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따는 식의 과학기술정책을 지양, 민주적인 정책결정과정이 요청된다.
과학기술정책의 과학화가 시급
현원복 88년의 새해가 이제 막 시작되려는 순간입니다. 이 시점은 새로운 한해의 출발점이기도 하고, 대통령선거를 치른 후 맞는 새시대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비록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새로 들어설 정부는 제6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얘기고 보면, 모든 분야에서 종전과는 다른 즉 전환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고 하겠읍니다.
그렇다면 우리 과학기술계 역시 전환기적인 제반환경에서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처한 위치를 살펴보고, 바람직한 발전을 위한 지향점을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과거의 반성이랄까, 문제점들의 극복을 위한 방안도 모색돼야 하리라고 봅니다.
먼저 88년의 국내외 과학기술계에서 벌어질 주요사건들을 예상해본다면 국내적으로 최대의 이벤트는 대서양에 해저케이블이 개통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유럽과 미국의 접촉이 더욱 긴밀해진 것은 당연하지요.
이같은 통신의 혁명 못지 않게 교통분야에서도 획기적인 사건이 예상되는데, 바로 유럽 4개국이 공동개발하는 에어버스입니다. A320이 88년 중반경 출하되면 민항기로서는 완전히 전자시스팀으로 움직이는 첫 비행체가 될 것입니다.
작년에는 초전도물질의 개발경쟁이 치열했는데 올해 역시 신소재 개발이 가속화될 듯하고, 컴퓨터 분야에서도 어느 해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됩니다.
생명공학분야에서는 지난 11월13일인가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TPA라는 심장병약의 판매허가가 나왔는데, 이는 생명공학 기술이 만들어낸 최대의 약품으로 그 시장규모가 10억달러에 달할 전망입니다. 이렇게 되면 생명공학 연구자들의 사기도 올라가고 본격적인 호황기가 도래하겠지요.
국내적으로 보면 기본적인 과학기술정책은 큰 변동이 없을 듯합니다. 투자라든가 인력양성도 86년에 나온 '2천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장기계획'에 제시된 내용과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초전도물질 개발이 국내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질 전망인데요. 정부에서도 8억원인가를 지원한다고 합니다만 연간 1, 2억달러를 보조한다는 미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셈입니다. 광케이블의 경우도 서울서 부산까지 그리고 해저로 제주도까지 까는 작업이 시작돼 2000년까지 계속될 예정이고, 컴퓨터쪽도 IBM에서 새로 내놓은 PS/2가 국내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예상됩니다.
김영걸 저는 과학자의 한사람으로서 새정부가 정치적인 측면에서만 권위주의를 지양해서 합리적인 태도변화를 모색할 게 아니라 과학기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잘못을 고쳐 합리적인 정책추진을 해주길 바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과학정책, 아니 그보다는 기술정책을 세우는데 있어서 얼마나 합리성이 존중됐는가를 생각해보면 회의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적어도 과학기술정책만큼은 과학적·합리적으로 입안돼야겠다는 바람입니다.
김용준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정책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따는 식이에요. 사이언스와 테크닉 즉, 과학과 기술을 혼동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당장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금메달따는 식의 과학기술정책을 펴다 보니 이 나라에 과학이라는 것이 없어졌어요. KBS에서 '노벨상에 도전한다'는 프로그램을 여러번 방영했는데 마찬가지 발상입니다. TV를 보면 우리도 금방 노벨상을 탈 것같지요. 그러나 중요한 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기업이 큰 몫을 맡아주리라 봅니다. 아직은 선진국의 흉내내는 단계에 불과하지만 기업마다 연구소를 차리고 사람도 뽑고 또 돈도 있고 하니까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학위과정에 있는 제자들에게도 이제는 기업으로 가라, 기업에서 의욕을 충족시켜줄 것이다라고 권하고 있읍니다.
