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잡지원본보기

[hot science] 그 위성은 왜 죽었을까

행성 고리에 남겨진 흔적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태양계의 네 행성은 모두 주위에 고리를 가지고 있다. 목성 고리는 소박한 금반지 같고, 토성 고리는 보석 반지를 몇 겹 겹쳐 낀 것만큼이나 화려하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행성의 고리는 사실 천체가 죽은 현장이란다. 사건 현장을 조사하면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듯, 행성 고리에서 천체의 죽음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토성’하면 아마도 예쁘고 화려한 고리가 떠오를 것이다. 토성의 아름다운 고리는 오래 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1610년 토성 고리를 처음으로 관찰했다. 이어 1676년 지오반니 카시니는 토성의 고리가 두 부분(A고리와 B고리, B고리가 안쪽)으로 나눠져 있고, 그 사이에는 4800km에 이르는 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틈이 바로 ‘카시니 간극’이다. 1859년 제임스 클락 맥스웰은 토성의 고리가 작은 알갱이로 구성돼 토성 주위를 돌고 있을 거라고 예측했고, 제임스 킬러가 분광관측으로 이를 증명했다.

후에 목성과 천왕성도 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의 고리는 어둡고 얇아 지구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1989년 해왕성도 고리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태양계의 목성형 행성(가스로 이뤄진 행성)은 모두 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행성이 고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행성 고리를 잘 모른다. 행성의 고리가 작은 파편들로 이뤄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파편이 어떤 천체의 흔적인지, 누가 이 천체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과학자들은 고리 속 파편을 이용해 천체의 죽음에 숨겨진 이야기를 연구하는 중이다. 우선 가장 잘 보이는 토성 고리를 바탕으로 행성 고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가설을 세우고, 용의자를 찾기 위해 수사에 나섰다.


가설1. 행성 고리는 행성을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다

태양계가 처음 만들어질 때 태양을 중심으로 가스와 먼지로 구성된 큰 원반이 있었는데, 여기서 각각의 행성이 탄생했다. 이때 남은 부스러기 중 행성 가까이 있는 것을 행성이 끌어들여 고리를 만들었다는 것이 첫 번째 가설이다.

하지만 토성 고리는 이 가설과 잘 맞지 않는다. 토성의 A고리 안에는 위성인 ‘팬’과 ‘다프니스’가 있다. 이 위성은 지름이 수km 정도 되는 제법 큰 위성이다. 이만한 위성이 고리에 끌려 들어가지 않고 생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팬과 다프니스의 위치로 두 위성의 탄생 시기를 계산한 결과,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것으로 드러났다. 팬과 다프니스가 있는 부분의 행성 고리 역시 초기 태양계 시절에 생긴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가설2. 행성 고리의 정체는 깨진 혜성이다

또 다른 가설은 혜성이나 소행성 같은 천체가 행성으로 날아와 깨지면서 고리가 됐다는 것이다. 2009년 북아일랜드 아마천문관측대 연구진은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유럽행성과학회 학회에서 지나가던 혜성이 목성의 중력에 잡혀 한때 위성 노릇을 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혜성의 이름은 ‘147P/쿠시다-무라마츠’로 1949년에서 1961년까지 12년이나 목성 주위에 머물렀다. 이전에도 혜성이 목성에 붙잡히는 현상은 종종 관찰됐다.

붙잡힌 혜성이나 소행성은 자신을 끌어당기는 행성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거나 다른 위성과 충돌하면 산산조각이 난다. 이렇게 생긴 파편이 계속 행성 주위를 돌며 고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토성은 물론 목성의 고리에서도 슈메이커-레비9 혜성과 충돌한 흔적을 발견해 ‘사이언스(5월 6일자)’에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 때문에 부서진 혜성이 고리가 됐다는 가설이 더욱 그럴듯한 것처럼 생각됐다.

하지만 사실 소천체가 주요 행성 근처를 지나면서 깨지거나 위성과 충돌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충돌 후엔 행성의 중력권을 벗어나 버리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궤도운동을 하며 고리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가설3. 행성 고리는 행성이 위성을 먹은 흔적이다

행성 고리에 대한 관측과 연구는 계속됐다. 미국 콜로라도 사우스웨스트연구소(SWRI)의 로빈 카눕 박사는 토성 고리가 생겼을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추측해 ‘네이처’2010년 12월 10일자에 발표했다. 토성의 위성이 토성에 흡수될 때 위성 표면을 싸고 있던 얼음층이 떨어져 나와 고리가 됐다는 내용이다.

위성이 행성에 흡수되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만유인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위성이 행성 쪽으로 이동하면 행성에 가까운 쪽과 먼 쪽에 미치는 인력의 크기가 달라진다. 위성의 밀도와 내부 응집력이 약하다면 위성이 부서지는 일도 생긴다. 위성이 부서지기 직전의 거리를 ‘로슈한계’라고 하는데, 보통 행성 반지름의 2.5배 정도 거리다. 토성의 경우, 밀도가 1g/cm3인 위성의 로슈한계는 토성의 A고리 중간쯤이다.

그렇다면 토성에 큰 중력이 작용하게 된 원인은 뭘까. 카눕 박사는 45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됐을 때 토성과 위성 사이에 존재했던 수소기체 소용돌이를 지목했다. 이 소용돌이는 1만 년 동안 계속 여러 위성을 토성 쪽으로 잡아당겼다. 위성들은 궤도가 점점 작아졌고 토성의 중력을 더 강하게 받아 결국 토성에 흡수됐다. 위성 표면을 싸고 있던 얼음층은 응집력이 약하기 때문에 이 순간 껍질이 벗겨지듯 떨어져 나온다. 카눕 박사는 컴퓨터 모델을 통해 이 가설을 증명했다. 점점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카눕 박사는 당시 생긴 얼음알갱이가 지금 고리에 있는 양보다 1000배 정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무거운 입자는 자체 중력 때문에 행성 쪽으로 빠르게 움직여 없어지고, 지금의 고리에는 가벼운 얼음 알갱이만 남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토성의 고리는 차츰 옅어지고 있다.한편 고리 속 파편이 흩어질 때 로슈한계 바깥으로 밀려나간 물질은 작은 크기의 위성을 만들어내는 재료로 사용된다.

실제로 카시니 탐사선이 관측한 결과와 일치한다. 토성고리의 바깥쪽에서 이런 물질이 응축돼 새로운 위성이 탄생하고 있었다. 팬, 아틀라스, 테티스 같은 토성 안쪽 위성들이 그 주인공이다.

토성 고리를 이루는 얼음알갱이는 토성 주위를 돌던 위성의 잔해로 밝혀졌다. 위성을 죽인 범인은 바로 토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행성의 고리도 행성이 위성을 흡수하고 남은 흔적일까. 아직 카눕 박사의 가설은 토성에만 적합한 것으로, 다른 행성에도 이 모델을 적용할 수 있는지는 더 확인해봐야 한다. 천체를 죽여 고리를 만든 범인을 찾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글 : 에디터 신선미 | 글 최영준

과학동아 2012년 0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