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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들소

인디언과 함께한 운명

아메리카의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서부영화는 언제 보아도 재미있다.

넓은 들판을 꽉 메우고 돌진하는 검은 들소떼들, 그 사이를 텁석부리 카우보이들이 말을 타고 달리며 쏘아대는 총탄 세례가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장면은 통쾌하고 박진감을 준다.

인디언과 백인의 혈투, 서부개척사에서 끊임없이 계속됐던 이 싸움의 발단은 어디에 있었을까?

물론 침입자인 백인과 원주민인 인디언과의 영토지배권 다툼이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는 그 땅에서 살고있는 들소를 지키려는 인디언들의 본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인디언들에게 있어서 들소는 의식주의 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생존자원이었다.

들소고기는 주식으로 쓰였고 가죽은 유일한 주거인 3각천막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옷가지 깔개 북따위도 모두 들소가죽으로 만들었으며 심지어는 뿔과 뼈까지도 모두가 생활필수품으로 쓰였다.

아메리카대륙의 들소는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만해도 원주민들의 수요와 적절한 균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백인들의 남획이 시작되면서부터 점차 그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들소
 

‘버팔로 빌’의 탄환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당시만 해도 들소의 숫자는 6천만 내지 1억마리에 가까왔다. 그런데 19세기 초에 이르러선 미시시피강 동쪽에 살고 있던 들소가 백인들의 총에 의해 대량 살상되었다. 마침내는 거의 전멸되다시피 했다.

1860년대 남북전쟁이 끝나고 대륙을 횡단하는 유니언 퍼시픽철도가 건설되면서 이 철도는 사냥꾼들에게 더 없이 좋은 교통수단이 됐다. 동시에 동부에서 서부로 몰려오는 이주민들과 인디언간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때 말을 잘 타는 총의 명수가 들소사냥의 전문가로 등장하는데, 저 유명한 ‘버팔로 빌’이다.

아메리카에선 들소를 버팔로(buffalo)라고 부른다. 버팔로란 원래 물소를 말하는 것이고 들소는 바이슨(bison)으로 칭해야 옳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자면 ‘바이슨 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버팔로 빌은 어떤 한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그 당시엔 수많은 유명무명의 총잡이들이 저마다 버팔로 빌이라고 뽐내고 다녔는데 그들은 모두가 명사수들이었다. 그들은 들소들이 총소리에 놀라 도망가지 않고 또 사수인 자신들에게 반격해오지 않도록하는 비결을 갖고 있었다.
먼저 무리를 이끄는 리더인 보스와 다음 강자를 찾아낸 뒤 보스부터 차례로 총을 쏘아 쓰러뜨리면 나머지 무리들은 옆에서 동료가 총에 맞아 쓰러져도 전혀 도망갈 생각을 않는다.

왜냐하면 들소들은 지휘통수계통을 철저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보스의 명령없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들소 대군
 

아메리카 들소
 

들소는 북미대륙의 가장 큰 포유동물로 우제류(偶蹄類) 소과(科)동물로 학명은 Bison bison이다.

아메리카들소는 미시시피강에서 로키산맥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이 그들의 서식처이며 왕국이다. 일부는 캐나다의 삼림지대에서도 살고 있는데 이것을 특별히 캐나다 들소라고 부른다.

15세기초 아메리카를 탐험한 스페인 사람은 대평원을 횡단하면서 발견한 들소떼를 두고 “커다란 소들이 마치 ”물고기떼와 같이 군집해 있어 그 장대함은 어디에도 비길 데 없을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그 수는 대략 1억 마리에 가까운 것 같다고 추측했다.

19세기에도 들소들의 대군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대군을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동하기에 앞서 소군집이 모여 대군을 이룰때만 가능한 것이다.

들소는 눈이 어지간히 쌓여도 눈밑의 풀을 찾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눈보라가 여러 날 계속되고 추운 날씨가 겹치면 굶주림 때문에 죽는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을에는 남으로 서서히 이동,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에는 북으로 되돌아오는 무리도 있다.

여름철에 가뭄이 들어 물이 마르면 갈증으로 죽기도 한다. 새끼들과 늙은 들소들은 때때로 늑대나 곰에게 잡혀 먹히기도 한다. 수효는 17세기 중반부터 차츰 격감되는 현상이 나타나다 19세기 중엽에는 수천만에서 수백만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절멸의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동서횡단 유니언퍼시픽철도가 개통된 후부터 오락스포츠와 발달된 총기류로 인하여 절멸 위기에 도달하게 되었다. 학자들은 들소가 격감된 원인중의 하나로 들소의 우직스러운 천성을 지적한다. 들소는 동료가 사살되어도 도망가지 않고 부상을 당해도 반격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수컷은 암컷보다 덩치가 더 크다. 큰 수컷의 몸 높이가 1.9m, 몸길이 2.7m, 몸무게 1t이 초과되니 우직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리와 목은 길고 곱슬곱슬한 털이 있고 그 색깔은 보통 암갈색 또는 흑색이다. 임신기간은 9개월 반이며 1년에 1마리의 새끼를 출산한다. 수명은 15년 정도이나 동물원에서의 최고 기록은 20년이 넘게 생존했던 예가 있다.

기록에 따르면 아메리카에선 1870년부터 1875년 사이에 5백37만3천7백30 마리가 사살됐다. 그뒤 1889년 조사에 의하면 야생으로 남은 것은 겨우 1백90마리에 불과했고 사육중인 놈이 4백56마리였다. 또 캐나다 들소는 5백56마리가 야생으로 확인되었다.
 

아메리카 들소
 

병주고 약주고

이렇게 들소가 점차 수가 줄어들자 이를 보존하려는 노력도 시작되었다. 1873년 ‘펜드 드 오릴’족 인디언중 한 사나이가 두쌍의 들소를 생포해 길렀다. 두마리는 1884년에 13마리가 됐다. 이들은 백인농장에 팔렸는데 그뒤 3백마리로 불어났다.

또 1902년 ‘찰스 존스’대령은 그의 장기인 올가미던지기로 들소를 사로잡아 엘로우 스톤국립공원에 보내 보호토록 하였다.

1908년에는 전(全) 북아메리카에 2천47마리, 1933년에는 2만1천4백36마리로 늘었다. 1951년에는 미국 본토에 약 8천9백마리, 캐나다에 약 1만4천마리, 알래스카에 2만여마리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물원에서 2~3마리를 전시해 왔다. 4년전부터 서울대공원에서는 매년 1~2마리의 새끼가 탄생, 그 수가 점차 증가되고 있는 상태다. 이제는 지방동물원에 분양 또는 교환하고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도 들소의 번식이 성공한 것이다.

결국 오늘날 아메리카 들소는 완전히 전멸이 위기를 벗어나 살아 남게 되었다. 그 수는 이미 3만을 넘고 해가 갈수록 불어서 지나치게 초과하게 되면 기본숫자만 남기고 조절해야 할 형편이다.

인간에 의하여 살륙되었고 인간에 의해서 구출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엘로우 스톤에 남아 있는 들소들은 과거의 들소가 아니다. 이미 야생의 시절은 사라지고 그 형태만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즉 방목하는 소처럼 길들여져 버렸다는 것이다. 전멸에서 구출된 것은 다행한 일이나 야성을 잃은 것은 야생동물계의 비극의 하나임에 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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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성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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