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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감동시킨 과학자 황우석교수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과학자

2004년 2월 13일, 세계 과학사에 한 획을 긋는 커다란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를 복제하
고 여기서 치료용 줄기세포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답니다. 이로 인해 전 세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줄기세포는 사람의 몸의 모든 세포로 성장할 수 있는 만능세포로서 당뇨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이 아직도 완전히 낫기 힘든 병을 치유할 수 있는중요한 세포랍니다. 그런데 이를 직접 만들어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던 거죠. 우리나라과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쾌거 중의 쾌거였답니다. 바로 이 연구의 중심에는 <;스타 과학자>;의 1회 주인공 황우석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황우석 교수

 


소를 너무 사랑하다 보니 과학자가 되었어요!

황우석 교수님은 줄기세포 연구에 앞서서 1999년 복제소‘영롱이’를 탄생시켜서 국민적 영웅이된 과학자입니다. 현재는 정부에서 24시간 경호를 할 정도로 나라에 중요한 인물로 대우받을 정도랍니다. 얼마 전엔 미국의 모 연구기관이 제시한 1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연구비 지원 제의를 거절해 진정한 국민과학자로 찬사를 받기도했죠. 그런데 이런 놀라운 업적을 이룬 교수님이과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의외로 아주소박하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교수님은 1953년 충남 부여의 한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촌에서 태어난 교수님에게 소는 어떤 동물보다도 친근하고 가까운 동물이었죠. 부모님을 대신해 소를 돌보던 교수님은 자연스레 소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습니다. 중학교 시절의 한 일화는 이런 애정을 뛰어넘어 소와의 평생 인연을 맺게 해주는 계기가 됩니다. 교수님은 중학생이 되자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여름방학을맞아 고향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마중을오셨고 인사를 드리던 어린 교수님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헐레벌떡 마중을 나온 어머니의 두 발목이 소에게 먹일 풀을 베다가 거머리에게 피를 빨린 상처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던 거죠. 그때 교수님은‘어머니가 이렇게 힘들게 소를 키우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함께‘ 국민들이 이렇게 힘들게 소를 키우지 않고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수의사가 되겠다는꿈을 가집니다.

 
소를 사랑하는 황우석박사

 
생명과학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줘야지!

어린 시절 키웠던 소에 대한 사랑은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교수님의 공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답니다. 소를 연구하는 수의학자들에겐 동물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그러기위해선 소의 몸에 손을 넣고 직접 내장을 만져봐야 하는‘직장 검사’를 해야 한답니다. 보통 학생으로선 끔찍해서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죠

하지만 교수님은 아무 거리낌 없이 직장 검사를 했답니다. 지금까지 수십 만 번은 했을 거라고 하니 정말 소를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일거예요. 교수님은 그 당시‘소를 알지 못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연구를 했다고 해요..

대학을 졸업한 후 교수님은 일본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셨습니다. 일본에서 교수님은 인공수정을 비롯한 다양한 가축번식 관련 기술을 손에 익히고 그때부터생명과학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동물 복제를 비롯한 생명과학이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과 함께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이란 걸 깨닫고 어린 시절 가졌던‘모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게 하는 일을 하겠다’라는 꿈과 일치되는 일을 찾으신 거죠.

1986년 서울대 교수가 된 후 그 생각을 하나 둘 실천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소의 직장검사
하늘을 감동시켜 보자!

교수님의 실험실은 고생 많이 하기로‘악명’이 높았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그만큼 연구에 몰두했단 이야기죠. 지금이야 엄청난 연구 성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많은 관심과 지원을 보여주고 있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답니다. 복제소‘영롱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지원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고 해요.
하지만 교수님은 학생들과 꿋꿋이 연구를 진행했답니다. 이틀 밤을 꼬박 새면서 연구하는게 예사였고 많은 학생들이 중간에 쓰러질 정도였지요. 게다가 실험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올 때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해요. 생명을 다루는 과학이 그만큼 민감하고 어려웠기 때문이죠. 어쩌면 생명 과학의 목표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낼 수 없는 곳에 놓여 있을 지도 모르는일이니까요.

그러나 교수님의 연구실은‘그렇다면 하늘이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더욱 더 열심히 연구에 매달렸대요. 그 결과 결국 복제소 영롱이와 줄기세포라는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결실을 얻어냈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을 몸소 실현한 셈이죠.


10년 뒤 노벨상을 받는 제자가 나왔으면

이렇게 힘들게 연구하고 고생하는 만큼 교수님의 실험실은 마치 가족 같은 분위기가 흘러 넘친답니다. 일년 내내 같이 먹고 자고 하니 정말 가족과 다름이 없죠. 같이 연구에 동참한 제자들은 현재 전 세계로 진출해 생명공학계의 권위자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교수님이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창조물은 이제는 우리 과학의 희망이 된 제자들일 수도 있답니다.
교수님의 앞으로의 가장 큰 꿈도‘10년 뒤에 박사님의 제자가 생명과학 연구로 노벨상을 받는 것’이라고 해요. 교수님을 지금의 스타 과학자로 만든 데는 연구 성과의 힘도 컸지만, 그 바탕은 제자를 사랑하는 인간미와 생명공학에 대한 애정이었답니다.
교수님은 평소 자신의 연구 성과보다는 일반인, 특히 미래에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어린 학생들에게 과학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말씀하신답니다. 가끔씩 연구실을 불쑥 찾아오는 어린 학생들을 마다 않고 직접 만나 생명과학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주는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죠. 교수님 자신이 어린시절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생명과학에 헌신한 것처럼 지금의 우리 어린이들도 과학의
의미와 보람을 깨닫길 간절히 바라고계신답니다.

 정보

  • 김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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