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뛰어 넘은 약제 4종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과학자들의 치밀하고 논리적인 접근에 응답한 자연의 선물인 것이다.
항생제의 대명사 페니실린은 플레밍(Fleming)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러나 우연히 발견된 의약품은 그리 흔하지 않으며, 의약품만큼 의도된 노력에 의해 개발되는 제품도 드물 것이다. 무작위 스크리닝(無作爲 screening)에 의해 신약을 개발하던 과거에도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 스크리닝시스템을 확립해야만 했다.
사실 무작위 스크리닝은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로부터 그 의학적 용도를 발견하려는 단순한 노력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최근의 신약개발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노력, 즉 생체와 생리현상 및 질병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약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창조해 낸다.
우수한 의약품의 조건이라면 물론 치료효과가 우수하고 부작용이 적어야 한다. 아울러 현대의 약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어떤 약이 왜 그런 작용을 하게 되는가 하는 이른바 작용 메커니즘이 비교적 분명해야 하고, 특정한 작용점(作用点)을 갖고 있는 약이 좋다. 다시 말하면 두통에도 듣고 위염에도 듣는 약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단백합성(蛋白合成)을 억제하면서 세포벽생성을 막는 다탄두식(多彈頭式) 항균제도 결코 좋은 약이 아니다.
약을 열쇠로 보고 약의 작용점을 자물쇠로 가정하면 한 열쇠로는 반드시 하나의 자물쇠만이 열려야 된다. 만약 다탄두식의 약품을 사용한다고 하면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생체 내에서 어떤 예기치 않은 부반응(副反應)을 나타낼지 예상할 수 없게 된다.
최근의 의약품개발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어떤 질병을 치료하는데 긴요한 소위 작용점들을 찾는데 주력한다. 이어 그중에서 어느 작용점을 때릴 것인가를 결정하고, 그 작용점을 공격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연구, 약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물질들을 합성해 낸다.
뱀독이 가져다 준 선물-캡토프릴
캡토프릴은 미국의 스퀴브제약회사가 발명한 유명한 고혈압치료제다. 스퀴브사의 행운은 영국의 배인(Vane)교수를 고문으로 썼다는데서부터 출발한다. 나중에 프로스타 글라딘(prostaglandin) 연구로 노벨상을 받게 되는 배인박사는 1968년 스퀴브의 연구원들에게 자신의 연구, 즉 우리 몸안의 안지오텐신Ⅱ(angiotensin Ⅱ)라는 단백성분이 혈압을 상승시키는데 뱀의 독성분이 이 안지오덴텐신 Ⅱ의 생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을소개했다.
이 발표에 흥미를 느낀 스퀴브 연구원 온데티(Ondetti)는 뱀독으로부터 고혈압치료제를 개발할 수 없을까 하고 궁리했다. 그는 동료 연구원이며 단백분해효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입사(入社) 1년생 생화학자 쿠시맨(Cushman)을 설득하여 연구를 시작했다. 온데티는 유기화학자로서 그 당시 입사한지 10년된 고참이었다.
그들은 뱀독의 여러 성분들중에서 9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테프로타이드(teprotide) 라는 펩타이드가 가장 강력한 안지 오텐신변환효소(안지오텐신 Ⅰ로부터 안지오텐신Ⅱ를 만들어내는 효소, 보통 ACE로 부름) 억제작용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테프로타이드는 뱀독성분 중에서도 극히 미량의 성분이기 때문에, 그들은 유기합성의 방법으로 다량 생산한 후 임상시험에 사용했다.
결국 역사상 처음으로 안지오텐신변환효소를 억제함으로써 혈압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1973년의 일로서 연구를 시작한 지 5년 후의 결과였다.
