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세계최초로 AIDS바이러스를 발견했는가? 이는 분명 중대한 문제이다. 몇년내에 세계각국의 과학교과서엔 개척자의 이름이 기록되고 찬양될 것이다. 왜냐하면 무슨 병이든 원인을 바로 알아야 대책이 가능하다는 평범한 진리때문에 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의 분리와 배양이 가능하고, 바이러스의 화학적 미생물학적 특성들이 속속 밝혀져야 그 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진단법이 개발되고 궁극적으로 그 병을 극복할수 있는 백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AIDS바이러스의 최초발견자로 인정받는 사람은 노벨의학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다. 거기다 백신과 진단약을 전제로한 거액의 로열티도 보장받는다.
명예와 돈과 상이 걸린 AIDS격전이 벌써 5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젠 단순한 연구 경쟁에서 벗어나 학회와 언론으로 번지고 다시 법정에까지 치닫고있다.
각기 최초의 AIDS바이러스 발견자라고 주장하는 두사람은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뤽 몽타니에'와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로버트 갈로'이다. 둘다 바이러스학계 특히 레트로바이러스에 관한 한 세계적 권위를 얻고 있는 학자들이다. 한때 학문적으로 협력하는 사이였으나 AIDS로 인하여 금이 가고 말았다.
개인-연구소-국가위신으로 확산되다
프랑스의 파스퇴르연구소나 미국의 국립암연구소는 생명의학분야에서 그간 수많은 업적을 쌓아온 명성높은 연구소들이다. 이 논쟁에서 지게 되면 연구소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한판은 연구소차원에 머물지 않고 미국과 프랑스의 국가이익및 명예와 직결되는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양국은 자국의 학자를 지원하는데 전력을 쏟고 있다.
처음에는 '갈로'측 주장이 우세를 점하였으나 최근 몇가지 의문점이 제기돼 궁지에 몰리고 '몽타니에'측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주로 '사이언스'지를 통해 이뤄진 이 대결은 과학자의 양심과 관련되어 있어 흥미롭다기보다 씁쓰레한 여운까지 남긴다.
1983년 1월 파리의 파르퇴르연구소에서는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탄성의 주인공은 이 연구소의 바이러스학자인 '몽타니에', '바레-시누시', '셰르망' 등 이었다. 그들은 이날 동성연애자이고 림프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는 한 남자의 림프결절에서 지금까지 보고된바 없는 신종 바이러스를 분리하였다. 이 바이러스를 배양하고 증식시키기 위해 항인터페론제를 주입하고 T림프구를 계속 투여하는등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관찰도중 이 바이러스가 '리버스 트랜스크립타제'라는 효소를 갖는 것이 밝혀져 레트로 바이러스의 일종임을 감지하였다. 그러나 이 신종바이러스는 그때까지 인간에게 유일한 병원성 레트로바이러스로 알려진 '갈로'가 발견한 HTLV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HTLV는 T림프구를 무한정 증식시키는데 반해 신종바이러스는 T림프구를 사멸시켰다. 그들은 곧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제출했고 1983년5월20일 이잡지 제 220권에 게재되었다.
이 논물을 제출하기 앞서 '몽타니에'는 자신의 신종바이러스와 HTLV가 어떤 관련성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신종바이러스와 HTLV 모두 레트로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호기심이었다. 그는 '갈로'에게 부탁하여 HTLV(HTLV-I을 말함)와 HTLV항원을 동물에 주입하여 얻은 HTLV항체를 제공받았다.
만약 신종바이러스와 HTLV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면 HTLV항체와 신종바이러스에서 추출한 단백질(항원)은, 자물쇠와 열쇠가 맞물리는 것과 같이, 항체·항원반응을 보여야 한다. 여러가지 기술과 방법을 동원해 수십차례 시도해 보았으나 둘사이에 항체·항원반응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몽타니에'는 자신의 신종바이러스가 HTLV와는 다른 레트로바이러스임을 확신하였다. 이후로 파스퇴르연구소 사람들은 신종바이러스에 'T림프구 친화성 레트로바이러스'란 임시이름을 붙여 주었다.
83년 5월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엔 신종바이스러스의 특징에 대해, 수직감염 아닌 수평감염의 형태를 띠고 AIDS에서 나타나는 증상과 비숫한 병리소견을 보인다고 서술돼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논문에서 '몽타니에'자신이 분리한 신종바이러스가 HTLV군의 일종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는 '갈로'에게 유리한 기록이어서 '갈로'는 기회있는 때마다 이 사실을 상기시키곤 한다. 반면 '몽타니에'는 당시 '갈로'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렇게 썼다고 반론한다.
몽타니에 논문 처음엔 무시돼
83년 당시 '몽타니에'가 발견한 신종바이러스는 학계의 주목을 끌지 못하였다. 오히려 다른 논문들이 '몽타니에'논문을 압도하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사이언스'에 소개된 '갈로'의 논문과 하버드대학'에섹스'의 논문이 그것이다. 당시 '갈로'는 HTLV-I 또는 HTLV-I의 변종이 AIDS를 일으킨다고 논술하였다. AIDS환자에게서 HTLV항체가 검출되는 게 그 좋은 증거이며, 일본같은 HTLV빈발지역엔 자연히 대중에 HTLV에 대한 저항성이 길러져 AIDS환자가 덜 발생된다는 역학적인 자료도 제시하였다. '몽타니에'의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어쩌면 창작품일지도 모른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자극을 받은 '몽타니에'는 자신의 신종바이러스가 HTLV군과 무관함을 주장하였고, 차제에 바이러스명칭도 LAV(Lymphadenopathy AIDS associated Virus)라고 정식으로 확정하였다.
