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선거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화려한 정치쇼의 뒷마당에서 컴퓨터는 열심히 필승전략을 토해놓는다.
선거철이다.
장안에 선거열기가 그득하다. 16년만에 대통령을 내손으로 뽑겠다는 국민들의 열망은 일상사의 관심을 뒤로한채 모이면 선거이야기다. 그만큼 의견도 분분하다. 후보측 입장에서 보면 이 많은 여론을 정확히 수렴, 자신의 정책에 반영하고 이를 토대로 표갈이를 해야한다.
선거는 본디 '정보(Imformation)'와 이웃사촌이다. 여론수렴이 그렇고 유권자의 면면이 일련의 정보로서 추상화돼 나타난다. 나이 직업 성별 소득 등으로 분류되는 유권자의 성향은 어느 후보가 몇%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된다. 고도 산업사회를 지향, 2천5백만의 유권자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도 이 가능성은 점차 과학적 근거를 갖는 정확한(?) 예측의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고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선거과정 자체는 일종의 통계처리이다. 통계라면 컴퓨터가 '똑소리'나게 처리해준다는 것은 삼척동자가 다아는 사실. 그렇지만 우리의 투개표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TV화면에 비치는 개표소는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투표함에서 책상 위에 쏟아부은 투표용지, 이를 일일히 셈하여 1백장 단위로 묶고 그것을 칠판 위에 적는 모습. 이 결과를 중앙개표소에 전화로 통보하는 일련의 과정은 조금은 원시적이랄 수 있다.
컴퓨터가 창출한 새로운 선거풍속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미국정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컴퓨터서비스 소장인 '호펠러'의 말이다. 여기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물론 컴퓨터를 지칭한다.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RNC시스팀은 밤낮없이 자료를 쏟아놓았다.
RNC컴퓨터시스팀은 정적(政敵)의 견해에 대해 다각도의 정보도 걸러낼 수 있다. 이 컴퓨터는 민주당의 주요 지도자들에 관한 수만건 정도의 성명 연설 신문기사들을 간직하고 있다. 공화당전략가들은 특정 문제, 예를들어 '30대 주부의 취업문제'에 관해 민주당 지도자들이 과거에 어떤 견해를 밝혔는가가 컴퓨터앞에서 몇개의 '키워드'(Keyword)를 두드리면 수초내에 인쇄돼나온다.
공화당의 RNC시스팀은 지난 10년간의 선거결과를 통계처리, 누가 어떻게 투표했는가에 대한 광범위한 인구통계학적 데이타베이스도 갖추고 있다.
공화당은 고속컴퓨터를 이용, 정치정보시스팀(PINS)이라 불리는 여론조사시스팀을 개발했는데, 이것은 전국 유권자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1일 베이스로 추적할 수 있다.
예를들어 레이건대통령과 먼데일후보간의 첫번째 토론이 있은 직후 PINS에서는 먼데일후보가 18~30세 연령의 유권자에게 커다란 지지를 얻었다고 밝혔다. 며칠 뒤 레이건은 조지아 일리노이 등 여러주의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젊은 청중을 대상으로 중점적으로 선거운동을 폈다.
일본에서는 '필승 선거참모'라는 선거용 여론 및 조직관리시스팀이 등장, 중의원선거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2·12총선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선거에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인 85년 2·12총선. 물론 이보다 4년 전인 11대 국회의원 선고때도 일부 의원이 개인용컴퓨터를 사무실에 설치, 선거도구로서 활용하기도 했지만 사무처리용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2·12총선은 컴퓨터가 선거참모로서 본격적인 모습을 나타낸 등용문이자, 선거결과 보도 처리에 일부분이나마 컴퓨터활용을 시도한 첫 계기였다.
금성사는 TV방송국에서 당선자 현황을 신속하게 집계, 시청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선거관리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각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입력된 데이타가 중앙에 온라인으로 신속하게 전달돼 개득표현황이 리얼타임으로 체크된다. 즉 중앙 TV방송국에서는 시간대별 득표현황이 자동으로 집계되고, 이를 통해 당선 기능자가 신속하게 판명 분류된다.
선거구별 당선 가능자가 결정되면 정당별 당선자수가 나타나고 시·도별 정당 득표수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전에 입후보자의 직업 연령 학력경력등이 입력돼있어 당선자가 결정되면 당선자의 직업별 연령대별 학력별 분포가 부수적으로 나타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신속하게 개표현황 및 당선가능자를 시청자에게 알릴 수 있고, 개표가 종료된 후에도 당선자의 정당별 학력별 연령별 분포 등이 자동적으로 체크된다는 것. 이와함께 전국 또는 시도별 정당득표수도 다른 작업없이 얻을 수 있어 총선결과 분석이 용이해진다.
