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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핵쓰레기 묻을까? 태울까?


쓰레기가 나온다. 집안 한 곳에 잘 모아두고 있다가 분리수거를 한다. 재활용 쓰레기는 공장으로 가고, 나머지 쓰레기는 소각장에서 태우거나 매립장에 파묻는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이 경로를 따를 수 없다. 너무나 유독해 파묻을 곳도 찾기 어렵고, 분리 기술도 아직 없다. 그 결과 핵쓰레기는 고스란히 쌓여 집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대책이 없을까. 원전 전문가들은 제3의 대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핵쓰레기에서 독성이 강한 부분만 골라 태우는 ‘핵변환’ 기술이다.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를 가동시키고 난 뒤 발생하는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가동국들의 가장 큰 골칫덩이다. 아직 핵분열이 완전히 종료되지 않아 ‘잔열’이라 불리는 고열이 발생하고, 높은 수준의 방사선이 나오기 때문에 함부로 처치하기 곤란하다. 현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원전 바로 옆에 수조를 마련해 놓고 핵연료봉을 담가 식히는 임시 저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 대책이 아닌데다, 임시 저장시설도 곧 포화될 예정이라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과학동아 2014년 3월호 기획 ‘핵 쓰레기, 더 이상 버릴 곳이 없다’ 참조).

송명재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2016년부터 사용후핵연료의 포화가 시작되는 원전이 생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전끼리 사용후핵연료를 서로 나눠 저장하거나, 연료봉을 좀더 조밀하게 배치하는 대책을 통해 최대한 늦추면 그 기간을 2024년으로 늘릴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발등의 불인 것은 마찬가지다. 10년 안에 이 폐기물들을 파묻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핵쓰레기, 골라 태우면 어떨까

이런 상황에서 사용후핵연료의 양도 줄이고 독성도 낮추는 기술이 주목 받고 있다. 바로 핵변환이다. 핵변환은 비유하자면 일부 해로운 핵종을 ‘태워’ 다른 무난한 핵종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성분 대부분(95.6%)이 우라늄이다. 우라늄 원료를 태워 원전을 돌렸는데 우라늄이 이렇게나 많이 남았다니 이상하지만, 사용후핵연료봉에 들어 있는 우라늄은 우라늄-238로, 원전에서 연료로 사용하는 우라늄-235와는 다른 동위원소다. 현재의 원전으로는 우라늄-238을 태울 수 없고, 따라서 이들은 고스란히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된다.

사용후핵연료에는 그 외에도 약 3%의 안정 동위원소와 플루토늄(0.9%), 세슘과 스트론튬(0.3%), 그리고 약 0.2%의 미량 악티늄족 원소(아메리슘-241/243, 넵튜늄-237, 큐리움-244/245 등) 및 핵분열 동위원소가 포함돼 있다. 이들은 양은 적지만 모두 방사성 핵종으로 독성이 강하다. 특히 플루토늄과 미량 악티늄족 핵종은 핵심 골칫덩이다. 독성이 오래 가기 때문이다. 방사성 핵종은 반감기를 지날 때마다 절반씩 붕괴해 다른 원소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 지니고 있던 방사능도 줄어든다. 흔히 큰 해가 없는 수준으로 방사능이 줄어드는 시기를 반감기의 10배 남짓으로 본다. 자연 수준으로 방사능이 줄어들 때까지는 좀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기준에 따른다면, 3%의 안정 동위원소는 물론 후쿠시마 사태 때 크게 화제가 된 세슘과 스트론튬조차도 수백 년이면 충분히 안전한 상태로 변할 수 있다. 그런데 플루토늄과 미량 악티늄족 원소는 이런 수준이 되기까지 수만~수십만 년이 걸리는 이른바 ‘장수명 핵종’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수십만 년 동안 관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만약 사용후핵연료에서 장수명 핵종만 분리해 없애면 수십만 년의 관리 기간을 수백 년으로 줄일 것으로 보고있다. 이것이 핵변환이다.


핵연료의 변화
사용후핵연료에는 우라늄-238과 안정동위원소 외에 플루토늄과 미량의 악티늄족 원소 등의 장수명 핵종이 포함돼 있다. 장수명 핵종은 핵쓰레기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주범이다.


4단계로 핵폐기물 99.99% 제거한다

핵변환은 크게 네 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분리’ 단계에서는 사용후핵연료에서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는 핵종을 골라낸다. 우라늄-238을 분리해 다시 원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농축·재처리도 여기에 포함된다. 두 번째 단계인 ‘연료 제조’ 단계는 이렇게 분리한 핵종을 차세대 원전 등으로 태울 수 있도록 연료로 가공하는 기술이다. 이 과정이 만만치 않다.

이탈리아의 원전에 자리한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고. 오른쪽 아래 수조에 사용후핵연료봉을 저장한다.이탈리아의 원전에 자리한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고. 오른쪽 아래 수조에 사용후핵연료봉을 저장한다.


