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학기부터 중학교 1학년 수학 시간이 확 달라진다! 선생님 목소리만 들리던 조용한 교실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왁자지껄 떠드는 시간으로 바뀐다. 팀을 짜서 과제를 수행하는 프로젝트 수업이 통계 단원에 도입되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모습일지 미리 엿보자.

교과목 중에 가장 중요한 과목을 꼽으라면 단연 수학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반면,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나 흥미는 매우 낮다. 왜 배우는지,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게 여러 설문조사를 통해서 밝혀졌다.
그래서 교육부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실생활에서 수학이 어디에 쓰이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중학교 1학년 2학기에 배우는 통계 수업을 팀을 짜서 과제를 해결하는 팀 프로젝트형으로 바꾼 것이다.
왜 하필 통계일까? 우리는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차가 막히지 않는지, 건강관리를 하려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데이터가 알려 주는 빅데이터 시대에 살고 있다(2016년 6월
호 특집 기사 참고).
이런 시대에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통계는 실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따라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 결정하는 통계적 사고는 필수다. 이런 통계적 사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기를 수 있다. 아직 혼자서 하기에는 버겁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하는 게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통계 수업은 어떻게 바뀔까? 3차시 정도는 기존처럼 교과서에 담긴 내용을 선생님으로부터 배운다. 나머지 5~8차시에는 팀원과 힘을 합쳐 과제를 해결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를 수행하게 될지 2007년부터 통계 단원을 팀 프로젝트로 진행해 온 대구 영남중 정승호 선생님의 수업을 통해 살짝 엿보자.

나도 이제 기자! 통계 기사 쓰기
방송 뉴스나 신문 기사에서 통계 그래프는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치를 일일이 알려주기보다 그래프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 중에는 그래프를 잘못 그린 것도 있고, 해석을 잘못한 것도 있다. 이렇게 틀린 기사를 찾아 기사를 다시 쓰거나, 통계청에서 자료를 다운받아 새로운 기사를 쓰는 수업이다.
신문 기사뿐만 아니라 통계를 주제로 설명문 쓰기도 할 수 있다. 화제인 빅데이터가 얼마나 중요한지, 통계를 제대로 모르고 사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등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다. 글쓰기는 수학 선생님보다 국어 선생님이 훨씬 더 지도를 잘하기 때문에 첫 번째 시간은 수학 선생님과, 두 번째 시간은 국어 선생님과 함께 수업한다.


토론왕을 뽑아라! 통계 토론대회
같은 자료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이런 특성을 살린 수업이 통계 토론대회다.
실제로 대구 영남중 학생들은 학생들의 체형 변화를 주제로 토론했다. 참고한 자료는 통계청에서 발표한
청소년 평균 키와 평균 몸무게로, 1983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조사한 값이다. 매년 평균 키와 몸무게
가 조금씩 늘어 15세 남학생은 20년 전보다 평균 키가 5.9cm, 평균 몸무게가 9.4kg 늘었다.
이 결과를 보고 A팀은 비만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주장했고, B팀은 균형 잡힌 체형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
했다. 그 근거로 A팀은 키에 비해 몸무게가 더 많이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B팀은 체질량지수를 따지면 오히려 저체중에서 정상체중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라면 끓일 때 스프를 먼저 넣어야 맛있다는 이야기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과연 실제로도 그럴까? 통계포스터 만들기는 생활 속에서 궁금한 주제를 잡아 조사하고 분석한 다음 포스터를 만들어 발표하는 프로젝트다.
실제로 대구 영남중 학생들은 라면에 얽힌 속설을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했다. 물의 양, 조리 시간 등 다른 조건을 모두 같게 하고 스프와 면을 넣는 순서만 다르게 해서 라면을 끓였다. 그 결과 스프를 먼저 넣은 라면이 맛있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그런데 스프를 빨리 넣으면 끓는점이 높아지고 면발이 상대적으로 덜 익어 쫄깃해진다. 이게 원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가지 실험을 더 했다. 스프를 먼저 넣은 라면을 더 오래 끓인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도 스프를 먼저 넣은 쪽이 더 맛있었다.
한편, 통계포스터 만들기에서 가장 신중해야 할 부분은 설문조사 문항이다. 예를 들어 중학생 수면시간과 키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려고 한다. 그런데 고작 최근 3일 동안의 평균 수면시간을 묻는다면 과연 적절할까? 이는 적절치 않다. 시험기간이라서 다른 때보다 잠을 적게 잤거나, 아파서 다른 때보다 잠을 더 잤다면 올바른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프를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질문에 따라 그려야 할 그래프가 달라진다. 만약 운동선수의 기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고 싶다면 꺾은선 그래프, 어떤 기록이 가장 많이 나왔는지 알고 싶다면 막대그래프를 그려야 적절하다.



‘페르미 추정’은 기초 지식과 논리적인 추론만으로 짧은 시간 안에 문제의 답을 추정하는 방법이다. 정확한 답을 구하기보다는 대략적인 값을 구한다.
대구 영남중 학생들은 대구에 주유소가 몇 개 있는지를 페르미 추정으로 알아봤다. 대구 인구가 몇 명인지, 가구당 자동차 수가 몇 대인지, 하루에 몇 대의 차가 주유를 하는지, 주유소의 하루 매출이 얼마인지 등을 바탕으로 추정했다. 그 결과 대구에 주유소가 369.8개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실제 주유소 개수도 369개로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학생들은 이 외에도 하루에 팔리는 휴대전화 수, 하루 사이에 전국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컵의 수, 골프공의 구멍 수, 새 볼펜으로 그릴 수 있는 선분의 수 등을 페르미 추정으로 구해봤다.

바뀌는 수학 수업 이것이 궁금하다!
그런데 팀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수학의 흥미를 느끼게 하겠다는 교육부의 발표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고 있다. 입시 제도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수업이 이뤄질지, 수업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따라갈 수 있을지, 무임승차와 같은 부작용은 없을지 우려한 것이다. 이에 수학동아가 대표로 궁금한 질문을 대신 물었다.
Q 학생들이 팀 프로젝트 수업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조별 수업을 많이 해서 이런 수업이 낯설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문제 해결 능력도 뛰어나고, 각자 재능을 살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Q 무임승차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든 과제를 수업 시간에 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과제를 수행평가로 내줬다면 학생들이 따로 만나야 하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정규수업 시간에 과제를 진행하면 설령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있더라도 교사가 지도할 수 있습니다.
또 통계 수업은 문제 풀이가 아니기 때문에 각자 재능을 발휘할 수 있어 다들 열심히 참여합니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통계 자료를 분석하거나 해석할 때 능력을 발휘합니다. 기발한 주제를 선정하고, 설문조사를 하는 일은 수학 실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개성이 뚜렷한 학생이 잘합니다. 통계포스터를 꾸미거나 신문 기사 작성, 토론하기는 그 분야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 실력을 발휘하지요.
Q 평가는 어떻게 합니까?
자유학기제에 시행되기 때문에 시험을 따로 보지는 않습니다. 팀 프로젝트에 대해 자기 평가(10%)와 팀원 평가(20%), 팀별 평가(20%), 교사 평가(50%)가 이뤄집니다. 자기 평가와 팀원 평가는 서술형으로 합니다. 예를 들면 “김 아무개는 주제를 선정할 때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냈고, 분석한 자료를 효과적으로 발표했습니다”처럼 평가합니다. 나머지 평가에 대해선 상, 중, 하로 점수를 매깁니다.
당장 2학기 수업부터 도입되는 통계 프로젝트 수업.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어떻게 이뤄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취지대로 이뤄져 수학 시간이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흘러나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