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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번성한 동물 사회의 비결은?

동물행동학자가 들려주는 동물은 왜?


 
사람은 현재 지구에서 가장 번성한 생물종이에요. 또한 개미를 포함한 사회성 곤충도 사람만큼이나 번성하고 있지요. 재미있게도 사람이나 사회성 곤충의 사회는 이타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그런데 동물에서 나타나는 이타행동은 대부분 나와 유전자를 공유한 친족을 대상으로 해요. 그렇다면 이타행동은 친족이 아닌 남남끼리에서도 가능할까요?

남에게도 피를 나눠 주는 흡혈박쥐


남남끼리의 이타행동에 대한 예는 뜻밖에도 흡혈박쥐에서 찾을 수 있어요. 흡혈박쥐는 잠자고 있는 사람을 공격하기도 해서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사실 대부분은 가축의 피를 주로 빨아 먹어요. 총 3종이 알려져 있는데, 모두 중남미에서만 발견돼요.

흡혈박쥐의 코는 굴곡이 심하고 복잡한데, 여기에 열에 민감한 적외선 탐지기가 있어요. 이를 이용해 주위의 온도보다 높은 체온을 가진 포유류나 새 등을 공격하지요. 먹잇감을 발견하면 천천히 접근해 날카로운 앞니로 상처를 내고 흘러나온 피를 혀로 핥아먹어요.

흡혈박쥐는 작고 에너지 소비가 심한 내온동물이기 때문에 매일 엄청난 양의 먹이를 먹어야 해요. 무려 몸무게의 60%나 되는 양을 매일 먹어야 하지요. 한번 듬뿍 피를 흡입하면 60시간 정도는 식사 없이 살 수 있지만, 이틀 연속 사냥에 실패한다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요.

사냥에 실패해 굶주린 흡혈박쥐는 주위의 다른 박쥐에게 구걸을 해요. 만약 다른 박쥐가 구걸에 응하면 피를 토해 구걸하는 박쥐를 먹이지요. 피를 얻어먹은 박쥐는 하루 더 살 수 있어요. 박쥐가 다른 박쥐에게 피를 나눠 주는 이유는 나도 언젠가 사냥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럴 경우 내가 피를 나눠 주었던 흡혈박쥐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흡혈박쥐들은 이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식량 부족의 위기를 해결하는 거예요.

흡혈박쥐는 보통 한 무리에서 몇 년 동안이나 같이 살아가기 때문에 주변에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살아요. 그러므로 피를 나눠 주는 이타행동이 나의 친족을 돕기 위한 결과일 수도 있지요.

미국 메릴랜드대 윌킨슨 교수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타행동을 하는 박쥐끼리의 혈연관계를 연구했어요. 그 결과 이타행동을 주고받는 개체들이 서로 혈연으로 연결돼 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남남인 경우도 있었어요. 후속 연구를 통해 친족 관계보다는 과거에 피를 나눠 준 경험 때문에 박쥐가 피를 나눠 주는 것으로 나타났지요.

남남끼리도 도움을 주고받는 호혜 이타주의

남남끼리의 이타행동은 흔히 ‘협동’으로 알려져 있어요. 협동 이론은 1971년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 교수가 ‘호혜 이타주의’를 이용해 처음 제시했어요. 호혜 이타주의란 간단히 말하면 ‘네가 도와 주면 나도 도와 준다’는 이론이에요. 한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마을 단위로 농사일과 집안일을 서로 돕는 교환노동이 발달했어요. 이것을 ‘품앗이’라 하는데, 일종의 호혜 이타주의에 해당해요.

품앗이에서 볼 수 있듯이 호혜 이타주의가 가장 잘 발달한 생물종은 사람이에요. 예를 들어 볼게요. 같은 반 학생들은 1년 간 함께 지내요. 만약 중간고사 때 내가 많이 준비하지 못했으면 주위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요. 나의 공부를 도와 주는 친구도 있고, 요청을 거절하는 친구도 있을 거예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중간고사를 치렀는데, 기말고사 때 나를 도왔던 친구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아마 거절하기 어려울 거예요. 반대로 중간고사 때 나의 요청을 거절했던 친구가 기말고사 때 도움을 요청하면 아마 쉽게 거절할 수 있겠지요.

호혜 이타주의는 게임 이론의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을 통해 이해할 수 있어요. 팃포탯 전략에서는 처음에는 협력하고,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의 바로 전 행동을 그대로 따라해요. 서로 가까이 지내면서 여러 번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집단에서 쓸 수 있지요. 팃포탯 전략을 쓰는 동물은 상대방에게 협력하거나 배반할 수 있어요. 만약 상대방이 내게 도움을 주면(협력) 나도 다음번에 도움을 주고, 상대방이 내게 도움을 주지 않으면(배반) 나도 다음번에 도움을 주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팃포탯 전략을 쉽게 풀이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전략은 다른 어떤 전략보다 협동을 이끌어내는 데 좋아요. 그 이유는 처벌과 관계 회복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에요. 상대방이 배반을 하면 나도 그 다음에 배반하기 때문에 이 전략을 따르지 않는 개체들을 처벌할 수 있어요. 또 상대방이 배반에서 협력으로 바꾸면 나도 그 다음에 바로 협력으로 보답하므로 관계회복이 쉽지요. 팃포탯 전략은 아주 간단한 행동 규칙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비혈연 이타주의는 팃포탯 전략에 바탕을 두고 있답니다.

인간의 감정도 호혜 이타주의 때문

트리버스 교수는 인간의 감정이 호혜 이타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해요. 예를 들어 우리는 남에게 도움을 받으면 감사를 느끼고 도움을 받은 상대에게 이를 되갚아 주려는 마음이 들어요. 한편 우리는 죄를 지으면 죄책감이나 부끄럼을 느껴요. 이런 감정은 잘못된 행동을 의식하고, 선의로 보상하게 만들지요. 또 우리는 죄책감이나 부끄럼을 느끼는 사람을 용서하기도 해요. 이런 감점은 손상된 관계를 회복하는 데 중요해요. 이처럼 인간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손익장부를 마음속에 기록해요. 그러다가 다음에 내가 받은 만큼 또는 당한 만큼 그대로 되돌려 주는 거예요.

한편 호혜 이타주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개체는 처벌을 받을 수 있어요.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이 복수의 형태로 처벌을 하고 있지요. 복수는 보통 억제의 효과가 있어요. 내게 해를 끼친 당사자에게 내가 당한 만큼 처벌을 해, 그 당사자가 다시는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거든요. 하지만 복수는 폭력의 순환을 가져오므로 진화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 이끌기도 해요.

그래서 인간은 복수보다 훨씬 효과적인 처벌 제도를 만들었어요. 우리는 해를 끼친 행동을 한 사람을 보면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마치 내가 피해를 입은 것처럼 그 사람을 처벌하려고 해요. 이것을 ‘제3자 처벌’이라 해요. 또 사기꾼과 같은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며 공격 행동을 하기도 해요. 이것을 ‘도덕적 공격성’이라 해요. 제3자 처벌이나 도덕적 공격성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호혜 이타주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여기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는 효과가 있어요. 사람에게는 흔하지만, 동물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답니다.

동물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살아남기에 유리한 행동만 하는 이기적 유전자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사람과 개미를 포함한 사회성 곤충은 이런 이기적 유전자에도 불구하고 이타주의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지요. 이것이 바로 이들 사회가 지구상에 번성하고 있는 이유랍니다.

※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동물은 왜’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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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8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장이권 교수
  • 진행

    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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