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 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원동력이 되어 온 반면 유일한 인류 생존의 터전인 지구 환경의 심각한 피폐와 인류의 종말까지도 우려할 수 있는 핵전쟁의 공포라는 값비싼 대가를 강요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준 문명의 이기가 본래의 지향하는 바 평화적인 목적에 이용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살상하고 평화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악용되는 경우를 우리는 여러번 목격해왔다.
한편에서는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개발한 과학 기술자의 도의적인 책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총체적인 책임과 의무는 모든 인류에게 지워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과학기술이 평화적으로 사용되는가를 부단히 감시해야 한다. 특히 정보사회를 예비하는 지금 우리는 정보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예측하고 대책을 연구하는데 게을러서는 아니 될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정보사회를 언급할 때 대체로 그 순기능적인 면만 강조해 온 인상이 짙다. 강조의 정도가 아니라, 21세기에 진입만 하면 가만히 있더라도 정보사회라는 열매가 저절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환상이 심어져 왔다고 말해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정보사회에 대비하고 정보사회가 우리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펼쳐져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정보사회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함께 살펴보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기술문명의 발전이 인류의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사회, 곧 정보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앞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암초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80년대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심심치않게 등장하고 있는 정보사회의 어두운 구석들,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정보의 범람과 독점 독재자의 현란한 정보통제기술
정보사회에서는 정보량이 증가하는 가운데 정보에 매몰되어 자기의 지적 창조력을 발휘하는 일 없이 정보에 맹신적으로 의존하는 인간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또 영상 등에 의한 2차적 정보가 증가하는 반면 인간을 직접 접촉해서 얻는 정보가 감소하기 때문에 간접적 부분적으로 얻은 정보를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늘어나 사회적 병리 현상이 증가한다.
또한 정보의 양과 더불어 질의 문제도 매우 심각하게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정보의 정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잘못된 정보나 부적절한 정보에 현혹되는 결과가 될 뿐만 아니라 질이 나쁜 정보는 아무리 집적해도 쓸모가 없게 된다. 정보의 신용 가치성에 따라 질이 좋은 정보에 나쁜 정보가 섞여 있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가 끼어듦으로써 정보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나아가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간의 불신이 끝없이 증폭되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정보의 누적 효과성은 개개의 정보의 질이 가치가 있다는 전제 아래서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방대한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다는 것이 곧 버튼을 누르면 필요한 정보가 모두 얻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개인의 요구는 각각 별개의 것으로서 정보를 선택하고 이용하는 것은 결국 각 개인이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은 각기 상이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상이한 능력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이 검토되지 않는다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를 이용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정보 사회가 가져다 주는 자유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세계적으로 교육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한글을 전혀 읽거나 쓰지 못하는 문맹자가 인구의 3%, 읽고 쓰기는 하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능적 문맹자가 20%에 이르고 있다는 한 조사 자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속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은 왜소함과 초라함을 느끼게 된다. 이전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던 지구 반대편의 소식이 자신의 생활에 직접 결부되고, 그 많은 정보들을 기억하거나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인간의 생활을 각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누가 어떤 정보를 갖는가」에 따라
한편 정보의 범람은 엄청난 정보들을 선별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대중들의 정보에 대한 무감각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어차피 넘쳐나는 정보이므로 스스로 그것들을 취사선택하기보다는 권력이나 미디어에서 골라주는 정보를 맹신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의 범람은 한편으로 정보의 독점과 남용을 잉태하는 계기가 된다.