'선거와 컴퓨터'의 하일라이트는 선거 관리적인 측면보다는 직접 선거에 활용, 효율적인 득표활동에 기여할 수 있느냐는 것. 즉 선거참모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느냐는 측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컴퓨터 선거참모가 중앙당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활용되기 보다는 각 지구당별로 지역구에서 활약을 하는 추세이다. 즉 대통령선거보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실제로 16년만의 대통령선거가 직선으로 확정된것도 불과 몇개월 안되기 때문에 컴퓨터가 대통령선거에 활용되기는 무리. 어느 분야에서든지 컴퓨터가 본연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업무분석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에 따른 소프트웨어도 개발돼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와 반면에 국회의원선거에서는 2·12총선을 전후로 선거용 소프트웨어가 다수 개발돼 사용된 바 있다.
선거용 소프트웨어는 유권자관리, 당원관리(지구당관리), 여론조사 및 통계처리용으로 나뉜다.
현재까지 개발된 소프트웨어로는 유니온시스템이 개발한 유권자 및 당원관리용 소프트웨어, 한국전산이 개발한 지구당용 소프트웨어, 한국스카다시스템이 개발한 선거여론 및 통계처리용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이다. 또한 일부 국회의원들은 자체내에서 자신의 지역구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 활용하면서 동료 의원들에게 약간씩 변형시켜서 보급하는 사람도 있다. M당의 J의원이 대표적 케이스.
유권자관리용 소프트웨어는 선거권자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생년월일) 직업 학력 원적 소속단체 등 유권자 인적사항이 컴퓨터에 입력돼 연령별 직업별 등으로 분류되고 필요할 때마다 자료로 활용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손쉽게 활용될 수 있는 것은 생일카드 보내기. 예를들어 컴퓨터가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유권자 중 12월1일이 생일인 사람 명단이 몇번의 키보드만 두둘기면 일목요연하게 나온다.
생일카드 보내기의 회비
우리나라에서도 국회의원들이 가장 먼저 활용한 것은 바로 생일카드보내기였다. 그러나 유권자의 자료를 쉽게 얻을수 없을뿐 아니라 음력 양력 생일이 구별되지 않기때문에 곤란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느 국회의원은 음력 생일을 양력생일로 착각 생일카드를 보냈다가 유권자로부터 항의를 받은 후 이 작업을 중단한 사례도 있다.
유권자관리는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가 개발됐다 하더라도 유권자의 정확한 데이타를 얻을 수 없으면 무용지물. 여기에는 생면부지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신상이 노출됐다는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개인적인 프라이버시 문제까지 겹치기 때문에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게 직접 사용해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유권자의 인적사항 데이타를 얻는데 여당측 의원들이 좀더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어 효율적 활용에 난점이 많다.
그러나 데이타의 공정한 공개와 정확한 입력이 가능하다면 유권자관리에서 컴퓨터의 역할은 매우 이상적이다. 자신의 지역에서 특정문제에 대한 강의나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할 때 계층별 연령별 직업별 학력별 초청대상을 고르는 작업도 훨씬 합리적으로 할 수 있을뿐 아니라, 유권자의 요구사항을 파악하는 설문조사를 하는데도 보다 효율적이다. 정치 팜플렛 하나 보낼 때도 일괄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특정집단의 기호에 맞는 것을 보낼 수 있다.
유권자관리가 데이타를 모으는 어려움이 있어 고전하고 있는 데 비해 당원관리 및 지구당관리는 보다 정확히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지구당관리 소프트웨어는 기본적으로 당원들의 모든 인적사항이 입력된다. 기본적인 것 이외에도 당원들의 경력 종교 가족사항 등도 입력돼 당원의 생일 결혼기념일 가족생일 등에도 축하카드를 보내는 등 당원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한다. 또한 당원들의 학력별 계층별 직업별 연령별 성향을 고려한 당원 교육일정을 잡아 보다 효율적으로 당원관리를 할 수 있다.
여기에 지구당 위원장 및 사무장의 스케줄도 입력하고 민원사항이 있을 경우 처리결과를 신속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또한 지구당에서 중앙당으로 보내는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해주는 기능도 갖고 있다. 컴퓨터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당원관리에서만은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전략 수립을 위한 도구
선거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하고 이를 통계처리해주는 소프트웨어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정확히 분석된다면 유권자들의 성향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 요즘 각 매스컴에서 전화 설문 등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 여론조사를 해 발표하고는 있지만 아직 우리의 정치사회문화가 정확히 여론을 추출해내기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예를들어 TV방송의 경우 어떤 사건이 났을 경우, 특히 이것이 정치적 의미를 가질 때는 천편일률적인 편집을 함으로써 일방적으로 여론을 조작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여론에 불신감을 갖는다.