김영걸 과학정책과 관련해서 우리나라에는 과학정책을 폭넓게 다룰 수 있는 제네럴리스트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가 경제계에 공헌하는 것에 비교해 과학자가 과학계에 공헌하는 비중은 훨씬 낮습니다. 과학자 10여명 모아 놓았다고 해서 거기서 과학정책이 나오지를 않아요.
김용선 기업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저는 과학과 기술, 산업과 제품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나라에는 제품이나 상품이 있을 뿐이지 산업도 기술도 없다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저 상품이 산업이고, 기술이고, 과학이 돼버렸어요.
그런데 쏟아져나오는 제품이라는 것도 대개는 남의 것을 카피하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컵이 있다면, 이 컵의 손잡이 강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직경은 몇cm가 좋은가 하는 것은 모르는채 남의 것을 모방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또 제품을 만들면서도 다음 제품은 무얼 만들것인지를 생각못하고 일본에서 어떤 제품이 나올지 눈치만 보는 식입니다. 하물며 다음에는 어떤 기술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관해서는 제로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학연구의 풍토개선도 중요
김용준 과학연구의 풍토에도 획기적인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들어보지요. 일본 구주대학이 1911년에 생겼읍니다.
얼마전에 그곳에 갔다가 한 농과대학교수에게 교수진이 모두 몇명이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교수가 1백5명, 조교수가 1백5명에 조수가 1백50여명으로 모두 3백60여명이나 된다는 것이었어요. 1년에 입학하는 학생은 3백명이 못된다는 것이고요.
또 연구비를 물어봤더니 자기는 문교부에서 내려오는 것하고 기타 마련할 수 있는 것을 합쳐 1년에 1천만엔 정도는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신이 우수해서 특별히 많이 배당받는 게 아닌가하고 물었더니 모든 교수들이 그렇다는 겁니다. 더우기 그중에서 4, 5백만엔은 무슨 보고서같은 것을 내지 않고 마음대로 연구할 수 있는 자유로운 연구비라는 얘기였어요. 일본은 명치유신 이래 이런식으로 해온 것이니 당연히 과학기술이 축적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경우는 이와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제가 제자들도 키울겸 연구실을 운영하려고 하니까 최소한 1년에 3백만원 내지 5백만원은 필요해요. 실험기구는 바라지도 않고 다만 화공약품같은 것을 사서 실험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돈을 구할 길이 없어요. 정년도 얼마 남지 않은 처지에 젊은사람들처럼 프로젝트 따겠다고 나서기도 그렇고 말입니다. 이런 실정이고 보니까 우리대학의 연구수준이 일본 지방의 작은 대학에도 뒤떨어져 있어요.
현원복 연구비 말씀을 하셨읍니다만, 과학기술처 같은데서 경제기획원에 예산을 신청하면, 이걸 하면 무엇이 나오느냐고 한다는 겁니다. 예산의 용도가 사람을 키우겠다는 식이어서는 거절당하기 십상이고, 반짝 하고 효과를 볼 수 있는 물건을 만든다고 해야 쉽게 지원받는 풍토라는 겁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예산배정 내지는 자원배분이 앞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읍니다.
김용선 기업에서도 어떤 분야에 얼만큼의 자원을 배정할 것이냐, 어느 곳을 특히 중점배정해야 하는가, 또 어떤 파트에서 어떤 것을 연구해야 되는가 등등 개념을 잡아주고,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고, 필요한 연구를 지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박사는 많지만 모두가 스페셜리스트일 뿐이고 폭넓은 제너럴리스트가 없기 때문이죠.
김영걸 지금 국가적으로나 기업으로나 한정된 자원의 배분이 큰 문제입니다. 우선 아주 기본적으로 용도에 관계없이 자연현상이나 진리를 탐구하는데서부터 당장의 제품개발을 위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돈과 인력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 하는 넓은 의미의 정치, 즉 과학의 정치가 시급한 것이에요.
