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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S가 남긴 숙제들

전염병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80년대 의학계의 가장 큰 뉴스거리로는 AIDS(후천성 면역결핍증)를 꼽을 수 있다. AIDS환자 발생소식과 새 치료법이 연이어 보도되었고, 한때는 유흥업소들이 불황을 맞을 정도로 순식간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 병이 대중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1년부터이지만 처음 알려진 시기는 그보다 훨씬 전이다. 전염병학자들에 따르면 AIDS는 1950년대에도 존재했지만, 중앙아프리카지역에 국한돼 있었으므로 소문이 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자동차를 타고' 점차 대도시 주변으로 나오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1981년에 최초로 보고된 환자의 증상은 임상예가 드문 폐렴의 일종이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는 5명의 동성연애자들이 첫 희생자들이었는데, 평소에 건강했던 그들이 뉴모시스트카라니라는 원충에 의한 폐렴에 걸린 것이다. 같은 해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는 역시 희귀병인 카포시육종환자가 발견되었다.

두 사건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후천적으로 면역기능에 장애가 있으면 발병한다는 점이다.

이때부터 과학자들은 면역기능을 떨어뜨리는 질환의 정체를 찾는 작업에 몰두했다. 특히 프랑스와 미국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원인체를 찾는 실험을 계속했다.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는 공교롭게도 양국에서 거의 동시에 발견되었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몽타니에'박사팀은 자신의 찾아낸 원인체를 LAV, 미국국립암연구소 '갈로' 박사팀은 HTLV-Ⅲ라고 각기 이름 붙이고 '최초의 발견자'라는 월계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지나친 경쟁이 연구를 지연시켰다"고 고백하는 갈로박사의 말처럼 부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오히려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아무튼 두 연구소의 한판싸움은 몽타니에측의 판정승으로 끝났는데, HTLV-Ⅲ가 LAV를 모방한 것으로 결론내려진 것이다. 결국 두 바이러스는 동일한 것으로 판명돼, 굳이 다른 이름을 가질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HIV라는 통일된 공식이름을 부여받은 것이다.

「AIDS 공황증」까지

초기에는 AIDS가 동성연애자 마약중독자들만의 '천형'으로 인식되었으나, 건전한 습관의 소유자도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특히 유명한 배우 '록 허드슨'이 AIDS로 사망하자 공포는 더욱 배가 되었다. 심지어는 'AIDS공황증'이라는 정신질환까지 생기기도 했다. 전염병인 데다가 치료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극도로 떨게 한 것이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1979년만 해도 이제 전염병시대는 막을 내리는가 싶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선진국에서 만큼은, 각종 백신과 항생제게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들을 철저히 압도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분자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할 때 쓰는 도구를 활용,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꼼짝 못하게 했다. 또 미생물들이 우연한 경로(간접 접촉)로 전파되지만 않는다면 전염병이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퍼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짓는 학자도 있었다. 그리고 동물에게 암을 일으키는 레트로바이러스를 인체에서 찾을 수 없다는 다소 성급한 견해가 등장하기도 했다. 즉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70년대까지 인식이었다.
 

피부에 이상이 생기고…
 

HHV-6도 주목돼

그러나 이런 믿음은 80년대에 와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50만여명의 AIDS환자가 70년대의 전염병학 교과서의 수정을 강요했다.

또 성교나 주사기 등 직접 접촉에 의한 바이러스감염도 전지구적인 전파가 가능하다는 것도 증명됐다. 여기에는 2가지 전제가 따른다.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수년동안 감염을 유발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바이러스가 증상을 일으키기 전에 오랜 기간 동안 잠복해 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HIV는 이 조건들을 만족시킨다.

그리고 레트로바이러스가 인간의 체내에서 발견된 것도 80년대 의학계의 수확이다. 이는 미국국립암연구소의 개가인데, 바이러스가 인간의 암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종전의 학설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다.

현재 인간의 레트로바이러스는 2군(群)으로 분류된다. 백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HTLV-1, HTLV-2)와 면역체계를 와해시키는 바이러스(HIV)로 나뉘른 것이다. 이 둘은 유전적으로는 차이가 나지만 몇가지 공통점도 갖고 있다. 주로 백혈구를 공격하고 신경계에 이상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또 같은 경로로 전파된다.

한편 AIDS의 원인 병원체로 레트로바이러스가 아닌 새로운 바이러스가 추적되고 있다. 허피스바이러스의 일종인 HHV-6가 그것이다. 이 바이러스 역시 T세포를 공격한다는 사실이 의심을 받게 된 배경이다.

1982년~1984년 사이 전세계는 의학사상 유래없이 총력을 기울여 AIDS의 정체를 추적했다. 그 결과 AIDS가 역학(疫学)적 임상적 병리학적으로 정의되기에 이르렀고, 원인이 밝혀졌다. 특히 1984년에는 병원체가 동정되었고 최초의 치료제인 AZT가 그 효능을 타진했다.

이 작업들을 가능케 한 주역은 최근 놀랄만큼 발전한 면역학과 분자생물학이었다. 만약 AIDS가 60년대에 유행했다면 70년대에도 그 원인조차 밝혀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관련학자들의 솔직한 표현이다. 설령 그 원인을 알아낸다 할지라도, 그 바이러스가 어떻게 작용하며, 어떻게 세포를 감염시키고 증식하며 병을 일으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분자생물학의 도구들이 없었다면, 병을 알고도 속수무책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1984년에 바이러스의 검출법을 반견한 것도 평가할만한 성과이다.

이제 AIDS관련학자들의 최대 관심은 백신의 개발에 모아져 있다. 그런데 이 작업은 그리 수월치 않다.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HIV가 매우 다루기 까다롭고 복잡한 바이러스라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AIDS백신이 바이러스의 모든 조각들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버거운 과제이다.

둘째는 활용가능한 실험동물들이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HIV에 감수성 있는 실험동물로는 현재 침팬지가 유일한데 그나마 수가 적으므로 개발해 놓은 백신의 효능을 검사하기가 무척 어려운 실정이다.

셋째는 HIV가 다른 감염증과는 달리 면역체계를 공격하는 바이러스라는 점이다. 아무튼 AIDS는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질환이므로 최선의 대책은 효과적인 항(抗) 바이러스제와 백신을 개발해 투여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최근에는 단클론항체를 활용하는 법이 일본의 학자들에 의해 소개돼 주목을 받고 있고, 환자의 면역기능을 높여주는 간접 요법도 널리 쓰이고 있다.

현재까지 선보인 항바이러스제로는 유일하게 공인받은 AZT를 비롯 HPA-23 리바비린 안사마이신 수라민CD-4 등이 있는데, 효과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제네시스사에서는 최근 VAXSYN HIV-Ⅰ 이라는 백신을 개발, 임상실험 중이다. 앞으로 머지않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한 원자력병원 홍석일박사의 말대로 된다면 이는 90년대 벽초의 빅뉴스가 될 것이다.
 

면역체계, 특히 그 사령탑인 T세포를 무차별 공격하는 H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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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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