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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현장경험, 나와 학생에게 모두 유익

좌담ㆍ제주도 생태계학습탐사를 마치고

이화경 선생
 

이강 과학동아가 마련한 제1회 전국고교교사자연학습탐사가 이제 막 끝난 것 같습니다. 4박5일간의 강행군을 통해 보고 듣고 얻은 것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탐사과정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그동안 느낀 소감이라든가 제주도 생태계의 이모저모를 털어 놓았으면 합니다.

임성 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곳이 더러 있어요. 이번에 마침 자연탐사기회가 있어 생태계를 엿볼 수 있는 곳들을 둘러본 것이 크게 도움이 됐읍니다. 생태계의 개념을 새롭게 이해한 것에서부터 조사방법에 이르기까지 좋은 학습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김강 그동안 생물수업시간을 맡고 있으면서도 필드경험이 없어 애를 먹었읍니다. 예를 들어 소풍을 가게 된면 학생들이 꽃이름이나 나무이름들을 물어오는데 대답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할 때가 많았거든요.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식물들의 이름과 성질을 알게 돼 수업현장에서 크게 도움이 될 듯합니다.

김은 처음 떠나올 때는 막연한 생각으로 특별한 계획도 없었읍니다만, 주최측과 지도교수의 자세한 안내를 받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식물상이 다양하다는 제주도의 구석구석을 살펴본 게 여간 유익한 게 아니었어요. 아울러 생태계보호라는 측면에서 자연파괴 현상에도 많은 관심이 끌렸읍니다.

이화 저의 학교에서는 1백50평규모의 자연사박물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수업시간과 연결해 운영하는 것은 물론, 인천시내 타교생들에까지도 개방하고 있읍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도 나비 한마리를 봐도 예사로 넘기지 않고 어떤 종류의 나비이며,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합니다. 이번 탐사를 통해 많은 식물명을 익히고 생태를 파악한 것이 앞으로 박물관운영은 물론 다방면에서 산지식으로 활용될 것 같아요.

김창 평소 학생들을 가르칠 때 교과서와 참고서만 이용하는 실정이 아닙니까. 저는 지구과학을 담당하다 보니까 실제로 현장을 답사하지 못하고 강의하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어요. 그런 점에서 이번 제주도탐사는 의미가 컸읍니다만, 아쉽게도 주로 식물생태계 위주로 진행돼 화산활동의 흔적 등 지구 과학적 측면에서의 탐사시간이 부족했읍니다.

강미 저 역시 지구과학이 전공이어서 김선생님과 같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과학교사의 입장에서 많은 식물들을 알게 된 것은 적지 않은 소득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제주도일대가 교과서에 나온대로 현무암으로 돼있기 때문에 식물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읍니다만, 그게 아니었어요. 풍화작용이 빨리 진행돼 식물상이 다양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지역마다 흙이나 암석이 조금씩 다른 점도 관찰돼, 막연히 단순한 것으로만 알았던 것이 틀렸음을 깨달았어요. 몇군데서 흙과 암석을 채취했는데, 현미경 관찰도 해보고 학생들에게도 보여줄 작정입니다.

김문 지도교수의 입장에서 참여한 저도 나름대로 얻은 게 많았읍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사범대학생들과도 만납니다만 이들이 일단 졸업을 해서 교단에 선 뒤에는 만날 기회가 없어요. 그런데 이번에 경험많은 선생님에서부터 젊은 교사들에 이르기까지 한데 모여 탐사활동을 하게 돼 느낀 게 많습니다. 앞으로 교직에 나갈 학생들을 지도할 때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김강 한라산일대는 난대성 식물에서 고산식물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천혜의 보고였읍니다만, 저는 특히 고산식물에 관심을 가졌어요. 희귀식물인 암매가 백록담암벽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목격했는데, 2~3cm 크기로 꽃이 몸체보다 더 큰 식물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작은 목본식물, 즉 나무라는 설명에 감탄을 금치 못했읍니다. 강한 자외선과 낮은 온도, 짧은 생육기간 등이 이렇게 자그마한 나무로 자라게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읍니다.

임성 생태계의 개념이랄까, 구성요인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문주란이 자생하고 있는 토끼섬의 경우, 염해가 우려됨에도 불구하고 놀라울이만큼 생육상태가 좋았어요.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섬인데다 모래밭으로 돼있어 세계적으로 드문 분주란의 집단자생지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또 3백년 내지 5백년 묵은 비자림이 2천5백여그루나 우거진 비자림지대도 장관이었고, 나도풍란 흑난초 비자풍란 털사철란 십자고사리 파리풀 등이 비자림과 함께 어우려져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읍니다. 수분과 빛 기온 등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식물의 형태를 특징지워 주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한 셈입니다.
 

