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오염이 빚는 산성화 현상은 호수 숲 강 토양을 죽이고 도시를 침식하고 있다.
울창한 침엽수림에 둘러싸인 스웨덴의 어느 아름다운 호수. 거울처럼 맑은 그 호수엔 그러나 물고기가 한 마리도 살고 있지 않다. 심각한 산성화의 피해를 입은 호수 바닥엔 조화(弔花)처럼 흰 이끼만이 번창하고 있다.
스웨덴에만도 수천개의 호수가 이처럼 죽음의 호수가 되었다. 서독이 자랑하던 침엽수림의 $\frac{1}{3}$이 산성비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등 문화유산이 녹아내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침묵의 위기' '인류에 닥친 최악의 환경 위협'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환경 재앙'…산성화 현상에 대한 이런 무시무시한 표현만큼이나 산성재해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황과 질소가 원흉
산성화 현상의 두 원흉은 황과 질소. 이들은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늘어난 화석연료의 사용과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통해 주로 배출되고 있다.
수억년 전 동식물은 환경 속의 황을 섭취했다. 그 유산인 석유와 석탄을 지난 2백년 동안 태워 황을 대기중에 방출해 왔다. 이 연소의 과정에서는 또한 다른 오염물질 즉 질소산화물 이산화탄소 각종 중금속이 배출된다.
자연이 품고 있는 황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인간이 지금까지 연소시킨 양은 전체의 $\frac{1}{12}$ 정도이다. 황은 또 화산분출 등 자연적인 방법으로 방출되기도 한다. 지구적인 차원에서 볼 때 자연적으로 방출되는 황과 인공적인 것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산업화지역에서는 인공적인 황의 배출이 많아 유럽에서는 그 비율이 90%에 달한다. 그만큼 인류는 자연의 물질순환을 교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댓가의 하나가 식초보다도 신랄한 산성비이다.
산성비가 내려 피해를 일으키는 메카니즘은 (그림1)과 같다. 공장과 도시에서 배출된 이산화황(SO₂)과 질소산화물(NOx)은 일부가 땅에 떨어지고 나머지는 공중으로 올라가 산화돼 강산인 황산과 질산이 된다. 이것이 구름에 섞여 때로는 수백 수천 km나 운반돼 산성비 산성눈 산성안개로 피해를 일으킨다. 산성화 현상은 직접 간접적으로 삼림·물·토양 생태계에 피해를 주고 종국적으로는 인간에게 건강상 재산상의 손실을 안겨 준다.
물고기 없는 호수의 증언
산성화의 첫 희생자는 호수였다. 지난 60년대 이래 스칸디나비아의 호수들은 서서히 죽어갔다. 현재 스웨덴의 호수 약 1만8천개가 산성화되었고 그중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된 것은 4천개를 헤아린다. 물고기가 떼죽음하거나 어떤 종이 멸종된 호수는 9천개가 넘는다. 이런 현상은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서독 벨기에 유고 오스트리아의 호수들도 산성화의 시련을 겪고 있다.
호수의 물이 산성화되면 알루미늄의 농도가 증가한다. 그런데 알루미늄 이온은 매우 유독한 화합물을 만들기 때문에 물고기를 떼죽음시키는 것이다. 물이 산성으로 되면 알루미늄 뿐만 아니라 카드뮴 아연 납 등이 쉽게 물에 녹아 들어가 동식물에 침투하게 된다. 호수 산성화의 대책으로 현재 석회를 대량으로 퍼부어 물을 중화시키고 알루미늄 이온을 침전시키고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산성화의 지연책일 뿐 근본 해결책을 못된다. 침전된 알루미늄이 호수바닥의 생물에 타격을 주고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물에 녹아 나기 때문이다.
산성비와 토양중의 금속 그리고 대기중의 아황산가스는 삼림을 황폐화시킨다. 산성화된 토양중의 수분과 금속(주로 알루미늄)은 영양분을 흡수하는 뿌리털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무는 쇠약해지고 외부의 다른 요인에 취약해 진다. 산성비가 내리는 지역의 침엽수는 먼저 나무 꼭대기의 바늘잎이 누렇게 변색되어 떨어진다. 이 현상이 나무 전체로 확산되면 가지가 부러지고 나무 꼭대기가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서독 프랑스 폴란드 체코 등지에는 이렇게 죽거나 손상을 입은 전나무가 전체의 20~30%나 된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이 비율은 50%를 상회하기도 한다.
