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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엽초'신세 면하게 돼'길엽초'신세 면하게 돼

홍도 생태계 학습탐사를 마치고

홍도 생태계 학습탐사


"문제는 분류키를 제대로 익히는 것이다. 그러면 식물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정:
이번 탐사는 선생님들에게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봅니다. 특히 날씨가 많이 도왔지요. 여름에는 허탕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지금까지 확인해 본 봐로는 이번 탐사를 통해 홍도에서 보고되지 않았던 15종을 새로 발견, 그런대로 큰 수확이 있었읍니다. 특히 조아제비 참비비추 붉은고로쇠 흰알며느리밥풀 등을 찾아낸 것은 보람으로 남습니다.

이순:실제적인 탐사 결과를 얻어내려면 교사들의 탐사보다 대학에 용역을 주는 것이 더 유리할 겁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새 식생 15종을 발견한 것 보다는 교사들이 재교육을 받았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김영:가능하다면 이런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또 인원도 확대해 시도교육위원회별로 한분씩 초청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전공분야가 아니지만 배운 게 많았어요. 식물이름도 20개 이상 암기하게 되었고, 이런 식의 교육이 이상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한기:좋은 현장학습 기회인데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무엇보다 교수님의 억척스러운 학문적 열의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립니다. 저는 현장학습을 통해 실제자연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프린트물이나 칠판의 판서를 통해 알려준 식물세계와 실제의 식물세계는 오차가 무척 컸습니다. 앞으로는 방학기간 등을 통해 자연에 관심있는 학생들과 함께 직접 탐사에 나설 계획입니다.

양성:홍도를 대충 볼 때는 서식하는 식물이 단조롭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자세히 보니 난대식물의 창고라 할만큼 수종이 풍부했어요. 건조하고 바람이 드센 이곳에서 용케도 살아 온 식물들이 대견하게 느껴졌어요.

유세:이곳에서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식물을 1백여종 정도 직접 보고 채집할 수 있었어요. 또'걸어다니는 식물도감'이라고 부를만한 이교수님의 설명으로 그 생리나 용도를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저는 홍도라는 특수한 환경과 식물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켜 보았어요. 섬의 방위, 산의 고도 등과 식생의 분포를 따져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희귀종을 본 것, 그 이름을 기억하고 생리를 파악한 것 외에도 소득은 또 있었습니다. 경사도를 측정하는 법, 나무의 높이를 재는 측고기 사용법, 직경을 알아내는 직경테이프 사용법, 산림의 군락과 우점종을 결정하는 방법등을 배웠지요.

박은:식생조사를 해보았다는 것, 그 자체가 성과예요. 또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난대성 식물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어요. 특히 환경변화가 심한 낙도에서 살아 남은 식물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길 수 있었어요.

홍도를 닮은 홍도 원추리

이정:실제로 식물은 환경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요. 홍도 원추리가 대표적인 예이지요. 보통 원추리는 꽃잎이 노란색이고 잎자루가 긴 반면 홍도 원추리는 꽃잎이 붉은 기를 띤 담황색이고 잎자루가 짧습니다. 색이 붉으스레하게 변한 이유는 홍도의 땅색깔을 닮은 때문이고, 자루가 짧은 까닭은 방풍할 데가 없어 환경변이를 일으켰다고 보아야 해요. 청개구리도 빨간통에 넣으면 빨갛게 되지 않아요?

장익:충북에는 바다가 없으므로 대신 산을 자주 답사했어요. 그런데 대륙의 식물상과 해양지역의 식물상이 크게 달랐습니다. 이곳 홍도의 식물은 잎이 두껍고 털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보여집니다. 환경 탓이겠지요.
일정에 여유가 없어 좀 더 자세히 보지 못해 아쉽고, 특히 흰 동백과 풍란을 찾지 못해 섭섭해요. 그리고 탐사범위도 식물에 국한하지 않고 육상동물 곤충 지질 조류 어류 등으로 넓혔다면 더 흥미로왔을 거에요.

