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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연극배우 뺨치는 연기의 천재

동물세계의 「놀부」인 이 약삭빠른 동물도 인간에게는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의 별명을 지을 때 동물에 비유한다. 예컨대 성질이 고약한 사람에게는 '호랑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좀 모자라거나 미련스러운 사람을 '곰'이라고 부른다. 또 무슨 음식이든지 잘 먹고 뚱뚱하면서도 욕심이 끝이 없는 사람을 '돼지'라고 하고 생김새가 귀여우면 '토끼', 흉악스러우면 '늑대', 하는 짓이 흉물스러우면 '너구리'로 통한다.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 또한 많다. 매사에 악삭빠르고 재주가 있는 사람에게 그런 별명을 붙이기도 하지만 성격이 간교하고 수다스럽고 경박하며 남에게 아첨을 잘하고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할때 붙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여우'라는 별명을 얻으면 누구든 그렇게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더구나 '불여우'라고 부르면 혹독한 악평임에 틀림없다.


연극배우 뺨치는 연기의 천재 여우
 

사냥개를 가볍게 따돌리고

그렇다면 여우란 동물은 과연 얼마나 교활하고 간교한 것일까. 그것은 여우의 생태와 습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사냥개는 금방 여우를 발견해 뒤쫓다가도 십중팔구 끝내는 놓치고 만다. 사냥개가 발자국을 따라 추격해오면 여우란 녀석은 달아나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내를 건너기도 한다. 또 갑자기 나무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2~3m씩 뛰어 자신의 흔적을 끊어버리는 방법으로 사냥개를 따돌린다. 특히 여우는 자신의 독특한 체취를 지워버리기 위해 악취가 나는 거름통이나 쓰레기더미 등에 몸을 굴리고 나서 달아나기도 한다. 참으로 얄미울 정도로 영리한 동물인 것이다.

동물원의 여우사(舍) 근처에 갔다가 여우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비위가 상했던 사람들을 흔히 본다. 수의사인 필자 역시 병에 걸린 여우를 치료할 땐 마스크를 착용하는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다. 치료후에는 꼭 샤워를 하고 옷에 향수를 뿌리고 크림을 얼굴에 바르는 등 법석을 떨곤 했다.

여우의 악취는 꼬리 끝부분과 발바닥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나온다. 여우가 있는 곳은 물론이고 여우가 딛고 간 발자국에는 반드시 여우 특유의 냄새가 남아 있다.

따라서 여우는 적에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위험을 항상 지니고 있지만 그 냄새를 이용해 즐겁게 사는 지혜도 동시에 갖고 있다.

만주에서 여우의 생태를 연구한 적이 있는 루카시킨이란 사람은 여우가 굴속에서 생활하는 동물이지만 굴을 파는 기술은 신통치 않다고 주장했다. 그 대신 오소리가 파놓은 굴을 빼앗아 산다는 것이다.

여우는 오소리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그 굴속에 들어가서는 '침실'을 '화장실'로 만들어 놓는다. 먹이를 잡은 후 집에 들어온 오소리는 노발대발 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정갈한 것을 좋아하는 오소리는 하는 수 없이 여우가 더럽혀 놓은 굴을 버리고 다시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멀리 떠난다.

오소리의 뒷모습을 지켜 본 여우는 자신의 계교가 어김없이 들어맞은데 쾌재를 부르면서 넉살좋게도 오소리의 집에서 새 생활을 시작한다.
먹이를 구할 때 여우가 부리는 잔꾀 또한 기가 막힐 정도다. 원래 여우는 육식동물이지만 잡식도 한다.

우리나라에 분포되어 있는 붉은 여우는 죽은 동물의 고기는 물론이고 과일 새알 곤충 꿩 두더지 들쥐 산토끼 노루 도마뱀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 먹는다.

가끔 위험을 무릅쓰고 민가에까지 내려와 닭이나 토끼를 잡아가는 경우도 있다. 특히 물위에서 놀고 있는 물오리들을 잡아 먹는 광경을 지켜 보면 그 간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여우는 마치 군인들이 위장하듯이 머리위에 풀을 이고 몸뚱이는 물속에 잠근 채 몰래 오리에게 접근한 뒤 갑자기 덮친다.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산토끼를 잡을 때의 행동은 그야말로 연극배우를 뺨친다. 토끼 앞에서 여우는 배가 몹시 아픈 시늉을 하고 엄살을 떤다. 괜히 땅바닥에 뒹굴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팔딱팔딱 뛰면서 토끼의 눈치를 살핀다. 토끼는 늘 자기를 못살게 굴던 여우가 오늘은 무슨 일로 저렇게 아파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발한발 다가와 호기심어린 눈으로 들여다 본다. 여우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한입에 토끼의 급소를 물어 버린다.

여우는 이런 간계를 써서 토끼나 달바칸이라는 커다란 다람쥐를 잡아먹고 살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들 동물이 파놓은 굴에서 함께 살기도 한다.

토끼나 달바칸 다람쥐는 이 불청객이 자기네들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그들이 애써 따온 과일을 빼앗아 먹어도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 여우에게도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있는지 집주인인 토끼나 다람쥐를 잡아 먹지는 않는다.

여우는 워낙 행동이 재빠르고 교활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냥개는 여우를 잡지 못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여우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개를 훈련시키고 있다. 이 개의 이름이 폭스 하운드(fox hound)다.

사람들은 여우가 가축들을 잡아먹자 덫이나 극약으로 여우를 잡았다. 또 여우털로 털옷을 만들어 입기 위해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야생의 여우가 줄어들자 이제는 인공사육을 통해 부드러운 여우 모피를 얻고 있다.

여우는 육식목(目) 개과(科) 동물로서 전부 15종이 기록돼 있다. 지구상의 전지역에 분포돼 살고 있는데 학명은 Vulpes vulpes다.

북극여우(백여우)는 유럽 북극권 스피츠베르겐 아이슬랜드 라이베리아 캄차카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랜드북부 쿠릴열도 등 대개 북위 55도 부근에서 서식하는데 일부는 툰드라지대의 숲에서도 산다. 여름에는 해안 근처에서 살지만 겨울에는 해안으로부터 32km나 떨어진 곳이 생활의 터전.

체격은 작은 편으로 몸길이가 45~67cm, 꼬리 25~42cm 정도다. 몸무게도 2.5~9kg 밖에 안된다.

4월에 털갈이를 하기 때문에 10월의 모피가 가장 아름답다. 특히 북극권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50℃에서도 견딜 수 있다. 임신기간은 51~57일인데 5~6월경에 4~1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한반도에서 사는 여우는 유럽 북아프리카 아시아 북아메리카 등지에 널리 분포돼 있는 붉은 여우(red fox)다.

모두 9종이 보고돼 있는 붉은 여우의 특징은 몸뚱이가 길고 콧날은 가늘고 뾰족하며 귀는 3각형이라는 점이다. 또 다리는 개보다 짧고 꼬리는 복슬복슬하고 길다. 털색은 적갈색이고 가슴과 등의 일부와 꼬리 끝에 흰색을 띠고 있다. 체구는 백여우보다 약간 큰 편이다. 이 여우의 수명은 10~15년.

국내에서도 근래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붉은 여우의 변종인 은여우를 수입해 사육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대량 사육이 안되고 있어 모피원료를 수입해 쓰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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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성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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