김두기 선생
 

김두 저는 국토보존 혹은 자연보존의 차원에서 많은 것을 느꼈읍니다. 서귀포의 정방폭포를 내려가다 보니까 갈라진 바위틈새에 시멘트를 발라 놨더군요. 알아보니 대형차량의 압력 등으로 균열이 생긴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안타까왔읍니다. 천제연폭포부근에 있는 '서귀포층 패류화석'도 수백만년전의 퇴적층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고, 고생물 고기후 고지리연구에 유용한 화석들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존을 위한 시설이 전무했어요. 안내팻말 하나 서있을 뿐이고 쓰레기들이 화석조각들과 함께 엉켜 있었읍니다. 백록담에도 올라가 봤는데 최근 10여년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읍니다.

이강 저는 곤충 특히 나비에 관심을 갖고 참가했읍니다. 서귀포에선 남부지방에 흔한 청띠제비나비를 볼 수 있었고, 비자림지대에서는 긴꼬리제비나비를 목격했읍니다. 남부육종장은 제주도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식물 2백여종을 모아 재배하는 곳이었는데, 식물도 식물이었지만 말매기 수백마리가 울어대는 매미들의 낙원이었읍니다. 3마리의 매미가 한데 붙어 있는가 하면 나무 한그루를 흔들었을 때 20여마리가 날라갈 정도였어요. 제주도가 말매기의 발생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읍니다.

한라산지역에서는 제비왕나비 눈많은 그물나비도 보았고, 가락지나비 4~5 마리가 금방망이꽃 쥐손이풀 등에서 꿀을 빨고 있었어요. 특히 요즘이 우화(羽化)시기인 가락지나비가 교미하는 장면을 촬영한게 인상적이었읍니다. 이외에도 표범나비 뱀눈나비 제주꼬마팔랑나비 및 부전나비과 흰나비과의 나비들도 촬영할 수 있었읍니다. 나비학자인 고 석주명씨는 제주도의 나비를 7과 71종으로 발표한 바 있는데, 제주도의 나비를 장기적으로 관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화 저도 역시 나비에 관심이 많았읍니다. 81년과 83년도 한라산일대의 나비조사를 해왔기 때문에 자연히 그때와 비교가 됩니다만, 한마디로 나비의 개체수가 너무나 줄어들었다는 느낌입니다. 81년도만 해도 나비채집이 허용돼 있었을 때인데, 어리목코스에 나비들이 무척 많아서 닥치는대로 포충망을 휘둘렀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한라산 정상부근에서는 고산성인 가락지나비 산굴뚝나비 등 희귀한 나비들도 채집했었어요. 이번에 보니까 개체수가 너무 줄었어요. 자연보호도 강조되고 있는데, 그 많던 나비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김문 나비가 드물었던 것은 장마철이 길어진 데다가 태풍까지 불어닥쳤기 때문일 겁니다.

김은 나비의 개체수 얘기가 나왔읍니다만 줄어드는 식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도 필요하다고 느꼈읍니다.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장소에 따라서는 입산통제를 한다든가 말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좀 색다른 생각입니다만, 이곳의 식물들 중에는약효가 뛰어난 것들이 많다고해요. 예를 들어 무좀에 특효라는 큰앵초, 구충제로 전해 내려오는 비자나무열매 등이 그것인데, 이런 식물들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보고 그 재배 기술을 연구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김두 산굼부리분화구는 관광지로서도 유명하지만 한 장소에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어 식물연구에도 소중한 곳입니다. 이번 탐사에서는 분화구를 내려다보며 식물들을 관찰하는데 그쳤읍니다만, 다음에라도 기회가 있다면 며칠 묵으면서 직접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 집중적인 조사를 해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럴 경우 아직 발견 안된 새로운 종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임성 한라산의 대표적 식생이라 할 구상나무의 생태로 흥미있는 것이었읍니다. 남측사면에 비해 북측사면에 구상나무가 울창한 것을 목격했는데, 남쪽이 산불이 나기 쉬운 입지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데다가 생육기의 남풍으로 인해 토양의 수분이 증발하는 등 식물이 자라기에 불리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구상나무의 열매모양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열매가 하늘을 향해 거꾸로 매달린 것이 이채로왔읍니다.

김창 문주란 자생지의 토양은 모래였는데, 저는 토양의 특수성과 식물의 특이종과의 관련에 관심이 갔읍니다. 교과서적인 지식에 의하면 화강암을 이루는 석영 운모 장석 중 석영이 부서져 모래가 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제주도의 모래는 화산분출의 영향으로 생긴 것이거든요. 흥미있는 연구거리라고 느꼈읍니다. 또 문주란의 종자가 구로시오 해류를 타고 일본 쪽으로부터 이곳까지 흘러왔을거라는 김교수의 해석은 흥미로왔읍니다. 소금기가 많이 포함된 바람이 식물의 생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도 문주란을 보면서 느낀 의문점입니다.

임성 자연의 생명력이랄까, 오묘함을 느낄 기회도 많았읍니다. 천제연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절벽에 솔잎란이 자생하고 있었읍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제연폭포의 절벽에만 있다는 것이어서 진귀한 식물이기도 했지만 그런 척박한 바위틈에서 자생하고 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근처까지 가느라 힘은 들었읍니다만, 아뭏든 기억에 남는 희귀식물이었어요.

