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름은 로마네스코 브로콜리! 나를 본 사람들은 모두 내 외모에 반하고 말지! 어때? 나 정말 아름답게 생기지 않았니? 호호~! 배추, 양파, 토마토, 파, 마늘, 호박… 등 많은 채소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나처럼 화려하고 예쁜 채소를 가장 좋아한다고~. 잠깐! 아까부터 커다란 양배추 녀석이 계속 내 주변을 맴도는데…. 너 왜 자꾸 귀찮게 따라다니는 거야?
로마네스코와 양배추는 친척!
“로마네스코! 나 기억 안 나? 우리 친척이잖아!”
엥? 이건 무슨 소리? 이렇게 둥그스름하고 심심하게 생긴 양배추가 내 친척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말하려는 찰나! 여기저기서 내 친척이라는 채소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어.
브로콜리, 케일, 콜라비의 조상은 야생 양배추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많은 채소들은 다양한 모습과 종류로 변했어요. 좋아하는 채소를 더 맛있게, 더 많이 먹기 위해 원하는 성질을 지닌 품종을 계속 개발했거든요. 평소 우리가 즐겨 먹는 양배추와 브로콜리도 이런 이유로 탄생한 채소 중 하나예요.
양배추의 조상은 기원전 2500년경부터 재배되던 야생 양배추로 알려져 있어요. 길쭉한 잎과 줄기가 달려 있고, 다 자라면 줄기 끝에 노란 꽃이 피는 식물이지요. 지금도 영국이나 프랑스에 있는 해안 절벽에서 자라고 있어요. 야생 양배추는 농사가 시작되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했어요. 사람들이 맛있는 채소를 얻기 위해서 잎이나 곁눈, 꽃, 줄기 등이 크게 발달한 품종들을 골라서 길렀거든요.
가장 먼저 변신에 성공한 건 양배추예요. 1200년대, 야생 양배추에서 줄기 끝에 달린 눈인 ‘끝눈’이 잘 발달하는 종을 골라 *교배 시키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그 결과 지금의 양배추가 탄생했지요. 이와 같은 원리로 케일은 잎, 브로콜리는 꽃과 줄기, 콜리플라워는 꽃무리, 콜라비는 줄기, 방울양배추는 줄기와 잎 사이에 나는 곁눈을 발달시켜 만들었답니다.
*교배 : 두 개체의 식물 사이에서 수정이 일어나는 것. 인공적인 교배는 주로 한 개체의 암술에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묻혀 수정시키는 방법을 쓴다.
더 작고 더 화려하게! 채소의 변신!
으…, 아니기를 바랐지만 양배추 녀석의 말이 사실이었어. 게다가 케일,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콜라비가 모두 내 친척이라니 맙소사! 충격에 휩싸인 내 앞에 갑자기 쪼그만 채소들이 잔뜩 나타났어.
“요즘엔 우리처럼 작은 채소가 인기 최고라는 사실, 몰라?”
한입에 쏙! 미니 채소들
원래 야생 토마토는 방울토마토처럼 크기가 작았어요. 하지만 1500년대 이후 사람들이 토마토를 먹기 시작하면서 더 큰 열매로 자라도록 만들었지요. 그러다가 1800년대 초, 페루와 칠레에서 야생 토마토와 비슷한 크기의 방울토마토를 다시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방울토마토를 재배한 건 1986년이에요.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생소한 방울토마토를 거의 사먹지 않았어요. 그러다 점차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1995년에는 방울토마토 재배 면적이 일반 토마토 재배 면적의 3배 이상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답니다.
토마토처럼 커졌다가 다시 작아진 채소가 또 있어요. 충남 보령시 농업기술센터 김영운 박사는 2004년에 전북 무안군에 있는 밭에서 우연히 작은 야생 참외를 발견했어요. 이 야생 참외를 우리가 평소 먹는 크고 달콤한 참외와 여러 번 교배해 중량이 10~15g밖에 안 나가면서도 달콤한 미니 참외로 개량했어요.
씨앗을 빽빽하게 심는 방법으로 미니 채소를 만들 수도 있어요. 경남 농업기술원에서는 방울토마토만큼 작은 양파를 개발했어요. 보통 양파는 100~300g이지만, 미니 양파는 5~20g이에요. 빨리 자라는 조생종 양파를 보통 양파를 심을 때보다 더 촘촘하게 심어서 미니 양파를 만들었지요.
경기도농업기술원 장석우 박사는 “갈수록 한 집에 사는 사람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양이 적고, 제때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미니 채소의 인기가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어요.
화려한 색과 모양으로 시선집중!
원래 야생 당근은 붉은색, 주황색, 보라색, 하얀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깔이에요. 이 중에 주황색 당근은 주황색을 나타내는 유전자만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 번 교배를 해도 주황색 당근만 열리지요. 반면 다른 색의 당근은 겉으로 보이는 색 말고도 다른 색깔의 유전자를 갖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보라색 당근끼리 교배하더라도 다양한 색깔의 당근이 열릴 수 있지요. 이런 이유 때문에 일정한 색깔만 열리는 주황색 당근이 널리 재배된 거예요.
