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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사람과 야생동물의 동거 생활

우리 그냥 같이 살까?



고대 이집트의 동굴 분묘 벽화에는 늘 사람과 동물이 함께 등장한다. 이 벽화에서 사람과 함께 사냥하는 개를 흔히 볼 수 있다. 뿔이 큰 황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그림과 얼룩소의 젖을 짜는 모습도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이들과 같이 살게 된 걸까.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유적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발굴된 유골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개였다. 분석 결과 이들은 1만 2000년 전에 이미 사람과 함께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의 신석기 지층에는 사람이 사육한 양과 소의 유골도 있었다. 양은 8000년 전에, 소는 6000년 전에 인간과 함께 살았던 것으로 측정됐다.

사람이 만든 야생동물, 가축
왜 이곳에서 사람들은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만들기 시작한걸까. 미국의 사회학자 마크 코헨은 “식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플라이스토세 말기(1만 9000년~2만5000년 전)에 일어난 기후 변화 때문에 중동 지역은 심하게 건조해졌다. 사람들은 물이 풍부한 곳에 모여 살기 시작했고 결국 근처에서 잡을 수 있는 야생동물의 수는 급격히줄어들었다. 더 이상 사냥으로 고기를 구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보통 동물은 먹이가 부족하면 그 수가 줄어든다. 그러나 사람은 달랐다. 가만히 앉아 굶고 있는 대신 야생동물을 잡아다 길러 먹기로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고기를 안정적으로 섭취할 수 있었다. 고기는 잘 썩기 때문에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없지만 가축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일종의 ‘고기 저장소’였던 것이다. 게다가 영양이 풍부한 젖도 이용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하드자(Hadza)족은 지금도 가축을 기르지 않는다. 이들은 1만 5000년 전 생활처럼 야생동물을 사냥해 고기를 얻는다. 1968년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우드번은 “이 지역은 사냥감이 풍부하기 때문에 굳이 집에서 동물을 기르지 않아도 늘 먹을 것이 있었다”며 코헨의 주장을 뒷받침 했다.

사람은 가축을 기르며 고기 외에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가축의 털과 가죽으로 옷을 지었는데 주로 양이 이용됐다. 당시 양은 산양처럼 봄에 털갈이를 했다. 사람들은 이 털 뭉치를 모아 직물을 만들었고 이 옷은 추운 날 체온을 보호하기에 제격이었다. 동물의 뿔이나 뼈도 이용했다. 뿔과 뼈를 뾰족하게 갈아 화살촉과 창 같은 사냥 도구를 만들었다. 또 낚시 바늘과 작살 같은 어획도구와 괭이, 낫 등 농기구도 만들어 냈다. 집에서 기르는 야생동물이 유용하다는 것을 안 사람들은 더 많은 야생동물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이 처음 가축을 기르기 시작한 지역은 농경이 가장 먼저 시작됐다고 알려진 ‘비옥한 초승달 지대(보라색 부분)’다. 이 지대는 동쪽으로 페르시아 만에 닿아 있고 서쪽 끝은 나일 강 유역까지다.]




[➊ 야생동물은 가축이 되며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따라서 유골로 야생동물과 가축을 구분할 수 있다.
 ➋ 사람들은 동물의 뿔이나 뼈를 갈아 사냥 도구, 어로, 농기구 같은 여러가지 도구를 만들어 썼다.]


가축의 자격
야생동물을 집으로 데려온다고 해서 모두 길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4000종이 넘는 포유류가 있지만 이 중 가축이 된 것은 10여 종뿐이다. 과학자들은 가축이 되기 위해서는 유전적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가축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한라산에선 들개가 문제다. 들개는 집에서 기르던 개가 다시 야생동물이 된 것으로 한라산 목장에서 기르는 가축을 사냥해 먹고 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온순한 성질’이다. 온순한 동물은 공격성을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경우다. 공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로 지금까지 TPH2, MAOA 같은 16개 유전자가 보고됐다. 이 유전자들은 필수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을 세로토닌으로 만들고 다시 5-수산화아세트산(HT)으로 변형시킨다. 이 물질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중 하나로, 위험한 일이 생길 때 상대를 공격하거나 빨리 도망가라는 신호로 작용한다.

