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2011 프로야구’의 막이 올랐다. 녹색의 다이아몬드 구장에서 한 명의 타자가 9명의 수비수를 공격하는 야구. 관중들은 통쾌한 *홈런 한 방에 열광하고, 멋진 수비에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 *커브와 *너클볼로 무장한 *투수와 *장타를 노릴지 *번트를 대야 할지 고민하는 *타자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시간이 갈수록 열기와 흥미를 더한다. 여기에 감독들의 피 말리는 작전이 더해져 훌륭한 경기를 선보이고 1점대 *방어율, 4할에 가까운 *타율, *완봉승 등 별별 기록들이 탄생해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직 1승을 위하여
야구 경기는 대부분 긴장감과 속도감이 넘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글러브’ 속 경기에서는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영화 ‘글러브’의 주인공은 청각장애를 가진 달랑 10명으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의 야구부 선수들. 야구부는 고교생으로 구성돼 있지만, 실력은 평범한 중학교 야구부와 겨뤄 겨우 지지 않을 정도다. 또한 보통의 야구 선수들은 야구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를 듣고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가늠하지만, 청각장애를 가진 이 선수들은 이것도 불가능하고, 말도 할 줄 모르니 팀플레이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에겐 꿈이 있다. 전국대회에서 단 1승이라도 거두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이 팀에게 놀라운 일이 생긴다. 오직 야구에 대한 열망으로 최다 연승,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며 최우수선수(MVP) 상을 3년 연속 수상한 대한민국 천재 투수 김상남 선수가 코치로 부임한 것. 그는 언젠가부터 초심을 잃고 슬럼프에 빠진 나머지 음주와 폭행을 일삼아 경찰서를 드나드는 신세가 됐다. 결국 야구징계위원회가 열렸고 퇴출 위기에 놓인 김 선수는 망가진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매니저 철수 손에 이끌려 청각장애 야구부 코치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생겼다. 오합지졸 그 자체였던 이 야구부가 단 몇 개월의 연습 끝에 봉황대기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엄청난 기적의 비밀은 사실 봉황대기 경기 시스템에 있다. 봉황대기는 40년 전통 전국 규모의 고교 야구대회인데, 전국의 모든 고교 팀이 아무런 제한 없이 출전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예선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출전하는 모든 팀이 본선에 진출하기 때문에 충주성심학교 야구부도 가능했던 것이다!
친절한 야구 용어 설명
*타자 야구에서 배트를 가지고 타석에서 공을 치는 선수를 말한다. 타자는 공격하는 편의 선수다.
*투수 야구에서 경기장 중앙에 위치한 마운드에서 상대편 타자가 칠 공을 포수에게 던지는 선수를 말한다. 투수는 수비하는 편의 선수다.
*홈런 타자가 친 공이 외야 펜스를 넘어가거나 타자가 홈베이스(포수가 있는 자리)로 들어올 수 있는 안타를 말한다.
*커브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 가까이에 와서 변화하면서 갑자기 꺾이는 것 또는 그런 공을 말한다.
*너클볼 투수가 손가락을 공의 표면에 세워 던지는 변화구를 말한다. 공은 거의 회전하지 않고, 타자 앞에서 급히 떨어진다.
*장타 타자가 한 번에 이루 이상으로 나갈 수 있는 안타를 말한다.
*번트 타자가 배트에 공을 가볍게 맞추어 가까운 거리에 떨어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방어율 투수가 한 경기에서 허용하는 점수의 평균적인 수치를 말한다. 이는 투수의 자책점의 합을 던진 횟수로 나눠 9를 곱한 값이다.
*타율 타격율과 같은 말로, 타자가 친 안타의 수를 타격한 횟수로 나눈 백분율을 말한다.
*완봉승 투수가 상대 팀에게 득점을 허용하지 않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를 말한다.
*탈삼진 투수가 타자를 삼진으로 아웃시키는 것을 말한다.
봉황대기의 비밀, 토너먼트
지난해 ‘제40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의 경우 이기는 팀들끼리 매번 새롭게 대진표를 추첨해 18일 동안 본선 경기가 열렸다. 지난해 봉황대기 야구대회의 대진표를 살펴보며 봉황대기의 비밀을 자세히 알아보자.