컴퓨터를 통해 여론조사를 한다는 의미는 여론을 모으는 방법을 컴퓨터를 통해 한다는 측면보다는 조사결과를 통해 유권자의 성향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선거전략 수립, 득표예측을 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아뭏든 여론조사 및 통계처리용 소프트웨어는 여론조사 사항을 바탕으로 지역별 학력별 성별지지도를 파악, 알기 쉽게 그래프처리해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여론조사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정치적 이유로 제한당하지 않는다면 미국이나 유럽 일본처럼 전국 유권자의 관심을 1주일 내지 1일 베이스로 추적해 선거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여론조사에 컴퓨터를 활용한 대표적인 케이스는 무소속의 L의원과 M당의 J의원. L의원은 민주당에 소속 당시(86년)'개헌 등 민주화 실현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설문지 작성에서부터 인쇄 분석 통계 등에 이르기까지 컴퓨터를 이용, 엄청난 시간 인원을 절약했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표본추출한 이 조사에는 대통령 직선제에 관한 찬반여부 및 지방자치제 등에 관한 문제가 포함돼 있었다. L의원은 컴퓨터영업을 한 경험이 있고 컴퓨터 관련 학생잡지를 발간해본 사람으로 누구보다 컴퓨터를 잘 이해하고 있어, 컴퓨터 여론조사를 실시하는데 큰 애로는 없었다고 밝혔다.
M당의 J의원은 수차례 지역구 주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조사결과를 중앙당에 보고한 바 있다. 또한 지역주민의 정치사회적 관심과 지역사회의 문제점 등을 분석, 자체 선거전략 수립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 이밖에 새로 지역구를 맡은 M당의 J의원 등도 자체 전산 전문인력을 고용 설문조사를 통해 지역구민의 기초자료 및 성향분석을 하고 자신의 의정활동 보고서를 지역구민에게 보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설문지 우송 분석 결과처리 등에 많은 인원이 동원돼야 하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 절차에 컴퓨터를 활용하면 시간과 인원이 절약될 뿐 아니라 분석결과도 수작업과는 달리 정확성을 기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자료에서도 의도하는 바대로 여러가지 분석도 가능해 컴퓨터의 활용은 필수적이다.
충직한 보좌관
컴퓨터의 고유 기능은 역시 많은 자료를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자료들 중에 필요한 것을 수초내로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컴퓨터(대부분 16비트PC급)를 사용하고 있는 10여명의 국회의원들은 워드프로세서 기능을 포함한 컴퓨터의 기본 기능을 어느 정도 자신의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보통 수십만의 지역구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기억해야 될 사항도 많고 처리해야할 일도 많다. 개인 일정도 합리적으로 잡지 않으면 공인(公人)으로서 자격상실. 이러한 복잡한 업무를 컴퓨터에 수록, 일정을 관리해 나간다면 보다 합리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오늘 자신의 할 일과 이번 주에 할 일, 또는 월간 일정표가 정확히 갖추어져 있다면 비서관 몇 명 더 쓰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또한 국회의원은 국회에서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많은 질의와 의견을 밝혀야 한다. 이는 정확한 자료에 근거해야함은 당연하다.
대정부 관련 질의서 및 답변서를 컴퓨터에 입력시키고 그 결과가 어떻게 처리됐는지에 대한 결과 체크도 한다면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국회의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경쟁후보가 특정문제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어디에서 밝혔는지에 대한 자료검색은 정치인들에게 필수적이다. 예를들어 경기도 부천에서 P당의 A후보는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견해를교육자 간담회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전면적 해제는 불가능하고 학교설립부지로는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으나 M당의 P후보는 아무런 검토없이 '무조건 해제'를 주장했다면 우스운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상대방 측 정책 견해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이를 활용하는 분위기는 이번 대통령선거 유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T당의 K총재는 자신의 라이벌인 P당의 K총재의 연설문 및 회견문을 컴퓨터에 입력, 필요할 때마다 이들 자료를 출력 활용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주요 네 후보는 자신의 사조직을 많이 거느리고 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사조직관리에서도 컴퓨터는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민주화가 전제조건
소수이기는 하지만 컴퓨터를 사용해본 정치인들은 컴퓨터가 정치활동에 필수도구이고 특히 선거전략을 세우는데 적지않게 도움을 준다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다만 컴퓨터를 들여오고 좋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도 이를 채워줄 유권자 데이타를 확보하지 못해서 컴퓨터를 먼지속에 방치한다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여기에는 유권자 개인적인 프라이버시 문서가 있기 때문에 쉽게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가능한 정보는 공정하게 공개되야 하고 이를 토대로 똑같은 조건하에서 경쟁한다면 컴퓨터는 우위를 확보하는데 촉진역할을 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컴퓨터를 활용하는데 있어서 더욱 중요한 일은 본인 스스로가 컴퓨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추는 것이다. 컴퓨터를 바로 유권자 내지는 득표수로 연결시키는 논리는 가장 비과학적 사고방식이다.
국회의원후보 내지는 대통령후보가 직접 컴퓨터를 사용해보며 스스로의 업무에 적용시켜나간다면 금상첨화. 이를 기반으로 소규모 집단 내지는 당원관리를 해나가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만 이 전체 유권자관리를 할 수 있다는 차분한 사고방식이 자리잡혀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선거에서 '바람'이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바람'은 그런대로 용납할만하다. 바람보다는 금권이나 압력에 못이겨 투표하는 성향도 나타난다. 이는 유권자만의 잘못은 아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컴퓨터를 통한 선거전략은 무의미하고 여론조사는 타당성을 잃는다.
민주화의 실현 정도가 컴퓨터가 선거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는가를 판가름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