그러나 테프로타이드를 약으로 사용하는 데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테프로타이드는 펩타이드이기 때문에 경구투여(經口投與, 입을 통해 복용)하면 위장의 소화효소에 의해 분해돼 버린 것이다. 그런데 고혈압은 만성병이다. 따라서 혈압이 올라갔을 때마다 간단히 경구투여하지 못하고 늘 정맥주사를 놓아야 한다는 사실은 약품의 성격상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그들은 경구투여가 가능한 화합물을 합성하기 위해 2천여 화합물을 스크리닝했다. 그중 약효가 있는 물질은 오직 하나 있었으나 독성이 강해 약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연구가 암초에 부딪친 것이다.
1974년 봄, 고민과 고심에 빠져 있던 쿠시맨은 무심코 들여다 보던 한 논문에 눈을 멈췄다. 바이어스(Byers)와 폴펜덴(Folfenden) 두사람이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 벤질호박산(benzylsuccinic acid)이 카복시펩티다제 A(carboxy peptidase A)를 억제한다는 내용이었다. 단백분해효소의 성질을 잘 알고 있는 그는 키복시펩티다제A와 안지오텐신변환효소와의 공통점에 착안하게 되었다. 두 효소는 모두 아연을 함유하고 있으며, 펩타이드 탄소 말단의 방향족 아미노산을 잘라낸다. 다른 점은 안지오텐신 변환효소는 아미노산을 한개씩 잘라내는데 반해 카복시펩티다제는 두개씩 잘라낸다.
그렇다면 호박산 유도체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보면 어떨까. 그들은 처음에 시험적으로 합성한 호박산프롤린이 활성은 낮았으나 안지오텐신변환효소에 대한 특이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이 호박산프롤린을 개선하는 연구를 시작하여 1백 50여 화합물을 합생했다. 그중에서 드디어 캡토프릴이라는 약이 선정된 것이다.
뱀독연구를 시작한지 13년만인 1981년, 고혈압치료제로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 판매되고 있는 가장 안전하고 효과가 우수한 고혈압치료제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개천에서 나온 용-타카메트
히스타민이라는 성분이 몸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오랜 옛날부터 알려져 왔다. 그러다가 1900년대 초부터 이 물질의 생체내에서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히스타민은 상처나 염증부위에서 생겨나며, 강한 평황근(平滑筋) 수축작용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히스타민은 강한 위산분비 자극작용이 있다.
히스타민 연구의 초기에는 히스타민의 작용을 억제함으로써 염증이나 알레르기를 치료하려는 방향으로 연구가 이뤄졌다. 그 결과 마침내 1930년대 말에 항(抗)히스타민제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항히스타민제로는 평활근 수축은 억제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위산분비는 막을 수 없었다.
1964년 SK&F제약회사 영국연구소의 연구원인 블랙(Black)박사는 히스타민의 위산분비 촉진작용을 차단함으로써 위궤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의 개발에 착수했다. 이와 유사한 연구는 이미 미국 E. 릴리(Lilly)사에서 1950년대에 착수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더군다나 그 당시에 발견된 위산분비에 관련된 호르몬인 기스트린에 모든 학자들의 관심이 쏠려 있어서 블랙박사의 시도는 처음부터 회사 내부는 물론이고 주위에서도 어리석은 일로 평가받았다.
그는 위산분비억제를 확인할 수있는 시험방법을 확립하고는 히스타민의 화학구조를 조금씩 변화시킴으로써 히스타민의 작용을 억제하는 물질을 찾기 시작했다. 4년동안 3백여 화합물을 만들어 스크리닝했으나 목표로 하는 화합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히스타민의 위산분비를 억제하는 약의 발견 가능성에 대해 회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회사 내부로부터도 연구포기를 종용 받기에 이르렀다.
