니, 전화위복의 발견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석유화학적 방법보다 싼 비용으로 부탄올을 얻을 수 있다.

홍주봉박사팀이 개가를 올린 담배에서의 인슐린생산은 지난해 매스컴에 크게 소개됐다. 기존의 인슐린은 돼지의 췌장이나 대장균에서 추출됐는데 홍박사는 동물의 호르몬을 식물인 담배에서 뽑아냈다. 이 인슐린 담배는 2백만명에 달하는 국내의 당뇨병환자에게 더 없이 좋은 희소식이었으나 좀 더 느긋하게 기다려야 그 혜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차기 소장에 관심이 쏠려

미국 일본 유럽 등 19개국에 국제특허를 출원중인 인공씨감자의 대량생산기술(정혁박사팀)은 주먹만한 크기의 천연씨감자를 콩알만한 크기로 줄여 놓았다. 따라서 보관 수송하기 쉽고 병충해와 바이러스 감염이 사라지게 된다. 아무튼 이 인공씨감자 기술은 상당액의 로열티를 보장받고 있는데, 그중 50%는 과학재단에, 30%는 발명자에게 돌아간다.

피를 멎게 하는 지혈제인 α-트롬빈 개발도 이미 완료됐다(김지영박사팀). 트롬빈의 원료인 프로트롬빈과 프로트롬빈-2를 생산하는 미생물균주를 유전공학적으로 개발, α-트롬빈의 탄생까지 연결시킨 것.

이경광박사팀의 슈퍼마우스도 장안을 꽤 들끓게 했다. 국내에도 바야흐로 거대동물시대가 왔다는 첫 신호탄을 쏴 올렸기 때문이다. 슈퍼돼지 슈퍼소에 대한 얘기도 덩달아 화제거리가 되었다. 보통생쥐보다 덩치가 두배고, 성장속도가 10배나 빠른 이 슈퍼생쥐는 유전자재조합기술과 수정란미세조작술의 합작품이었다.

인체성장호르몬인 IGF-1의 생산(이영익박사팀)은 특히 난장이와 당뇨병환자가 반겼다. 인체의 간세포에서 성장인자를 분리, 유전공학적으로 대량생산하는 이 기술은 사람의 성장촉진제로 쓰일 뿐 아니라 근육의 손상이나 골절의 치료제로도 유망하다.

이른바 무공해농약이라고 불리는 미생물 살충제(김정일 박사팀)도 로열티를 받는 품목이다. 만약 이 무공해농약으로 공해농약, 즉 화학농약의 5~10%만 대체한다 할지라도 연간 약 80억원 벌이는 된다. 특히 이 농약(B.T.제제라 한다)은 이로운 곤충에는 해를 주지 않고 해충에만 살충작용을 한다는 점이 장기다.

또 당뇨병 간질환 신장질환을 간편하고 신속하게 측정할 수 있는 진단용 시약도 개발(정태화 박사팀)해냈다. 이 진단시약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아 수출의 길이 열려 있다.

고영희박사팀이 개발한 폐수처리용 다기능성 미생물도 자랑거리. 이 미생물은 유전자 조작기법에 의해 탄생했는데, 특히 장뇌 나프탈렌 톨루엔 알칸화합물이 많이 포함된 폐수처리에 적합하다.

이밖에도 호흡기 질환치료용 단백질(유명희박사팀), 열대성 박테리아를 이용한 에탄올(이상기박사팀), 미생물검사용 간이시험지(정태화박사팀)의 개발이 성공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이대실박사팀이 추진하고 있는 게놈프로젝트(genome project, 인간유전자계획)가 최대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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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사는 "전세계적으로 이 계획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경쟁연구가 아니고 협동연구방식으로 계획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우리도 꼭 참여해야 합니다. 1% 연구하고 나머지 99%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지요."라고 말하면서 "정책적인 배려가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전공학센터는 대덕시대를 맞고 있지만 아직 모든 것이 안정된 상태는 아니다. 실험동물관리시설과 같은 중요시설이 채 이전하지 못했고 전자현미경 등 필수적인 장비도 서울의 '골방'에 남아 있다. 서울에 가족이 있는 중견연구원들의 불만도 완전히 가라앉지는 못했다. 자녀들의 교육문제도 여전히 골칫거리다. 또 대덕이전 문제로 연구원들과 갈등을 겪은 한문희박사가 소장직을 내놓아 높은 자리도 공석중이다.

"하루 빨리 훌륭한 분이 소장직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저는 연구자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에요. 대학에서는 학장하다 다시 평교수로 재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구소에서는 아직 그런 풍토가 뿌리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한박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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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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