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한국의 자연 대암산의 큰용늪

남한에서 하나뿐인 원시상태의 늪지대, 천연보호구역 246호

사람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늪지대─. 우리는 늪지대라고하면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밀림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늪지대가 있다. 그것도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채로 있어 비록 한군데이기는 하나 자랑스런 국토의 일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학자를 비롯한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미지의 늪지대는 비무장지대 남쪽 (민통선 북방)에 위치한 대암산(大岩山)의 늪지대이다.

 

큰용늪과 작은용늪으로 구성돼 있어
 

대암산은 강원도 양구군과 인제군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높이 1천3백16m의 고산으로서, 인근의 대우산(1천1백78m)과 함께 1973년 7월10일 천연보호구역 제246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이 대암산의 서북사면 표고 1천2백m지역에는 우리나라(남한)에 하나밖에 없는 분지형으로 된 고층습원(高層湿原)이 있으며, 이 습원은 큰용늪(大龍浦)과 작은 용늪(小龍浦)의 2개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용늪은 거의 그 원형이 소멸되어 지금은 산지초원으로 변신해가고 있지만, 큰용늪은 약간의 교란작용에 의한 상흔은 남아 있으나 비교적 늪 자체의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다.
 

여기서 잠깐 늪 또는 습원이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간단히 말해서 늪이란 과습하기 때문에 육상의 식물이 자랄수없는 자연초지를 일컫는다.

식물의 죽은 유체는 미생물이나 작은 토양동물들에 의해서 분해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한랭한 지대의 습한곳에서는 식물체가 고사된 뒤에도 낮은 온도와 수분과잉 때문에 분해가 잘 되는 않은채 퇴적하게 된다. 이러한 퇴적물을 이탄(泥炭)이라 하고, 이들이 퇴적되어 있는 지역을 통틀어 이탄지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탄으로 형성되는 늪은 크게 저층습원, 중간습원 및 고층습원의 세가지로 분류한다. 연못이나 소택과 같이 늘 물이 고여 있는 곳에 이탄이 퇴적되게 되면 수심이 얕아지게 되고 드디어는 이탄이 수면위로 올라와서 평평한 지대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의 늪을 저층습원(低層湿原)이라 부르는데 표면이 평탄하므로 평지습원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저층습원은 주위에서부터 지하수등이 유입해 들어오므로 토양은 영양염이 풍부하게 되어 갈대나 사초과 등 다습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이 서식하게 된다.
 

그러나 퇴적이 계속됨에 따라 표면이 건조하게 되면 이런 건조상태에서도 견딜 수 있는 예자풀이나 진퍼리새 등의 식물이 군락을 이루게 되는데 이 단계의 늪을 중간습원이라 부른다.
 

이탄의 두께가 더욱 두터워지면 양분 조건이 점차 나빠져서 오직 빗물만으로 자랄 수 있는 물이끼류와 같은 식물이 서식하게 되고 이들 식물도 역시 고사한 후 퇴적되어 이탄이 된다. 이러한 이탄은 이탄지의 최상층을 구성하여 처음의 지하수면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게 되고 늪의 중앙부가 볼록렌즈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므로 고층습원(high moor)이라 한다.
 

건조화된 늪가에 침입한 고산식물인 눈빛승마

 