또 돈내코 계곡에서 고란초가 흔하게 자라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읍니다. 고란초라면 백제유적인 고란사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식물로 알고 있는 게 보통사람들의 상식입니다만, 뜻밖에도 돈내코계곡에서 너무나도 쉽게 목격한 것이지요. 제주도에는 물이 풍부한 계곡이 거의 없는데, 돈내코 계곡만큼은 물이 흔해 주변의 습도가 높으므로 고란초 같은 양치식물이 흔하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한란의 자생지이기도 했는데, 마구 캐가서 지금은 찾아볼수가 없더군요.

김정 저는 비자림지대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수백년이나 묵은 거대한 비자나무들이 2천5백70그루나 있다고 하니까 우선 그 규모가 예상밖으로 크더군요. 그런데 비자나무는 키가 보통 10m 안팎이나 되고 직경도 1m 안팎이어서 무성한 가지와 잎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읍니다. 따라서 땅바닥에는 햇빛이 별로 없어 습지식물이 번성한 것을 볼 수 있었읍니다. 또 각종의 착생식물들이 비자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것도 장관이었읍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제가 살고 있는 전북지방의 금구라는 곳이 두릅나무과의 상록 덩굴식물인 '송악'의 북한계로 알고 있었는데, 이 송악이 비자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 있는 것을 목격했어요. 그리고 내장산에서 관찰한 바로는 큰나무에 착생식물들이 해를 주고 있었는데 비자림지대에서는 비자나무와 거기에 붙어사는 식물들이 잘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강미 천지연부근의 서귀포층 패류화석이 방치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읍니다만, 지구과학을 전공한 입장에서는 훌륭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느꼈읍니다. 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서 점이층의 특징을 볼 수 있었어요. 돌들의 종류는 화성암이었지만 마치 퇴적암처럼 쌓여져 있었읍니다. 이곳의 화석들은 마모가 안된 작은 크기의 것들로서 검정색깔을 띠고 있더군요.

천제연폭포에 가면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돌들이 있는데, 거기서 주상절리를 관찰할 수 있었읍니다. 교과서에서는 산에서 주상절리를 목격할 수 있다고 돼있는데 물가에서 보니까 인상적이더군요. 또 협재굴속에서 흰모래를 보고는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조개파편이었어요. 이런 것은 학생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더군요. 산굼부리분화구에서 화산탄(火山彈)이라고 하는 붉은색의 토양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었습니다.

김창 해발 1천7백m의 윗세오름대피소에서 백록담북쪽등정루트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파괴돼 주변의 토양을 침식하고 지형마저 바뀐 것이 충격적이었읍니다. 돌을 쌓아 만든 등산로가 비가 내리고 강풍이 몰아치는 등 기상의 영향으로 무너져 주변의 생태계를 파괴해버린 것으로 보이는데 그 파괴범위가 매우 넓어 원상복구가 불가능할 것 같아 보였어요. 아마도 인위적인 자연파괴의 대표적 케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수천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지형이 변해가는 것인데, 불과 10여년 남짓한 기간에 이같은 파괴와 변모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읍니다. 하루빨리 전문가들에 의한 정밀진단이 내려지고 그 대책이 세워졌으면 합니다.

임성 이번 학습탐사과정을 통해 느낀 점도 많았읍니다만, 과학교사로서 필요한 실무적인 지식도 적잖게 얻은 것 같아요. 그 좋은 예가 식물조사방법으로 군집조사단원이 교과서에 나오는데, 실제로는 너댓가지의 조사방법을 현장에서 실시할 줄을 모르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한라산에서 김교수 지도로 식생을 조사하면서 식생조사표를 작성해본게 여간 산경험이 된 것이 아닙니다.

생태계에 관련된 용어들도 새삼스레 익히는 계기가 됐읍니다. 유존식물(遺存植物)이니 타감작용(他感作用)이니 천이(遷移)니 하는 용어들을 실제로 느끼면서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김문 여러 선생님들과 학습탐사를 다니며 많은 것을 느꼈읍니다만, 앞으로는 동물이라든가 조류 수생식물 동굴 등 자연생태계의 다양한 분야에 접근하면 좋을 것 같군요. 이번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면 교사들을 통해 학생들에게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탐사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사전준비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처럼 제주도의 식물생태계를 답사한다면 미리 제주도식물에 대한 사전지식을 어느 정도는 갖고 와 달라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탐사계획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확정돼 주최측이나 참가자들 모두가 여유있게 사전준비를 할 수 있어야 되겠지요.

김정 이번 제주도 식물생태계탐사에 나선 교사들이 대부분 느끼고 있읍니다만, 저 역시도 얻은 게 무척 많았읍니다. 앞으로 남은 24년간의 교직생활에 두고 두고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기회를 마련한 「과학동아」그리고 공동주최한 동아문화센터 및 후원해주신 쌍용그룹에 감사를 드립니다.
 

김창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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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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