사회적 의미의 정보는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그것이 프라이버시에 관한 권리, 공공의 복지, 국가 안전 및 기업 활동의 자유 등이 침해되지 않는 한 개방되어야 한다. 정보를 독점하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하여 우월한 지위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정보의 공공적 성격이 자본의 이윤 추구동기에 가려짐으로써 정보를 상품으로서 구입할 능력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지역으로 집중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정보 소유의 계층간, 지역간 불균등 현상이 심화될 뿐만 아니라, 컴퓨터나 전기 통신 기술이 정보 독점과 연결되면 가공할 만한 관료 사회가 출현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지구상에 나타났고 나타날 수 있는 독재자들은 이제 정보 기술을 장악함으로써 거미줄 같은 전기 통신 네트워크와 첨단 도청 장비를 이용하여 국민의 생각과 행동을 낱낱이 감시할 수 있게 되어 효과적으로 독재체제를 구축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는 조지 오웰의 공상 미래 소설에 등장하는 관료 사회가 전혀 공상적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프라이버시 침해 행정전산망에 관심 집중
오늘날 정보 또는 정보화라는 용어는 단순한 상업적 컴퓨터 시스템이나 컴퓨터간의 정보 통신 의미를 훨씬 넘어서고 있으며, 정보화의 진전은 우리의 의식 구조, 공공 정책까지도 지배할 수 있다. 따라서 정보화는 개인의 생활은 물론 국가의 정치 형태나 사회 구조까지도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게 되는 상황들을 예측케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사회에서는 개인의 다양한 정보가 축적 유통 교환됨에 따라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정부는 행정의 능률화를 제고하기 위해 정부가 가지고 있는 각종의 정보를 행정기관 상호간에 서로 이용할 수 있도록 국가기간 전산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올해 중반기까지 완료할 것을 목표로 입력사업을 벌이고 있는 주민관리업무용 행정전산망 사업은 그 입력 항목의 방대함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체신부 산하 연구기관인 통신개발연구원이 내놓은 '정보화사회와 프라이버시에 관한 조사 연구'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 것인가를 극명하게 나타내 주목을 끌었다. 조사 대상자의 53.1%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행정 전산망이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40%는 '틀림없이 침해 받게 된다'고 답변하여 93%이상의 국민이 행정전산망에 의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우려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 밖에도 '행정 전산망을 관리하는 국가가 정보를 독점함에 따라 정보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거나 반드시 악용하게 될 것'이라는 응답이 89.6%에 이르고 있어 프라이버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국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 이 때문에 취직시험에서 떨어진다든지 국회의원 입후보자가 지역주민들의 생활정도 출신지역 가족사항 등을 분석하여 선거전략에 이용한다든지 하는 경우는 프라이버시침해의 단적인 사례다. 실제 각종 서식에 무심코 적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가 악용되어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5대 전산망사업인 행정전산망 금융전산망 교육연구전산망 국방전산망 공안전산망과 관련한 프라이버시 침해는 개인정보의 수집 입력단계에서도 나타나지만, 각 정부기관별로 입력된 정보가 중앙 전산망을 통해 서로 교환 이용되는 과정에서 더 큰 침해가 일어나게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각 정보가 수작업에 의해 문서화되어 있던 상태에서는 이러한 정보가 각 부처에 통용되지 못했으나 온라인화된 행정 전산망이 가동되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채 원하지 않는 곳에서 또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에 관한 정보가 사용될 수도 있다.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 처리 기술의 발달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특히 공적 부문에서 능률적 행정을 위해 컴퓨터에 개인 정보를 입력, 활용함으로써 많은 효과를 보고 있는게 사실이나 정보가 수집 목적 외로 사용되는 경우도 왕왕 있어 왔다. 정보의 수집시 설사 당사자의 동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한번 입력된 정보는 결국 본인의 지배 밖에 놓이게 되어 프라이버시 보호의 사각지대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개인에 관한 정보들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어떠한 특수 기관에 의해 비밀리에 수집, 관리되는 경우도 예상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 정보는 수집 과정에서도 일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개인에 대한 부분적인 정보만이 수집되어 자칫 특정인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가 형성되어 뜻하지 않는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으며, 처음부터 정당한 권한이 없는 자가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정보에 접근하여 이를 외부로 누설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정보에 대한 무단 접근을 방지하기 위해 암호장치(password) 등을 두겠지만 컴퓨터 시스템에서 정보의 최후 관리자는 인간이기에 정보 유출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정보 주체인 개인이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는 자신에 관한 정보에 접근하여 확인, 시정하거나 자기에 관한 정보를 완전히 지배하는 데는 기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정보 사회에서 우리는 거대한 사회의 정보능력 앞에 힘없이 발가벗겨진 인간의 모습을 보며 슬퍼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컴퓨터바이러스 「장난기」가 「공든탑」을 무너뜨린다
얼마전 한국데이타통신(DACOM)이 운용하는 '한글전자사서함'에 주전산기(host computer)의 데이터 일부를 파괴해 버리겠다는 내용의 경고문(?)이 게시되어 관계자들은 물론 이 사서함을 이용하는 많은 이용자들을 긴장시킨 일이 발생했다. DACOM의 미흡한 서비스와 사서함 이용자들의 장난기에 대한 분노가 그 이유라고 밝힌 '바이러스 서울 연합'이라는 이름의 단체에 의해 비롯된 이 사건은 그후 몇 차례의 경고가 더 있었지만 다행스럽게 행동으로는 나타나지 않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로 인해 DACOM은 데이터 파괴에 못지 않은 손실을 입게 되었다. DACOM은 이 협박에 대비하여 컴퓨터 단말기의 비밀 번호를 모두 바꾸고 운용요원들이 철야 대기하는 등 시간적 정신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최근 컴퓨터 보급의 확산에 따라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단 컴퓨터의 자기 디스크에 들어 있는 프로그램에 침투하게 되면 자기 번식을 반복하여 컴퓨터의 기능을 떨어뜨리거나 귀중한 데이터를 파괴해 버리는 컴퓨터 바이러스는 정보사회를 위협하는 암초적인 존재로서 많은 컴퓨터 사용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바이러스 프로그램에 감염된 디스크를 사용하면 이 프로그램은 컴퓨터의 기억장소(memory)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기억장소에 들어간 바이러스 프로그램은 사용자 몰래 다른 디스크에 마치 병원체(virus)처럼 자신을 복제해버린다. 또한 바이러스 프로그램은 자기 자신을 복제할 뿐만 아니라 다른 부작용도 같이 가지고 있다.
