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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물질을 보는 창 결정

2014년은 결정학의 해




기념품점에 가면 늘 눈을 사로잡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위 안의 빈 공간에서 수정이 자란 것을 보기 좋게 잘라 장식한 물건이다. 수정이 뭉쳐 있다하여 ‘자수정 클러스터’나 암석 속의 빈 공간에서 자랐다는 뜻에서 ‘자수정 정동(晶洞, Goede)’이라고 부르는 기념품이다.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면서 사달라고 조르다가 크게 혼나기도 한다.


결정, 비결정, 준결정… 결정이 결정하는 세상

2011년 겨울, 노벨 화학상에는 생소한 단어가 등장했다. ‘준결정(quasicrystal)’이란 말로, 모든 고체는 결정이나 결정이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는 연구였다. 1982년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 다니엘 셰프트먼 교수(당시에는 방문연구원)가 준결정이 있다고 처음 주장했을 때 학계에서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연구실에서 쫓아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준결정의 존재를 입증해냈고, 금속재료 분야에서 최초로 노벨 화학상을 거머쥐었다.

준결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결정과 비결정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결정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투명함’ ‘육각기둥’ ‘보석’ 등이 떠오르며 ‘수정’ 혹은 ‘크리스탈’(연예인 크리스탈 아니다!)로 부르곤 한다. 육각기둥 모양 결정은 동화책에서 금은보화를 표현할 때 보석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모양인데 실제로도 ‘수정’의 결정형이다.

결정은 원자나 이온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 고체 상태의 물질을 말한다. 배열된 모양에 따라 특유의 결정 형태가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단어의 어원이다. 결정은 영어로 ‘crystal’이라고 하는데, 그리스어로 얼음을 뜻하는 ‘crystalos’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결정의 이미지를 갖는 수정의 한자 ‘水晶’ 역시 물에서 유래했다. 결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과거에도 물이 어는 과정을 보며 결정의 어렴풋한 개념을 만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결정이 사용되는 곳은 ‘매우’ 많다. 기본적으로 금속재료는 모두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금속 결정이다. 산업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플라스틱도 복잡한 분자가 얽힌 고분자 결정이다. 심지어 도자기도 고령토 구성 광물의 고유 결정 구조 덕분에 만들 수 있는 물건이다.

반면 비결정은 원자나 이온, 분자가 일정한 배열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다. 예를 들어 유리는 석영(수정)처럼 규산염 광물(SiO2)로 된 물질이지만, 분자가 육각기둥 형태를 이루며 자라는 석영과 달리 각 분자가 규칙성 없이 그냥 ‘나열’돼 있다. 준결정은 원자 구조가 일정하게 배열돼 있는 것 같지만 규칙성이 없다. 펜로즈 타일링이 준결정 구조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시인데, 5각형 구조가 규칙성을 가진 것처럼 배열하지만 실제로 규칙성을 설명할 수 없다.


결정과 비결정에 대한 연구는 16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흥미롭게도 결정학은 수학에서 출발했다. 덴마크의 지질학자 니콜라스 스테노가 1669년에 현미경을 이용해 ‘면각 일정의 법칙’을 확립한 뒤, 위대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빌딩유닛(Building Unit) 개념을 이용해 이 법칙의 원리를 설명했다. 오일러 이후 1800년대 후반에는 에바리스트 갈루아의 이론이 결정학에 영향을 미쳤다. 갈루아는 ‘군(群, Group)’의 개념으로 도형의 선과 점, 면이 만드는 대칭군을 설명했고, 이 이론은 훗날 결정 구조를 설명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물리학과 컴퓨터의 발전이 결정학을 만들었다

