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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동물이 뿌리는 먹물의 용도는?

위험이 닥쳐도 먹물을 아끼는 바다 달팽이

 

묘한 연체동물인 아플리시아. 먹물을 뿌려 놓고도 천천히 걷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문어나 오징어가 위험을 느꼈을 때 먹물을 뿜는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자기방어용이라는 것이다. 그런 믿음은 물론 근거가 있다. 문어나 오징어처럼 빠르게 헤엄치는 연체동물은 공격자가 다가오면 일단 먹물을 뿌리고, 어리둥절하고 있는 동안에 쏜살같이 달아난다.

그러나 모든 연체류가 먹물을 호신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바다의 느림보(달팽이)로 알려진 아플리시아(Aplysia)만은 예외다. 그들은 먹물을 뿌려 놓고도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걸어간다. 조금도 당황하거나 바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최근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생물의 행동거지를 연구하고 있는 두 학자인 에텔 토바흐와 앙드레 자퍼레스에 의해 확인됐다.

그들은 푸에르토리코 앞바다에서 그 '느림보'를 잡아온 뒤 큰 고기와 게 그리고 문어와 함께 수조에 집어 넣었다. 적어도 '느림보'와 같이 살게된 다른 동물들이 '느림보'의 공포의 대상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도 이 '느림보'는 먹물을 분출하지 않았다. 게가 다가와 그 큰 집게발로 꼬집을 때도.

"물리적으로 쥐어 짜야만 '느림보'들은 먹물을 내보였다"며 자퍼레스는 그 '인색함'에 혀를 내두른다. 평상시와 다른 압력이 가해지면 '느림보'의 몸속 중간부분에 있는 먹물세포에서 어두운 색소가 분출됐다.

곧 이어 연구팀은 '느림보'의 천적으로 알려진 말미잘을 수조에 넣은 뒤 관찰을 계속했다. 말미잘이 '느림보'를 3분의 1쯤 삼켰을 때도 먹물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절반쯤 삼키자 '느림보'의 몸에서 먹물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때의 먹물은 방어용이 아니라 스트레스때문으로 추측된다"는 것이 연구팀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느림보'는 위급한 상황에도 왜 먹물 '카드'를 잘 쓰려들지 않는 것일까. 이 연구를 진행한 학자들에 따르면 '느림보'의 먹물은 유용한 색소(먹이인 조류(algae)에서 추출한)를 보관하는 '저장창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색소들은 '느림보'의 체벽에서 쉽게 발견된다. 또 피부의 색깔도 이 색소들을 닮는다. 예를 들어 녹조류를 즐겨먹는 '느림보'가 갈조류를 먹었을 경우 피부색은 분홍끼를 띤 붉은색으로 변한다. '느림보'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위장을 해서 '적'이 우굴거리는 해저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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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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