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화학이나 화학공학과는 적어도 일정한 간격이 있어 보이는 유전·생물공학에 입문하면서…
4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대학원생이 된 지도 벌써 7개월이 되었다. 관악산을 등산하는 기분으로 걸으면서 제2의 보금자리인 유전·생물공학 실험실로 향한다. 머리 속으로는 오늘 해야될 실험을 구상한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 분명히 대학생활과는 다른 새로운 무엇을 느끼게 된다.
실험실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나의 귀여운 새끼(?)들과 인사를 나눈다. 귀여운 새끼들이란 세포융합 기술을 이용, 특정한 항체를 생산하는 B세포(면역을 담당하고 있는 세포)와 종양세포(암세포)의 일종인 마이엘로마(myeloma)세포를 융합시켜 단일클론항체를 계속적으로 생산해주는 하이브리도마(hybridoma)세포를 말하는 것이다.
나의 연구테마로 정해진 "하이브리도마세포의 대사작용(metabolism)에 대한 수학적 해석"을 위해 이 조그마한 놈들과 아침부터 치열하게 대화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세포들이 주어진 환경에 대해 어떤식으로 행동하며, 우리가 원하는 물질을 많이 만들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이 녀석들에게 어떤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새 학문의 진통
그러면 내가 참여하고 있는 유전·생물공학이란 무엇이며, 대학에서 배우게 되는 교과 과정들, 그리고 현재 유전생물공학의 주된 관심분야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해 보기로 하자.
사실 옛날에는 생체구조의 기본단위가 되는 세포 한개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화학 반응들이 극히 복잡하고 더구나 이들 세포들로 이루어진 생체구조물 전체는 더욱 복잡성을 갖고 있어서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애당초 사람들은 이러한 생체시스템의 제반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완전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생체물질들을 생산하는 데 기본이 되는 제반정보가 유전물질이며, 이 유전물질이 생체고분자의 일종인 DNA 상에 존재하며, 또 이 DNA가 어떤 특정한 규칙에 의하여 구조현상을 이룬다는 것이 왓슨(Watson)과 크릭(Crick)에 의해 1950년대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 업적으로 노벨상 수상)
이를 계기로 모든 생체현상과 유전현상을 그 정보의 가장 기본이 되는 DNA고분자 레벨에서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또 더욱 쉽고 완벽한 DNA고분자 레벨에서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또 더욱 쉽고 완벽한 DNA조작기술이 개발되었다. 뿐만아니라 어떤 특정 유용물질 생산을 위해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슈퍼닭을 만들고 코끼리만한 돼지를 만들고, 수박만한 사과를 만들 수 있다(?)고 떠들석했던 유전공학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반도체 신소재 정보통신공학 에너지 해양공학 등과 더불어 첨단과학기술의 하나로서 유전공학 및 생물공학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회사들도 유전·생물공학을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문구와 함께 선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쥐의 유전자와 사람의 유전자를 결합시킨다고 해서 미키마우스가 탄생하지 않는 것처럼, 유전·생물공학이 생각처럼 쉽게 유용한 물질들을 우리들에게 제공해 주지는 않았다. 언제나 새로운 일을 개시하거나 새로운 학문분야를 시작하는 데는 어려움과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고 따라서 자연히 시간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생물공학분야에서 가장 앞서 간다는 미국의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기초연구 결과를 적용, 일상생활에 필요한 제품으로 산업화한 것은 80년대 초에 와서야 가능했다. 어쩌면 실생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유전공학적 제품을 개발하고 이것을 대량생산, 즉 산업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중에 하나일 것이다.
좁은 의미의 생물공학이란 위와 같은 입장에서 생물체의 모든 대사작용이나 생리작용을 연구·응용하여 우리가 원하는 유용한 물질들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공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전·생물공학은 복합공학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대학에서 배우는 교과과정 역시 다양하다. 기초과목으로 생물 물리 화학 생화학 분자생물학 미생물학 면역학 등을 공부하게 되며 응용과학으로 유전자공학 생물화학공학 컴퓨터 제어공학 등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분야의 연구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생물공학과 유전공학과라는 이름으로 여러 대학에 독립된 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서울대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추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 결과로 공대내의 관련학과인 공업화학과와 화학공학과의 전공교수들로 구성된 생물공학 협동과정이 89년에 창설되었다.
대학원 과정으로 되어 있는 생물공학의 전공 교과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전공학특론 응용미생물학특론 생물제어공학특론 단백질공학 동물세포·식물세포공학 바이오에너지공학 등이 개설되어 있다. 21세기에 맞이할 생물공학시대에 필요한 공학자 양성을 목적으로 교육과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요술피리를 대신해서
지금 진행중인 유전·생물공학의 주요 연구대상을 살펴보는 것도 뜻이 있다.
현재 생물공학의 산업적인 응용에서 의약품 생산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의약품이 부가가치와 투자효과가 높은 점이 주된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하이브리도마 기술에 의한 단일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 진단용 시약이나 치료용 의약품, 단백질 정제 등에 이용됨)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관심의 표적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쥐를 이용하여 항체를 생산하는경우, 1kg의 항체를 얻기 위해서는 무려 2만마리의 쥐를 키워야 하는 불편때문이다(동화에 나오는 요술피리가 있지 않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생물공학을 활용해 제작한 생물반응기로 항체를 대량생산하는 방법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이밖에 미생물공학 유전공학을 이용한 각종 항생물질, 심장병 예방에 쓰이는 TPA, AIDS에 저항력을 증가시켜주는 과립구 성장인자, 암을 억제해주는 항암제 등을 대량생산하는 것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식물세포 배양에 따른 식물 2차 대사물의 대량생산과 인공종자의 개발을 들 수 있다.
식물의 2차 대사물 가운데는 약리작용을 가지고 있는 것들과 염료나 향료로 쓰이는 경제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 많다. 따라서 이 분야에 생물공학을 이용하는 방법들에 대해 연구가 진행중이다.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각기 다른 종자로부터 유용한 형질의 유전자를 추출, 특정 작물에 부여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하면 교잡에 의한 유전자의 유실을 방지하면서 대량번식 시킬 수 있다.
각종 컴퓨터 제어공학 기술을 생물공정에 응용하는 연구도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 개념의 일종인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을 이용, 세포의 상태에 따라 자동적으로 생물반응기를 컨트롤해주는 제어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또 특정물질의 농도를 자동으로 측정·분석해주는 바이오 센서(bio sensor)의 개발도 중요한 분아랴 할 수 있다.
단백질공학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새로운 단백질을 합성하는 연구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또 생물환경공학을 응용한 공업폐수처리 역시 시급한 연구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유전생물공학의 능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미지의 학문세계이므로 학문적발전과 산업화를 위해 더욱더 많은 연구원과 기술자가 요구되고 있다. 창의력을 가진 후배들을 유전·생물공학의 세계로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