이 부작용의 성질에 따라 바이러스 프로그램은 크게 양성 바이러스와 악성 바이러스로 나눈다. 양성 바이러스는 사용자의 데이터를 파괴하지 않고 감염시킨 후에 보통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간단한 메시지를 출력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도 쓸데없는 프로그램을 기억 장소 내에 증식시킴으로써 시스템의 속도를 저하시키고 사용 가능한 기억 장소 및 디스크의 공간을 줄인다. 운이 나쁜 경우에는 시스템을 정지시키거나 데이터를 파괴하는 수도 있다. 반면 악성 바이러스는 데이터를 직접 파괴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러한 효과는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널리 퍼질 때까지 사용자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유보되는 것이 보통이다.
유죄판결받은 인터네트사건
지금까지 알려진 바이러스 프로그램에 의한 사고로서는 88년 11월의 인터네트(Inter-net) 바이러스 침투 사건이 대표적인 것이다. 미국 전역의 주요 대학과 국방 연구 기관에 설치된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입하여 컴퓨터 수천대의 가동이 중지되거나 다른 컴퓨터와의 연결망이 잠정적으로 차단되었던 미국 최악의 바이러스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최근 미국 지방 법원은 인터네트바이러스 사건의 피고인인 코넬 대학교의 로버트 모리스군에게 고의적인 바이러스 침투 사실을 인정, 유죄 판결을 내렸다 '예루살렘 바이러스'와 '데이터크라임 바이러스'의 극성에 몸살을 앓고 있는 영국에서는 이들이 왕립 협회의 컴퓨터에 침입하여 중요한 데이터를 모두 날려 버린 일이 있었다.
이밖에도 지난해 6월에는 태국의 은행 전산 센터에 '13일의 금요일 바이러스'가 침입, 수년 동안 축적해 놓은 고객에 대한 각종 금융 정보를 한순간에 무용지물을 만들어 버려 엄청난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된 일이 있으며, 포르투갈의 시중 은행에서도 같은 종류의 바이러스에 의해 전국 온라인 시스템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한 일이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은 대개 10~20대의 자연과학 계통을 전공한 장난기 많은 해커(hacker)들이 자신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경우가 많고 최근에는 프로그램의 불법 복사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두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국내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바이러스 프로그램에 감염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 44%가 자신도 능력만 있다면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퍼뜨리겠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단순한 장난기에 의해 만들어진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국가 안보와 관련되는 컴퓨터에 침입하여 예기치 못한 안보적 불상사를 일으킬 수 있다. 컴퓨터 단말기가 공중 정보통신망에 연결되는 정보사회에서 통신망을 통하여 유통되는 바이러스 프로그램은 사회의 모든 시스템를 졸지에 파괴시켜 엄청난 혼란과 대규모의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컴퓨터 범죄 법조문을 상당부분 고쳐야 할 지도…
정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사회의 여러 시스템들은 대규모일수록 한번 사고가 발생하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컴퓨터가 보급됨에 따라 컴퓨터의 성능향상, 프로그래밍기술의 향상이 예견되지만 모든 경우에 대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작성은 곤란하다.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과 이를 치료하는 백신 프로그램의 숨바꼭질에서 보듯이 대체로 문제가 발생한 다음에 대응 조처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또 사소한 잘못(bug)에 의해 시스템이 정지하거나 폭주할 가능성도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가능성은 지구상에 설치되어 있는 원자력 발전소나 핵무기 등이 제아무리 철저하게 관리된다고 하더라도 순간의 부주의에 의해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 영화 '워게임'(War Game)은 한 고교생이 비디오게임 프로그램을 훔치려다가 잘못하여 미국 방공사령부의 컴퓨터에 침입, 하마터면 핵전쟁으로 돌입할 뻔한 위기를 묘사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80년 6월 미국 방공사령부의 컴퓨터가 잘못 작동되어 '소련의 핵공격 개시'라는 메시지가 나와 미국은 즉시 핵미사일로 소련을 요격하려고 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컴퓨터의 자체 점검 기능이 작동하여 컴퓨터 고장에 의한 것임이 확인되었지만, 설상 가상으로 자체 점검 프로그램이 바이러스 프로그램에 감염되었거나 그밖의 사유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처구니 없는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정보 사회에서는 잇따라 출현하고 있는 첨단기술로 인해 현재의 법률 체제로는 예기할 수 없는 컴퓨터 범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에도 컴퓨터에 부정한 데이터를 입력하여 부정한 이익을 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정보화 및 네트워크화의 진전에 따라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기업의 비밀에 관한 프로그램과 데이터의 절취, 컴퓨터의 부정 사용 및 파괴 등 컴퓨터 범죄는 더욱 고도화 조직화 광역화 될 것이 분명하다.
