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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자연이라는 화가가 남긴 푸른색 팔레트

광물이야기 20 남동석(Azurite)과 공작석(Malachite)



예술가는 물감을 풀어 놓을 팔레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돌덩이 위에 진청색과 하늘색, 옅은 청색에서 진초록, 초록색 물감을 순서대로 풀었다. 사진 속 광물을 보면, 가장 아름다운 푸르름을 창조하
고자 했던 예술가의 열정과 탐구심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자연산 팔레트는 대표적인 탄산염 구리광물인 남동석과 공작석이 이뤄낸 작품이다. 청색 계열은 남동석, 초록 계열은 공작석이다. 남동석은 남색구리광을 내는 돌을 뜻하고, 공작석은 지난호에 소개한 것처럼 초록색 둥근 원형 밴드가 공작의 꼬리 깃 무늬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남동석의 영문 이름인 ‘아주라이트(Azurite)’는 푸른색을 뜻하는 ‘azure’에서, ‘공작석(Malachite)’은 아욱(Mallow)의 이파리 색깔인 초록색에서 유래했다.

인공 안료가 개발돼 대량으로 보급되기 전인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푸른색과 초록색을 표현하는 안료로 남동석과 공작석을 가장 선호했다. 그런데 사진 속 표본처럼 다양한 푸른색은 어떻게 빚어졌을까. 이는 화가의 손길이 아니라, 광물이 환경 조건에 따라 다른 광물로 변했거나, 풍화를 겪으면서 화학적인 조성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이동하는 자연의 법칙

남동석과 공작석은 수산화탄산구리 광물이라는 거의 유사한 화학 조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기에 노출된 상태에서는 공작석이 남동석보다 화학적으로 안정하다. 따라서 대기의 조건에 따라 남동석이 보다
안정된 상태인 공작석으로 변할 수 있다. 이 표본은 남동석이 공작석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남동석이 공작석으로 변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열과 습기, 공기 중 이산화탄소 구성 비중에 따라 나타나는 압력 차이다.
 


즉, 공기 중의 수분이 남동석에 흡수되면서 남동석에서 이산화탄소가 방출된다. 그 결과 남동석이 공작석으로 변하고, 색도 달라진다. 이런 변화는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백 년 이상에 걸쳐서 일어나고, 보관 조건이 잘 유지되면 변화를 막을 수도 있다. 실제 안정적인 공작석이 남동석에 비해 더 흔하기 때문에, 수집용 표본의 가치는 희소성과 함께 색상의 품격이 더 높아 보이는 남동석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광물과 명작에 남은 세월의 흔적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광물을 이용한 무기 안료를 많이 썼다. 특히 푸른색 안료로는 남동석과 청금석(라피스 라줄리, Lapis lazuli)을 즐겨 썼다. 짙은 하늘색의 청금석은 색상의 변화폭이 적고 값이 비싸지만, 남동석은 미묘한 색상 차이를 다양하게 줄 수 있기 때문에 회화에 더 많이 쓰였다.

당시 화가들은 그림에 생동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적 기법을 시도했는데, 프레스코화가 대표적이다. 석회 벽에 물감을 칠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고, 생생한 색상을 살릴 수 있는 안료도 제한적이었다. 화가들이 치밀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안료를 선택하고 그림을 그렸지만, 수백 년에 걸친 풍화에 의해 겪게 될 색상 변화는 예측할 수 없었다. 그 결과 현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이 풍화의 결과를 보며 원작을 되살리고 있다.

회화 작품을 복원할 때, 조건에 따라 어떤 작품은 대대적인 복원이 필요하지만, 변색이 거의 없는 것도 있다. 천재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가 그린 ‘왕좌에 앉아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및 성인들’에는 마리아의 짙은 남색 망토에 깨알처럼 찍혀 있는 공작석 반점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필자도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소장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남동석 안료의 색이 보존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물은 딱딱한 무기물이지만, 예술품의 작품성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또 광물의 물리 화학적 속성을 이해하면 예술품을 감상하는 깊이도 깊어진다.
 
글 : 이지섭 과학동아 director@naturehistory.com
에디터 : 최영준
이미지 출처 : 김인규, Public domain

과학동아 2016년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