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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은 없다?

뉴턴과 아인슈타인도 대답 못한 발칙한 질문들

〃내게 중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면 아마도 얼토당토않은 말이라며 시답잖게 들을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에 딱 붙어 살아가는 우리는 매순간 중력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 말은 7월 중순 미국 ‘뉴욕타임스’지의 기사에서 저명한 물리학자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의 에릭 벌린데 교수가 한 말이다.

올해 초 벌린데 교수는 ‘중력의 기원과 뉴턴의 법칙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학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 논문에서 그는 당돌하게도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중력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기본적인 힘이 아니라 우주가 열역학 법칙을 따라 최대 무질서도(엔트로피)를 갖다보니 나타나게 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중력에 ‘엔트로피 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감히 뉴턴과 아인슈타인에게 도전하다니, 학계에선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싹 무시하는 분위기였을까. 그랬다면 뉴욕타임스에 나오지도 않았을 게다. 199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제라드 토프트 교수는 “물리학자로의 나의 직관은 그의 이론을 고무적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어쩌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걸까. 분명 우리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으로 우주선도 쏘아올리고 우주 탄생의 비밀도 풀었는데 말이다. 뉴턴이 고전적인 중력이론을 세운 지는 300년이 넘었다. 아인슈타인이 이를 확장시켜 자신의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내놓은 것은 100년이 되어간다. 우리 인간은 중력에 대해 안 지도 오래됐고 무엇보다 실제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중력을 정말 제대로 아는 걸까. 물리학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물리학자에게 중력은 가장 오래되고 친숙한 힘이지만 본질적인 질문에는 답할 수 없는 가장 골치 아픈 존재다. 중력에게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현대의 그 어떤 물리학자도 명쾌하게 답하지 못한 발칙한 질문을 몇 개 던져봤다.




1. 중력이란 무엇인가

“중력이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사람들은 어떤 답을 할까. 고등학교 물리를 배운 사람이라면 질량을 가진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리학에 관심이 있어서 상대성이론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질량과 에너지로 인해 4차원의 시공간이 휘어져 나타나는 게 중력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전자가 뉴턴식 해답이라면 후자는 아인슈타인식 해답이다.

조금만 딴지를 걸어보자. 질량을 가진 물체는 왜 서로 끌어당길까. 질량과 에너지는 왜 우주의 시공간을 휘어놓을까.


당돌하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 학생이라면 선생님이 당황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당연하다. 아직 어떤 물리학자도 대답하지 못했으니까.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중력이란 무엇이며, 왜 나타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그들이 제시한 건 단지 그 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수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힘이 모두 4가지라고 본다. 4가지 기본 힘은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다. 마찰력, 구심력, 복원력과 같은 나머지 힘들은 모두 이 4가지 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중력을 제외한 나머지 힘은 모두 정체가 밝혀졌다. 각 힘을 전달해주는 입자, 즉 매개입자를 발견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전자기력은 우리가 흔히 빛의 알갱이로 알고 있는 광자(光子)다. 강력은 글루온, 약력은 W, Z 보존이 매개입자다.

하지만 중력의 매개입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물리학자들은 중력도 다른 3가지 힘처럼 매개입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중력의 매개자를 ‘중력자’(graviton)라고 미리 이름도 붙여놓았다. 그러나 중력자가 발견된다 해도 중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백한 대답이 제시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2. 중력은 왜 약할까?


“중력은 약하다. 괘씸할 정도로 지독하게 약하다.”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강연에서 이렇게 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얼마나 약하기에 파인만은 이렇게 얘기한 걸까. 전자기력과 비교하면 중력은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약하다. 얼마나 0이 많은지 세려면 눈이 빙글빙글 돌아갈 것이다. 0은 총 40개다.

중력과 전자기력의 세기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자. 종이를 찢은 종잇조각들을 공중에 날리면 바닥으로 떨어진다. 중력 때문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빗을 문질러 정전기를 일으키면 바닥에 있던 종잇조각은 쉽게 위에 있는 빗에 달라붙는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정전기력이 질량이 약 6×1024kg이나 나가는 지구의 중력을 거뜬히 이겨버린 것이다.

강력과 약력은 작용하는 공간이 원자 안으로 제한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원자 안에서만큼은 전자기력에 필적할 정도로 강력하다. 중력은 4가지 기본 힘 중 가장 약해빠졌다. 약한 게 그리 대수로운 일일까 싶지만 파인만이 불쾌해할 정도로 아주 골칫거리다.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의 양대산맥인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합치려고 지난 100여 년을 애써왔다. 하지만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이 일을 방해하는 큰 걸림돌은 2가지다.

하나는 아인슈타인이 만들어낸 4차원 시공간의 그물망이다. 중력은 다른 기본 힘과 달리 유일하게 시공간과 연을 맺고 있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소립자의 세계에서 시공간의 그물망을 확인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은 오늘날 중력을 이해하는 데 방해만 된다는 불평도 쏟아지고 있다.

