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패스트2백56KS램 개발기술은 1MD램 양산체제를 갖출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는 과학기술용어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반도체이다. 웬만한 첨단가전제품의 광고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반도체는 과학기술계의 스타인 셈이다.
반도체는 스타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있다. 극소 극미의 세계를 추구하는 기술수준, 거대한 투자규모, 타산업에 미치는 영향력 등. 특히 손톱만한 칩 위에 수억개의 회로를 인각시키는 것은 기술의 극한을 이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나라의 첨단기술 수준, 산업발달 수준을 반도체라는 하나의 자로 재는 것이 가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이테크의 대명사인 컴퓨터도 반도체의 외피에 불과한 것이다.
메모리분야가 반도체산업을 선도
최근 1MD램급 패스트(Fast)2백56KS 램을 개발한 금성반도체의 김창수박사를 만나 반도체에 관련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반도체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 이미 대중화돼있지만 이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습니다.
"반도체는 원래 전기를 잘 통하는 물질인 도체와 그렇지않은 부도체의 중간적인 성질을 띠는 물질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런 물리적 특성을 나타내는 용어가 요즘와서는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IC(Integrated Circuit, 집적회로)부품 전반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읍니다.
반도체이론은 3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 1848년 미국의 벨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를 발명하면서 20세기의 주역으로 등장했읍니다. 그 응용은 라디오에서 부터 출발,컴퓨터에 본격적으로 쓰이면서 수십-수백만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오늘날의 VLSI(초대규모 집적회로)급 반도체에 이르게 되었읍니다.
-반도체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지 않습니까?
"산업 전반에 활용되니까 아무래도 종류가 많지요. 용도, 기능, 제조공정 등에 따른 다양한 분류방법이 있읍니다. 알기쉽게 분류해본다면 메모리IC, 컴퓨터의 CPU(중앙처리장치)를 하나의 칩에 집적해놓은 마이크로프로세서, 로직(Logic)IC, 산업분야에 주로 쓰이는 리니어IC, 통신용IC, 특수한 용도의 회로를 사용자의 주문에 의해 만드는 ASIC(Application Specific IC) 등으로 나눌 수 있읍니다.
이중에서도 반도체산업을 선도해나가는것이 메모리IC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개발된 2백56KD램, 1M롬, 2백56KS램 등이 모두 VLSI급 메모리 IC이지요."
차근차근하게 진행되는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메모리용 반도체도 롬(ROM, Read Only Memory)과 램(RAM, Random Access Memory)으로 구별된다. 롬은 일단 정보를 기억시키면 다시 바꿀 수 없는 기억전용소자로 사전과 같은 기능을 한다. 이에 비해 램은 기억된 정보를 지우고 새로운 정보를 기억시킬 수 있다.
또한 램은 S(Static)램과 D(Dynamic)램으로 구별된다. D램은 짧은 시간 내에 재충전을 해주지 않으면 기억내용이 유지되지 않으며 이에 비해 S램은 재충전을 해주지 않아도 일정기간 동안 기억이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
앞의 숫자는 집적도를 나타낸다. 즉 64K(64×10³)의 다음 단계는 2백56K이며 2백56K의 다음 단계는 1M(1×${10}^{6}$), 4M 등으로 진행된다.
S램은 D램에 비해 특수용도에 쓰이므로 시장수요는 적지만 정보처리속도가 빠르고 재충전 없이도 기억이 일정기간 동안 유지 되므로 D램 제조보다는 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예를들면 2백56KS램을 만든 기술이 있다면 D램에서는 1M급 제조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결국 우리나라도 2백56KS램개발로 메가시대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지난9월 삼성반도체통신이 2백56KS램을 개발한데 이어 금성반도체가 한자전용 1M롬, 패스트2백56KS램 개발에 성공했으니까 명실상부한 메가시대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지요."
패스트 2백56KS램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개발된 2백56KS램보다 정보처리속도가 빠르고 칩크기가 작아 고부가가치 제품이라는 것이 김박사의 설명이다.