수많은 미생물들이 소우주를 이루고 있는 토양도 산성화에 의해 큰 타격을 입는다. 토양이 산성화되면 토양입자에 의한 각종 무기·유기 영양소의 저장기능이 없어져 버린다. 또 산성조건에서 왕성하게 번식하는 곰팡이 만이 번식함으로써 토양생태계의 평형이 깨어짐은 물론 식물의 질병이 만연하게 된다.
무서운 것은 산성화된 토양에서 중금속이 물에 녹는 형태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 중금속은 지하수를 오염시키기도 한다. 특히 일본에서 '이타이 이타이'병을 일으켰던 중금속인 카드뮴은 활동성이 커 위협적이다. 스웨덴의 경우 밀 속의 카드뮴 함량은 20세기에 들어와 두 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산성비는 이제 호수 삼림 대지를 넘어 도시까지도 침식하고 있다. 한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는 건축물 등의 문화유적이 한 예이다. 서독의 쾰른 대성당 로마의 콜로세움을 이루는 대리석 등의 석재(石材)가 산성비와 화학결합을 해 부식되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석재보다도 산성비에 약해 유명한 '레겐스부르크' 대성당의 손상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수하는데 5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오랜 풍상을 잘도 견뎌낸 건축물이 산성비에 얼마나 약한가를 보여주는 전문가의 계산이 있다. 대기오염의 영향이 거의 없던 1500년~1900년의 4백년간 석재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정도의 부식이 1900년부터는 겨우 70년만에 일어났고, 1970년부터는 불과 15년만에 같은 부식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오늘날 산성비 등 대기오염에 의한 석재의 부식 속도는 자연풍화의 근 30배에 달하는 셈이다.
국경이 없는 대기오염
북극에는 겨울과 봄에 걸쳐 거의 언제나 같은 안개(haze)가 끼어있다. 이것은 유럽과 북미의 황입자와 질소산화물로 인해 생긴 것으로 지구적 규모의 기상이변의 한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것은 산성화 현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인 국제적 성격을 보여준다. 여러나라가 밀집한 유럽은 그런 면에서 전형적인 곳이다. 모든 나라는 서로를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0년대의 연구 결과 대부분의 나라에서 산성강하물은 국내보다는 주로 외국에서 온다는 사실이 밝혀였다.
유럽에서 산성비와 관련해 가장 '억울한' 나라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스칸디나비아는 물이나 토양의 성질로 보아 산성비에 가장 취약한데 유럽의 풍향은 많은 대기오염물질을 이곳으로 날라오기 때문이다. 스웨덴에 퇴적하는 48만t의 황 가운데 38만t은 외국에서 온 것이며, 노르웨이의 경우에는 25만t중 22만t이 '수입품'이다. 체코 폴란드 프랑스도 외국에서 온 황오염물이 50%가까이 된다.
유럽에서 황오염물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는 영국으로 연간 2백60만t 이탈리아는 2백20만t 폴란드는 2백15만t이다. 반면에 가장 많이 오염물이 쌓이는 나라는 폴란드 1백33만t 체코 1백30만t 프랑스 1백20만t 순이다. 이런 불균형은 국제적인 논란의 원인이 되었지만 현재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유럽전체의 차원에서 해결방식이 모색되고 있다.
미국 동부 연 50억 달러 피해
현재 산성화의 피해가 가장 큰 곳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이다. 그러나 새로운 위험지역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화석연료의 소비가 치솟고 있는 브라질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공 인도 동남아시아 등이 그곳이다. 앞서 언급한 유럽의 경우를 제외한 전세계의 산성화 피해 실태를 알아보자.
미국은 매년 2천5백만t의 이산화황(SO₂)을 방출하는, 소련 다음가는 대기오염 발생국이다. 산성화의 피해도 유럽 못지않은데 특히 고도로 공업화된 북동부가 심하며 남부와 서부에서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과학아카데미의 추산에 따르면 동부지역에서 해마다 산성화로 입는 피해액은 50억 달러에 이른다. 피해실태로서 연장 9만6천km에 달하는 하천이 산성화되었으면 뉴욕주의 2백개 이상의 호수에서 물고기가 자취를 감추었다.