TPH2 유전자의 경우 1473번째 염기가 C면 공격성을 띠지만 G로 변하면 온순해진다. C 대신 G가 나타나는 비율은 30%로 변이율도 높다. 게다가 공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많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온순한 동물이 나오기는 쉽다. 여러 유전자에서 하나만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된다. 그러나 자연에서 이런 온순한 개체가 살아날 가망은 거의 없다. 야생동물은 공격성이 강해야 먹이를 구할 수 있고 위험에서 새끼를 보호할 수 있다. 또 수컷의 경우 다른 수컷과 싸워 이겨야만 암컷과 짝짓기 할 기회를 얻는다. 공격성은 자연에서 살아 남기 위한 필수 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집에 데려오면서 야생동물의 온순한 성질이 보존됐다. 이 동물에게도 사람의 집은 살기 좋은 곳이었다. 먹이가 공급됐고 쉴 곳이 있어 더 이상 떨지 않아도 됐다. 이들은 사람의 집에서 안락한 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러시아의 동물학자 스티븐 부디안스키는 ‘개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늑대 무리 중 집 근처에 떨어진 음식을 먹던 온순한 개체끼리 교배해 개로 분화했다”고 주장했다. 온순한 늑대는 사냥을 하는 것보다 음식을 주워 먹는 게 더 편했고 이렇게 살며 새끼를 많이 낳을 수 있었다. 대신 개는 사람의 집을 지키거나 사냥을 도왔다. 돼지도 비슷하다. 독일의 지리학자인 칼 사우어는 ‘씨앗, 삽, 화덕 그리고 가축치기’에서 “사람을 잘 따르는 돼지가 마을로 찾아 들어 음식물 찌꺼기를 먹어 치우면서 가축이 됐다”고 했다.

정말 온순한 야생동물끼리 교배시키면 가축이 되는 걸까. 1972년 러시아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라예프는 이를 증명해 보기로 했다. 그는 야생 쥐를 잡아다 무작위로 두개의 실험실에 분리시켰다. 한 그룹에서는 계속 온순한 쥐만 골랐고 다른 그룹에서는 공격적인 쥐만 번식시켰다. 30년 뒤 두 그룹의 성격은 전혀 달라졌다. 공격적인 쥐는 야생 쥐와 차이가 없었지만 온순한 쥐는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 사람이 철망우리 안에 손을 넣어도 놀라지 않았고 심지어 손 위로 걸어 올라오기도 했다. 결국 가축 유전자는 따로 있다는 것이 이들이 내린 잠정적 결론이다. 우연히 불을 발견한 것처럼 우리 조상은 ‘야생동물의 가축화 현상’을 발견했고 이를 계속 유지시킨 것이다.




[집으로 온 대표적인 동물들 개가 가장 먼저 사람과 같이 살게 됐고 이어 염소, 양, 돼지가 집으로 왔다. 소, 말, 라마, 낙타가 그 뒤를 이었다. 사람은 가축을 키워 음식과 가죽을 얻었다. 또 이들로 농사를 짓거나 타고 다니기도 했다. ]



그러나 가축 유전자가 절대적인 것은 아닌 듯하다. 집에서 기르던 가축이 자연으로 가면 다시 야생성을 얻기도 한다. 가까이 제주도에서 그예를 찾을 수 있다. 한라산에 사는 들개는 집에서 사육하던 개들이 집을 뛰쳐나와 야생화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에는 개목걸이를 한 녀석들도 있다. 유기견이 다시 야생화됐다는 증거다. 들개는 마치 늑대처럼 활동이 날렵하고 몸집이 크다. 집에서 자라는 개와 달리 성질도 거칠다. 한라산 고산지대서 노루가 내려오면 들개가 달려와 여지없이 물어 죽인다. 제주시에 접수된 노루 피해만 해도 2008년 13마리, 2009년 3마리다.

비슷한 유전자는 사람에게도 있다. ‘조폭 유전자’라고도 불리는 MAOA는 유명한 공격성 유전자다. 핀란드 헬싱키대 루프 티카넨 교수팀은 핀란드에서 1990~1998년 폭력으로 유죄 판결이나 사형 선고를 받은 범죄자들의 위험 요소를 조사했다. 이들에겐 반사회적 성격장애, 경계성 인격장애가 많았고 두 장애 모두 MAOA의 활동성이 높아지면 생긴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야생동물이 가축이 되려면 집에서도 잘 번식해야 한다. 스웨덴 웁살라대 의생명과학과 리프 앤더슨 교수팀은 “가축의 생식력은 TSHR 유전자와 관련 있다”고 했다. 앤더슨 교수팀이 집닭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야생닭의 TSHR 유전자에 변형이 생긴 사실을 알았다. 앤더슨 교수는 “이 돌연변이로 인해 집닭이 생식주기에 관계없이 알을 계속 낳을 수 있었던 것”이라며 “우리 조상들이 닭의 유전자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 결과는 지난해 3월 25일 ‘네이처’에 개제됐다.