'10원 미만을 몽땅 입금시켜라'
최근 컴퓨터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범죄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약간의 프로그램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모든 사원(또는 예금주)의 급료(또는 이자)중 10원 미만의 금액을 몽땅 특정 계좌에 입금시켜라'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
국내에서 발생한 컴퓨터범죄의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73년 10월 서울 강남의 AID아파트 추첨 부정사건. 프로그래머가 소프트웨어 속에 가짜 프로그램을 집어넣어 9세대분을 빼돌렸다. 지난해에는 한 은행직원이 컴퓨터를 조작해 2억원을 빼냈고, 한양대 전자계산소의 직원이 수험생의 시험점수를 조작한 사건이 발생해 컴퓨터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최근 발생한 국회도서관의 문헌정보자료 유출사건은 정보처리업자의 불법자료유출이라는 시각과 학술정보의 대중적 이용이라는 상충된 견해가 팽팽하게 대립돼 있기도 하다.
정보의 무국적성과 통신주권 국가의 중추신경에 해당
지난해부터 밀어 닥치기 시작한 미국에 의한 통신시장 개방압력과 이에 따른 우리정부의 데이터베이스(database) 및 정보처리(data process) 부문 대미 개방합의(90년 7월1일부터 미국에 대해 이 부문을 전면 개방)는 초국경간 정보유통(TDF)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초국경간 정보유통은 이제 국가간 주권의 문제는 통신 주권을 중심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구체적으로 통신주권이란 경제적 사회적으로 정보의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 정보의 통제권을 가진 국가만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주권 국가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국의 직접적 이해에 관련되는 정보를 당사국이 소유 가공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 이것은 주권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에 대한 예로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시 미국의 프랑스에 대한 보복 조치를 들 수 있다. 미국 정부는 프랑스 정부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규탄하는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당시 미국에 모회사가 있는 드레서인더스트리사로 하여금 소련에 수송 파이프를 제공하는 프랑스의 자회사에게 미국 컴퓨터로부터의 데이터 공급을 중지시키도록 조처했다.
이 기술데이터의 공급이 중단됨에 따라 시베리아와 서유럽을 잇는 소련의 가스파이프 라인 공사가 중단되었고, 미국의 데이터에 기초하고 있는 프랑스 내의 자회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통신주권은 곧 생존권
TDF에 관한 각국의 입장은 자국의 정보력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경제협력기구(OECD)는 TDF선언(1985)을 통해 데이터의 국제간 자유 유통을 촉진하고 이를 위해 가맹국이 협력할 것을 천명했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빈약한 프랑스 등 일부 OECD 국가들은 처음에는 이 선언의 채택을 반대하다가 나중에 동의했다. 이들 나라가 태도를 바꾸게 된 내면적인 이유는 1992년에 실현될 EC 통합과 더불어 EC내에서의 TDF 활성화가 공동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것과 TDF 선언을 빌미로 개도국의 데이터 국경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전략적인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프라이버시 보호 및 TDF 가이드라인 선언(1980)'을 통해 △데이터에 대한 수집 제한의 원칙 △이용 제한의 원칙 △목적 명확화의 원칙 △안전 보호의 원칙 △책임의 원칙 등 TDF 8원칙을 주장하면서도 국제간 데이터 유통에 소극적이던 OECD국가들의 입장 선회는 극단적인 자국 이기주의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반면 선진국에 의한 정보의 지배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개발 도상국들은 '정보 과학에 관한 국제 기구(IBI) 회의'를 통해서, TDF 문제가 OECD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이해만 반영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TDF 발전을 위한 국제 자문 위원회'를 설립하여 공동 대처할 것을 결의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TDF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막강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해 무기력하게 정보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자주적인 정보사회의 실현에 한가닥 우려를 낳고 있다.