물이끼가 퇴적돼 부푼 고층습원
 

고층습원에서는 어디에서나 물이끼로된 시계접시 모양의 돔(dome)을 볼 수 있다. 어떻게 돔이 형성되는 것일까. 이것은 물이끼가 영양염이 거의없는 빈영양성(貧營養性)의 서식환경을 좋아하기때문이다. 물이끼가 퇴적됨에 따라 늪의 중앙부가 서서히 부풀어오르게 되면 그때까지 늪주변으로부터 유입해 들어오던 물은 거꾸로 중앙부에서 주변으로 역류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은 물이끼의 생장을 촉진시키고 또한 유기물이 분해될때 생기는 유기산으로 말미암아 환경은 산성으로 변하게 되므로 분해작용이 더욱 늦어져서 이탄의 퇴적속도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늪주변에서는 중앙부로부터 역류돼오는 이탄수(泥炭水)와 주위의 광물질 토양으로부터 유입되는 영양염의 공급 때문에 물이끼의 생장 이 불량하게 되고 따라서 늪중앙부와 늪가에서의 퇴적속도가 서로 다르므로 고층습원은 전반적으로 돔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층습원에 들어가서 이탄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간 볼록하게 튀어나온 곳과 약간 오목하게 들어간 곳이 서로 교대로 반복퇴적하고 있는 미지형(微地形)을 관찰할 수 있다. 전자를 소철지(小凸地, hummock), 후자를 소요지(小凹地, hollow)라고 한다.
 

즉 고층습원에서는 소철지 이탄과 소요지 이탄이 물고기의 비늘모양으로 중복되어 소철지→소요지→소철지의 주기가 반복되면서 발달하는데 이 주기를 특히 재생주기라고 부른다. 이와같이 물이끼가 습원위에 수많은 소철지와 소요지를 형성하면서 생장을 계속하여 마침내는 습원이 부풀어 올라서 습원 전체가 볼록렌즈 모양이 되는 것이다.
 

높은 지역에 있는 것을 고층습원, 낮은 곳에 있는 것을 저층습원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민통선 지역의 대암산정에 위치하고 있는 큰용늪은 바로 이러한 독특한 발달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고층습원이라는 점이 다른 보통의 늪과는 상이한 것이다. 고층습원인 큰용늪의 발달과정에 대한 성인론적인 연구는 아직 행해진 바 없었으나, 최근 필자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습원의 형성과정과 또는 성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간격, 일정한 방향으로 늪의 표면에서부터 최하층의 밑바닥까지 차례로 구멍을 뚫어 이탄을 채집한 후 각 층의 이탄을 구성하고 있는 식물체를 식별하여 이들 결과를 기초로 습원의 단면도를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조사해본 결과 큰용늪에서 이탄의 최고두께는 1백80cm이고 최하층의 밑바닥은 회색모래와 갈색 진흙으로 되어 있었다.

만약에 이 늪이 연못이나 소택에서 기원한 것이라면 밑바닥의 저층에 플랑크톤이나 수생식물에서 유래하는 유기물로 구성된 호저퇴적물인 해니(骸泥)가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해니가 없다는 것은 소택에서 출발한 늪이 아니고 오목하고 습한 분지 초원에서 유래되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꽃가루분석(花粉分析)이라는 방법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최하층의 저토에서는 수생식물의 화분이나 플랑크톤의 미화석(微化石)이 출현하지 않았고 사초과 식물의 화분과 포자가 높은 빈도로 출현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위의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대암산의 큰용늪은 지형적으로 오목한 분지의 다습한 곳에 이탄이 퇴적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의 늪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늪은 언제쯤 형성되기 시작했을까. 늪의 퇴적물을 채취하여 탄소의 동위원소를 이용한다든가 또는 이탄의 연평균 퇴적속도를 적용하여 추정할 수가 있다.
 

이렇게 하여 추정해본 결과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 전에 이곳에 늪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고층습원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약 2천5백년 전경부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진 큰용늪의 크기는 대략 동서 2백75m, 남북 2백10m의 타원형을 하고 있으며, 늪의 여러곳에는 수심 30cm에서 50cm, 폭 5m에서 6m 크기의 작은 소택(watery patch)들이 있다.
 

이 조그마한 소택과 소택 사이에는 침식곡(浸蝕谷)의 하나인 심구(深溝, rüllen)혹은 습지구(湿地溝, ditch)라는 것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것들도 고층습원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다.

