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새콤한 열대과일 파인애플에 피보나치 수열이 숨어있다는 거 알고 있나요?
이국적인 풍미가 살아있는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으면서
식물 속에 담겨있는 패턴의 비밀을 알아봅시다. 입안의 바캉스~!
하지만 애타게 저를 기다리는 맛수학 팬 여러분을 실망시킬 수 없으니 얌전히 파인애플 볶음밥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습니다. 오늘 요리엔 어떤 수학이 담겨있냐고요? 그럼 메인 재료인 파인애플을 함께 살펴볼까요?
파인애플 껍질에 등장하는 피보나치 수열
피보나치 수열은 이탈리아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의 이름을 딴 수열입니다.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처럼 두 개의 1로 시작해서 연이은 두 수를 더해 다음 항을 만드는 수열이죠.
피보나치의 이름을 따르긴 했지만, 피보나치 수열을 처음 생각해낸 건 피보나치가 아니에요. 피보나치 수열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건 기원전 5세기 인도 수학자 핑갈라의 책에서였고, 그 전부터 쓰였을 가능성이 높죠. 하지만 피보나치가 자신의 책 ‘산술의 서’ 12장에서 토끼 번식에 관한 문제로 피보나치 수를 설명하면서 유명세를 타서 피보나치 수열이라 불리게 된 거랍니다.
피보나치 수열은 매우 간단하지만 수학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기하학, 대수학, 정수론 등 다양한 수학 분야에서 쓰일 뿐 아니라, 자연 속에서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해바라기, 솔방울, 나뭇가지 배열, 수벌의 가계도 등 자연의 모습이나 식물의 생장을 설명할 때 피보나치 수열은 빼놓을 수 없죠. 파인애플 역시 그 예시 중 하나입니다. 식물이 자라나는 패턴을 수학적으로 분석한다니, 흥미롭지 않나요? 먼저 파인애플 껍질을 보며 피보나치 수열이 어떻게 숨어있는지 보고, 다른 패턴에 대해서도 알아볼게요.
파인애플 껍질은 육각형 알맹이들이 서로 다른 3종류의 나선 방향으로 얽혀 이뤄져 있습니다. 피보나치 수열은 이 나선의 개수에서 찾을 수 있어요. 같은 방향의 나선의 수가 꼭 5, 8, 13, 21 같은 피보나치 수가 되거든요. 아래 그림을 보세요. 전체 껍질을 펼쳤을 때, 같은 육각형 알맹이를 기준으로 ❶번 방향 나선은 5줄이 나오고, ❷번 방향 나선은 8줄, ❸번 방향 나선은 13줄이 나옵니다.
이런 특징은 다른 식물에서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솔방울 역시 나선으로 이뤄져 있는데, 각 방향을 따라 생성된 나선의 개수는 대부분 연속한 피보나치 수고, 해바라기 씨의 나선도 피보나치 수를 따르죠.
식물의 나선뿐만 아니라 꽃잎의 수나 잎사귀의 배열에서도 피보나치 수열을 발견할 수 있어요. 식물의 줄기에 붙어있는 잎의 배열을 살펴봅시다. 한 줄기의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잎사귀에서 관찰을 시작하죠. 첫 번째 잎에서 시작해 줄기를 기준으로 회전하며 올라가 이 잎사귀와 완전히 똑같은 방향에 있는 잎사귀를 찾을 때까지 개수를 세는 겁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같은 방향에 있는 잎사귀에 도착할 때까지 회전한 횟수가 피보나치 수가 되고 이 두 잎 사이의 잎사귀 개수 역시 피보나치 수가 됩니다! 특히 야자수에서 이와 같은 피보나치 수열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❶번 잎사귀와 같은 방향에 있는
❾번 잎사귀가 나오기까지 5번의 피보나치 수의
나선을 갖고, ❶번과 ❾번 사이의 잎사귀 개수도 8장으로 피보나치 수다.
식물의 생장 비밀을 파헤쳐라!