공업 기술을 지배했던 국가가 곧 세계를 지배했던 역사에서 보듯이 미래 정보 사회에서는 정보 및 정보기술을 지배하는 국가가 다시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은 우리를 전율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정보는 통신네트워크만 구비되면 언제 어디라도 날아가 이용자에게 공급될 수 있는 무국적성(無國籍性)을 지니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월등한 정보와 정보처리기술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통신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개방요구는 부가가치통신망(VAN) 이동통신 위성통신 사설네트워크 등 첨단통신분야에 집중돼 있다. 한마디로 중추신경조직을 장악하겠다는 얘기다. 정보사회에서 통신주권을 지키는 것은 곧 국민의 생존권을 지키는 일과 직결돼 있다.
도청 인간성을 파괴하는 첨단공해
전화는 컴퓨터와 더불어 정보사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도구다. 전화기술의 발달은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양한 서비스들을 가능하게 했고 국내에도 가입자수가 1천만을 돌파, 정보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전화업무를 관장하는 전기통신공사는 일약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기직장으로 떠올랐고 방대한 조직과 인원을 거느린 정보사회 추진의 주역으로 자처하고 있다.
전화가 편리한 대중통신수단으로 정착되자 편지를 통해서나 직접 만나서 하던 은밀한 대화들도 대부분 전화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의 됫면에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내용을 숨어서 엿듣는 '검은귀'(도청)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심심치않게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전화도청. 권력기관이 반정부인사들을 감시하거나 기업이 다른 회사의 정보를 몰래 빼돌리는데 이용되는 도청기술은 나날이 그 장비가 간단해지고 성능이 높아지는 한편 이용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특히 전화교환기가 전전자(全電子)방식으로 바뀌면서 그 속에 전화통화자들에 관한 사항이 자동으로 기록되는 기능이 포함돼 권력만 장악한다면 너무나 손쉽운 방법으로 도청이 가능하게 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블랙박스도청' 시비는 권력에 의한 통신기술의 악용 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기부의 의뢰로 전자통신연구소가 개발한 블랙박스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일시에 각 전화국에서 철거돼 도청장치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개발당사자들은 이 장비가 '통신기기의 전송품질을 측정하기 위한 모뎀일 뿐'이라고 발뺌했지만 전자 교환기내에 도청기능이 포함돼 있고 이 장비에도 특수 어댑터만 붙이면 도청장치로 전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았다.
블랙박스 도청에서 주목할만한 사실은 도청사실 자체가 아니라 도청이 첨단통신기술에 의해 너무나도 간단하게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최고 6천명까지 한꺼번에 도청이 가능하며 음성이 들리면 자동으로 녹음기가 작동되는 음향감지녹음기와 '불순' 용어만 튀어나와도 자동 체크되는 음성인식시스템이란 첨단장비까지 동원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정치범이나 노조 지도자들이 수사기관에 연행됐을 때 처음에 전화도청자료로부터 수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화된 얘기다.
팩시밀리 도용도 등장
도청이 권력기관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경쟁 회사의 기술이나 영업정보를 불법으로 입수할 때나 개인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남몰래 캐낼 때도 이용된다. 몇년전에는 경기도의 어느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도청기를 설치해 동료교사들의 동태를 감시, 말썽을 빚은 적도 있다.
이러한 소형 도청장비는 조작이 간단하고 가격이 싸며 구입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세운상가나 용산전자상가에 가면 10만원 내외의 가격으로 유선도청기를 살 수 있고 성능이 뛰어난 무선도청기도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도청은 첨단기술이 악용된 전형적인 사례일 뿐만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불신풍토를 확대 재생산한다. 권력이 인권을 유린하고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낱낱이 들춰냄으로써 서로가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풍조를 만드는 것이다.
