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눈은 기본, 감성의 눈까지 기른다
A. 종자식물의 번식 기관. 모양과 색이 다양하며 꽃받침과 꽃잎, 암술과 수술로 이뤄져 있다. - 백과사전
B. 이는 먼 / 해와 달의 속삭임 / 비밀한 울음 / 한 번만의 어느 날의 / 아픈 피 흘림 - 박두진의 ‘꽃’ 중 일부
A와 B는 모두 ‘꽃’ 에 대한 표현이다. A가 과학적 표현이라면 B는 문학적 표현이다. 같은 사물을 볼 때 과학은 이성의 눈을 하고 있다. 문학에서는 감성의 눈이 중요하다. 물론 과학에도 가설을 세우기 위해 상상력이 필요하다. 문학도 감성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 이성이 필요하다. 문학과 과학은 다른 듯 닮았다.
울산대 과학영재교육원에는 문학과 과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주제탐방’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첫 번째로 다루는 주제가 바로 ‘문학과 과학’ 이다. 영재교육원에서는 매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쓴 글 하나를 학생에게 소개한다. 학생들은 글을 읽고 해당 주제와 관련 있는 자료를 찾아 연구한 뒤, A4 2장 정도의 보고서를 쓴다.
문학과 과학을 비교하는 연구는 학생들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학교나 학원 어디서도 둘을 비교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딱히 정해진 보고서 형식도 없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창의성이 발휘된다. 주제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 보고서를 쓰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결과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바다’를 예로 든 학생은 먼저 문학 작품에 나오는 바다의 이미지를 분석했다. 문학에서 바다는 어머니의 포용성이나 생명력으로 자주 표현된다. 과학에서 바다는 지구의 기후를 움직이는 역할에 주목한다. 바다를 보는 눈과 표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출발은 서로 비슷하다.지구의 기후를 움직이는 힘이나 사람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포용성 모두 바다의 거대함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7월의 주제인 ‘에이즈’ 라는 질병은 생물학적인 지식 외에도 사회나 경제 문제로 넓혀서 생각하게 만든다.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할 만큼 과학이 발전했지만, 개발된 성과를 활용하기 힘든 후진국에서는 여전히 에이즈 환자가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뿐 아니라 사회·경제 문제까지 함께 보는 눈이필요한 이유다. 미래의 과학영재는 단순히 과학을 잘하는 학생에 그쳐선 안 된다. 인문이나 예술 그리고 사회경제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이해한 것은 글을 통해 조리 있게 표현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울산대 과학영재교육원에는‘STEAM+W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을 융합한 STEM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예술(Art)를 더해 STEAM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STEAM+W 교육은 여기에 글쓰기(Writing)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축제에서 과학을 나누는 훈련
“직선길과 곡선길이 있습니다. 두 길에서 테니스공을 굴리면 어느 길에서 더 빨리 굴러갈까요?”
유니폼을 입은 중학생의 질문에 울산과학문화축제 현장을 찾은 사람들의 의견이 나눠진다. 공이 출발하는 지점에서 도착하는 지점까지 가장 짧은 거리는 직선이다. 하지만 실험을 해보면 공은 곡선길에서 더 빨리 굴러간다.‘사이클로이드’라는 곡선의 성질 때문이다. 중력을 따라 움직이는 물체는 사이클로이드 위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울산대 과학영재교육원 중학수학반 학생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울산에서는 해마다 과학을 체험하며 즐기는 과학문화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에서 영재교육원 학생들은 축제를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축제를 직접 운영한다. 자신이 배운 내용을 시민들에게 나누는 것이다. 과학 지식은 혼자 알고 있기보다, 표현하고 나눌 때에 진정한 지식이 될 수 있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소개한 수학반 학생 옆에는 암석의 종류와 특성을 설명하는 지구환경과학반 학생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과학은 나누는 것’ 이라는 가르침은 영재교육원 학생에게 지극히 자연스럽다. 울산대 과학영재교육원은 울산 지역의 여러 과학 관련기관과 함께 과학을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재교육원에 과학기술 분야의 명사를 초청하더라도 강연은 울산대와 시청 대강당에서 두 차례 진행한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시청에서도 강연을 펼치는 식이다. 이처럼 다양한 과학 행사를 통해 해마다 2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과학문화를 체험한다.
친환경 울산 만들기
울산은 자동차나 배를 만드는 산업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앞으로는 친환경도시로 더 잘 알려질지 모른다. 올해 울산대에서는 미래의 친환경도시 울산을 창의성 있게 표현하는 창의탐구대회가 열렸다. 지역의 필요와 특성에 맞춘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우유갑과 요구르트병, 과자박스 등을 활용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재활용품은 태양 빛에서 전기를 만드는 태양전지, 바람의 힘을 이용하는 풍력발전소, 사람의 힘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장치 등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재활용품과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한 결과 산과 바다가 푸르고 깨끗하게 된 모습이 바닥에 그려졌다. 학생들의 생각은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작품 속에 나타난 친환경도시 울산의 꿈은 하루하루 앞당겨지고 있다.
미니 인터뷰
영재에게 나눔을 가르친다
안녕하세요. 울산대 과학영재교육원 한성홍 원장입니다. 물리학에서 좋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물리학과 교수이기도 합니다. 저는 2002년 울산대에 영재교육원이 생긴 때부터 지금까지 원장을 맡으며과학계의 인재를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에 진학할 때 잘 나가는 과에 가지 않고 사범대를 선택했어요.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부터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품어 왔습니다. 학생은 공부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자신만의 아이디어도 맘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하죠. 일찍부터 ‘창의성 교육’ 을 강조한 이유랍니다. 이것을 위해 강사들에게 열정을 심어 주고,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과학이 과학자를 위한 학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임을 전하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섰습니다. 울산에있는 과학문화단체 7개를 하나로 모은‘울산과학문화협의회’의 초대회장을 맡으면서 다양한 과학문화 행사를 열고 있답니다. 일반 시민뿐 아니라 장애우와 같이 소외된 이웃에게도 찾아가 과학의 즐거움을 알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과학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을 나누는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울산대학교 과학영재교육원
울산대 과학영재교육원은 올해 초등 과학반과 중학 수학반, 물리반, 화학반, 생명과학반, 지구환경과학반, 정보과학반에 속한 239명의 학생이 교육받고 있다. 학생들은 영재교육원에 있는 동안 주제탐방과제를 비롯해 현장견학 기록과 각종 대회 참가 기록, 자연현상 관찰 기록, 실험연구 기록 등 창의적인 결과물을 스스로 정리하고 그 성취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작성한다. 지도교수는 면담을 통해 포트폴리오의 모든 것을 지도한다. 울산대 과학영재교육원은 2003년부터 실시된 영재교육기관 운영평가에서 꾸준히 ‘A등급’ 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