 

특수환경에서 자라는 식물들
 

이렇게 독특한 형성과정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고층습원인 대암산 큰용늪에는 어떤 식물들이 살고 있을까. 전술한 바와 같이 고층습원은 과습 한랭하고 환경이 산성이기 때문에 이러한 곳에 서식할 수 있는 식물은 최소한 빈영양 상태에서도 충분히 생장할 수 있거나, 식충식물(食䖝植物)과 같이 작은 곤충을 포획하여 영양원으로 하는 식물, 그리고 물이끼와 같이 체내에 다량의 물을 저장하여 습원을 더욱 습원하게 하는 식물 등 각각 특수한 성질을 갖는 식물들이 살고 있다.
 

실제로 대암산의 큰용늪에 대한 산도를 측정해보았더니 늪주변 무기토양의 pH는 5.6~5.7인데 비하여 습원내의 pH는 3.4~4.3으로서 평균 pH가 4.6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혹독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식물만이 서식하고 있다.
 

큰용늪의 대표적인 식물로서는 구조가 스폰지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다량의 물을 흡수하는 물이끼를 비롯하여 작은 벌레를 잡아서 영양을 취하며 생활하는 끈끈이주걱과 좀통발, 실같은 포복지를 옆으로 뻗으면서 짙은 푸른 자색꽃이 피는 비로용담, 뿌리줄기가 옆으로 길게 자라고 작은 흰꽃이 피는 조름나물, 몸전체가 스폰지모양의 해면질로 되어 있는 가는 흑삼룡 등 수분을 좋아하는 식물들이 생육하고 있다.
 

늪부근의 거조지에서 자라는 철쭉꽃


그러나 외견상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개체수도 많은 것은 삿갓사초라는 사초과에 속하는 식물이며, 큰용늪의 저층에 퇴적된 이탄은 이 식물에서 유래된 것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식물외에도 물이 흐르는 심구 옆에는 가는오이풀이 큰 군락을 형성하고 있어서 어느 곳이 심구인가를 가는오이풀 군락을 보면 곧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식물은 물을 좋아한다. 줄풀 왕미꾸리꽝이 골풀 참비녀골 달뿌리풀도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이다.
 

그리고 늪의 주변에는 노란꽃이 피는 동의나물을 비롯하여 황색꽃을 피우는 초롱꽃 동자꽃 개물통이 큰개별꽃 딱지꽃 큰제비란 오리방풀 벌깨덩굴 곰취 솔체꽃 등 대암산의 큰용늪지역은 천연으로 가꿔진 꽃밭이다.
 

특기할 식물로서는 비로용담 금강초롱 가는동자꽃 조름나물 날개하늘나리 좀통발 큰비단분취 및 바늘사초를 들 수 있다. 습원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나무로는 버드나무 신갈나무 철쭉 귀롱나무 전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메역순나무 병꽃나무 참회나무 층층나무 함박꽃나무 다갈덤불 백당나무 마가목 사스레나무 등 각종 고산식물군락이 도솔산의 능선을 거쳐 멀리 펀치볼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인 해안분지에 이르기까지 덮여 있다. 가히 우리나라의 유일한 원시상태의 숲이라 부를만 하다.
 

이곳에 고층습원이 존재한다는 것이 처음으로 학계에 알려진 것은 1966년경 한국자연보존위원회(현재의 한국자연보존협회의 전신)에 의한 비무장지대 생태계학술연구를 행하던 때였는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곳의 큰용늪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별로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암산의 고층습원은 천연보호구역의 일부로서 보호되고 있는 중요한 자연생태계이다. 그러나 습원은 물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으므로 수위가 변하게 되면 곧 습원의 수명이 끝나버리게 된다. 배수가 잘되어 건조하게 되면 물이끼 끈끈이주걱 좀통발 등의 생장이 저해되고 그대신에 초원식물이 침입하여 결국 산지초원으로 변해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수위뿐만 아니라 주위로부터 습원안으로 유입되는 수질이 변해도 습원은 파괴돼버리므로 이런 점에 유의하여 보존책이 세워져야 하겠다.


늪이 산지초원으로 변한 곳에 침입, 생육하고 있는 당귀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8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강상준 교수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도시·지역·지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