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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단지로 떠오른 민간요법

개구리 피부에서 강력 항생제 추출

 

서울대 약대 생체막단백질 연구실의 연구원이 개구리 항생 펩티드와 같은 아미노산 배열을 가진 물질을 합성하는 모습.서울대 약대 생체막단백질 연구실의 연구원이 개구리 항생 펩티드와 같은 아미노산 배열을 가진 물질을 합성하는 모습.


개구리는 피부가 연해 상처나기 쉽지만 다른 동물처럼 상처가 세균에 감염돼 덧나는 일이 없다. 우리 조상들은 이에 착안해 개구리 피부를 치료제로 썼다. 개구리 피부를 말려서 곱게 간 후 기름에 섞은 것을 상처나 부스럼이 생긴 자리에 바르는 방법은 훌륭한 민간요법이었던 것.

지난 4월 초 토종 개구리에서 뽑아낸 물질로부터 새로운 항생제가 개발됐다. 그것도 기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을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제품이다. 민간요법이 현대기술로 거듭난 사례다.

개구리 외에 목련, 뱀딸기, 쑥 등 친숙한 토종생물도 옛날부터 민간에서 각종 약제로 쓰였다. 최근 민간요법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더 나아가 흔하게 알고 있는 동식물에서 유용한 물질을 뽑아내 각종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토종생물에서 유용물질을 찾아내 신약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이 시작됐고, 2000년대 들어서는 과학기술부 21세기 프론티어사업단의 하나로 자생식물 이용기술 개발사업단이 출범했다.

조상의 민간요법이 현대 생명과학기술을 통해 ‘첨단 동의보감’ 으로 활발하게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개구리를 입에 문 이유

개구리는 다른 나라에서도 상처치료제로 사용돼 왔다. 한 예로 이탈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입에 상처가 나거나 입안이 헐었을 때 개구리를 산 채로 입에 물고 있었다고 한다. 개구리 피부에서 나오는 물질이 상처를 낫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말린 개구리 가루를 기름에 섞어 상처에 발랐다.

개구리 피부에서 상처에 좋은 물질이 나온다는 사실은 실험실 에피소드 덕분에 밝혀졌다. 1987년 미국의 외과의사 자슬로프 박사가 올챙이의 분화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살아있는 개구리의 배를 가르고 알을 꺼냈다. 그리고 나서 터진 배를 꿰맸는데, 항생제를 주사해야 한다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그 개구리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게 아닌가. 더구나 절개 부위의 상처도 감쪽같이 나아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자슬로프 박사는 개구리에서 나오는 ‘항생 펩티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펩티드(peptide)는 생체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보통 50개 이하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다. 인슐린, 호르몬 등이 좋은 예다. 이 가운데 항생 펩티드는 외부에서 세균이 침입했을 때 이를 파괴하는 일을 한다. 개구리 항생 펩티드는 최대 46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다.

개구리에서 분비되는 항생 펩티드는 그동안 유럽, 일본 등에서 많이 연구되고 있었다. 그런데 인체에 흡수가 잘 되는 항생제로 만들기에는 아미노산의 수가 너무 많아 약 크기가 커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새로운 항생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미노산의 수를 줄이는 과정이 급선무였다.

이번에 국내에서 개발한 개구리 항생제의 경우 서울대 약대 ‘생체막 단백질 구조연구실’ 이봉진 교수팀이 아미노산의 수를 11개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청개구리, 참개구리, 옴개구리 같은 토종 개구리에서 항생 펩티드를 분리한 후 이 물질을 개량해 효과가 탁월한 항생제를 개발했다. 토종 개구리로 만든 이 항생제는 기존 개구리 항생제보다 약 크기가 작고 흡수가 잘 되는 등 효능이 뛰어나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개구리 항생 펩티드의 3차원 구조를 밝힌 후 효과가 좋은 구조로 바꾸고 크기를 대폭 줄인데 있다. 연구팀이 핵자기공명법(NMR)을 이용해 3차원 구조를 알아낸 결과 토종 개구리의 항생 펩티드는 물에 잘 녹는 아미노산과 녹지 않는 아미노산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나뉘어 있었다. 두 종류의 아미노산 경계 부분에 ‘트립토판’ 이란 아미노산을 넣었을 때 항생 효과가 가장 컸다.

