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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경사면 실험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한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된 것으로 유명하다. 토스카나 대공의 수학자가 돼 파도바대에서 피렌체로 거처를 옮긴 갈릴레오는 교회에 두터운 인맥을 만들었고, 교황 우르바누스 8세도 갈릴레오의 친구이자 열렬한 팬이었다. 하지만 갈릴레오가 1632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지지한 책을 출간하자 화가 난 교황은 갈릴레오를 재판에 회부해 연구 활동을 금하고 집에 가뒀다.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이르게 한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이르게 한


하지만 갈릴레오는 집에서 작업을 계속했고, 그 결과 ‘두 개의 새로운 과학’이 탄생했다. 그의 책은 이탈리아에서는 출간의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몰래 반출돼 1638년 네덜란드의 라이덴에서 출판됐다. 여기에 그 유명한 갈릴레오의 경사면실험이 들어있다. 갈릴레오의 경사면실험으로 등가속도운동 법칙이 정립되면서 이후 역학 연구는 날개를 난 듯 급속히 진전됐다.

갈릴레오의 경사면 실험은 매우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경사면실험은 300년 전부터 영국 옥스퍼드의 머튼칼리지에 있던 학자들이 계속 연구한 운동 법칙의 결정판이라 할 만 하다. 갈릴레오가 이전에 연구된 내용들을 뒤엎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한 것이라기보다는 머튼칼리지의 학자들이 개발하고 발전시킨 역학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집대성한 것이다.

1328년 머튼칼리지의 토마스 브래드와딘은 ‘비례에 관한 정리’를 출판했다. 그는 윌리엄 헤이츠베리, 리처드 스와인스헤드 그리고 존 덤블턴 등 자신의 책에 자극을 받은 재능있는 젊은이들과 함께 운동의 원인과 운동의 과정, 운동의 효과를 수학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이들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가속도 운동을 제대로 해석해냈고, 무엇보다도 평균속도정리를 증명해 등가속도운동 법칙을 발견하면서 이후 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평균속도정리는 일정한 가속도로 점점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물체가 움직인 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평균속도로 같은 시간 동안 운동한 물체가 움직인 거리와 같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면 공이 이동한 거리가 그 거리를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등가속도운동 법칙이 나온다.

물체가 가속을 받아 점점 빨라진다면 매순간 속도는 달라질 것이다. 헤이츠베리는 이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순간속도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했다. 순간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물체가 움직인 거리를 물체가 움직이는데 걸린 시간으로 나눠 평균속도를 구할 수는 있었다.

평균속도를 이용하면 가속도 운동의 효과를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브래드와딘과 그의 동료들은 순간속도를 측정하지 않고도 등가속도운동 법칙을 고안할 수 있었다.
사실 갈릴레오가 등가속도운동에 대한 자신의 가설을 이들의 수학적인 연구로부터 갖고 왔는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갈릴레오가 평균속도정리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학자들은 갈릴레오의 연구 노트를 들여다보면 그가 1603년과 1604년에 경사면에서 공을 굴리는 실험을 하기 전에는 평균속도정리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갈릴레오의 설명을 따라 그가 한 실험을 쫓아가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무거운 물체가 낙하할 때 처음에는 느린 속도로 떨어지다가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무거운 공을 부드러운 쿠션 위에 떨어뜨릴 때 공을 떨어뜨리는 높이를 조금씩 높여보자. 떨어뜨리는 높이를 높일수록 떨어지는 시간이 길어지고 쿠션에 남는 자국도 깊어진다. 하지만 떨어지는 물체의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래서 평평한 판을 벽에 비스듬히 기대놓고 공을 굴려 공이 천천히 가속되도록 하면 보다 손쉽게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갈릴레오는 우선 나무판에 홈을 판 뒤 이 부분을 평평하게 간 다음 나무판에 양피지를 덧씌웠다. 나무판을 비스듬히 세워 기울여 놓고 청동으로 만든 공을 잘 닦아 나무판위에서 저절로 굴러 내려가도록 장치했다.

처음에는 공이 같은 거리를 구르도록 여러 번 실험을 반복해서 매번 실험할 때마다 공이 구르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차이나는지 기록했다. 시간은 자신의 맥박을 세어 측정했다. 그 결과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해도 공이 같은 거리를 구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어느 경우든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공이 구른 거리와 그 거리를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 사이의 관계는 공이 구르는 거리를 1/4, 1/2, 1/3로 줄여 실험을 해서 얻었다.