세 번째 단계는 본격적인 핵변환 단계로, 크게 두 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차세대 원전으로 우라늄-238과 플루토늄을 태운다. 그 뒤 남은 핵종 중 잘 타지 않는 장수명 핵종을 추가 기술로 제거한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핵변환을 거치면 우라늄과 플루토늄, 미량 악티늄 원소 등을 최대 99.99%까지 제거할 수 있다”며 “고준위 폐기물을 중저준위로 바꿀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처분’ 단계는 이렇게 만들어진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매립하는 단계로, 폐기물 양을 크게 줄인 데다가 방사능도 떨어져 지금보다 훨씬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다.

핵변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차세대 원전과 장수명 핵종 제거기술(제염기술)은 모두 현재 연구 단계다. 차세대 원전은 액체금속을 냉각재로 쓰는 납냉각고속로와 나트륨(소듐)냉각고속로 등이 연구되고 있지만 둘 다 아직 수십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더구나 이들만으로는 장수명 핵종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새로운 제염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기술은 가속기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양성자를 가속한 뒤 금속에 부딪혀 중성자를 발생시키고, 이 중성자로 문제의 핵종을 태워 안전하게 변환시킨다. 홍승우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카를로 루비아 박사에 의해 효과가 검증됐다”며 “334t의 납 구조물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 미량 악티늄 핵종의 제거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가속기 방식은 전체 전기 생산량의 약 20%를 가속기를 움직이는 데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신 안정적이다. 벌써 실험로 건설을 추진하는 나라가 있을 정도로 진척이 빠르다는 점도 장점이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국가는 벨기에다. 벨기에원자력연구센터(SCK·CEN)는 2017년 착공을 목표로 실험용 원자로 프로젝트 ‘미라’ 를 진행하고 있다. SCK·CEN 원자력시스템연구부 임준 박사는 “지난 4년 동안 벨기에 정부로부터 6000만 유로(약 8100억 원)를 지원 받아 건설 초읽기에 들어갔다”며 “현재 약 100명의 연구진이 이론과 원자로 설계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박사는 “EU 역시 관심이 많아, 소규모 프로젝트 형식으로 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며, 아레바 등 프랑스 기업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역시 후쿠시마 사고 이후 급격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도쿄 북동쪽 이바라키 현에 위치한 양성자가속기연구소(J-PARC)는 연구소 내에 핵변환 전문 실험 시설 두 기를 건설하기로 확정했다. 이 시설은 빠르면 2016년부터 건설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라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SAEA) 전략기획실 오오이가와 히로유키 박사는 “문부과학성이 2014년 3월 새로 발표한 ‘에너지 계획 신전략’에는 핵변환 항목이 분명히 명시돼 있다”며 “몬주 등 차세대 원전과 함께, 가속기 방식의 핵변환을 원자력 정책의 두 축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밖에 독일과 미국 등도 사용후핵연료를 줄이는 데 핵변환을 활용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핵연료봉은 일부 국가에게 전기를 풍요롭게 쓰게 해 주지만, 가장 무서운 폐기물이 되기도 한다.핵연료봉은 일부 국가에게 전기를 풍요롭게 쓰게 해 주지만, 가장 무서운 폐기물이 되기도 한다.


한국은 아직 걸음마

한국은 걸음마도 못 뗀 수준이다. 1990년대 이후로 국가 주도의 핵변환 연구는 거의 없다. 벨기에의 미라 프로젝트에는 SCK·CEN 소속 한국인 과학자가 두 명 참여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국제공조는 전무하다. 학계에서는 황일순 교수가 미라 프로젝트와 비슷한 방식의 차세대원전(납냉각고속로)과 핵변환 기istockphoto술(파이로그린)을 연구하고 있는 게거의 전부다. 성균관대의 홍승우, 채종서 교수 등은 원료로 우라늄이 아닌 토륨을 이용하는 새로운 가속기 원전(토륨원전)의 기초 연구를 제안하고 있다. 토륨원전은 장수명핵종이 처음부터 적게 발생하고, 안전성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아 중국과 인도, 일본이 연구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재료 연구가 가장 중요한데, 한미원자력협정 때문에 국내에서는 직접 핵연료를 연구할 수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그나마 최근 약간의 융통성이 생기는 방향으로 협정이 타결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지만, 재처리와 핵변환은 수준과 방법에서 차이가 커 직접적인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핵변환은 아직 모두를 만족시킬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핵변환을 위해서는 차세대원전을 통해 우라늄-238을 1차로 제거해야 한다(가속기만으로도 가능은 하지만, 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 차세대원전 자체에 의구심을 품거나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핵변환까지 나아가기까지 가시밭길이 남아 있다. 하지만 다양한 기술적 대안이 있다면 서로 장단점을 비교해 보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핵폐기물 문제는 발등의 불이고, 현재 나와 있는 어떤 해결책도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핵변환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공전의 늪에 빠진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에 의미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 줄까.

글 : 윤신영 과학동아 ashilla@donga.com
일러스트 : 박장규

과학동아 2014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