그런데 최근 보라색 당근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제주농업기술원 연구실에도 야생 당근을 교배해 만든 보라색 미니 당근이 자라고 있지요. 이 당근은 색깔이 선명하고 예쁜데다가 크기가 작고 달콤해서 날로 먹기 좋아요. 또 다른 색깔 당근에는 없는 안토시아닌이 들어 있어요. 안토시아닌은 빨강, 보라, 파랑 등의 색깔을 띠는 색소로, 우리 몸이 늙는 것을 예방하는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답니다.
극한의 환경을 견딘 슈퍼 채소
헉! 나만큼 멋진 채소는 이 세상에 절대 없다고 생각했는데…. 색깔도, 모양도 화려한 채소들이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 이대로 가다가는 곧 내 인기가 사라지고 말거야~. 흑흑….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리네?
“멋진 채소가 되고 싶다면 우주로 떠나라~!”
우주여행 하면 슈퍼 채소 된다?
2006년 9월,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우주 육종 연구만을 위한 인공위성인 스젠 8호가 발사됐어요. 우주 육종이란, 종자나 식물을 우주로 보내 돌연변이 품종을 만드는 것을 말해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커다란 채소를 만들거나, 다양한 품종의 종자를 확보하기 위해 우주 육종을 하지요.
우주 육종 실험에 쓰이는 종자는 인공위성이나 유인우주선에 실려 지구 표면에서 200~400km 떨어진 우주로 날아가요. 우주에는 대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온도가 영하에서 영상으로 수백 도씩 변해요. 또한 높은 에너지를 가진 우주 방사선이 존재하고, 중력이 거의 없으며, 물질이 거의 없는 진공 상태와 같은 지구와 다른 환경이 펼쳐지지요.
이런 우주에서 5~16일 정도 비행한 종자는 이전과 다른 특성이 나타나는 변이가 일어나요. 실제 중국 과학자들이 우주에 다녀온 종자들을 분석한 결과, 약 12%의 유전자 구조가 달라진 사실을 알아냈어요. 이는 지구 환경에서 일어나는 변이의 수백 배에 달하지요.
그래서 우주에서 돌아온 종자나 식물을 지구에서 몇 대에 걸쳐 심으면 새로운 품종이 돼요. 중국에는 우주 육종으로 만들어진 식물의 품종만 800종이 넘는답니다.
꽉 끼는 옷 입고 예쁘게 변신!
작년 봄, 우리나라 대형 마트에 귀여운 모양의 오이가 등장했어요. 보통 오이는 단면이 동그란 모양이지만, 이 오이는 하트 모양, 별 모양이에요. 이렇게 예쁜 모양을 가진 비결은 꽉 끼는 옷을 입고 자랐기 때문이지요.
꽃이 진 자리에서 오이가 맺힌 뒤 어느 정도 자라면, 오이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틀을 끼워 줘요. 틀이 없었다면 동그랗게 자랐겠지만, 꽉 끼는 틀 속에서 자란 오이는 틀의 모양대로 자라지요. 네모 수박이나 하트 수박 등도 모두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채소랍니다.
방사선 쬐고 변신한 식물들
우주에 가지 않고도 방사선을 이용하면 짧은 시간 내에 돌연변이 종자를 만들 수도 있어요. 방사선은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입자나 전자기파를 말해요. 방사선은 아주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자나 식물에 방사선을 쪼이면 짧은 시간 안에 돌연변이 품종을 만들 수 있지요.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에는 방사선으로 육종 실험을 하는 방사선육종연구센터가 있어요. 연구센터에서는 주로 감마선을 이용해 종자나 식물에 변이를 일으켜요. 감마선은 인체뿐만 아니라 알루미늄, 납까지 투과할 수 있을 정도로 방사선 중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요. 연구센터에서는 ‘코발트-60’이라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감마선을 만들어 종자와 식물에 24시간 정도 쬐어줘요. 그리고 이 중에서 우수한 성질을 나타내는 개체를 선발해 교배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며 새로운 품종을 만들지요.
단백질이 풍부한 쌀, 빠른 시간에 많이 열리는 검은콩, 독특한 무늬를 가진 난 등 이 모두 방사선육종연구센터에서 개발된 품종이에요. 현재 연구센터에서는 영양 성분이 많이 들어 있고, 병충해에도 강한 고추 품종을 개발하고 있답니다.
슈퍼채소가 되기 위해 우주까지 가다니, 채소들의 노력이 대단하지? 이런 노력이 다 친구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라는 사실! 앞으로도 더 놀라운 모습으로 변신할 우리 채소들, 많이 사랑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