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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매혹의 공생 생물, 지의류의 ‘버티는 삶’

이끼일까, 버섯일까. 지의류는 균류와 조류 또는 남세균이 함께 모여 태어난 생물이다. 지의류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사슴지의 속에 속하는 이 지의류들은 기둥 모양의 구조(자병)와 화려한 색의 끝(자기)이 두드러진다(일본 이바라키현 촬영).이끼일까, 버섯일까. 지의류는 균류와 조류 또는 남세균이 함께 모여 태어난 생물이다. 지의류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사슴지의 속에 속하는 이 지의류들은 기둥 모양의 구조(자병)와 화려한 색의 끝(자기)이 두드러진다(일본 이바라키현 촬영).
 
바위나 나무 위에, 마치 이끼나 곰팡이가 피듯 희끗희끗한 무엇인가가 덮여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런 모습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상당히 운이 좋다. 지구에서 가장 기묘하고 신비로우며 특이한 생물과 만났기 때문이다. 독특한 공생 생물인 ‘지의류’는 남극을 포함한 모든 육지에 살 정도로 강인한 생물이지만, 오염이 심해진 한반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다.
 

인천 경서동에 있는 국립생물자원관 표본수장고. 문광희 미생물자원과 환경연구관이 서랍에서 종이 봉투에 든 시료 하나를 꺼냈다. 얼른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돌조각이었다. 짙은 회색이었고, 표면에 흙이 조금 말라 붙어 있었다. 가까이 눈을 가져다 대도 특이한 점은 없었다. 표면에 묻은 흙이 계속 신경 쓰일 뿐이었다.

“이제 좀 다르게 보일 거예요.”

문 연구관이 현미경을 가리켰다. 돌조각을 제물대 위에 놓고 시야를 조정했다. 접안렌즈에는 ‘10배 확대’를 뜻하는 ‘10×’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아!”

렌즈에 눈을 가져가자마자 깜짝 놀라 탄성을 질렀다. 돌 거죽에 붙은 게 말라붙은 흙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현미경으로 보니 짙은 녹색과 검은색 점이 번갈아 밀집해 있었다. 분명히 생명체의 흔적이었다. “여기에도 생명이 있어요”라고 주장하는 듯 했다.

“처음 보실 거예요. 제주도에서 채집한 ‘지의류’ 표본이에요.”
 
문광희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이 채집한 지의류 시료를 관찰하고 있다.문광희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이 채집한 지의류 시료를 관찰하고 있다.


성서 속 비상식량, 루돌프의 도시락

지의류는 낯선 생물이다. 이름부터 낯설고 어색하다. 일상생활에서는 화제에 올릴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길가의 돌이나 나무 위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만큼 널리 퍼진 생물이기도 하다. 열대지방부터 극지까지, 바닷가부터 해발 8000m의 고지대까지 육지치고 지의류가 살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심지어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조차 살지 못하는 건조하고 추운 극지 한복판에서도 버젓이 살 수 있는 강인한 생물이 지의류다. 현재 약 3만 종 가까운 종이 알려져 있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한반도에도 1400~1500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표본을 담은 종이봉투에 적힌 글을 흘끔 보니 ‘치즈지의(Rhizocarpon) 속’에 속하는 지의류였다. 한라산 서쪽의 영실에서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등반 코스에서 2007년 채집했다. 지의류가 붙어 있는 어두운 색의 돌은 제주도에 흔한 화산암이었다.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바위 표면에, 마치 흙 알갱이처럼 달라 붙어 숨죽인 채 살아가는 작은 생명체. 이 작은 생명체에도 이름이 있고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기특했다.

“이미 지의류를 봤거나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다만 그게 지의류인지 모르고 있을 뿐이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문 연구관이 예를 들었다.

“대표적인 게 반찬으로 먹는 ‘석이’와 구약성서에도 나오는 ‘만나’예요.”

석이는 흔히 석이버섯이라고 부르는 검은 식품이다. 돌에 달라붙은 모양이 귀를 닮았다고 해서 석이(돌의 귀)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거의 대부분 버섯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석이는 석이지의(Umbilicaria)속에 속하는 지의류다. 만나는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여호와가 주신 양식’으로 묘사되는 음식이다. 접시지의(Lecanorales)과 지의의 일종이 만나의 실제 후보로 유력한데, 이 지의는 수분을 몸 안에 품으면 빵처럼 변한다. 이란과 아프리카 동북부에 주로 분포하고 있어,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을 그린 출애굽기의 배경과도 잘 어울린다.
주황단추지의 등 고착지의는 바위 표면에 독특한 무늬를 그린다(왼쪽, 전북 군산 촬영). 오른쪽은 긴뿌리손톱지의. (일본 홋카이도 촬영).주황단추지의 등 고착지의는 바위 표면에 독특한 무늬를 그린다(왼쪽, 전북 군산 촬영). 오른쪽은 긴뿌리손톱지의. (일본 홋카이도 촬영).