결정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결정을 이루는 입자를 관찰할 수 있게 된 뒤였다.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이 음극선을 연구하던 도중 X선을 발견했고(뢴트겐은 이 공로로 190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12년, 막스 폰 라우에는 X선을 염화나트륨, 즉 소금에 투과시켜 염화나트륨 결정이 만드는 회절 무늬를 얻어냈다. 같은 해 헨리와 로렌스 브래그 부자는 라우에의 X선 회절을 간단한 방식으로 만들어 결정 구조를 보다 쉽게 얻어내는 공식을 만들었다. 각각의 공로로 라우에는 1914년, 브래그 부자는 191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참고로 로렌스 브래그는 25세 때 노벨상을 수상해 지금도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X선 결정학의 토대가 마련되자 과학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원자 모형에 대한 이론을 보어, 러더퍼드 등이 확립하면서 원자들이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X선 결정학은 원자가 결합한 방법을 가장 직접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결정에 X선을 투과하면 결정을 이루는 입자 사이로 X선이 통과하면서 회절이 일어난다. 결정을 통과한 X선이 만드는 회절 무늬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거꾸로 입자가 있는 위치를 알 수 있다.


회절무늬를 얻는 것은 쉬웠지만 무늬를 통해 결정의 3차원 구조를 계산하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일이다. 이 때문에 초기 X선 결정학에서는 결정 구조를 추론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것이 바뀌게 된 것은 1950년대 들어서였다. 미국에서는 우주 개발과 결정 구조 해석을 목적으로 컴퓨터를 발전시켰고, 인간보다 수백, 수천 배나 계산 속도가 빠른 컴퓨터는 결정 구조 하나를 알아내는 데 십수 년이 걸렸던 시간을 단숨에 수년으로 단축시켰다. 1980년대 초반에는 결정 구조 하나를 해석하는데 10년이 걸렸지만 80년대 후반에는 3년으로 줄었고, 이제는 결정에 따라 다르지만 빠를 경우에는 수 시간 만에도 복잡한 단백질 결정을 해석할 수 있다.

결정 구조를 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 이미 존재하는 결정 구조에 새로운 원자를 바꾸거나 제거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물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신소재를 찾기 위해서는 널리 알려진 물질의 결정 구조를 파악 한 뒤, 나트륨 원자가 있는 자리에 크기와 성질이 비슷한 칼륨 원자를 넣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물질을 만든 뒤 쓸모 여부를 판단한다. 수없이 많은 가능성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한 가지’를 찾아내면 소위 ‘대박’이 난다. 준결정을 발견한 셰프트먼 교수도 그랬다. 알루미늄 합금의 결정구조를 관찰해 새로운 합금을 만들려던 중, 원자 배열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결과 준결정의 존재를 찾아냈다.
 


단백질 결정이 노벨상을 결정한다

다시 컴퓨터 이야기로 돌아가자. 1939년 라이너스 폴링은 그의 저서 ‘화학결합의 특성 및 분자와 결정의 구조’에서 X선 회절을 이용하면 원자간의 화학적 결합을 계산할 수 있다는 연구를 내놨다. 원자 간의 화학적 결합을 계산할 수 있다면 분자의 구조를 완전히 파악해 분자를 이루는 원자가 다른 원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폴링은 이 연구로 195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폴링의 연구는 바로 단백질을 결정으로 만들던 과학자들에게 이용됐다. 1926년 제임스 섬너가 요소분해효소를 결정으로 만들기 전까지 단백질은 분자량이 너무 커서 폴리머 같은 물질일 뿐 결정을 만들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폴링이 원자간 화학적 결합을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섬너가 단백질 결정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단백질 구조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3요소가 모두 갖추어졌다. 이제 단백질을 결정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섬너의 업적을 그냥 넘어가면 서운할 테니 덧붙이면, 1930년 소화효소인 펩신을 결정으로 만든 존 노스롭과 1935년 바이러스를 결정으로 만든 웬델 스탠리와 함께 194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1900년대 중후반에는 단백질을 결정으로 만들어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노벨화학상에 바짝 다가서는 지름길이었다. 1958년에는 프레데릭 생어가 인슐린 분자의 구조를 해석했으며, 1962년에는 존 켄드루와 막스 페루츠가 헤모글로빈을 결정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로도 비타민 B12(도로시 호지카), 광합성 단백질(요한 다이젠호퍼, 로베르트 후버, 하르트무트 미헬), 칼슘이온통로 입체구조(피터 에이그리, 로더릭 매키넌), 리보솜 원자단위 구조(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 토머스 스타이츠, 아다 요나트), G단백질 연결 수용체 기능과 구조(로버트 레프코위츠, 브라이언 코빌카) 등이 단백질 결정을 통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노벨 생리의학상에도 아주 중요한 발견이 나왔다. 1962년 프랜시스 크릭, 제임스 왓슨, 모리스 윌킨스가 DNA 분자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함으로 지금의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을 낳았다. 이들의 노벨상에는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촬영한 DNA X 구조선 회절 무늬 사진이 결정적이었다. 직접적인 결정 구조 해석이 아니어도 핵자기공명분광학(NMR) 개발과 같은 업적까지 포함하면 결정학과 관련해서 나온 노벨화학상이나 생리의학상은 20여 개에 달한다. 결정학이 현대 화학과 생리의학의 기반을 이룬 방법이었던 셈이다.