전체 거리의 1/4이 되도록 공이 구르는 거리를 조정했더니 공이 구르는데 걸린 시간은 공이 전체 거리를 굴렀을 때 걸린 시간의 절반이었다. 이로부터 갈릴레오는 ‘수백 번의 실험을 반복했을 때 공이 구른 거리는 언제나 그 거리를 공이 구르는데 든 시간의 제곱에 비례했다’고 썼다. 갈릴레오는 마지막에는 좀 더 정확을 기하기 위해서 자신의 맥박을 재는 대신 가는 관에 흐르는 물의 양을 측정해 시간을 재기도 했다.

갈릴레오는 경사면 실험으로 거리가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등가속도운동 법칙을 제대로 설명했다. 하지만 갈릴레오가 깨끗하게 해소시키지 못한 점도 있다. 바로 물체가 자유낙하 할 때 등가속도운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 궁금증에 대해서는 이후 영국의 뉴턴이 대답을 했다.

뉴턴은 두 물체가 있으면 각 중심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 생각을 발전시켜 중력의 법칙을 만들었다. 유명한 뉴턴의 사과 일화가 여기서 나왔다. 중력은 두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질량에 비례하는 힘인데, 자유낙하 실험과 같은 짧은 거리에서는 일정하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뉴턴은 자유낙하 하는 물체는 모두 등가속도운동을 한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갈릴레오 이후 계속해서 수학적 방법이 정교해지고, 에너지와 운동량이라는 새로운 운동에 관한 개념이 등장하는가 하면 기하학 대신 미적분학을 사용하게 되면서 역학은 현대적인 방식으로 발전하게 됐다. 덕분에 지금 우리가 복잡한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갈릴레오의 경사면 실험은 300년 전 옥스퍼드의 수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운동에 관한 연구를 머릿속의 추상적인 개념에서 실제 세계에 적용 가능한 이론으로 거듭나게 한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갈릴레오는

1564년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태어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피렌체 근처의 수도원 학교에 다니기도 했지만 음악이론가이자 수학자였던 아버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 재능있는 사람이 성공하기 위한 첫째 요건은 재력가의 후원이었다. 갈릴레오는 운 좋게 그런 기회를 잡았고 후원에 힘입어 25세에 피사대 수학교수가 됐다. 1592년 파도바대로 옮긴 갈릴레오는 1610년 손수 만든 망원경으로 달에 있는 산맥을 자세히 묘사하고 목성의 달을 발견해 기록한 책을 출간하면서 유명해졌다. 하지만 말년에 그는 시력을 잃어 그간 버려뒀던 딸들에게 늙고 병든 몸을 의탁했고, 1642년 초 추운 겨울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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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경사면 실험

갈릴레오는 나무판에 홈을 파고 이 부분을 평평하게 간 다음 나무판을 벽에 비스듬히 세워 놓고 홈을 따라 공을 굴렸다. 수백 번의 실험 끝에 공이 구른 거리는 그 거리를 구르는 데 걸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등가속도운동 법칙을 알아냈다.

재현실험

경사면에 공을 굴리는 갈릴레오의 실험은 아주 간단하다. 비스듬히 세울 수 있는 판과 공, 그리고 시계만 있으면 초등학생도 쉽게 재현할 수 있다. 갈릴레오의 경사면 실험은 많은 사람들이 반복했는데, 그 이유는 갈릴레오가 실제로 경사면 실험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확실하지 않아 그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과학사학자인 코아레는 순전히 수학적인 추론만으로 갈릴레오의 실험 결과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갈릴레오가 실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또 다른 과학사학자인 드레이크는 갈릴레오의 연구 노트를 주의 깊게 연구해보면 갈릴레오가 실제로 실험을 해 보기 전에는 평균속도정리를 몰랐기 때문에 그가 실제로 실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재현실험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61년 세틀의 실험이다. 그는 갈릴레오의 실험 방법을 가능한 그대로 재현해 갈릴레오의 실험 결과와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이로부터 세틀은 갈릴레오가 실제로 실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갈릴레오가 머리 속에서 사고실험을 했는지, 아니면 실제로 실험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638년 출판된 1638년 출판된

 

글 : 주일우 고려대 과학학협동과정 iroojoo@krpost.net

과학동아 200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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