이 제품의 정보처리속도는 45나노초(1나노초는 10억분의 1초)로 1초 동안에 2천2백20만개의 데이타를 처리할 수 있다. 일본 '후지츠'나 '도시바'의 것보다 2배 이상의 속도를 가지며 미국 '모토롤라'의 45~70나노초보다도 우수하다는 것.
1.2마이크론(1천분의 1mm)의 회로선폭에 신문 2페이지에 해당하는 3만2천자의 정보를 기억처리할 수 있는 이 제품의 가격은 개당 70~1백달러선으로 기존의 2백56KS램보다 2배 정도 비싼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좁혀지는 미·일과의 기술격차
-우리나라의 반도체기술수준을 미국 일본과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64KD램의 경우 미국 일본과 3~4년 이상의 격차를 가졌다면 2백56KD램은 1~2년의 격차, 1MD램의 경우 1년 미만, 업계가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4MD램에서는 거의 동일한 시기에 양산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는 누가 먼저 개발했느냐는 것보다 제품을 개발, 체계적인 양산체제를 갖추었느냐는 것으로 기준하는 것입니다."
- 우리나라 반도체기술은 단순 조립가공에서만 일정 수준에 도달해있고 핵심기술인 마스크제작이나 설계에서 낙후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 현재 반도체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70년대 중반 반도체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보면 맨뒷자리는 카메라를 멘 일본사람들 차지였읍니다. 발표가 진행되면서 설계도가 스크린에 나타나면 카메라후레쉬 터지는 소리가 동시에 들리곤했지요. 그러나 80년대 전반에는 일본사람들은 찾아볼 수가 없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일을 대신했다고 볼 수 있읍니다.
이를 두고 욕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러나 앞으로는 다를 것입니다. 뒷자리에서 카메라로 찍어대는 입장에서 앞에 나가 발표하는 입장이 되어야지요. 지금이 바로 그런 도약시기입니다. 그럴만한 역량도 어느 정도 갖추었으니까요. 그렇다고 10년도 안되는 국내 반도체 생산역사가 하루아침에 40년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과 일본을 따라잡았다는 망상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포함, 우리나라의 반도체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모두가 '간이 부었다'고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김박사이지만 그의 말 속에는 겸손과 자신감이 적절히 어울어져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반도체업계는 일본업계의 덤핑공세로 한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비판적인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도 2~3년 전에는 MD램 개발이 쉽게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읍니다. 제가 84년 초 처음 귀국했을 때 우리가 미국 일본에 좀더 나은 조건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읍니다. 다만 한가지 엔지니어들의 재질과 열성만은 대단했읍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쉽게 이를 극복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되는 것을 어떡합니까. 모든 공을 엔지니어들과 수율(yield)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린 근로자들에게 돌려야지요. 그렇다고 전혀 외적인 조건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산업 전반의 발전이 밑거름이 되었고 정부의 반도체 육성정책, 대학에서의 인력양성 등이 하모니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읍니다.
그리고 삼성반도체통신이나 현대전자가 엄청난 출혈을 감수하면서 범용 IC인 D램에 집중투자한 공적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그로 인해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면에서 주문형IC(ASIC)나 특수용도의 S램에 치중해왔던 금성측으로서는 덕을 많이 본 셈입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앞으로의 반도체산업 특히 메모리분야에서는 이제까지의 출혈과는 반대로 우리나라의 역할은 점점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1MD램 양산체제 갖춰
-금성측이 게이트어레이나 스탠다드셀 등 시장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주문형IC에 치중해온 결과 대형시장인 D램분야에서 앞으로 상당기간 고전하지는 않을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별차이가 없고 D램쪽도 이제까지 준비를 해왔으니까요. 즉 패스트2백56KS램 개발은 웨이퍼가공 등 전공정의 핵심기술을 확보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번 패스트2백56KS램 제조기술은 곧1MD램 양산기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주문형IC쪽에 치중해온 결과, 얻어진 성과를 나름대로 평가함을 잊지 않는다.
