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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사온은 신기루?

조선 양반도 투덜댄 겨울날씨



“올겨울 강추위가 유난합니다. 열흘간 강추위가 지속됐지만 한파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대표적인 ‘삼한사온(三寒四溫)’.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진 걸까요. 한번 한파가 찾아오면 일주일 이상 지속되면서 삼한사온이란 말이 무색해졌습니다.” -2011년 1월 6일 YTN“

내일 아침에는 오늘보다 기온이 더 떨어지면서 이번 한파가 절정을 보이겠습니다. 하지만 삼한사온 현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서 추위가 오래가지 않고 내일 낮부터 누그러진다는 예보입니다. 이번 겨울 들어 강추위는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겨울날씨의 특징인 삼한사온이 10여 년 만에 나타나는 셈입니다.” -2012년 1월 11일 YTN


약 1년 전 방송국은 겨울철 삼한사온 현상이 몇 년간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지난달에는 삼한사온이 10여 년 만에 나타났다고 이야기한다. 삼한사온은 어디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것일까. 삼한사온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수록 관심이 가는 삼한사온 현상을 추적해 봤다.

수백 년 전에도 삼한사온은 맞지 않았다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를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은 삼한사온이다. 삼한사온은 말 그대로 사흘은 춥지만 나흘은 비교적 따뜻한 날씨가 반복된다는 의미다. 한반도의 겨울 기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베리아 기단의 세력이 강해지고 약해지는 과정이 대략 7일 단위로 반복된다는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한반도 북서쪽에서 만들어지는 시베리아 기단이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 방향으로 내려오며 세력을 확장하면 춥다. 따뜻한 남쪽 기단과 마주치며 세력이 약해지면 상대적으로 따뜻해지고 때로는 눈이 온다.

과연 예전에는 삼한사온이 정확했을까. 우리 조상들이 남긴 기록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중기인 효종 2년(1651년) 삼학사였던 김상헌은 “작년의 기후가 무척 추워 삼한사온이라는 이야기는 역시 믿기 어렵다”고 썼다. 조선 숙종 때 문신인 채팽윤은 “극심한 추위가 4일째를 지나니 삼한사온의 이치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글을 남겼다. 조선중기 학자인 심육은 “겨울밤 맑고 온난한 날 적으니 삼한사온 믿지 못하네”라고 썼다.

언제부터 삼한사온이라는 말을 썼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조선 중기와 후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한사온을 믿지 못하겠다는 문구가 곳곳에서 나온다. 수백년 전에도 삼한사온 현상이 들어맞지 않았다는 점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 강추위와 삼한사온 실종 현상이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이상 기후 때문이라는 주장에 의문이 생긴다. 상식적으로 300~400년 전에 지구온난화가 지금보다는 심각하지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한반도의 북서쪽에 자리잡은 바이칼 호수 위성 사진. 이곳의 결빙과 주위 적설 시기, 적설량이 시베리아 기단의 한랭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겨울 기온을 지배하는 주연과 조연은?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쪽에 있는 바이칼 호수는 정확히 한반도의 북서 방향에 있다. 면적 3만 1500km2, 남북 길이 636km, 둘레 2200k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북반구가 겨울에 접어들면 바이칼 호수를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지방의 지표 온도는 급격히 냉각된다. 땅 위에 있는 차가운 공기는 큰 세력을 만들며 ‘기단’으로 성장한다.

시베리아 기단을 정확하게 보려면 발원지에 눈이 언제부터 내리느냐, 얼마나 쌓여 있느냐에 주목해야 한다. 바이칼 호수가 얼어붙고 수면 위와 호수 주변에 눈이 일찍 쌓이면 시베리아 기단은 더 차가워진다. 어마어마한 면적을 자랑하는 바이칼 호수의 얼음과 주변 눈이 태양에너지를 반사하기 때문이다. 빛을 수직으로 비추었을 경우 빛을 반사하는 비율을 정상반사율이라 하는데, 눈의 정상반사율은 1.0에 가깝다.

밤이 되면 지표면에서 반사된 에너지가 상층에 모이고 지표면이 급격히 냉각된다. 상층의 기온이 더 높은 역전층이 발달하면서 고기압이 형성된다. 때문에 시베리아 지방에 일찍 눈이 쌓이면 시베리아 기단이 더 빨리, 더 춥게 형성된다. 보통 시베리아 기단은 영하 30℃ 상태에서 만들어지는데, 기단이 만들어질 때의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다. 결국 겨울철 기온을 직접 좌우하는 주연은 시베리아 기단의 강약과 형성 당시의 조건이다.

주연급 조연은 ‘제트 기류(Jet Stream)’다. 북반구 중위도 지역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는 강한 바람이 제트 기류다. 대기권 상부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고도 약 10km 부근에서 발견된다. 제트 기류의 속도는 시속 100~200km에 이른다. 시베리아 기단이 세력을 확장하면 남쪽에 있는 따뜻한 공기와 만난다. 두 공기의 온도차가 클수록 제트 기류는 강해진다. 따뜻한 집에서 차가운 바깥으로 문을 열면 바람이 세차게 불어 닥치는 것과 같다. 만일 온도 차이가 크지 않으면 제트 기류는 구불구불하게 흐른다. 이를 사행이라고 한다.

 



강한 제트 기류는 차가운 공기가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막는다. 일종의 병풍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제트기류가 강하면 우리나라는 위치에 따라 오랫동안 춥거나 따뜻해진다.