미생물이 미생물을 키워 먹는다?

지의류는 미생물인 균류(버섯, 곰팡이 등이 속한 분류군)에 속하는 생물이다. 이끼처럼 바위나 나무 위에 붙어 자라며 모양도 비슷한 것이 많아, 오해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지의류는 이끼와 완전히 다른 생물이다.

“심지어 위키백과에서도 혼동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실제로 한 번만 보고 나면 혼동할 수가 없어요. 식물인 이끼(선태류)는 세포 안에 엽록소가 있으니 녹색이 아주 진해요. 하지만 지의류는 회록색을 띠고 있어 차이가 크죠.”

지의류가 선명한 녹색을 띠지 않는 이유는 한 종류의 미생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의류는 엽록소를 가진 미세조류 혹은 남세균을 균류가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엽록소가 속에 감춰지니 색이 선명할 수 없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두 가지 미생물이 결합해 하나의 생물을 이루고 있다니. 만약 사람 몸 안에 늑대 세포가 함께 섞여 있다면 얼마나 이상할까.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까, 늑대라고 불러야 할까. 하지만 모든 지의류는 이렇게 다른 미생물이 섞여 존재하며, 이것이 지의류의 정의기도 하다. 더구나 지의류를 구성하는 미생물은 서로 ‘가문’이 완전히 구분될 정도로 거리가 멀다. 미세조류, 남세균과 균류는 사람과 식물 사이, 또는 사람과 박테리아 사이만큼이나 먼, 완전히 다른 생물들이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하나 더 생긴다. 이렇게 다른 두 미생물이 왜 굳이 서로 뭉쳤을까. 그냥 따로 살면 안될까. 이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대표적인 공생 관계다. 균류는 균사체를 만들어 조류나 남세균이 살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조류와 남세균은 광합성을 통해 영양 성분을 만든다. 영양 성분의 일부를 균류가 흡수함은 물론이다.

두 가지 미생물 중 ‘중심’ 또는 ‘주인’이 되는 것은 집을 만드는 균류다. 홍순규 극지연구소 극지생명과학 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지의류에 살고 있는 미세조류는 자연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있지만, 균류는 항상 조류와 공생체를 이룬 상태로만 발견된다”며 “균류의 필요에 의해 공생관계가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홍 박사는 버섯을 키워 먹는 개미에 비유해 설명했다. “일부 개미는 식물 잎을 가져다가 버섯을 키워 먹습니다. 사람도 가축을 키우고요. 공생관계지만 개미와 사람의 필요에 의해 발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균류도 미세조류를 키워서 영양분을 받아 먹는다고 보면, 균류가 중심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쉽죠.”

 
미스터리에 빠져 있는 지의의 진화

지의류는 이렇게 균류와 미세조류 혹은 남세균이 만나 ‘지의체’라는 독특한 형태의 몸체를 만든다. 사람들이 실제로 지의류와 마주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의체 덕분이다. 그런데 지의체는 지의류 종류에 따라 아주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나뭇잎 모양, 버섯 모양, 이끼 모양, 실 모양, 스폰지 모양, 비늘 모양, 점묘화의 점 모양, 산호 모양, 심지어 흰 종이에 검게 글자를 쓴 것 같은 형태도 있다. 색도 녹색 계통이 많지만, 노란색, 빨간색, 검은색, 흰색, 분홍색 등 다채롭고, 하나의 지의류 안에서 여러 색을 띠는 경우도 있다. 지의체는 일정한 패턴을 이루며 천천히 성장하고, 번식을 위해 생식기관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형태가 다양하다 보니 지의류 학자들은 이런 특징을 종합해 지의류를 분류한다. 기묘한 형태를 띠는 것도 많지만, 색이 예쁘거나 모양이 다른 생물을 연상시키는 것도 많다. 문 연구관은 생물의 이름은 그 특징을 연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데, 그래선지 지의류의 이름에는 유독 예쁜 게 많다. ‘얇은대롱사슴지의’, ‘꼬마붉은열매지의’, ‘깊은산박쥐김지의’, ‘밋밋한맨들지의’ 등 듣기만 해도 모양이 연상되는 귀여운 이름이다.

하지만 워낙 작고 복잡한데다 같은 종이라도 모양이 크게 다르기도 해 제대로 분류하기란 쉽지 않다. 문연구관은 “같은 지의류라도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성장 패턴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수십 년 이상 숙련된 분류학자가 아니면 다른 종으로 잘못 구분하기 딱 좋다”고 말했다.