보통 스포츠 경기의 진행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토너먼트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리그전 방식이다. 먼저 토너먼트 방식을 설명하면, 일정한 대진에 의해 승리한 팀(사람)만이 그 다음 회전으로 올라가 마지막에 두 팀(사람)이 우승을 겨루는 방식이다. 대진표를 보면 봉황대기는 1회전부터 토너먼트 방식으로 열린 것을 알 수 있다. 토너먼트 방식은 경기가 거듭될수록 경기 수가 줄어들어 우승팀을 빨리 정할 수있고, 지면 바로 탈락하기 때문에 매 경기가 치열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그렇다면 복잡한 대진표를 어떻게 작성할까?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할 경우, 만약 전체 참가팀 수가 ${2}^{n}$ 꼴이면 1회전에서 참가팀의절반이 탈락하고, 2회전에서 남은 팀의 절반이 다시 탈락하며, 이 같은 상황이 결승전까지 반복되므로 대진표 작성이 의외로 간단하다. 하지만 전국 53개 팀이 참가한 지난해 봉황대기 야구대회는 2n 꼴로 나타낼 수없다. 이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가능하면 2회전부터는 경기 팀 수가 2n 꼴이 되도록 1회전에서 부전승팀을 정한다. 부전승팀은 11팀(25 <; 53 <; 26, 26-53=11)이 된다. 즉 11개의 부전승 팀은 2회전으로 바로 올라가고, 남은 42개의 팀 중에서 서로 경기를 통해 1회전에서 승리한 21개 팀이 2회전으로 올라간다. 그러면 2회전의 경기 팀이 32팀(=2/5=11팀(부전승)+21팀(1회전 승리팀))이 되므로, 2회전부터는 편리하게 대진표를 짤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공정한 추첨을 통해 이뤄진다.
야구대회의 전체 일정을 잡기 위해 필요한 전체 경기 수는 간단히 구할 수 있다. 만약 전체 참가팀이 n팀이면, 총 (n-1)번의 경기가 열린다. 예를 들어 전체 참가팀이 64(=26)팀이면, 총63(=32+16+8+4+2+1)번의 경기를 한다. 만약 전체 참가팀 수가 2n 꼴이 아니어도, 전체 경기수는 동일하게 (n-1)번이다. 예를 들어 53개의 팀이 참가했을 때 부전승 11팀의 경기를 제외하면 52(=21+16+8+4+2+1)번의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봉황대기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어느 팀에게든지 열려 있는 마음씨 넉넉한 대회였고, 매년 흥미진진한 결과와 고교 야구 스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해부터는 고교야구 주말리그의 출범으로 이 대회는 폐지됐다. 다행히 봉황대기라는 명칭은 고교야구대회 대신 ‘봉황대기 전국 사회인 클럽 야구대회’로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홀수 팀은 리그전 어떻게 벌일까?
토너먼트 방식에서는 매번 실력 순서에 따라 준결승, 결승까지 진출한다고 보긴 어렵다. 초반 경기에서 우승 후보를 만나면 실력발휘도 못하고 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실력이 부족해도 운 좋게 승승장구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영화 ‘글러브’에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가 1회전에서 우승후보인 군산상고 야구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소박한 꿈인 전국대회 1승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아니, 만약 봉황대기 경기 시스템이 토너먼트 방식이 아닌 리그전 방식만 됐어도, 영화는 더욱 흥미진진한 반전을 담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리그전 방식을 알아보자.
리그전 대진표는 참가 팀이 짝수인지 홀수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참가 팀이 짝수인 경우엔 빠짐없이 서로 한 번씩은 경기를 해야 하므로 어느 한 팀을 고정한 뒤, 나머지 팀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이동해 배치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또한 참가 팀이 홀수여도 걱정 뚝. 왜냐하면 가상의 팀(★)을 만들어 고정한 뒤,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팀을 이동해 대진표를 완성하면 된다. 이때 가상의 팀을 만나면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따라서 리그전 방식의 경우, 전체 경기 수는 참가 팀의 수와 상관없이 모두 n(n-1)/2 번의 경기를 한다.
프로야구 인기 비결은 리그전과 토너먼트의 합작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김상남 선수는 유망했던 투수 출신의 차명재 학생을 만나 잃었던 초심을 되찾게 된다. 결국 김 선수도 쿨하게 일본 프로야구 2군의 입단 테스트에 도전한다. 어라, 2군이라면 1군도 있다는 얘긴데…. 이 시점에 일본 야구 시스템이 살짝 궁금해진다. 뭐, 내친 김에 한·미·일 3개국의 야구 경기 시스템을 비교해 보자.