83년 9월 뉴욕의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에서 '갈로'와 만난 '몽타니에'는 LAV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는 LAV는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두번째 레트로바이러스라고 자신의 신념을 피력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AIDS환자 35명중 25명, 건강한 동성연애자40명중 7명, 건강하고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는 사람 54명중 1명에게서 LAV항체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몽타니에는 또 원통형의 코어를 갖고있는 LAV의 전자현미경사진을 공개했다. 이는 HTLV-I 외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콜드스프링하버모임 일년후에 '갈로'와 공저한 책에서 '몽타니에'는 LAV를 HTLV의 일군이라고 표현해 관련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1983년 7월 17일과 9월 23일 두차례에 걸쳐 '몽타니에'는 LAV를 '갈로'에게 기증하였다. 두번째 기증시 '몽타니에'측은 LAV의 상업적및 산업적 사용을 배제하기 위해 연구용으로만 국한하여 사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사항은 현재 제기되고 있는 변상의 법적 문제의 핵심이 된다.
이로부터 6개월후 '갈로'는 먼저 '월스트리트 저널'과 '워싱턴 포스트'와 같은 신문에 HTLV의 변종인 HTLV-Ⅲ가 AIDS를 발생시킨다고 기고했다. 이어서 '사이언스' 84년 5월호에 자신의 주장을 대변하는 논문을 실었다. 미국정부와 하버드대학 그리고 후속되는 몇 편의 논문이 '갈로'를 편들었다. 이로부터 HTLV-Ⅲ와 '갈로'는 크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LAV와 '몽타니에'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DNA구조같아 의문생겨
등등하던 '갈로'의 기세가 역전되기 시작한 날은 LAV와 HTLV-Ⅲ의 DNA구조가 밝혀진 85년 1월 21일이었다. 그날 동시에 두 과학자는 각각 '셀'과 '워싱턴 포스트'에 자신들의 LAV와 HTLV-Ⅲ의 DNA구조를 발표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바이러스가 거의 같은 구조를 갖고 있었다. 곧 이어 '와인홉슨' '랩슨' '마틴'등이 이를 실험적으로 뒷받침했다.
같은 대상으로 부터 같은 시기에 분리한 바이러스라 하더라도 DNA는 서로 약간씩 차이가 난다. 더우기 LAV와 HTLV와 같은 레트로바이러스는 원래 RNA바이러스이다. 이 RNA가 DNA로 변할때 리버스 트랜스크립타제라는 효소가 작용하는데 이 작용이 완전치 않아 레트로바이러스의 DNA구조가 서로 다를 가능성은 어느 바이러스보다 크다. 따라서 LAV와 HTLV-Ⅲ의 DNA구조가 거의 같다는 사실은 '몽타니에'가 보내준 LAV를 '갈로'가 다른 바이러스와 혼합하여 HTLV-Ⅲ를 만든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한다. 물론 '갈로'는 이를 부인할 뿐 아니라 거꾸로 LAV가 조작된 바이러스라고 반박한다.
대체로 얘기는 '갈로'측이 LAV샘플을 받아 AIDS환자의 혈청에 주입해 바이러스칵테일을 만들었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게다가 '갈로'는 바이러스칵테일을 만든 전력이 있다. 그가 발표한 HL23이 다른 학자들에 의해 세가지 바이러스를 칵테일한 것으로 폭로된 적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갈로'의 입장을 결정적으로 손상시킨 한 사건이 터졌다.
84년 HTLV-Ⅲ라고 발표한 전자현미경사진이 실은 LAV 사진임이 밝혀진 것이다.
'갈로'도 이 사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으며 순전한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LAV를 환자 이름인줄 오인한 전자현미경기사가 잘못 기록한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일은 한순간에 '갈로'의 신망을 떨어뜨리고 길고 치열했던 대논쟁을 종식시킬 태세이다.
하지만 AIDS에 관한 '갈로'의 업적도 간과될 수만은 없다. 그는 인류에게 드물게 백혈병을 일으키는 레트로바이러스인 HTLV를 발견했다. 그후 계속되는 논문을 통해 학계에 HTLV성상을 자세히 알렸고, 레트로바이러스를 배양하는법을 개발했다. '갈로'가 없었던들 LAV의 발견도 지체되었을 것이다. 또 '갈로'는 AIDS배양에 H9셀라인을 이용함으로써 T림프구의 지속적인 투여없이 바이러스를 배양가능케 했다. 그리고 AI-DS바이러스 진단에 있어서도 현재까지 나온 어떤 진단법보다 예민한 진단법을 개발한 공적마저 논쟁의 결과와 함께 희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AIDS를 둘러싼 논쟁은 일단 '몽타니에'측의 판정승으로 굳어져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AIDS바이러스는 계속 신종들이 보고되고, 환자수는 날로 늘어 간다.
더이상 소모전적 성격이 강한 논쟁을 중단하고 '갈로'와 '몽타니에'는 AIDS백신제조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