지의류는 지구의 거의 모든 지역에 살고 있다. 극지에서도 살고 고산지역에서도 산다. 온도가 맞지 않거나 건조한 환경에서 지의류는 체내의 수분을 빠르게 배출해 열이나 동결 현상으로 지의체가 망가지는 것을 막는다. 스스로 반건조 상태가 돼 생명을 유지하는 ‘버티기’의 귀재인 셈이다.

지의류는 심지어 우주의 가혹한 환경까지 견딘다. 유럽우주국(ESA)은 2008년 2월부터 2009년 9월까지, 어떤 생명체가 진공과 초고온 혹은 초저온에 노출된 우주 환경에서 살아남을지 직접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생물 시료를 보내 실험했다. 시료는 1년 반 동안 우주정거장 밖에서 진공과 열, 우주 방사선을 쐰 뒤 지구에 돌아왔는데, 미생물, 씨앗, 균류, 지의류 등 지구에서 잘 죽지 않기로 소문난 다양한 생물이 다 포함돼 있었다. 실험 결과, 생존률이 가장 높은 생물이 지의류였다.

바위딱지지의속(Acarospora)에 속하는 지의 등 극히 일부 종이 생명 현상을 이어갔고, 스페인 산맥에서 채집한 붉은녹꽃잎지의(Xanthoria elegans)는 다른 어떤 귀환 생물보다 광합성 성공률이 높았다. 홍 박사는 “지의류는 ‘버티기 능력’에서는 최고”라며 “화성 녹화등을 꿈꾸는 우주생물학자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강의 ‘버티기’ 실력, 하지만 공해에는 취약해

지의류의 특징인 공생 관계는 역사가 매우 오래됐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발표된 중국 화석에 따르면, 약 6억 년 전 얕은 바다에서도 조류와 남세균, 균류가 뭉쳐 산, 지의류와 거의 유사한 생물이 존재했다. 육상에 생명이 존재하기 전에도 지의류와 같은 생활양식이 진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살았고, 극한 환경에 강한 천하의 지의류도 인류가 만든 공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문 연구관은 “한국 특히 도시 근처에서는 지의를 좀처럼 관찰하기 힘들다”며 “관찰할 수 있는 일부 지의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채 작고 기형적인 형태로 일그러져 있다”고 말했다. 문 연구관은 그 이유로 대기오염을 꼽았다. 실제로 일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기 중 아황산 농도가 직접적으로 매화나무지의 등 지의의 생장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 중 아황산 농도가 0.02ppm을 넘으면 매화나무지의는 아예 살지 못한다. 문 연구관은 특히 중국에서 편서풍을 타고 오는 오염물질이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짐작하고 있다. 일본도 열도를 세로로 가르는 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에 해당하는 동해 쪽 지역은 지의가 잘 자라지 못하고, 태평양 쪽을 향한 지역에서는 잘 자라고 있다.

지의는 인공적인 복원이 거의 불가능한 생물이다. 생장 속도가 아주 더디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지의류 전문가인 일본국립과학박물관 가시와다니 히로유키명예연구원의 책 ‘지의류는 무엇일까’에 따르면, 치즈지의의 경우 1년 동안 자라는 길이는 많아야 0.5mm에 불과하다. 북극권이나 유럽에서는 더욱 더뎌서, 100년 동안 겨우 10~25mm 자란다. 치즈지의가 씨디(CD) 크기에서 축구공 크기 정도로 자라려면 무려 1000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재로서는 지의류를 인공적으로 키우는 방법도 없고, 배양한다 해도 속도가 느려 복원효과를 볼 수 없다. 배양할 경우 자연 상태의 지의체를 만들지 못하기도 하다. 지의는 약학자들이 탐낼 만큼 대단히 다양한 2차 대사물질을 만드는 것으로 밝혀져 있지만, 도무지 대량으로 배양할 방법이 없어서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포기했을 정도다.

바위나 나무에 붙은 사소한 얼룩처럼 보이는 지의류. 하지만 이들은 생태계의 일부로서 수억 년의 세월을 버텨왔다. 척박한 곳에서 언제나 가장 먼저 생명의 싹을 틔웠고, 가장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혹시 이들은 지금도 그저 묵묵히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위 위와 나무 위에서 숨죽인 채, 인간이라는 유해한 환경을.
글 : 윤신영 과학동아 ashilla@donga.com
이미지 출처 : 가시와다니 히로유키(柏谷博之) 일본국립과학박물관 명예연구원

과학동아 2015년 0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