우선 미국 메이저리그의 경우, 아메리칸리그(14팀)와 내셔널리그(16팀)로 나눠져 있고, 각 리그는 다시 서부, 중부, 동부로 지역을 나눠 각 팀당 보통 162경기의 리그전을 한다. 각 리그에서는 플레이오프와 디비전시리즈(5선 3승제)를 거쳐 우승팀을 결정하고, 양대 리그의 우승팀끼리 꿈의 월드시리즈(7전 4승제)를 펼친다. 이때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단 한 번의 경기로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고, 몇 번의 시합에서 몇 승을 먼저 하는 팀이 이기는 시스템이다.
미국의 마이너리그 시스템은 메이저리그와 조금 다르다. 이는 구단마다 보통 ‘루키→싱글A→더블A→트리플A’와 같이 4단계로 세분화시켜 선수들의 실력에 맞게 훈련을 시키며 경기를 통해 능력이 있는 선수는 상위 리그로 진출한다. 이런 마이너리그 시스템은 배리 본즈, 새미 소사 등과 같은 뛰어난 선수를 배출하기도 했다.
‘추추트레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추신수 선수 역시 루키 단계부터 시작해 동양인 최초로 타자 부문에서 *20-20 클럽에 가입하며 클리블랜드의 중심타선으로 자리잡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추 선수가 실제로 충주청심학교 야구부 학생들과 야구도 하며 야구 배트를 선물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엔 산수(수학)경시대회 입상까지 한 그의 별명이 ‘산수’였다고 하니, 혹시 탄탄한 산수(또는 수학) 실력이 지금의 야구 실력을 뒷받침하진 않았을까.
한편, 영화 ‘글러브’ 속 김 선수가 선택한 일본의 경우는 퍼시픽리그(6팀), 센트럴리그(6팀)로 나눠 팀당 총 144경기의 리그를 한다. 여기서 가장 승률이 높은 팀이 정규 시즌의 우승 팀이 된다. 일본 프로야구는 미국의 마이너리그에 해당하는 2군이 따로 존재한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 또는 일본과 달리 총 8개 팀으로 운영된다.각 팀은 나머지 7개 팀과 19경기를 해 모두 133경기를 치른다. 이를 통해 1~4위 팀을 가려내고, 포스트시즌에서 준 플레이오프(3위 팀과 4위 팀의 5전 3선승제), 플레이오프(준 플레이오프의 승리 팀과 2위 팀의 5전 3선승제), 한국시리즈(플레이오프의 승리 팀과 1위 팀의 7전 4선승제)를 거쳐 그해 최고의 팀을 결정한다. 최근 프로야구의 인기 비결은 각 팀의 실력 상승 외에도 경기 시스템을 정규 리그와 토너먼트식 포스트시즌으로 나눠 운영한 덕분일 수 있다.
이처럼 각 나라에서 채택한 시스템은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각자에게 최대한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진화한 결과다. 그러나 모든 야구 시스템이 합리적일까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한다. 예를 들면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2004년부터 시작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국제야구대회)의 경우 1회전과 2회전 모두 승자는 승자끼리, 패자는 패자끼리 맞붙는 시스템으로 진행됐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열심히 싸워 1·2위 결정전까지 올라간 우리나라 선수들은 ‘패자부활전’ 시스템 때문에 5번이나 한·일전을 치렀다. 결국 일본에 우승컵을 내주게 돼 지금까지도 아쉬움이 남아 있다. 새로운 경기 운영 시스템으로 열릴 예정인 제3회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우리나라가 우승컵을 거머쥐길 기대해본다.
감동 있는 영화 ‘글러브’
영화 ‘글러브(Glove)’의 주인공 김상남 선수(정재영 역)는 충주성심학교 선수들에게 글러브의 공식(G+Love=Glove)을 가르쳐주며 자신의 사랑이 가득 담긴 마음을 전한다. 이런 점에서 영화 ‘글러브’는 야구 관련 지식에 해박하지 않아도 충분히 빠져 감동을 받는다. 특히 선수들의 훈련과정은 이내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울리기도 한다.
야구 경기는 최적의 야구 시스템을 통해 최고의 실력을 갖춘 팀을 공정하게 가려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호에 수학적으로 살펴본 최적의 야구 경기 시스템을 이해하며 영화의 감동을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