이 정도면 식물들이 그야말로 피보나치 수열을 바탕으로 자라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식물 생장의 비밀을 찾기 위해 수학자, 식물학자 등 많은 사람이 연구를 해오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결론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식물의 씨앗을 고르게 배열하기 위한 최적의 분포가 피보나치 수열을 따르기 때문일 거라 추측하고 있지요. 너무 중앙에만 몰려 있거나 가장자리로 갈수록 듬성듬성해지면 생장과 번식에 효율적이지 못하니까요.
알프레드 포사멘티어 미국 뉴욕시립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와 잉그마 레만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 수학과 교수는 도서 ‘피보나치 넘버스’에서 “야자수 각각의 잎사귀가 차지하는 공간이 최대한 충분하고 빛을 많이 받게끔 하는 배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오랜 세대를 거치면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 아닐까”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들은 식물의 기하학적 배열에 대한 가장 ‘괄목할 만한 결과’로 1992년 발표한 프랑스 수리물리학자 스테판 두아디와 이브 쿠더의 논문을 꼽았죠.
두아디와 쿠더는 컴퓨터 모델링을 이용해 식물의 생장에 작용하는 이론을 발전시켰고, 피보나치 패턴과 관련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식물에 숨겨진 황금각(137.5˚)을 동역학으로 설명하기도 했어요. 이 결과는 식물학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식물의 배열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했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두아디와 쿠더 방정식’은 식물 생장 연구의 모형으로 쓰였습니다.
한 걸음 나아간 방정식 찾다
그런데 최근 두아디와 쿠더의 방정식을 보완한 새로운 방정식이 등장했습니다. 2019년 6월 스기야마 무네타카 일본 도쿄대학교 교수팀은 두아디와 쿠더의 방정식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식물까지 포함하는 변형된 방정식을 발표했습니다. 피보나치 수열을 따르지 않는 식물 종이 어떻게 배열 패턴을 나타내는지 알아낸 것이지요.
상산나무는 기존의 식물 생장 모델로는 배열 패턴을 만들지 못했던 식물입니다. 연구팀은 예외라고 여겨졌던 상산나무 역시 식물 생장 모형을 이용해 나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기존에 쓰이던 모형에 새로운 변수를 추가해 상산나무가 어떻게 자랄지 예측했습니다. 결과는 실제 상산나무의 모습과 일치했지요. 이 방정식은 상산나무 하나만이 아니라 상산나무와 비슷한 종류의 다른 식물에도 적용할 수 있답니다.
연구를 이끈 스기야마 교수는 “우리의 모형은 잎이 둘러서 나는 모든 주요 식물의 잎사귀 배열 패턴을 생성할 수 있다”며, “또한 다른 자연에서 나타나는 여러 종류의 패턴에도 잘 맞는다”고 새로운 방정식의 우수성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과제는 남아있습니다. 기하학적 계산을 통해 식물이 어떻게 자랄지 예상할 수는 있지만, 왜 그런 모양으로 자라는지는 여전히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식물들은 왜 피보나치 수열을 좋아하는 걸까요? 여러분도 가까이 있는 식물의 줄기를 관찰하며 한번 연구해보세요!
무작위로 자라는 것 같았던 식물들이 아주 정확한 규칙을 지키며 자라고 있었다니 놀랍지 않나요? 이런 환상적인 수학을 품은 파인애플로 만든 볶음밥도 여름 휴가처럼 환상적이었으면 좋겠는데, 여러분은 맛있게 만드셨나요?
편집자주
요리 실력이 어린 아이에 영원히 머물러서 ‘피터팍(피터팬+Park)’의 별명을 얻은 박 기자의 고군분투 요리 성장기. 연재가 끝날 때쯤 네버랜드 탈출 가능?!
참고자료
알프레드 포사멘티어, 잉그마 레만 ‘피보나치 넘버스’, Takaaki Yonekura ‘Mathematical model studies of the comprehensive generation of major and minor phyllotactic patterns in plants with a predominant focus on orixate phyllotax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