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Career] 마음 흔드는 가시화기술

KISTI 연구실 탐방 ➎ 가시화기술개발실

#1
우주를 여행한다. 성운을 두 개 지나자 그래픽 모양이 변한다. 허공에 격자 모양의 선이 생기고, 그 안에 두 개의 천체가 놓인다. 블랙홀이다. 두 블랙홀은 서로를 향해 점점 다가가는 중이다. 태극무늬를 그리듯 원을 이루며, 이들은 위태로운 충돌의 순간을 향해 간다. 격렬한 충격의 여운은 중력파로 우주 구석구석에 전해진다.

#2
지구 위 가장 큰 인공 건축물, 아랍에미리트의 부르즈 할리파. 이 건물이 지어지면서 두바이는 크게 변했다. 길이 바뀌고 도시도 변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변화도 있다. 다니던 길이 막힌 바람은 건물 주변에 작은 돌풍을 만든다. 이 바람을 컴퓨터가 계산해 내자, 모니터에 바람이 다니는 투명한 길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보는 게 대세다. 라디오도 ‘보이는 라디오’ 코너를 운영하고 텔레비전은 3차원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가상현실(VR)이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페이스북’ 등 SNS 역시 사진과 동영상이 주요 콘텐츠가 됐다.

복잡하고 정교한 계산이 필요한 과학과 공학 분야에도 최근 보여주는 기술 바람이 불고 있다. 데이터를 움직이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가시화기술’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가시화기술개발실은  선두다. 슈퍼컴퓨터의 강력한 계산 능력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어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위에 소개한 블랙홀 충돌 및 중력파 영상과 부르즈 할리파 영상도 가시화기술개발실에서 수 년전 완성한 작품들이다.


막대한 데이터, 슈퍼컴퓨터로 가시화해

가시화기술은 그저 눈에 보기 좋은 영상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보여줘 의사결정의 강력한 도구로 만드는 기술이다. 가시화기술개발실에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국방 과학연구소와 함께 한 연구를 보자. 항공기나 헬기 등 군용기가 날 때 주변에는 복잡한 공기 흐름이 만들진다. 이 흐름 중 일부는 항공기의 비행 효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연구를 통해 제어해야 한다. 문제는 공기가 유체라는 점. 유체의 움직임은 물리학 분야에서도 해석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처리할 데이터도 많고 계산식도 복잡하다. 실제 모형을 만들고 바람을 통과시켜 실험할 수 있지만(풍동실험)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대안으로 나온 게 컴퓨터로 실험하는 가상풍동 기술이다.

만약 이 기술로 얻은 자료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의 흐름, 요동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기체 전체를 시뮬레이션한 데이터가 크다는 점이다. 박수형 건국대 교수화 함께 한 헬리콥터 가시화의 경우, 데이터가 1.4테라바이트였다. 일반 PC로는 실시간으로 그릴 수 없다. 가시화기술개발실이 개발한 ‘글로브(GLOVE)’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 글로브는 대용량 데이터를 다양한 디스플레이 기기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최적화한 가시화 도구다. 분산, 병렬처리 기법을 써서 큰 데이터를 처리하며, 과학 수치 데이터에 최적화된 데이터 압축 기능을 써서 빠르고 효율적이다. ‘파라뷰(ParaView)’, ‘비지트(VisIt)’ 등 다른 상용 소프트웨어에 비해 약 2~9배 빠르다.

글로브의 또다른 장점은 PC는 물론, 최근 대중화하고 있는 몰입형 가상현실(VR) 기기 모두에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보는 수준을 넘어 가상현실로 ‘체험’하기 때문에 이해가 빠르고 의사결정에 큰 도움이 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표현할 수도 있어 항공기를 개발하는 사용자가 목적에 맞게 골라 사용할 수도 있다.
 


KISTI 가시화기술개발실에서 개발한 글로브(GLOVE)의 가시화 사례.
역동적인 움직임이 고스란히 보인다.

 

설명을 들어보니 문득 대학이나 기업 연구실에서 본 유체 움직임 영상이 떠올랐다. 자동차가 달릴 때 바람의 흐름을 보여주거나, 항공기 프로펠러가 돌 때의 공기 흐름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김민아 가시화기술개발실장은 “기체 일부분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가시화하는 건 PC로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항공기 전체를 시뮬레이션하면 식 자체가 복잡하고 데이터 양도 많기 때문에 이를 가시화할 때도 슈퍼컴퓨터를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시화기술개발실은 지난 8월부터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민, 군 융합 연구로 선박 가시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허영주 선임연구원은 “최근에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배 등 새로운 선박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박 역시 스크루 등 부분만 가시화한 연구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배 전체를 보여주는 경우는 드물다. 배는 특히 공기(기체)와 물(액체) 두 개의 유체를 다뤄야 해서 개발하기 더 까다롭다.

가시화기술의 수요는 점점 늘어날 예정이다. 최근 VR 열풍에서 알 수 있듯, 보고 체험하길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복잡하고 큰 데이터가 자꾸 만들어지는 공학,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슈퍼컴퓨터와 결합한 고급 가시화기술이 활약할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그러자면 연구기관이나 기업이 가진 거대 데이터의 공유가 필요하다. 공동연구가 늘어나야 할 이유다. 김민아 실장은 “반도체, 의료, 자동차, 원자력 등 가시화 기술을 활용할 분야는 많다”며 “앞으로 파급력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윤신영
기타 : [공동기획]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이미지 출처 : KISTI 가시화기술개발실

과학동아 2016년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