박은:홍도 2구의 극상(climax)를 보면서, 인간이 자연파괴의 주범임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토록 척박한 환경에서도 50년 이상된 나무들로만 숲을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인간이 마구 산불을 지르고 남획하지만 않았다면 극상은 여기저기서 발견될 수 있었을텐데요.

한기:홍도 2구 마을에는 10년전까지만 해도 불과 3가구만이 살았다고 해요. 그래서 극상림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겠지요. 이곳에서 자생하는 소사나무가 분재용으로 인기가 있지 않아요. 산 정상에서 소사나무 군락을 보았는데, 철저히 지켜야 할 겁니다.

유옥:주변식물을 얼마든지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배웠어요. 홍도로 오는 도중 배멀미가 나서 무척 고통스러웠는데, 옆자리에 계신 이교수님이 초피나무 열매하나를 주시길래 먹었어요. 그뒤 불과 1분쯤 지나자 약효가 나타나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이정:약용식물은 참으로 많습니다. 식물의 생리나 기능을 오래 연구하다 보면 '이런 식물은 어디에 좋겠다'하는 감이 와요. 예컨대 쓴 소태는 건위제로 멀미에 즉효지요. 또 종기에는 참나리 인경을 찧어 바르면 효과가 있어요. 대체로 냄새가 강한 식물이 약효가 있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어요.
이번처럼 산을 탐사하는 경우, 가끔 뱀에 물리는 사람이 나오지요. 그런데 초피나무를 가지고 다니면 절대 뱀이 접근하지 않아요.
응급처치를 위한 식물들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다는 점만은 확실히 인식, 다급할 때만 사용해야 해요.

조태:다른 선생님들의 해박한 과학 지식에 놀랐어요. 앞으로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이교수님이 아저씨처럼 자세히 지도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분명히 대학다닐 때 실습을 통해 알았던 식물인데 오랫만에 보니까 잘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탐사중에 본 식물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며느리 이름이 붙은 세 식물이었어요. 며느리밥풀 며느리밑씻개 며느리 배꼽 등이었지요. 이 식물들을 보면서 우리의 옛 며느리들이 얼마나 설움을 받고 살았는지 새삼 느낄수 있었어요.

한기:그동안의 기록에 의하면 홍도에는 9종의 난초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대표적인 풍란을 비롯해 타래란 파리란 춘란 석곡란 새우란 금새우란 나나보리난초등입니다. 그런데 이번 탐사에서 잎이 없는 무엽란을 발견한 것은 큰 성과지요.
반면 풍란을 찾지 못한 것은 아쉬웠습니다.

양석:무엽란은 제가 발견했는데, 캐내자 금방 꽃이 시들어 버렸어요. 각종 식물들이 만발한 곳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면 관심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봐요. 관심이 있을 때는 보물이 보이고, 없을 때는 안보이니까요.
이번 탐사를 통해 평소에 구별이 어려웠던 몇몇 식물들을 식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예로 굴거리나무와 좀굴거리나무, 이나무와 예덕나무를 들 수 있지요. 잎이 작으면 좀굴거리, 선점이 있으면 이나무, 이런식이지요.

식물분류학에 뛰어들기로…

유옥:소풍갈 때 학생들이 물어오는 식물들을 제대로 대답해줄 수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다 커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공부를 새로 시작해 볼 생각이었는데, 식물분류학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이번에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된 식물이 있어요. 우선 초피나무와 산초나무를 식별할 수 있게 되었지요. 가시가 대상이면 초피, 호상이면 산초지요. 그리고 신갈 떡갈졸참 갈참나무를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요령은 간단합니다. 신갈과 떡갈나무는 잎자루가 짧고 졸참과 갈참나무는 잎자루가 길어요. 또 신갈은 털이 적고, 떡갈은 털이 많고, 졸참은 잎이 좁고 갈참은 잎이 넓어요. 잘 혼돈되던 억새갈대 솔새도 정리되었습니다. 잎의 중간(중맥)에 하얀 줄이 있고 털이 없으면 억새, 마디로 돼 있고 털이 많으면 솔새지요.