블랙박사의 연구팀은 그때까지의 연구결과를 면밀하게 조사, 2-메틸히스타민은 평활근수축작용이 강한 반면 위산분비작용이 약하고 4-메틸히스타민은 평활근수축작용이 약한 반면 위산분비작용이 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사실은 히스타민이 두개의 서로 다른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임을 시사한다. 동시에 모양을 조금씩 바꾸면 위산분비나 평활근수축 중 어느 하나의 자물쇠만을 열 수 있는 열쇠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평활근수축에 관련된 수용체(受容體, 생체내 자물쇠)를 H1수용체(H1 receptor), 위산분비에 관련된 수용체를 H2수용체(H2 receptor)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의학용어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하나는 작동약(作動藥, agonist)이다. 즉 히스타민이나 그 유사물질들처럼 어떤 작용을 나타내는 약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길항약(拮抗藥, antagonist)으로 작동약의 작용을 차단하는 약을 일컫는다. 비유컨대 작동약은 열쇠와 같은 약을 말한다. 반면 길항약은 열쇠처럼 자물쇠 속으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자물쇠를 열지는 못한다. 게다가 '심술'까지 부린다. 길항약이란 열쇠가 꼽혀 있으면 진짜 열쇠가 들어갈 구멍이 없어져 자물쇠를 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열쇠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자물쇠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길항약도 작동약과 거의 비슷한 화학구조를 갖게 된다. 그것은 작동약을 만들 수 있으면 그 길항약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사실에 자신을 얻은 블랙박사는 그때까지 부정적인 결과를 나타낸 모든 화합물의 리스트를 표로 만들어 공통점을 찾아 보았다. 대부분이 지용성 치환체(脂溶性 置換體, hydrophobic substituents)를 가진 화합물들이었다. 이에 착안한 그는 히스타민의 아미노기를 구아닐기로 바꾼 구아닐히스타민(N-guanylhistamine)라는 화합물을 다시 한번 시험해 보았다. 그 결과는 희망적이었다. 약간의 길항작용을 확인한 것이다.
처음에 이 작용을 놓친 것은 그 물질이 소위 '부분 작동약'(partial agonist)으로써 작동약의 성질이 길항작용보다 더 컸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구아닐히스타민은 그 길항작용은 매우 약했지만 훌륭한 선도화합물(先導化合物, lead compound)이 될 수 있었다. 선도화합물이 발견되면 목표로 하는 생리활성을 얻기 위해 화학구조를 변화시켜 가는 방향이 어느 정도 잡히게 된다.
그후 7백가지 화합물을 합성하여 드디어 작동약의 성질은 전혀 없고 길항작용만을 보유한 부리마마이드(Burimamide)라는 물질을 탄생시켰다. 이 부리마마이드는 인류가 처음으로 개발해 낸 H2길항제다. 이 물질은 깅력한 위산분비 억제작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맥주사를 통해서는 강력한 작용을 나타내나 경구투여로는 충분한 효과를 보여주지 않았다.
경구투여가 가능하도록 개선된 화합물이 메티아마이드(Metiamide)였다. 이 화합물은 부리마마이드보다 10배의 효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1973년 의욕적인 임상시험에서 불행히도 백혈구감소증이란부작용이 발견됐다. 이미 막대한 투자를 했으며 그 사이 너무 여러 번의 고비를 넘겼고 앞으로 더 투자해도 더 우수한 약이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어 블랙박사는 한때 포기를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1976년 11월 타가메트(Tagamet) 라는 약이 개발됐고 이 약은 이미 세계 1백 20개국에서 발매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이 약의 단점을 보완한 더 우수한 H2길항제들이 개발됐지만 개발과정에서 타가메트만큼의 어려움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테리아와의 싸움-디베카신
1957년 우메자와박사는 카나마이신이라는 항생제를 발견해냈다. 카나마이신은 페니실린에 내성(耐性)을 가진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감염증, 스트렙토마이신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 및 기타 중요한 그람(Gram) 음성균에 대해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곧 내성균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카나마이신과 유사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균들은 카나마이신에 대해서도 내성을 갖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느 항생체에 내성이 생기면 그 균은 내성인자(R-Factor)를 갖게 된다. 또 비슷한 모든 항생체들에 대해 내성을 나타낼 뿐 아니라 다른 균들에게도 자신의 내성인자를 나누어 주기 때문에 급속히 내성균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1867년 우메자와박사는 내성균이 카나마이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연구했다. 그 결과 카나마이신의 화학구조중 아미노기를 아세틸화(化)시키거나 수산기를 인산화 또는 이데닐화시킴으로써 카나마이신이 불활성화됨을 획인했다. 그는 또 같은 아미노글 리코사이드계 항생제인 젠타마이신이 화학구조의 3' 위치에 수산기가 없는데 착안, 카나마이신도 수산기를 없애버리더라도 항균력에는 영향이 없고, 균의 인산화효소나 아데닐 화효소가 공격할 장소가 없어지므로 카나마이신의 내성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화학적 합성과정을 통해 1971년에 개발된 것이 디베카신(Dibekacin)이다. 이 항생제는 우메자와가 예상한 것 처럼 내성균에 대한 저항성을 가졌을 뿐 아니라 카나마이신에 듣지 않았던 균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항균력을 나타냈다.
