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생물학이 80년대의 과학에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그 학문이 이제 걸음마 단계의 신생학문임을 잊을 정도로. 사실 분자생물학은 불과 1세대가 지난, 즉 '35세' 밖에 안된 젊은 학문분야이다.
노벨상의 학자 왓슨과 크릭이 이중나선 형태인 DNA구조를 밝혀낸 이후 분자생물학은 놀라운 속도의 발전을 거듭했다.
70년대 초에 이미 한 종(種)의 DNA로부터 유전자를 잘라 내어 다른 종의 DNA에 끼워넣은 기술이 개발되었다. 즉 자연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유전자가 재조합기술을 통해 탄생한 것. 또 몇년 뒤에는 유전자를 살아있는 개체에 이식하였고, 새로운 '주인'의 몸 안에서 의도한 단백질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같은 진보는 80년대의 바이오테크시대를 예고하는 서곡이었다. 오늘날에는 인간의 유전자를 '미천한' 박테리아나 효모에도 옮겨 심고 있다. 이 이식을 통해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인슐린이나 TPA(응고를 제거해주는 약제)를 만들어낸다.
분자생물학의 영역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곧 농업분야에서도 쓰일 전망이다. 가령 소에 인간의 유전자를 옮겨 준다면, 인간에게 필수적인 단백질을 우유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식물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위한 단백질을 많이 함유한 옥수수가 등장할 날도 시간문제인 것이다.
유전자의 변이가 암을 일으켜
그렇다면 분자생물학이 정차 가장 큰 활약을 할 생물학 관련분야는 무엇일까? 노벨상의 학자 '데이비드 발티모어'는 암에 관한 연구에서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수십년간의 암연구는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해답이 곧 명백하게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의 변화에 의해 암이 발병함을 지난 80년대에 알아냈기 때문이다. 최초의 영감은 동물에게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를 분석하는 과정중에 얻어졌다. 이 바이러스들 중 다수가 발암(發巖)유전자(oncogene)로 바뀌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발암유전자의 발견은 동물의 암 중 몇 종류가 유전자에 의해 비롯됨을 증명했다. 그러면 인간의 경우는 어떤가? 이에 대한 최초의 대답은 1980년 경에 나왔다. 일련의 학자들이 인간의 암세포에서 추출한 DNA를 건강한 세포에 옮겼더니(시험관내에서) 암세포로 변했다는 실험결과를 근거로 암의 유전자유관설을 주장했다.
그 다음 해 인간의 암과 유전자를 연결하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세 연구기관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현대의 유전자 복제기술을 활용, 담낭에 생긴 암세포에서 인간의 발암유전자를 최초로 찾아낸 것이다.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발암유전자처럼, 이 발암유전자도 정상세포인 상대역(protooncogene, 나중에 발암유전자를 받아들이는 세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상대역과 발암유전자는 화학적으로 매우 유사했다. 5천여 화학성분 중 딱 한가지만 달랐던 것. 더 놀라운 것은 인간의 담낭암에서 추출한 세포성 발암유전자와 암에 걸린 쥐에서 찾아 낸 바이러스성 발암유전자가 화학적으로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이제 관심은 이 유전자가 어떻게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변하게 하느냐에 집중돼 있다. 많은 학자들은 상대역에 혐의를 두고 살피고 있다. 이 상대력이 고장나면, 즉 변화나 변이를 일으키면 암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성장인자에 대한 연구로 더욱 신뢰도가 높아졌다. 성장인자란 세포의 성장과 분화에 관여하는 물질.
세포는 그 표면에 있는 수용체를 통해 성장인자와 교류한다. 즉 성장인자가 보내느 정보는 수용체를 거쳐 신호담당 단백질로, 다시 세포의 심장인 핵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인자의 정보가 핵에 전달되면 세포는 분화되기 시작한다.
80년대에 우리는 발암유전자가 때로는 돌연변이되며 과잉생산된다는 사실을 알아 내었다. 아울러 성장인자 수용체 신호담당 단백질 핵단백질의 미소한 변화에 의해서도 유전자의 위치가 뒤바뀌는 등 탈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성장인자와 암의 발생과의 관계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돼 있지 않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의 여러 도구들은 암의 정체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제공해 준다. 아울러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참신하고 획기적인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암은 주로 유전자의 사고에 의해 유발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인식이다. 특히 발암유전자의 상대역이 변이를 일으키면 암이 되기 십상이다. 변이로 인해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이는 선천적으로 유전되기도 하지만, 후천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즉 방사능 오염이나 화학물질의 노출 등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최근 일련의 변이가 제법 자주 눈에 띠는 두 암, 즉 소세포폐암과 결장암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소개되었다. 이 결과는 매우 유용하게 쓰일 전망인데, 두 암에 걸릴 소지가 많은 사람을 사전에 가려내 충고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발암유전자의 연구는 여성의 유방암과 난소암의 치료를 크게 돕고 있다. 금년에 발표된 한 연구결과, 그 두 암에 걸린 여성은 HER-2/neu로 알려진 발암유전자를 많이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이 유전자를 점검하면 예방은 물론이고 환자의 완치전망과 보다 적극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항암제 개발에도 성장인지를 이용하고 있다. 그간에 제도된 함암제의 최대 약점은 선택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었다. 즉 눈먼 장님처럼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가리지 않고 파괴시킨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법들이 활용되고 있는데, 성장인자의 수용체를 겨냥하는 기법도 현재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성장인자와 강력한 함암약제를 묶어 '발사'하면 몸 안에 있는 수용체만을 찾아가므로 정상세포에는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
기억을 분자식으로
90년대에는 분자생물학이 더욱 만개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유전자 재조합기술은 신경체계에 대해서도 새롭게 도전장을 낼 것이다. 인체의 다른 부위와는 달리 신경계는 쉽게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미지의 세계였다.
신호가 신경계에 어떻게 전달되는가를 아는 일은 궁극적으로 신경기능을 정의내릴 수 있게 한다. 말하자면 기억을 분자식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 일이 90년대에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 작업이 성공하려면 알츠하이머병과 노인들의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하는 데 있어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신경정신학과 심리학은 더욱 풍부해질 게 확실하다.
지난 10년 동안 분자생물학은 오래된 수수께끼를 꽤 많이 해결해 냈다. 암의 원인으로부터 유전병의 미스터리까지, 인류의 질병퇴치에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다.
분자생물학자들은 현재 80년대에 시작해 90년대에 마감하게 될 거창한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다. 인간 유전자 계획이다. 우리의 유전정보를 집대성하는 이 작업은 수많은 나라에서 참여하고 있는데, 이 계획이 완료되면 우리 몸의 유전자 지도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