이지오 KAIST 화학과 교수는 “일단 단백질 결정 구조를 해석하면 어떤 물질과 잘 결합하는지, 어느 부분의 결합이 약한지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단백질과 상호작용하는 또 다른 물질을 만들어 내기 쉬워진다”며 “신약을 개발하거나 질병의 원인을 파악할 때 단백질 구조를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 차세대 노벨상을 결정할까

지금도 전세계에서 많은 학자들이 새로운 단백질 결정을 찾기 위해 로또 당첨에 가까운 확률에 도전하고 있다. 인간의 몸에는 약 2만 5000개에 달하는 단백질이 있지만 실제로 그 구조가 발견된 것은 10%도 채 안 된다. 단백질 결정을 만드는 과정이 아직도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단백질 용액을 수천 종류의 결정화 용액과 섞어 온도와 산성도를 다양하게 조절해 놓아두면, 단백질마다 서로 다른 조건에서 결정이 생긴다.

운이 좋은 사람은 몇 시간 만에 결정을 만들지만 운이 나쁜 사람은 수 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이지오 교수는 “박사 논문을 준비할 때 결정을 얻어내는 데만 4년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심지어 누군가 먼저 발견해 버리면 오랜 시간 들인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단백질을 결정으로 만들어 해석하는 일은 그만큼 대단하면서도 외롭고 힘든 싸움이다.

로또를 바라는 심정으로 단백질 결정을 만드는 학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론적으로 X선보다 수억 배 강한 빛을 단백질에 쪼이면 결정이 아니어도 구조를 찾을 수 있다. 아주 강한 빛과 단백질 분자가 부딪히면 닿자마자 부숴지지만 그 찰나의 순간 구조에 대한 고해상도의 자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포항에 짓고 있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X선 결정학에 쓰이는 3세대 방사광가속기(현재 포항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속기)에서 나오는 빛보다 세기가 100억 배나 강하기 때문에 관측 크기가 수 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밖에 안 돼도 구조를 해석할 수 있다. 아직은 가설을 확인하는 단계지만 성공한다면 수많은 학자들이 단백질 결정을 목메고 기다리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는 수학을 기반으로, 때로는 물리학을 배경으로 성장했던 결정학이 이제는 최신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로 통한다. 미지의 물질을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을 확인하면서 준결정을 발견했고, 한때 결정으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던 단백질을 결정으로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연구의 기초 단계를 지지하고 있는 결정학, 2014년 결정학의 해를 맞아 우리는 얼마나 새로운 결정을 찾아낼지 기대된다.


글 : 오가희 과학동아 solea@donga.com
이미지 출처 : Kalju Kahn, 위키미디어, 펜실베니아주립대

과학동아 2014년 0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