반대로 제트 기류의 사행 경로에서 우리나라가 찬 공기가 유입되는 지점에 있으면 추운 날이 길어진다. 반대 지점에 있으면 상대적으로 따뜻해진다. 제트기류가 사행하는 경로에서 추워지는 지점에 한반도가 위치할 때와 반대의 경우가 3~4일 간격으로 이뤄지면 삼한사온은 들어맞는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불 규칙하기 때문에 삼한사온은 엄밀히 말하자면 예나 지금이나 틀린 말이다. 제트 기류의 사행 경로에서 우리 나라의 위치에 따라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받는 정도가 결정되고 겨울철 기온도 좌우되는 것이다.

시베리아 기단은 남쪽의 따뜻한 공기와 만나 섞이며 변질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가벼운 따뜻한 공기는 가장자리로 밀려나면서 따로 떨어져 나온다. 이런 공기 덩어리가 자주 발달하면 기압골이 생기며 많은 눈을 내리게 한다. 이제 시베리아 기단과 제트 기류를 중심으로 삼한사온을 설명해 보자. 이승호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기후연구소장)는 우리나라의 사계절 가운데 비교적 겨울철의 기후 변화가 가장 규칙적이기 때문에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연 현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기계적이고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느 시대에도 기계적으로 3일 춥고 4일 따뜻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제트 기류가 강하게 불어서 공기 흐름을 막고 있으면 추운 날만 계속되거나 따뜻한 날만 계속 될 수 있어요. 그러다가 시베리아 기단이 변질된 상태에서 이동하면 기압골이 발달하고 많은 눈이 오기도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300~400년 전 삼한사온이라는 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때도 시베리아 기단은 강약을 거듭하며 발달했을 것이고 제트 기류도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구불구불하게 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온난화는 삼한사온 실종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일까.

 

지구 온난화와 북극 진동

삼한사온 실종과 몇 년 간 연속된 겨울 강추위를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가 지구온난화다. 온난화는 따뜻해진다는 얘긴데 겨울이 더 추운 이유가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니 아이러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북극 진동(Arctic Oscillation)’이다. 북극 진동은 북극의 찬 공기가 불특정한 주기로 강약을 되풀이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북극의 찬 공기가 진자처럼 아래위로 움직이기를 반복한다는 데서 진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북극이 차가워질수록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는 제트 기류가 강력해진다. 지구온난화로 북극 공기가 조금씩 따뜻해지면 온도 차이가 작아져서 이를 가두는 제트 기류도 헐거워진다. 제트 기류가 헐거워지면 구불구불하게 흐르고 북극의 찬 공기가 북극에만 머물지 않고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북극 진동이 한반도의 이상 한파와 삼한사온 실종의 직접적인 원인일까. 앞서 살펴본 대로 한반도 겨울 기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베리아 기단이다. 그렇지만 북극 진동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승호 교수는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북극 진동이 시베리아 기단은 물론 지구 북반구의 전체적인 편서풍과 제트 기류의 강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베리아 기단과 시베리아 기단이 남쪽으로 내려오게 만드는 제트 기류가 주연이라면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북극 진동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조연이라고 볼 수 있다.



 
[도시화는 국지적 기후현상을 좌우하는 또다른 요인으로 떠올랐다. 도시의 열섬현상이 심해지면서 겨울과 여름철 기온의 변화는 대도시일수록 커지고 있다.]
 
서울이 겨울에 더 따뜻한 이유

그런데 수백 년 전에도 삼한사온이 들어맞지 않았던 것처럼 요즘에도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떠오르고 있다. 지난 30~40년 동안 겨울철 기온 상승 폭을 보면 우리나라 전체에 비해 서울 지역이 훨씬 커졌다는 점이다. 즉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따뜻해진 것이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1973년부터 2011년까지 1월 기준 전국 평균 기온 변화 추세와 서울 지역 평균 기온 변화 움직임이 다르다. 해마다 들쭉날쭉하기는 했지만 서울 지역 평균 기온의 기울기, 즉 변화 폭이 더 크다. 그림과 표의 기울기를 보면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지난해 6월 대한지리학회지에는 이와 관련된 논문이 하나 실렸다. 이승호 건국대 교수와 허인혜 교수는 대한지리학회지 144호에 ‘한국의 도시화에 의한 극한기온의 변화’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논문에서 “한국에서 극한기온 지수는 대부분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기온 상승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며 “극한 기온의 변화는 도시 규모가 클수록 증가 혹은 감소 경향이 더욱 명확하다”고 주장했다. 도시의 기후 변화에 지구온난화 외에도 도시효과, 즉 열섬효과의 영향도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 지역에서 겨울철 극한기온 지수의 변화폭이 컸다. 대도시일수록 한랭일 비율은 포항(-0.185)에서 가장 크게 감소했고 인천(-0.172), 대구(-0.158), 부산(-0.156)이 뒤를 이었다. 한랭기 지속일은 서울(-0.249)에서 가장 많이 감소했고 도시 규모별로는 대도시(-0.145), 중소도시(-0.099), 비도시 (-0.032)순이었다. 이는 대도시일수록 추운 날이 상대적으로 적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극한 기온, 즉 여름철 기온과 겨울철 기온을 연구할 때 도시 효과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도시의 성격과 성장한 모습이 지역별로 다양하기 때문에 기후 변화와 관련된 도시 특성을 함께 고려해 연구해야 한다.

한반도의 겨울은 지구 차원의 기후 변화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몇 가지 요인에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나 삼한사온 현상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수백년 전에도 들어맞지 않았던 것처럼 여전히 밝혀내지 못한 변화도 남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한반도 기후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해 나가는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글 : 김민수 minsa@donga.com
이미지 출처 : 동아일보, istockphoto, 일러스트 | 유한진

과학동아 2012년 0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