미국의 고원지대에 있는 광대한 삼림지대도 산성화의 피해를 입고 있다. 버몬트와 북캘리포니아의 전나무숲과 인디아나의 백송이 대표적인 희생자이다. 또 산성화로 인해 입는 건축과 기념비의 피해도 커 피해액은 한 해에 20억 달러에 달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산성화 피해의 상징적 예이다.
지난 78년 웨스트 버지니아에서는 거의 진한 황산에 필적하는 pH 2.0의 산성비가 내려 세계를 놀라게 했다. 또 84년에는 로스엔젤레스 남부의 '코로나 델 마' 라는 곳의 산성안개가 pH 1.69를 기록하기도 했다. 북동부지역 말고 멕시코와의 국경 양쪽에 위치한 동제련 공장지대도 큰 문제다. 여기서는 한 해에 80만t의 이산화황을 배출해 남부의 산성화 피해의 온상이 되고 있다.
북구의 스웨덴이 영국으로부터의 오염물 피해에 분노하고 있는 것처럼 캐나다는 미국에 대해 불만이 크다. 캐나다에 쌓이는 황의 절반은 미국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나다도 유수의 오염물 배출국인 것은 사실이다. 해마다 4백5십만t의 이산화황을 배출해 이 분야 세계 5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산성화의 피해가 큰 곳은 몬트리올와 동부 공업지역. 4만8천개의 호수와 하천이 산성화되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가장 큰 오염원은 비철금속 제련소이다. '인코' 제련소 단지는 단일 오염원중 세계 최대인데 연간 65만t의 이산화황을 배출한다. 이것도 현재 많이 준 것으로 지난 80년의 배출량은 지금의 두 배 였다.
신흥공업국, 산성화 피해 확대일로
중화학공업화에 몰두하고 있는 제3세계도 대기오염에 대한 산성화 피해에서 예외는 아니다. 최소 15개의 제3세계 국가들이 당장의 혹은 잠재적인 산성오염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중공 인도 브라질 멕시코 한국이다.
매년 1천2백만t의 이산화황을 배출해 세계3위를 기록하고 있는 중공은 제3세계에서 산성오염의 위협이 특히 큰 나라이다. 북부의 도시에서는 겨울철 안개낀 날이 이미 보편화돼있다. 만성적 심장이나 폐질환으로 조기 사망하는 사람의 수는 연간 6천명을 헤아린다. 상해에는 지난 81년부터 산성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북경에도 약한 산성비가 보고된 바 있다. 남부지방은 토양과 물이 산성에 취약한데 특히 양자강 남부는 전반적으로 산성화되었다.
60년대 초반 이래 이산화황 배출량이 3배가 된 인도의 캘커타 봄베이 델리 등지에선 대기오염이 상당히 심각하다. 특히 석유정제공장 주변에 위치한 '타지마할'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있다.
대부분의 브라질 도시에서 대기오염은 일상화되었다. 남동부지역은 특히 심한데 동부 상파울로의 토양은 매우(pH 3.7~4.7) 산성화되었다. '큐바타오'는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라고 할 만한 데 33개의 공장이 처리장치 없이 오염물을 내뿜고 있다. 물고기 나무 야생동물이 죽어가고 있으며 사람도 건강장해를 입고 있다.
멕시코시티의 대기오염은 악명높다. 시야를 3~4블록으로 좁히는 갈색의 스모그 속에 하루동안 숨쉬면 담배 두 갑을 피우는 것과 같다고 한다. 북부의 동제련공장들도 큰 오염원이 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산성비에 대한 경고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즉 서울시내에 pH 4.0이하의 강한 산성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인데, 최근에 발표된 85년의 빗물의 산성도에 관한 KAIST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 전체 지역에 내리는 빗물은 77.4%가 pH 5이하의 산성비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피해의 다양한 실태에 대해서는 조사가 전무한 실정이다. 또 정부당국은 학자들의 조사결과를 불신하는 태도를 위해 뚜렷한 산성화 대책은 입안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