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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벌컥! 벌컥!’ 얼음물로 더운 속을 달래 보지만 영 시원치 않네요. 아! 평양냉면 한 그릇이 절실합니다. 시원한 육수와 함께 구수한 면발을 넘기다 보면, 온 몸에 딱 달라붙어 있던 더위와도 어느새 이별이죠. 수학공식 중에도 ‘확 풀어 주는’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근의 공식’입니다.


방정식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에 살았던 바빌로니아인들은 정사각형을 이용해 2차방정식을 풀었습니다. ‘x’같은 기호를 쓰진 않았지만, 제곱꼴을 이용해 해를 구하는 방법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인도 그리고 중국에도 비슷한 풀이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더 높은 차원의 방정식을 풀기까지는 기나긴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수학 대결을 위한 비장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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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탈리아의 초상. 가난과 장애를 극복한 굳은 의지가 느껴집니다.

16세기 유럽의 수학자는 승부사였습니다. 마치 격투기처럼 수학 문제로 결투를 벌였죠. 얼마나 치열했던지 ‘수학승부’가 진짜 몸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잦았습니다. 승자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지만, 패자는 야유 속에 살아가야 했습니다. 타르탈리아(말더듬이)라고 불린, 이탈리아의 수학자 니콜로 폰타나는 영광과 야유 모두 겪은 경우입니다.

타르탈리아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습니다. 고향에 침입한 프랑스군의 손에 아버지를 잃고 자신도 턱이 쪼개지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극적으로 살아남았지만, 평생 말을 더듬는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종이를 살 돈이 없어 묘지 비석을 공책 삼아 공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가난에 시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와 가난이 타르탈리아의 수학적 재능을 꺾지는 못햇습니다. 타르탈리아는 번역된 고대 그리스 수학책의 오류를 잡아내고, 최고 수준의 산술서를 쓸 만큼 훌륭한 수학자로 성장했습니다.

1535년 어느날 타르탈리아에게 베네치아의 젊은 수학자 안토니오 피오르가 도전장을 내밉니다. 피오르가 제시한 대결 종목은 3차방정식 풀기. 피오르는 이길 자신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스승인 델 페로가 남겨준 ‘비장의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죠.

1500년대 초 페로는 이미 2차항이 없는 삼차방정식을 푸는 ‘근의 공식’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페로는 이 발견을 비밀로 간직합니다. 수학 대결에서 상대를 제압할 비장의 무기로 쓸 생각이었죠. 결국 페로는 죽기 직전에야 피오레에게 자신의 비밀공식을 전해 줍니다. 그런데 한 수학자가 삼차방정식을 풀 수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는 소문이 피오레의 귀에 들려옵니다. 바로 타르탈리아였습니다. 스승이 유언으로 남긴 ‘비밀의 공식’을 떠돌이 수학자가 알고 있다니, 피오레 입장에선 기가 찼죠.

피오레는 자신만이 알고 있던 3차방정식 서른 문제로 승부를 겁니다. 그러나 타르탈리아는 너무 쉽게 모든 문제를 풀어버렸고, 승부는 타르탈리아의 압승으로 끝납니다. 사실 타르탈리아는 2차항이 없는 삼차방정식은 물론, 1차항이 없는 삼차방정식의 근의 공식까지 밝혀낸 상황이었습니다. 피오레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던 셈이죠.


절대반지를 도둑맞다

승리의 비법을 알려 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지만 타르탈리아는 결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타르탈리아에게 근의 공식이란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자신만의 절대반지였죠. 하지만 한 번의 실수가 그를 파멸로 이끕니다.

