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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살리는 작은 분자를 찾아서, GIST 신약표적 연구실


도롱뇽과 영원 같은 양서류는 다리가 잘려도 2달 정도 지나면 새 다리가 나온다. 잘린 부분의 근육세포 중 일부가 다시 줄기세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줄기세포가 활발히 분열한 다음 신호를 받아 뼈와 근육, 지방으로 분화해 다리를 새로 만든다. 그러나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는 한번 분화한 세포가 다시 줄기세포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그래서 조직이 망가져도 손상된 채로 살 수 밖에 없다.

다런 윌리엄스 광주과학기술원(GIST) 생명과학부 교수가 이끄는 신약표적 연구실은 최근 새로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간단한 화학물질을 뿌려 이미 분화한 포유류의 조직을 분화 이전으로 되돌려 뼈와 지방 같은 다른 세포로 만들어 낸 것이다.

손상된 조직 재생시키는 화학물질 개발

윌리엄스 교수는 근육에 ‘마이오세베린(myoseverin)’이라는 화학물질을 뿌리면 조직 일부가 ‘단일 세포’로 쪼개진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디어를 냈다.

“손상된 부분에 마이오세베린을 바르면 조직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손상된 조직 중 일부가 분화다능성세포로 돌아간다면 사람도 양서류처럼 새로 조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이오세베린을 생쥐의 근육에 넣자 윌리엄스 교수의 가설대로 24시간 후 근육이 단일 세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렇게 얻은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못했다. 세포 속 p21 유전자가 세포분열을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구팀은 또 다른 물질을 넣어 이 세포를 억지로 분열시켜 보기로 했다. siRNA를 뿌려 p21의 기능을 망가뜨렸더니 세포는 다시 왕성하게 분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역분화를 도와주는 화학물질인 ‘리버신(reversine)’과 지방세포로 변하게 하는 신호 물질을 넣었더니 7일 뒤 지방세포가 됐다. 넣는 신호물질에 따라 근육세포가 되기도 하고 뼈세포로 분화하기도 했다. 물질을 모두 섞어 뿌리면 한 번에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킬 수도 있다. 윌리엄스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물질이 포유동물의 사지 재생을 유도할 수 있다고 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상처를 빨리 낫도록 돕고 흉터를 감소시키는 연고나 화장품으로는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화학생물학 분야의 최고 권위 학술지인 ‘ACS 화학생물학’ 2월 28일자에 실렸다. 국제 특허 출원도 함께 준비 중이다.



신약과 치료의 표적을 찾다

“마이오세베린이나 리버신 같이 크기가 작은 화학분자는 사용이 간편하기 때문에 약으로 개발하기 좋습니다.”

자연에 있는 수많은 분자 중에서 약을 찾는 것이 바로 신약표적 연구실의 목표다. 얼마 전 연구팀은 싱가폴대에서 받은 화합물을 라이브러리에서 암세포를 죽이는 물질을 찾아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이 항암제 후보가 어떤 기작으로 암세포를 죽이는지 연구했다. 실험 결과 이 물질은 암세포가 주변 세포에서 양분을 끌어오지 못하게 막는다는 게 밝혀졌다.

“‘토양-씨앗 이론’을 들어보셨나요? 씨앗만 있다고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씨앗이 토양에서 양분을 얻어 자라듯이 암세포도 주변 세포에서 양분을 얻어 성장합니다. 이 수송로를 차단해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것이죠.”

윌리엄스 교수는 “암세포는 돌연변이가 심하기 때문에 각각의 암세포에 맞는 약을 종류별로 개발하기는 어렵다”며 “암세포 주변 세포의 특징을 관찰해 여기에 맞는 약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약표적 연구실의 정다운 연구교수는 “약효를 증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약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연구하는 것이 신약표적 연구실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렇게 생리활성이 있는 화학물질이 실제로 생물 내에서 어떤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지 밝히는 학문을 ‘화학유전체학’이라고 한다. 약학을 전공한 정 교수와 세포생물학을 전공한 윌리엄스 교수가 각 학문의 한계를 서로 보충하며 연구를 지도하고 있다.

“화학물질의 작용 기작을 확실히 규명하면 약의 부작용을 미리 알 수 있습니다. 또 새로 찾은 화학물질이 기존 치료제와 다른 기작으로 작용한다면 새로운 약물 표적을 개발할 수도 있죠. 화학유전체학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연구 분야입니다.”

신약표적 연구실은 화학물 라이브러리에서 혈당을 낮추는 물질도 발견했다. 실험 결과 이 물질은 인슐린과 구조가 비슷해 몸속에서 마치 인슐린처럼 행동한다. 이 물질을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신약표적 연구실의 또 다른 장점은 생명과학과 함께 영어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도 교수는 영국인이고 연구실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출신의 박사 과정 학생도 있다. 당연히 실험실의 공용어는 영어다. 윌리엄스 교수는 “처음엔 학생들이 발표하면서 진땀도 흘리고, 질문하고 답하기도 어려워 우왕좌왕했지만 의외로 수 개월 안에 모두 능숙해졌다”고 했다. 또 “논문을 쓰고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때 영어를 쓰기 때문에 연구자에게 영어는 필수”라며 “연구실에서 갈고 닦은 연구 실력과 영어 실력은 앞으로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 : 신선미 vamie@donga.com
이미지 출처 : 이서연

과학동아 201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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