"처음 저희가 사용자의 주문을 받을 때 주문해오는 것을 보면 그것이 오락용 게임기기든지 퍼스널컴퓨터든지 통신기기든지간에 외국에서 개발된 제품을 들고와 이와 똑같은 기능을 가지는 제품을 요구해오는 정도에 그쳤었지요. 그러나 요즘은 나름대로의 이러이러한 기능을 가지는 제품을 원한다는 것이지요. 요구의 형태가 명확합니다. 처음에는 뚜렷한 목적의식 없는 모방에서 이제는 나름대로의 제품개발 방향이 뚜렷해진 것이지요."
'길고 어두운 터널'이야말로 한국의 반도체산업을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터널의 출구를 바라보면서 밝게 빛나는 햇살이 스며듬을 확인하기까지 그 방향을 이끌고 왔던 선두그룹의 일원이었던 그가,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남들이 겪지 못한 내심의 갈등이 많았으리라 예상된다.
-어떤 계기로 귀국하게 됐읍니까?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에서 뭔가를 하며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는 차치하고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국내에 돌아오기 직전에 다녔던 회사가 'DEC컴퓨터'였는데 저는 엔지니어의 역할과 매니지먼트를 동시에 수행하는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었읍니다. 제가 커다란 실수만 안한다면 평생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였지요. 그러나 그렇게 긴장감없이 지내는 것이 최선책은 아니잖습니까. 84년초에 제가 귀국했을 때 국내의 반도체산업은 걸음마단계였고 앞에는 짙은 안개가 깔려, 쉽게 자신을 갖고 덤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읍니다.
미지의 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보겠다는 욕심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곳이 제가 태어나 대학까지 마쳤던 조국이었으니까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읍니다.
물을 만난 물고기
-국내외를 망라해서 반도체분야에 종사하는 우리의 인재들은 어느 정도입니까?
"사실 반도체부문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역사가 짧아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저의 선배되는분으로 미국'벨랩'(Bell Laboratory)에서 활동하시는 강대원박사 같은 분이 초창기멤버지요. 70년대 말에 국내 반도체산업에 기여해보고자 귀국한 분이 몇분 계셨는데 그당시 국내 반도체산업 상황이 너무나도 불투명해 거의 실패하고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시기에 귀국한 저는 행운아인 셈이지요. 지금은 상당수의 사람들이 학계 업계에 들어오고 있읍니다. 자체에서 양성한 인재들도 어느 정도 되고요."
-전공을 전자공학으로 선택하게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읍니까?
"저는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1회 졸업생입니다. 처음 생긴 과여서 그런지 인기도 있어 선택했는데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읍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갔다오는 동안 몇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전자병기에 관한 일이었읍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 유학가서 전자공학 그중에서도 반도체를 공부하게 됐읍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이렇게 주장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일을 시작하면 가장 빠르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반도체산업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미국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제가 귀국할 때 이런 충고를 하더군요. 귀국해서 처음 3년을 잘 견디라고요. 그래서 저는 미국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없애고 왔읍니다. 지금이 만 3년을 지나는 시기입니다. 이제부터 저도 뭔가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셈이지요.
3년 동안 업계에서 엔지니어의 역할과 매니지먼트의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반도체 산업이 미국 일본에 비해 결정적으로 뒤지는 것은 경영방식이라는 결론을 내렸읍니다. 예를들면 생산계획관리나 원자재조달재고파악 등이 모두 주먹구구식이라는 것이지요. 요새 흔히들 이야기하는 MIS(경영 정보 시스템)가 실제 현장에서 활용되지 않으면, 갈수록 어려워지는 국제경쟁력을 이겨낼 수 없읍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사업하는 법을 배워야겠지요."
'마법의 돌' '산업의 쌀' 로 불리는 반도체. 미국이 일본에 정상의 자리를 넘겨주었듯이 그 자리를 적어도 메모리분야에서는 우리도 한번 서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결의를 다지는 김박사. 그의 도전적기질이 우리나라 반도체역사에 반드시 의미있는 자취를 남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IMD램, 4MD램 등 계속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키는 노력이 개인의 노력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탄생된 스타를 국제무대에 내놓아 더욱더 그 빛을 발하게 하는데 그의 역할은 무척 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