토종 개구리 항생제는 기존 항생제와 전혀 다르게 작용했다. 세균의 내부에 침입해 그 안에 있는 성분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세균을 둘러싸고 있는 막을 파괴시켰다. 기존 항생제의 경우 세균이 자신의 내부로 들어온 항생제의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대응할 수 있는 방어벽을 구축해 내성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개구리 항생제는 외부에서 성벽을 허물듯이 세균의 막에 구멍을 뚫어 세균을 공격하기 때문에 내성 문제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 즉 기존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도 죽일 수 있다.

또 천연물질이라 인체에 독성도 거의 없는 것으로 증명됐다. 연구팀이 인간의 적혈구나 세포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토종 개구리 항생제는 적혈구나 세포를 공격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세균만을 죽인 것이다.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3년 정도의 임상실험을 거치면 연고제 형태의 항생제가 개발될 수 있고 이후 먹는 약이 탄생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아미노산의 수가 작아 약의 크기도 작아지기 때문에 약 제조비용을 줄일 수 있고 대량 생산도 가능하다. 이번 결과는 세계적 학술잡지인 ‘생물화학지’ 4월호에 실렸다.

목련 꽃봉오리에서 천식 특효물질 뽑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이형규 박사는 목련에서 천식에 효과가 좋은 성분을 발견했다. 목련의 꽃봉오리는 민간요법에서 알레르기성 비염의 약물로 쓰여왔다.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이형규 박사는 목련에서 천식에 효과가 좋은 성분을 발견했다. 목련의 꽃봉오리는 민간요법에서 알레르기성 비염의 약물로 쓰여왔다.


봄을 알리는 식물 목련은 화사한 꽃을 자랑한다. 꽃이 피기 전의 목련 꽃봉오리인 ‘신이’ 가 약재로 좋다. 여러 종류의 목련 가운데 5가지 정도가 약용으로 쓰이는데, 민간에서는 전통적으로 두통이나 알레르기성 비염에 사용돼 왔다. 두통의 경우 신이를 달여서 물을 마시면 효과가 있고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을 때는 가루를 내 코에 직접 뿌려주면 콧물이 멈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신약연구부 면역제어연구실 이형규 박사는 특정 목련에서 천식에 효과가 좋은 성분을 발견했다. 이 박사는 자생식물 이용기술 개발사업단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목련과 천식 사이의 관련성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신이가 알레르기성 비염에 좋다는 사실을 접한 이 박사는 천식의 경우 70% 정도가 알레르기성이라는 점에 착안해 신이가 알레르기성 천식에도 좋지 않을까 하고 추론했다. 결국 천식에 효과가 좋은 리그난계열의 성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천식은 발작이 일어나면 기도가 막혀 호흡 곤란이 발생한다. 천식 발작은 만성 천식환자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기관지는 평활근으로 돼 있는데, 강력한 근육수축 작용물질인 류코트리엔(leukotriene)이나 혈소판활성화인자(PAF)가 기관지를 수축시켜 기도를 막고 천식을 일으키는 호르몬 역할을 한다.

리그난 성분은 혈소판활성화인자가 기관지 근육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이나 류코트리엔을 생성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때문에 신이가 천식에 효과가 있는 것이다. 장기간 복용하면 폐와 기관지의 염증을 없애는 효과도 있다.

현재 신이에서 뽑아낸 리그난계열의 화학물질 9가지를 이용해 국내 제약회사에서 천식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이 약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데, 최근 마지막 3상 시험에 들어가 머지않아 제품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뱀딸기에서 항암효과 찾는다
 

뱀딸기에서 항암효과를 나타내는 성분이 발견됐다. 현재 이 성분이 어떻게 암세포만 죽이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이 연구되고 있다.뱀딸기에서 항암효과를 나타내는 성분이 발견됐다. 현재 이 성분이 어떻게 암세포만 죽이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이 연구되고 있다.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어른들로부터 해선 안될 일을 여러가지 들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뱀딸기는 먹어서는 안된다는 금기가 있었다. 산딸기나 들딸기와 달리 물기가 많은 음습한 땅에서 5-6월경 오돌오돌하게 하나씩 열리는 새빨간 뱀딸기는 뱀과 입을 맞추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개구쟁이들은 뱀딸기를 따 먹기도 했다.