1539년 의사이자 수학자였던 지롤라모 카르다노가 근의 공식을 배우고자 타르탈리아를 찾아옵니다. 타르탈리아는 당연히 거절했지만, 카르다노의 끈질긴 설득이 시작됩니다. 달콤한 말은 물론, 비밀을 지키겠다고 신 앞에서 맹세하기까지 했죠. 결국 타르탈리아는 ‘절대 입밖에 내지 말라’는 거듭된 당부와 함께, 자신의 절대반지를 카르다노에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맹세는 깨졌습니다. 1545년 카르다노는 3차방정식의 풀이법을 담은 책 <;아르스 마그나(위대한 계산법)>;를 발표합니다. 분노한 타르탈리아는 카르다노를 표절혐의로 고소했지만, 절대반지는 이미 그의 손을 떠난 뒤였습니다. 카르다노는 자기 대신 제자 로도비코 페라리를 앞세웠습니다. 페라리는 카르다노가 페로의 다른 제자 나베에게서 근의 공식을 배웠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타르탈리아가 페로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비난했습니다.

마침내 1548년 8월 10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타르탈리아와 페라리의 결투가 벌어집니다. 결과는 타르탈리아의 참패였습니다. 사실 페라리는 4차방정식 근의 공식을 밝혀낼 정도로 스승을 뛰어넘는 실력자였습니다. 타르탈리아는 갖은 수모를 겪고, 학교에서도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그는 끝내 명예를 되찾지 못하고, 카르다노를 저주하며 쓸쓸히 삶을 마감합니다. 세월이 흘러 카르다노의 비겁한 행동이 드러났지만, 근의 공식은 이미 ‘카르다노의 공식’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페로, 타르탈리아, 페라리의 이름은 그 후로도 들어가지 않았죠.

카르다노가 아이디어를 훔치기만 한 건 아닙니다. 카르다노와 페라리는 페로와 타르탈리아의 공식을 발전시켜 일반적인 3차방정식(ax³+bx²+cx+d=0)을 푸는 근의 공식을 최초로 구해 냈습니다. 특히 카르다노는 근호(‘√’)를 이용해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의 근의 공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전까지의 근의 공식은 한 편의 시처럼 쓰여 있었죠.


허수 근도 문제 없어

카르다노의 공식은 단순한 풀이법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예를 들어 ‘더하면, 4가 되고 곱하면 8이 되는 두 수’라는 문장을 떠올려 봅시다. 카르다노 이전까지는 정육면체를 그려가며 문제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그림으로도 이 문제는 풀 수가 없습니다. 답이 실제로는 만지거나 볼 수 없는 허수이기 때문이죠.

근호로 이뤄진 근의 공식을 쓰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예제를 기호로 나타내면 x²-4x+ 8=0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2차방정식이 나옵니다. 이제 근의 공식을 적용하면
라는 답이 나옵니다. 곱해서 음수가 되는 숫자
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허수를 사용하면 어떤 2차방정식도 문제 없습니다.

카르다노도 허수를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허수로 나온 답을 ‘쓸모없는 경우’로 치부했죠.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수학자들은 실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갈증을 허수로 해결해냅니다. 오늘날 수학과 물리학에서 허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미식가의 조건, 평양냉면

16세기 실력 있는 수학자의 조건이 ‘근의 공식을 아느냐’였듯이, 오늘날 한국의 미식가의 조건은 평양냉면입니다. 맛집 좀 다닌다고 해도 평양냉면을 즐기지 않는다면, 하수로 평가받고는 합니다.

평양냉면의 첫 번째 매력은 메밀면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고깃집 냉면의 면발은 글루텐이 많은 고구마전분으로 만들어 쫄깃쫄깃합니다. 반면 글루텐이 거의 없는 메밀로 만든 평양냉면 면발은 쉽게 툭툭 끊어집니다. ‘국수라면 쫄깃해야지!’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메밀면만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습니다. 평양냉면을 즐기다 보면, 다른 냉면의 질겅질겅한 식감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고기국물과 동치미를 섞어 차게 만든 육수 역시 평양냉면만의 독특한 맛을 이끌어냅니다. 시큼하고 달짝지근한 고깃집 냉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아무 맛이 나지 않을 정도로, 평양냉면 육수는 순수하거나 혹은 밍밍한 맛이 납니다. 하지만 역시 꾸준히 먹다 보면, 그 쨍한 맛에 중독되기 시작합니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신비롭고 순수한 맛을 간직한 평양냉면으로 올 여름 더위를 풀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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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수학동아 정보

  • 이한기 수학동아 기자dryhea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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