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분과 적분은 산소 같은 존재입니다. 미분과 적분이 없는 현대 문명은 떠올리기조차 힘듭니다. 내 주머니 속 스마트폰부터 명왕성을 지나간 탐사선까지 모두 미분과 적분이 없었으면 이 세상에 없었을 겁니다. 미분과 적분의 역사는 멀리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는 흔히 미분부터 배우지만, 먼저 세상에 나온 건 적분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기하학의 시대였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이 자신이 세운 아카데미의 정문에 ‘기하를 모르는 자, 이곳에 들어오지 말라’고 새길 정도였죠. 도형의 넓이와 부피, 기울기를 정확히 구하는 방법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삼각형이나 사각형같이 반듯한 모양의 다각형은 어렵지 않게 방법을 찾았지만, 원이나 타원처럼 휘어진 모양이 문제였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휘어진 도형을 다각형으로 나눠, 넓이와 부피를 구했습니다. 이 방법으로 구의 부피가 반지름과 높이가 같은 원기둥 부피의 3분의 2라는 걸 증명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π$와 √3 같은 무리수의 근삿값도 구해냈습니다.
도형을 작은 부분으로 나누고 다시 합쳐 넓이와 부피를 구해냈다는 점에서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은 적분과 닮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극한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적분의 짝꿍, 미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20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환상의 파트너
미분은 곡선 위의 한 점을 지나는 접선의 기울기를 구하는 과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보통 기울기는 두 점을 지나는 선분을 그려 구합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도형을 잘게 쪼개 계산했듯이, 16세기 수학자들은 구하고자 하는 점과 ‘매우 가까운’ 한 점을 택해 기울기를 구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둘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거리가 0에 수렴하기 때문에 계산이 쉽지 않았습니다. 수학자들의 노력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곡선을 움직이는 점의 자취로 생각하는 수학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접선은 순간적인 움직임이며 기울기는 그 순간의 속도라는 생각이었죠. 도로 위의 자동차를 떠올려 봅시다. 자동차의 속도는 계속 변합니다. 길도 막히고 가끔은 신호등 앞에서 서야 하기 때문이죠.
자동차가 달린 거리를 시간에 따라 그래프로 그려보면 곡선이 나옵니다. 이 그래프 위의 한 점을 지나는 접선의 기울기는 그 순간 자동차의 속도와 같습니다. 이 속도를 구하는 과정이 바로 미분입니다. 그럼 반대로 자동차의 속도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어떨까요? 시간-속도 그래프에서 그래프 아래 면적을 모두 더하면 자동차가 달린 거리가 나옵니다. 이건 적분입니다. 미분과 적분이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덧셈을 거꾸로 하면 뺄셈이 나오고 곱셈을 뒤집으면 나눗셈이 나옵니다. 수학적으로 이런 사이를 역연산 관계라고 합니다. 역연산은 계산한 값을 계산하기 전 상태로 되돌리는 과정을 말합니다. 덧셈을 지우려면 빼면 되고, 나눗셈을 취소하려면 곱하면 됩니다. 미분과 적분 사이도 바로 역연산 관계입니다. 복잡한 모양의 넓이를 구하는 적분과 접선의 기울기를 구하는 미분이 하나로 만난다는 뜻입니다. 수학기호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고, 이를 ‘미적분학의 기본 정리’라고 합니다.

미적분, 누가 원조야?
미분과 적분이 환상의 파트너라는 걸 처음 깨달은 사람은 영국의 뉴턴과 독일의 라이프니츠입니다. 한 발 앞선 건 뉴턴이었습니다. 뉴턴은 1665~1666년 미분과 적분이 역연산 관계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유율법’이라는 형태로 미적분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발견을 세상에 널리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라이프니츠는 뉴턴보다 발견은 늦었지만 발표는 빨랐습니다. 1673~1675년에 ‘미적분학 기본정리’를 발표했고 1684년에는 미분을, 1686년에는 적분을 발견했다고 세상에 알렸습니다. 반면 뉴턴은 1704년에 이르러서야 유율법을 사람들 앞에 선보였습니다.
라이프니츠의 발견이 먼저 세상에 나오자, 원조 논쟁이 불붙었습니다. 뉴턴을 지지하는 영국의 수학자들과 라이프니츠를 옹호하는 유럽 대륙의 수학자들은 오랫동안 서로 비난하기 바빴습니다. 미적분학 연구가 중단될 정도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뉴턴과 라이프니츠 모두 박수를 받을 만합니다. 뉴턴이 먼저 미적분학 기본정리를 알아내고, 미적분학을 정리한 점은 분명합니다. 특히 뉴턴은 물리학에 미적분을 도입했습니다. 덕분에 인류는 수학의 언어로 우주를 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라이프니츠가 미분과 적분을 세상에 처음 선보인 사람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미분과 적분을 쉽게 쓰는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미분과 적분의 기호 대부분이 라이프니츠의 작품입니다. 훨씬 복잡한 뉴턴의 유율법은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았습니다.
미분과 적분의 발견은 수학은 물론이고 인류문명의 방향을 바꿔놓았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움직이고 변화하는 현상을 어려워했습니다. 수학자들도 멈춰 있는 대상만을 연구했죠. 하지만 우주의 거의 모든 것은 움직이고 변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는 내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미적분학이 태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수학자와 과학자가 움직임을 다루기 시작한 겁니다. 지구에 다가오는 혜성, 메르스 같은 전염병, 매일 오르내리는 주식시장까지…. 수학이 다루는 주제가 무궁무진해졌습니다. 계산에 쓰이는 시간도 훨씬 짧아졌습니다. 고대의 수학자가 평생에 걸쳐 구하던 호의 길이나 타원의 넓이를 이젠 고등학생 정도면 쉽게 계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조상님은 치킨을 먹지 못했다!
신라의 수도 경주가 ‘계림(鷄林)’으로 불렸을 만큼 한반도에서는 오래전부터 닭을 키워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님은 치킨을 먹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림’의 닭과 치킨의 닭이 전혀 다른 종류이기 때문이죠.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만 해도 300종이 넘는 재래닭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재래닭은 사실상 멸종했습니다. 그 빈 자리를 채운 건 레그혼, 뉴햄프셔 같은 외국 닭이었죠. 재래닭은 몸에 근육이 많고 지방이 적어 튀기면 질겨집니다. 조상님들이 백숙처럼 물에 푹 삶아 먹는 방식을 택한 이유죠. 반면 기름기가 많은 외국닭은 튀기면 연하고 고소해집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치킨의 ‘바로 그 맛’이죠.
어찌 보면 아픈 역사지만, 치킨은 이제 한국의 음식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튀긴 닭을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닭강정이 대표적이죠. 미적분학과 만나면서 과학의 주제가 훨씬 다양해졌듯이 한식과 만나면서 치킨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8가지의 공식과 음식을 만났습니다. 딱딱하기만 한 수학공식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쉽게 다가갔길 바랄 뿐입니다. 고독한 미식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수학의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끝난 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날 날을 그리며 인사 드립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