사실 뱀딸기는 밍밍하게 아무 맛도 없기 때문에 먹은 사람이 비위만 상할뿐 금방 뱉어 버리기 일쑤였다. 민간에서는 초여름에 뱀딸기 열매뿐 아니라 잎, 줄기, 뿌리까지 전체를 채취해 달인 물을 어린아이 태열(부스럼)이나 치통에 쓰기도 했다. 달인 물을 부스럼이 난 부위에 발라주면 부스럼이 가라앉고 이가 아픈 사람은 이 물을 마시거나 가글하면 치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해열이나 해독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는 뱀딸기를 생약명으로 사매(蛇梅)라고 한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면역학실험실 정가진 교수는 뱀딸기에서 뽑아낸 물질이 사람과 양의 적혈구를 응집시키고 생쥐의 비장세포(임파구)를 증식시키는 현상을 관찰했다. 적혈구가 덩어리를 지었다는 것은 어떤 물질이 세포 표면에 달라붙었다는 증거다. 임파구는 우리 몸을 순찰하다가 외부 물질이 발견되면 공격을 담당하는 면역세포다. 이를 통해 정 교수는 뱀딸기 추출물에 생체 내 면역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성분이 있다는 점을 추론했다.

정 교수는 배에 물이 차는 복수암, 피부암 등에 걸린 생쥐에서 뱀딸기 추출물의 탁월한 효과를 실험으로 확인했다. 또 뱀딸기 추출물이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암세포만 죽이는 사실도 알아냈다. 정 교수는 이 항암성분을 ‘ISL’(Indian Strawberry Lectin)이라고 지칭했고 현재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연구 중이다.

쑥의 위염치료에서 오미자의 미백효과까지
 

생선요리에서 향신료로 사용하던 배초향이 항동맥경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생선요리에서 향신료로 사용하던 배초향이 항동맥경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름 봄 들녘에 가장 먼저 돋아나는 나물 중 하나가 바로 쑥이다. 쑥은 오래 전부터 식용으로 쓰였는데, 약용으로는 주로 월경불순이나 대하 같은 부인과 질환에 자주 활용돼 왔다. 쑥을 달여서 그 물을 먹거나 좌욕을 통해 연기를 쐬면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쑥은 위장 계통에도 좋아 식욕부진이나 소화불량 때도 달여 먹었다. 이에 착안한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 이윤방 교수는 쑥에서 위염에 효과가 우수한 성분인 유파틸린을 발견했다. 실제 쑥 추출물이 위염 동물 모델에서 좋은 효과를 나타냈고 최근 국내 제약회사에서 위염 치료제로 개발해 시판되고 있다.

이밖에 민간요법으로 쓰이던 재료에 대한 최근의 연구 사례는 수없이 많다. 감기에 껍질을 달여 차로 마셨던 귤에서 동맥경화를 예방·치료하는 플라보노이드 성분을 찾아냈고, 생식으로 많이 활용되던 소나무에서는 항알레르기 작용, 소염 진통 효과, 발모 효과, 니코틴 해독 효과 등 다양한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또 옻칠의 소재로만 알고 있던 옻나무의 항암 및 면역 증강효과, 생선요리에 향신료로 사용하던 배초향의 항동맥경화 효과, 흔히 차로 마시던 녹차의 항당뇨 및 혈전억제 효과, 늘푸른측백나무의 발모 효과, 오리나무의 알코올대사 촉진 효과, 오미자의 미백 효과 등이 확인됐다.

민간에서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것은 모두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의 임상결과가 중요한 실마리인 것이다. 하나의 식물에 든 1천가지 성분 가운데 3백가지 성분이 추출 가능한데, 이들 성분에서 다양한 약효성분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느냐에 있다.

한편 민간에서 독성이 있다고 알려진 물질도 약으로 쓰일 수 있다.

대하

옛날에는 한의학에서 부인과 질병을 통틀어 이른 말이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여성의 성기에서 분비물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나와 외음부를 적시는 병적인 경우를 뜻한다.

글 : 이충환 cosmos@donga.com

과학동아 200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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