과거를 보면 무슨 연구소를 세우자, 무슨 일을 하자 했을 때 합리적으로 따져서 한 게 아니라 힘센 사람의 말이 먹혀들어가는 풍토였어요. 누가 미국서 공부해가지고 와서 청와대에 들어가 아이디어 하나 내면 곧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그러면 금방 영웅시돼 무엇을 한다고 떠드는 식의 일이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될 것이에요. 앞으로 새정부는 적어도 합리적인 틀을 짜놓고 과학기술을 진흥시킬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제 많은 압력단체가 생겨 주장이 백출할텐데 이를 판단할 기준을 정부가 갖고 있어야 할 겁니다.
이런 문제는 외국에도 자료가 많습니다. 우리나라같은 발전단계에서 기초분야에는 얼마를 썼고, 응용분야에는 얼마를 배분하는 게 합리적인지 조사해보면 다 알게 됩니다. 제가 전공하고 있는 화공(化工)의 경우를 예로 들어봐도 그렇습니다. 어떤 물건을 만들기 위해 실험실에서 1백가지의 실험을 한다면, 10가지 정도가 계속 더 실험을 해볼만하다는 결론이 납니다. 그래서 상업적인 검토도 하다 보면 그중 한가지가 시제품을 만드는 단계까지 남게 됩니다. 1백대10대 1의 비율이에요. 따라서 여기에 드는 돈도 이 비율에 따라 배분하면 합리적인 것이지요.
건전한 적자사업부서가 필요하다
김용선 현대의 특징은 변화가 굉장히 빠르다는 것으로 특징지워지지 않습니까. 세계적으로도 통신이니 교통이니 신소재 등등 빠른 변화가 눈에 보이고 있지요. 특히 우리나라는 남의 나라가 3, 4백년에 걸쳐 경험한 변화를 3, 4십년에 압축해서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과학과 기술과 산업이 막 섞여버리는 현상이 생긴 것이겠지요.
기업의 입장에서 이같은 변화양상을 주목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즉, 건전한 적자사업부서가 없는 회사는 장래성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날의 효율이 높다는 것은 내일을 위해서는 문제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당장은 적자를 보더라도 변화의 추세에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김용준 작년인가, 재작년에 유기화학관계로 일본에서 한·일 양국의 과학자들이 모인 적이 있었어요. 그때 산토리회사의 위스키공장을 시찰할 기회가 있었읍니다. 그런데 위스키 만드는 공장에 연구소가 4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기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순수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소였어요. 이 연구소에는 콜럼비아대학의 유명한 일본인교수가 소장으로 와있는 거에요.
산토리의 연구소에서 또 한가지 놀란 것은 유기화학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NMR(핵자기공명장치)이 2백20㎒짜리만 4개가 된다는 사실이었읍니다. 제가 알기로는 포항공대에서 도입한 3백㎒짜리 말고는 대한민국 전체에 2개인가 밖에 없거든요. 고려대학에도 10년전에 들여온 60㎒짜리 1대밖에 없어요. 일본의 일개 회사 연구소보다도 우리나라가 투자에 있어 뒤떨어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투자얘기가 나왔읍니다만, 85년도 과학기술분야의 연구개발투자 1조1천5백52억원으로 나와있어요.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자본적 지출이 50%를 차지하고 있어요. 설비나 공장짓는데 반이상 썼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인건비로 30.7%, 기타경상비가 24.5%로 돼있어요.
김영걸 과학기술투자가 GNP의 몇%라고 하지만 그 내용이 분명치 않아요. 그 안에 땅값 건물값이 얼마나 들어있는건지 국민들에게 밝혀야 합니다. 사실 GNP의 2%를 과학기술에 투자한다면 선진국수준으로 육박하고 있단 말에요.
김용선 앞으로 사회풍토가 바뀐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제안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무언가 하니 그동안 과학기술과 관련한 과잉선전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의 패턴이 이른바 성공사례발표입니다. 사실 저희들처럼 산업·기술계에서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실패사례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성공사례를 떠들어댈 게 아니라 실패사례발표의 기회를 어떤 형태로든 만들자는 것입니다.