또 다른 걸림돌은 중력의 약한 힘이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중력을 시험하기엔 다른 힘들에 비해 너무 약하다. 예를 들어 약 70kg의 몸무게를 가진 사람이 탄소 원자 위에 서있다고 한다면 그의 몸무게는 고작 10-35kg으로 확 줄어든다.

왜 이렇게나 중력은 약해빠진 걸까. 1998년 한 물리학자는 중력이 어디론가 새어나가기 때문이라는 이론을 펼쳤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기본 단위가 선이라는 초끈이론은 우리의 세계가 3차원의 공간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차원이 존재해 총 10개의 차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시간은 또 다른 1개 차원). 미국 뉴욕대 지아 드발리 교수는 “다른 힘에 비해 중력이 약한 이유는 중력의 대부분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중력이 새어나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아주 짧은 거리를 사이에 둔 두 물체 사이에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확인하려는 실험을 벌이고 있다. 만약 거리를 좁혔을 때 중력이줄어든다면 중력이 다른 차원으로 새어나간다고 볼 수 있다. 실험은 0.6mm 거리까지 내려갔지만 아직 어떤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3. 중력은 어디서나 같나?

중력은 우주 어디서나 똑같이 작용할까?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세계에서부터 태양계를 넘어 은하, 은하단이 장악하는 광활한 우주까지 어디에서나 중력의 힘은 똑같을까?

6월 중순 ‘사이언스’지에는 자유낙하 실험에 대한 연구가 실렸다. 16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했다고 전해지는 피사 사탑의 자유낙하 실험과 비슷한 실험이 21세기에 발표된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일까.

갈릴레오는 낙하하는 물체의 속도가 질량과 상관없이 증가한다는 ‘등가성의 원리’를 제시했다. 이 원리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세우는 데 밑바탕이 됐다. 사이언스에 발표된 현대판 피사의 사탑 실험은 이 등가성의 원리가 미시세계에서도 통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등가성의 원리가 위배된다고 확인된다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중력이 워낙 약하다보니 이 실험을 벌인 독일 라이프니츠대의 에른스트 라셀 박사팀은 복잡한 물리현상을 동원해야 했다. 먼저 루비듐 원자를 가장 낮은 온도인 절대 영도보다 고작 10억분의 9도, 즉 9nK(나노켈빈) 높은 정도까지 극저온 상태로 얼렸다.

연구팀은 이 원자를 담은 실험 장치를 독일 ‘응용 우주과학 마이크로 중력 센터’에 있는 140m 높이의 탑에서 180차례나 떨어뜨렸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실험과 비슷한 셈이다.

실험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승리다. 그렇다고 해서 미시세계에서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이 완전히 검증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 과학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도 자유낙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태양계 너머 거시우주는 어떨까. 양자역학과 달리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은 지난 100여 년 동안 거듭되는 검증을 거쳐 입증이 됐다. 하지만 실제로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검증은 양계 내에 국한되어 있다. 아인슈타인은 태양계 너머 거대 우주는 아직 평정하진 못했다.

이 문제는 현대물리학의 최대 난제인 암흑에너지가 등장하면서 매우 예민한 사안이 되었다. 1990년대 후반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팽창속도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과는 반대되는 밀어내는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학자들은 이를 암흑에너지라고 부른다.

10년이 지났지만 암흑에너지는 무엇인지조차도 가늠되지 않고 있다. 중력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존재다. 그럼에도 우주의 73%를 암흑에너지가 차지한다는 계산값이 나왔다.


암흑에너지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우주를 비춰보았을 때 나타난 것이다. 만약 일반상대성이론이 틀렸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우주 어디서나 중력이 똑같지 않다면? 거대한 우주에서는 중력이 우리가 익숙한 세계보다 약하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암흑에너지라는 밀어내는 힘이 존재하지 않아도 우주가 왜 생각보다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지 설명이 된다. 실제로 이에 대한 이론이 이미 등장했다.

이 외에도 물리학자들은 다양한 주장들을 내놓고 있다. 중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새어나간다는 주장으로 암흑에너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4가지 기본 힘 외에 제5의 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글 첫머리에 등장한 것처럼 중력은 엔트로피 힘이라는 주장이 등장할 정도다.

어쩌면 이번 세기에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뛰어넘는 새로운 중력이론이 탄생할지 모른다. 축구선수 메시가 펠레와 마라도나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처럼 새로운 중력이론을 완성한 과학자는 뉴턴과 아인슈타인보다 더 훌륭한 과학자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물리학에 새로운 혁명이 불어 닥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 박미용 객원기자 pmiyong@hanmail.net

과학동아 2010년 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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