가축이 만든 사람
가축화된 동물들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 가축 자체가 전파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가축화에 대한 기본 아이디어만 도입해 그 지역의 토착종을 새로 가축으로 만들기도 했다. 인더스 강 유역에 살던 사람들은 중동에서 야생소를 길들이는 방법을 본 떠 그 지역의 야생동물인 혹 달린 소를 가축화했다.

가축이 도입되자 사람들의 삶은 혁명적으로 변했다. 먼저 농업이다. 사람들은 소를 이용해 논밭을 갈았다. 사람이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은 100m2에 불과했지만 소는 하루에 무려 4000~5000m2나 되는 밭을 갈 수 있다. 또 소는 쟁기를 끌어 땅의 지력을 높였다. 가축을이용함으로써 곡식을 재배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한 곳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지었다.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아도 돼 임신을 자주 할 수 있게 됐다. 곡식으로 열량을 잘 섭취한 것도 중요하지만 임신을 도운 것은 가축이 주는 고기와 젖이다. 여성의 출산 능력은 단백질과 관련이 깊다. 몸에서 단백질이 차지하는 비율이 20%가 되어야 임신을 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 초기(1만 년 전)에 500만 명 정도였던 세계 인구는 기원전 4000년경 약 8600만 명으로 증가했고 기원후 1년에 이르러서는 2억 7000만~3억 30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사람이 늘어나자 이를 관리하고 통제할 지도자가 등장했다. 부족사회에 이어 도시 국가가 탄생했다. 도시 국가는 기원전 3200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고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중국 등 가축이 많은 곳에서 탄생했다. 결국 가축이 국가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소를 숭상한다. 대부분 인도 사람들이 힌두교도로, 이들은 도로에 소가 누워 있으면 소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를 몬다.]



키시, 우르크 같은 큰 도시국가는 이웃 도시를 지배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이용된 가축이 말이었다. 사람들은 말을 이용해 빨리 이동했고 많은 군수품을 수송할 수 있었다. 특히 그리스 북동쪽에 위치한 스키타이 왕국의 말은 유럽이나 중동의 말보다 체구가 훨씬 커 전투용으로 인기 있었다. 스키타이 말은 다른 국가로 수출됐다. 주로 마케도니아에서 사들였다.

스키타이 인은 말에 등자(발받침)를 달아 탔는데 이는 전쟁의 기술도 바꿔 놨다. 등자가 없으면 달리는 말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등자가 들어온 뒤 말을 타고 달리며 창을 던지고 활을 쏠 수 있어 가까이 가지 않고도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 엄청난 기동력으로 전쟁의 양상이 달라진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병대를 이끌고 500만km2에 달하는 광대한 세계 제국을 건설했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전쟁의 승패는 말을 이용한 기동력에 따라 갈리는 일이 많아졌다.]



그들은 왜 돼지를 먹지 않을까
모든 민족이 모든 가축을 먹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학자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는 “이집트 사람들 사이에서 돼지는 부정한 동물로 간주돼 돼지와 스치면 당장 강으로 달려가 옷을 입은 채로 강물에 뛰어들 정도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지금도 중동지역에서는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간주한다.

왜 돼지에 이러한 금기가 생겼을까?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먹을 거리 문화는 식량 생산 환경과 체제에 적응해 온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즉 식품의 금기는 사람과 가축이 오랫동안 함께 살아오며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동지역에서는 주로 소, 양, 염소, 낙타를 기른다. 이들은 물 없이도 꽤 오랫동안 살 수 있다. 반면 돼지는 땀샘이 없어 중동의 더운 날씨를 이겨내려면 쉼 없이 시원한 물에 몸을 적시고 그늘에서 몸을 식혀야 한다. 고기를 공급하는 데 돼지만한 동물은 없다. 하지만 물이 부족한 중동지역에서는 돼지를 기를 수 없어 아예 더럽게 여기기로 했다는 것이 마빈 해리스의 주장이다. 인도에서 소를 숭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도에서는 소를 먹는 것보다 기르며 밭을 갈고 우유를 얻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에 먹는 것을 금지해 왔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 가축을 선택해 기른 것 같지만 동물 역시 스스로 가축으로 다가온 면도 있다. 분명한 것은 지난 1만 년 동안 가축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달랐을 거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가축 때문에 행복하지만 가축도 그럴까. 지난 겨울 한반도에 불어 닥친 구제역으로 사람과 함께 살던 소, 돼지 350만 마리가 땅에 묻혔다. 열 집 중 한 집이 자식처럼 기르던 개를 내다버린다. 우리를 선택했던 야생동물은 요즘엔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2파트에서 가축과 인류의 요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글 : 신선미 vamie@donga.com

과학동아 2011년 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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