실패사례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우리도 이제는 실패사례를 발표할만한 연령에 도달해가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김영걸 제가 미국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어요.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학술잡지에 실리는 글들은 모두가 실수함이 없이 정확히 결론에까지 이른 것처럼 씌여 있는데 실제로는 과정상에서 여러차례 오류가 있었지만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하다 보면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교수는 오히려 연구과정중에 잘못했던 것을 발표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했어요. 방금 김부사장께서 실패사례를 중시하자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원복 과학의 분야가 자꾸만 넓어지고 있읍니다. 이제는 돈만 가지고도 안돼고 연구할 사람이 더욱 필요합니다. 최근 재미과학자협회에 소속된 한국과학자들의 전공분야를 뒤져보니까 무려 3백여종류나 돼요. 따라서 연구인력의 저변을 다지는게 급선무입니다.
김용선 기업이 제품을 만들려면 돈과 사람을 인푸트(in put)해야 합니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기술이 사람속에 포함됩니다만, 우리는 그렇지가 못해 기술을 따로 추가해야 하는 실정이에요. 전에는 이 기술을 돈주고 사왔는데 지금은 돈주고도 사오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가 조금 발전했다고 해서 선진국 스스로 기술제공을 꺼려하는 것이고 둘째는 사실상 기술을 이전해도 상관없는데 우리가 너무 떠들어대니까 줬다가는 큰일나겠다고 겁을 먹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세째로는 이제 기술이 상품으로 떠다니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과거에는 과학에서 기술 산업으로 넘어가는데 몇백년, 몇십년이 걸렸기 때문에 그 동안에 기술이 상품화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요즘엔 기술이 있으면 당장 자기자신이 제품만들어 팔아먹지 남에게 넘길 여유가 없거든요.
그렇다면 기술을 자체개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일 당장 시장에 나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기술을 개발할 별도의 부서가 있어가지고 연구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한 실정입니다.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다 보니 진정한 기술개발이 이루어질 수 없지요.
제품을 만드는데는 돈과 사람 말고도 디렉션이 들어가야 됩니다. 즉, 무엇을 할 것인가, 무슨 제품을 개발할 것인가, 무슨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설정을 해야 하는데, 아까 얘기나온 것처럼 우리에게는 제너럴리스트가 없고 보니 제대로 되고 있지를 못합니다.
대학보다 연구소에 인력이 몰려야
김용준 연구인력과 관련해 외국박사선호풍토도 시급히 고쳐져야 합니다. 현재 정부가 수립한 과학기술인력수급계획을 보면 질적수준을 무시하더라도 공급이 수요에 못미치고 있어요. 그런데 좀 우수하다는 사람이면 모두가 외국으로 가버린단 말예요. 여기에 남아서 무엇인가를 이룩해야 그게 밑거름이 돼서 다름 사람이 계속 뒤를 이을텐데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물리학과나 화학과같은 곳에서는 서울대 대학원출신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에요. 그리고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한 사람은 학문의 밑뿌리는 그곳에다가 떨어뜨려 놓고 한국에는 꽃만 따가지고 오는 격이에요. 초가삼간집에 꽃꽂아놓고는 방이 환하다고 좋아하는 것이나 다름없읍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기업에도 문제가 있어요. 외국에서 학위를 따온 사람과 국내에서 학위한 사람의 대접이 다르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인사고과에 반영해 몇등급의 차이를 둔다는 말도 있는 정도니까 외국엘 안나가려 하겠읍니까.
일본은 우리와 전혀 달라요. 하버드나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와도 일본 국내대학의 학위가 없으면 대학에 발붙이기가 어려워요. 지금은 조금 완화됐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폐쇄적이에요. 어쨌든 이런 풍토가 오늘날의 결과를 가져온 저력이 된 것입니다.
김영걸 저희 포항공대에서 교수들을 초빙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인데요.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예외없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원하고 있어요. 서울의 대학이 아니라면 서울에 있는 국립연구소가 그 다음 순서입니다. 그래도 안될 것 같으면 지방의 괜찮은 대학이고 마지막의 지방의 2, 3류 대학이에요.