유세:저는 큰천남성과 넓은잎천남성 그리고 홍도천남성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어요. 넓은잎천남성은 잎이 하나 나와서 5개로 갈라지고, 큰천남성은 잎이 둘 나와서 각각 3개씩 갈라지지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 일행이 새로 발견한 가칭 홍도천남성은 잎이 둘 나와서 각각 5개씩으로 갈라지지 않았어요? 단순한 환경변이인지는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웬지 새로운 종(種)일 것이라는 기대가 가요.

장익:적어도 홍도자가 붙은 식물은 다 찾았으니 만족할만한 탐사였다고 평가해요. 홍도까치수영 홍도원추리 홍도서덜취는 모두 홍도를 닮았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홍도색이 완연해요. 그런데 홍도서덜취는 잎만으로는 참취와 구별하기가 퍽 어려웠어요. 꽃이 피어야 알 수 있어요. 흰색의 꽃이 피면 참취라고 보면 되지요.

조태:우리가 이번에 새로 발견한 미기록종 좀겨풀도 얼핏보면 강아지풀로 오인하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강아지풀인 줄 알고 그냥 무심코 지나쳤는데, 자세히 보니 뭔가 다르더라구요. 그래서 교수님께 보여 드렸어요. 금방 구별이 안되는 식물은 일단 채집했다가 나중에 도감도 보고 참고문헌도 찾아본 게 주효했어요.

이순:문제는 분류키를 제대로 익히는 것입니다. 분류키만 확보해 두면 식물은 생각보다 쉽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믿어요. 예를 들면 털모위와 곰취도 여간해서 식별하기 어려운 식물들입니다. 저도 이곳에서 군락을 이룰 정도로 풍부한 털모위를 처음에는 곰취로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곰취는 잎이 치아상이고, 털모위는 파상이라는 사실을 듣고 나서는 쉽게 구별이 되었어요.

양석:야외수업을 할 때 확실히 알지 못하는 식물에 대해서 물어오면 섣불리 대답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탐사하다 보니 비슷한 모양이어도 전혀 다른 식물인 경우가 많았어요. 현재의 교과서를 보면 국민학교는 활동중심, 중학교는 활동과 개념이 반반, 고등학교는 개념 일반화의 비중이 높지요. 즉 상급학교일수록 교과서에 나와있는 것을 직접 채집해서 가르키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러나 과학은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에요. 이번 탐사를 경험삼아 학교에 돌아가면,학교주변의 식물을 조사케하고 도감을 찾아보게 할 작정입니다.

양성:아무튼 이번 탐사를 통해서 모두들 귀중한 경험을 하신 것 같군요. 저는 홍도의 장미를 통해 배운 게 있었습니다. 사람이 잘 안다니는 곳에 핀 장미는 가시가 없고,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서 핀 장미는 가시가 많이 나 있었어요.

이정:잘 보셨습니다. 그게 바로 식물의 자기방어메커니즘에 의한 현상이에요. 그밖에도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별별 현상이 다 생겨요. 예를 들면 식탁위에 놓인 꽃에는 검은 반점이 많이 나타나지요. 그것은 스트레스에 쌓여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홍도의 호젓한 곳에서 자생하는 꽃에서는 그런 반점을 찾을 수 없어요.

또 꽃을 볼 때 너무 미적가치만을 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저는 장미꽃보다 호박꽃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왜냐하면 장미꽃은 '불임'이나 호박꽃은 '가임'식물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계통분류상으로 봐서도 호박꽃이 더 진화된 꽃이에요. 장미꽃의 진화도가 40이라면 호박꽃은 80이지요.

한기:이번 탐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 기쁩니다. 적어도 길엽초 신세는 면하게 되었거든요. 그동안 학생들이 식물이름을 물어오면, 제대로 답변해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길가에 핀 꽃, 길엽초라고 말해 위기를 모면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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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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