오타코이드는 약이 될 수 있나? - 프로스타글란딘
1965년 가을 스웨덴의 버그스트로엠(Bergstroem) 박사가 일본을 방문, 프로스타 글란딘(prostaglandin)에 대해 강연을 했다. 그는 프로스타글란딘을 동물의 생체로부터 분리하고 구조결정에 성공한 프로스타글란딘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생체내 여러 조직에서 극미량이 생성돼 곧 분해되는 불안정한 물질이다.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며 다채로운 작용을 가지고 있어서 꿈과 가능성의 물질로 불려지고 있었다. 그는 강연에서 이 물질과 불포화지방산의 생리적 의의를 밝히고, 장차 이 물질로부터 신약이 탄생하리라는 예측을 했다. 이 강연이 오노(小野)제약이 프로스타글란딘 연구를 시작한 동기가 됐다.
일반적으로 프로스타글란딘처럼 생체내 여러 조직에서 미량 생성되어 국소적(局所的)으로 작용하고 곧 분해돼 버리는 물질을 오타코이드(autacoid)라고 한다. 미량으로 강한 생리활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호르몬과 유사하나, 호르몬은 특정장기에서 만들어져서 혈액속으로 들어가 전신순환을 하면서 작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런 오타코이드로부터 의약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는 한때 제약학자들의 최대 과제였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만 해도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천연 프로스타글란딘으로부터 약을 개발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프로스타글란딘과 같이 생체내에서 불안정한 물질을 표적기관(標的器官)까지 보내기가 곤란하며, 또 여러가지 다채로운 생리작용 중에서 한가지 작용만을 뽑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사실 프로스티글란딘온 혈압하강 위산분비억제 위장운동 항진 기관지확장 자궁수축 이뇨 등 다양한 작용을 보유하며, 그 위력도 대단히 강력하다.
연구를 시작하려면 먼저 천연 프로스타글란딘을 다량으로 확보해야만 했다. 실제로 연구를 하고 싶어도 생체내 미량으로 존재했다가 금방 분해돼 사라져 버리는 프로스타글란딘을 얻기가 어려워서 포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오노제약의 연구원들은 소의 정낭(精囊)으로부터 프로스타글란딘 합성효소를 추출했다. 그리고 달맞이꽃으로부터 뽑아 내 정제한 리놀렌산을 원료로 하여 프로스타글란딘을 제조하는, 소위 효소합성법을 확립하는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1만마리의 소의 정낭과 1t의 달맞이꽃으로부터 약 25g의 프로스타글란딘을 얻게 되었다. 결국 이것을 가지고 여러가지 물리화학적 생화학적 및 약리학적 연구를 수행, 세계 최초로 천연 프로스타글란딘 E를 선보였고 또 프로스타글란딘 F를 이용한 분만촉진제를 개발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