제가 아는 사람에게 포항제철의 연구소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끝내 사양하고는 서울의 작은 모사립대로 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대학에 가면 강의시간도 많고 연구여건이 안좋으니 연구소가 좋지 않겠느냐, 연구자로서의 생명이 끊길 수가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도 듣지를 않아요. 이런 풍토이고 보니 해외의 우수한 과학자들이 국내에 들어오려고 해도 대학이 이미 포화상태가 돼 못 오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은 유교적인 풍토에서 선생이 존경받는다는 측면도 있읍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연구자라는 직종이 아직 한 사이클도 돌지 않았기 때문인 측면도 있읍니다. 연구소에서 제대로 연구하다가 은퇴한 사람이 아직 나오지 않았거든요. 연구자의 역할모델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연구자를 보는 눈에도 문제가 있읍니다. 사소한 예를 들어보지요. KIST와 과학원이 합쳐져서 KAIST가 되지 않았읍니까. 그런데 두 기관을 합쳐 놓으니까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에요. 교수들은 정교수건 부교수건 조교수건 모두 교수로 불러주는데 비해 연구원은 책임연구원 선임연구원 등 단계가 있음에도 모두 그냥 연구원으로 부른다는 겁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연구자에 대해 존경심이랄까, 대우해주는 위치가 아직은 기대에 미흡하다는 얘깁니다. 제 생각으로는 앞으로 대학에 몸담는 과학자보다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자가 많아져야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봅니다.
현원복 지방대학에도 우수한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서울과 지방대학간의 평준화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읍니다. 그 증거도 나타나고 있어요. 한 예로 연구비를 지원받아 쓴 연구논문을 보면 서울과 지방대학의 수준이 비슷해요. 그래서 전에는 서울대와 KAIST에서 연구비의 대부분을 타갔는데, 요즘은 두곳에서 반도 채 안됩니다.
과학자 스스로 역사의식을 갖자
김용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전환기를 맞는데는 무엇보다도 매스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현재 신문의 사설이나 논설에 과학문제를 쓸 집필자가 없다는 사실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 아사히신문의 과학논설위원은 세계적 수준의 글을 쓰고 있어요. 언론이 과학의 여러 문제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줄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가 못한 실정입니다.
신문사내에 과학전문가가 없다면 비상임으로라도 외부의 전문가를 활용해야 할 것이에요. 아뭏든 우리나라의 언론 자체가 과학의 방향에 대한 연구를 전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아사히신문에서 내는 '아사히과학'이라는 잡지가 수십년간 적자를 내면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발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용선 세계에서 첫번째로 혹은 몇번째로 무엇을 개발했다는 식의 매스컴보도에도 문제가 많아요. 시험관에서 무슨 물질을 하나 뽑아낸 것을 가지고는 세계최초의 성공사례 운운 하니까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과학이 굉장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현원복 과학잡지도 큰몫을 해줘야 할텐데 적자를 면키 어려운 실정입니다. 제가 아는 모과학잡지의 발행인은 그동안 과학잡지 만드느라 빚을 많이 져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읍니다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학기술이 정말로 전환기에 들어서려면 언론에서의 과학중시, 과학전문잡지의 활성화 등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김용준 마지막으로 저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과학자 자신들의 역사의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심하게 말하면 그동안 과학기술자들은 스스로를 제품화시켜 만족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는데, 한 역사의식을 지닌 인간으로서 창조력을 발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는 '과학과 인간'이니 '기술과 사회' '환경과 인간' 같은 류의 강좌가 무려 2천개 코스나 개설돼 있다고 해요. 과연 우리는 얼마나 '과학론' '기술론'을 생각해보고 있읍니까. 기계가 되지 말라고 해도 기계처럼 돼버리는 게 현재 우리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실정입니다. 새해의, 새로운 시대는 과학계의 자기변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