헌법 18조에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으나 도청을 처벌할 법규정은 없다. 형법에 남의 편지나 문서를 뜯어보는 행위는 규제하고 있지만 전화도청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닉슨 미대통령은 전화도청으로 인한 부도덕함이 원인이 되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까지 했다. 외국의 경우 유괴 마약 등의 범죄행위를 제외하고는 도청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있음을 볼 때 우리도 하루바삐 이에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겠다.
최근에는 전화뿐만아니라 같은 전화선을 이용하는 팩시밀리도 도용되는 사례가 발생, 경각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첨단직업병 VDT증후군과 테크너스트레스
전자기술의 발전으로 TV 컴퓨터 전자계기판 등 화면(모니터)을 장시간 들여다보아야 하는 현대인은 새로운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적인 첨단직업병이 VDT(Visual Display Terminal)증후군. 컴퓨터앞에서 장시간 일하는 오퍼레이터들이 눈의 피로와 어깨 목 등의 통증을 호소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컴퓨터화면에서 나오는 미량의 방사선이 임산부에 좋지않는 영향을 미친다는 해외의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최근 국내에도 이에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VDT 증후군의 증세로는 먼저 목과 어깨 그리고 팔에 통증이 오는 경견완(頸肩腕)장해를 들 수 있다. 최근 어느 방송사에서 6년 근무한 여자타자수가 어깨에 감각마비가 오고 손이 붓거나 떨리는 증세가 있어 경견완증 판정을 받기도 했다.
경견완증에 눈의 피로가 겹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눈이 충혈되고 시력이 저하될 뿐아니라 두통이나 소화가 잘 안되는 증상도 유발한다. 하루 4시간 이상 화면앞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중 많은 수가 이러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VDT 증후군의 예방·치료법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다. 그 원인에 대한 규명이 철저하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VDT작업시에 피로도를 줄이는 작업자세나 적당한 휴식시간 등을 전문가들의 충고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함께 최근 VDT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는 보안경이나 안약등도 판매되고 있지만 그 효능이 정확하게 증명된 바는 없다. 정보사회의 진전과 더불어 TV나 컴퓨터의 화면을 대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더구나 비디오나 게임기 앞에 몇시간씩 매달려 있는 어린이들을 생각할 때 VDT증후군의 심각성을 날로 더해갈 전망이다.
VDT의 규제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찬반양론이 갈려있다. 12개주만이 VDT규제법안을 적용하고 있을 뿐 민간 기업들의 반대로 입법화가 더딘 편이다. 규제반대론자들의 주장은 VDT에 대한 의학적 규명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 국내에서는 노동부가 최근 VDT 증후군과 관련 각 사업장에 지침서를 배포한 바있다. 아무튼 국내에서는 VDT에 관한 전담연구기관부터 만드는 것이 선결과제로 보인다.
치열한 경쟁속에서…
또다른 첨단직업병으로는 '테크너스트레스'라 불리는 것이 최근 등장했다.
컴퓨터는 인간의 노동을 덜어주는 편리한 기계지만 이로인해 열등감을 가지거나 노동강도가 더해져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테크너스트레스란 83년 미국 심리학자 크레이즈 브로드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 크게 '테크너불안증'과 '테크너의존증'으로 나눠진다.
테크너불안증은 컴퓨터활용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이에 익숙지못한 직장인들이 느끼는 불안감. 어릴 적에 컴퓨터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주로 40대 이후의 직장인들이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후배들을 보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돼 신경정신과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테크너의존증은 반대로 컴퓨터기술에 사활을 거는 소프트웨어기술자들이 겪는 스트레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첨단기술을 익혀야하고 남보다 뛰어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며 격심한 인력난속에서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소프트웨어기술자들은 때때로 심각한 정신불안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특히 장시간 기계와 씨름한 결과, 심각한 경우 실어증에 걸린 사례도 있다.
테크너스트레스는 아직 미국이나 일본에서 많은 사례가 보고되고 있지만 이들을 바싹 추격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무풍지대는 아닐 것이다.
직업병은 아니지만 첨단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한 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파간섭(EMI, Electro Magnetic Interference)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엄밀히 말하면 전자기장으로 인한 것과 X선 등 방사선으로 인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EMI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아직 뚜렷한 결론이 나와 있지 않는 상태다. 한편 EMI가 다른 기기의 작동을 교란시켜 예상치못한 피해를 가져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전자파에 교란당한 로봇이 오동작을 일으켜 인간을 해친다든가 비행기나 선박이 항로를 이탈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